<정치를 만나다> 사분오열 정의당 류호정에게 묻다

“지금 이 순간도 가라앉고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의당의 존폐가 갈림길에 섰다. 당을 향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침몰하는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12년간 타고 온 배를 버릴지언정 목표를 위한 항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곱지 않은 당내 시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류 의원은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일요시사>가 류 의원과 만나 정의당의 내부 사정을 조목조목 뜯어봤다.

재창당을 앞둔 정의당이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위성 정당 전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밀려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기울어지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됐지만, 흡수되지 못하고 내홍으로 번졌다. 현 지도부를 향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맞서 일어났다. 다음은 류 의원과의 일문일답.

-공동대표를 맡은 정치유니온 ‘세번째권력’이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하다.

▲세번째권력은 양극단의 진영 정치가 끝없이 펼쳐진 이곳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최근에는 세 가지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선 운영위원은 정의당의 노선 전환을 위한 활동을, 집행위원은 신당 창당을 위한 실무적 작업을 하고 있다. 회원들은 새로운 정당의 비전을 놓고 토론 중이다.

-현재 정의당 내부에서는 ‘자강론’과 ‘연대론’으로 파가 나뉘어져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주장하는 자강론이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자강론은 “우리가 열심히 힘을 키워나가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논리다. 선거 때가 되면 ‘반윤석열 투쟁’의 일환으로 민주당과 다시 손잡을 수 있다는 기대를 내심 깔고 있는 듯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있지만 민주대연합으로의 회기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닐지 싶다. 결국 ‘민주당 2중대론’이 반복되는 것이다. 반대 선상에 있는 연대론은 ‘신당 창당론’과 ‘진보통합론’으로 나뉜다.

-진보통합론은 이 대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게 아닌가?

▲결이 다르다. 사실 이번 녹색당과의 연대는 오직 그 당의 정체성만 끌어들인 느낌이 강하다. 진보통합론은 노동당, 진보당 등 소위 진보정당이라고 불렸던 모든 정당을 합치는 방법이다. 이런 ‘헤쳐모여’ 방식은 과거 민주노동당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민주노동당도 민주대연합론도 다 실패했다. 그래서 세번째권력은 신당창당론을 주장한다. 정의당의 당명, 당색, 정책을 모두 원점서 재검토하고, 정의당이 신당창당의 선봉에 서자는 것이다.

대선부터 보궐선거까지 ‘참패’
언제까지 해 뜰 날만 기다리나

-이 대표와 지도부가 자강론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동안 지켜온 가치와 신념 등 내려놓을 수 없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챙길 게 많을수록 생각의 속도와 방향은 더뎌진다. 오히려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꿈을 지킬 수 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실을 모두가 확인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진성 당원의 자존심’까지 생각하다 보니 모든 걸 바꾸겠다는 결심이 쉽지 않아 보인다.

-재창당을 마친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다. 당원을 설득해서 데리고 나온 뒤 다른 배를 타고 항해를 이어가야 한다. 이 대표가 변화를 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사퇴하는 게 맞다. 이 대표가 변화를 결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당원이 낯설어하는 것들을 이 대표가 끈기 있게 설득해 바꿔야 한다.

-이 대표 사퇴와 더불어 정의당을 ‘가라앉는 배’라고 표현했는데?

▲그렇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당원들이 이 배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우리는 탈출해서 ‘정치 집권’이라는 목표를 향해야 한다. 다 부둥켜 끌어안고 가라앉는 걸 기다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의당이 접촉 가능하다고 알려진 세력 중에 ‘이준석 신당’도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대표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나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와도 소통이 안 되는 상황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라고 되겠는가? 큰 의미가 없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라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이 대표는 제3지대와의 연대에 선을 그었다. 녹생당과의 통합·연대가 추진된 배경이 궁금하다.

▲녹색당이 다른 진보정당을 재고 따지다 보니 소거법으로 정의당만 남았다. 나는 이 연대에 모순이 있다고 본다. “녹색당과 연대했으니 이제 다른 제3지대로 세력을 넓히겠다”고 말은 하지만 진심이 아니다. 지금껏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녹색당과의 통합·연대를 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변서 다른 세력과의 연대를 이야기하니까 마지못해 꺼낸 말이라고 보고 있다.

“자존심 부리다 다 죽어”
“대표직 사퇴” 쓴소리도

-새로운선택·한국의희망 등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매번 참석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축사를 위해서 갔다. 세번째권력은 제3지대서 양당제를 깨부술 사람이 다 모여야 한다는 기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부터 찾아가 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이다. 꽉 막힌 21대 국회를 경험하면서 양당제로는 좋은 정치를 기대할 수 없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를 22대 국회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당제를 구성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제3지대는 결국 거대 양당에 흡수될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이 있는데?

▲총선용 기획정당을 만들 생각은 없다. 향후 만들어질 제3지대 정당은 국민과 지지고 볶으면서 20년, 30년 지속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에 정의당 출신인 만큼 양당에 흡수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당 야당을 떠나 청년층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년 정치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청년 정치인이 겪는 부당한 상황에 자신을 투영해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보궐선거를 예로 들 수 있다. 패배한 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를, 정의당은 장혜영 의원과 나를 탓하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 젊은 느낌을 내기 위해 ‘젊은 피 수혈’을 하지만 그만큼의 권력을 주지 않는다.

청년이 집단에 소비되는 데 그치고 있다. 청년이 회사나 일터로부터 느끼는 기시감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결국 청년이 정치를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은 있는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있는 분당갑에 출마한다. 내년이면 분당서 거주한 지 약 10년이 된다. 취업을 위해 수도권 중에서도 판교로 왔고, 지금까지도 애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 분당은 30여년 된 신도시다 보니까 이제 재건축 이슈가 떠오르고 있다. 또 교육에 관한 열기가 상당한 곳이고 환경과 동물 복지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끝으로 국민에게 어떤 국회의원으로 남고 싶은지 궁금하다.

▲임기 초부터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는 생각을 했다. 임기가 끝났을 때에는 필요할 때 곁에 있었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실천하겠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8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