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불어닥칠 강서구청장 보선 후폭풍

쏟아부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렸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물 건너갔고 참패, 완패만 남았다. 본격적으로 당내 비윤계가 반발할 조짐이다. 김기현 대표는 사퇴보다는 “잘하겠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에 또다시 혼란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 당선인이 지난 12일 밤 11시30분경 강서구청장 선거서 낙승을 거뒀다. 기호 2번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는 17.15%p로 완승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 진 당선인은 56.52%(13만7065표), 김 후보는 39.37%(9만5492표)로 비교적 큰 표차가 났다. 

13만7065표
9만5492표

김 후보는 자정이 됐을 무렵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김 후보는 입장문을 통해 “지지해 준 분들의 성원에 화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김 후보는 본격적인 선거 활동을 하기도 전에 여러 논란이 뒤따랐다.

그는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당선 무효형에 해당돼 구청장 자리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다시 후보로 나선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스스로 만든 빈자리에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또 자신 스스로를 공익 신고자로 칭했는데, 김 후보의 죄명은 ‘공무상 비밀누설죄’였고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시작부터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선거에 패배하면서 국민의힘에 불어닥칠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선거 개표 당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아예 자리에 없었다. 이를 두고 어느 정도 패배가 예견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관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리전 격으로 불렸다. 승리에 따라 내년 총선의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였던 탓이다. 패배하는 쪽은 수도권 위기론을 더욱 심화할 수 있는 문제기도 했다. 

해당 문제는 국민의힘 윤상현·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떠올랐는데, 점차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은 이례적으로 사실상 당 전체가 김 후보를 지원사격하고 나서는 등 구청장 선거에 총력전을 펼쳤다. 당협위원장, 현역 의원을 가리지 않고 유세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 같은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는 압도적 표 차이로 패배하면서 국민의힘 발등엔 불똥이 떨어졌다. 패배가 어느 정도 계산에 깔려 있었지만, 과연 얼마의 표차가 나느냐가 관건이었다. 우선 국민의힘은 출발선부터 내부 상황이 어수선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당초 국민의힘은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가 번복됐고, 결국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면서 후보들 간 내분이 시작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갑자기 대법원 판결이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후보를 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관여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후보를 선정하는 경선 과정서도 파열음이 흘러 나왔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진선 전 당협위원장은 김 후보로 후보가 결정된 뒤 사실상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지난번 강서구청장 선거 당시에도 김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었다. 경선 결과 김 후보자가 정해지자 김 전 위원장은 지방으로 내려갔고 캠프 개소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진에 17.15%p 차이로 낙마 
다시 폭망 시절로 돌아간 격차


지역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조직이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충청 출신, 기독교 등 구민들의 지지를 상당수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의 지원사격이 있었을 경우, 진 당선자와의 격차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전 위원장의 측근은 <일요시사>에 “상심이 컸을 것으로 본다. 한 번 양보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후보로 나서지 못했다”며 “결국 내부조직도 결속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큰 선거였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거의 모든 수도권 지역서 패배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쉽게 내줘서는 안 되는 선거였지만, 원칙을 깨면서까지 선거를 밀어붙였다. 결국 승리를 내주면서 지도부를 향한 책임론도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당내 갑론을박이 심해질 양상이다.

당장은 공천 실패와 중량급 인사로 선대위를 꾸렸다는 점 등 선거전략의 실패였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김 후보의 선대위에는 정우택 국회부의장을 시작으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 정진석·권영세·안철수 의원 등 중진급 인물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면서 강서구를 찾아 집중 유세를 펼쳤으나 무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김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에 책임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도부는 지난 12일,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선거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본래 험지서 치른 선거임을 강조했을 뿐,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일절 내놓지 않았다. 강서구는 본래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예견된 패배
총력전 실패

그러나 21대 총선을 거치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대선을 거치며 격차가 줄었고,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을 앞질렀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다시 표심이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앞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주류가 꿈틀거릴 조짐이다. 당직 개편을 시작으로 나아가 대통령실까지 책임론이 분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윤(비 윤석열)계 세력의 당 지도부를 향한 공격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역대급 참패”라며 “당정 쇄신이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사리사욕에 눈멀어, 실패 체제 계속 끌고 갈 것”이라는 예측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로써 김기현호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면서 지도부 개편 목소리도 대두됐다. 현재 체제로 총선을 맞이하게 될 경우, 공천 분란은 불보 듯 뻔한 상황이다. 일단 지도부는 시선을 돌리려고 애쓰는 상황이다. 총선기획단을 빠르게 출범시켜 일찍부터 총선을 대비하기로 했다. 

또 차츰 시행하고 있는 인재 영입을 공식화하며 당무감사도 조만간 착수할 것으로 전해진다. 당 지도부에 책임론이 크게 가해지는 악재를 잡기 위한 전략이다. 일단 조만간 5명의 영입 인사를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현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총선 모드로 빠르게 전환한다고 해도 비상대책위원회나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당 지도부 
시선 돌리기

앞서 강서구청장 보선서 패배하는 쪽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문제는 현 지도부가 사퇴를 하더라도 비대위원장을 맡을만한 인물이 부재하다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비대위원장으로 언급된 인사는 권영세 의원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지만, 둘 모두 참신성이 떨어진다. 두 인물 모두 윤심에 바짝 붙어 있는 인사로 분류돼서다. 


보선 패배로 당 대표가 물러날 경우, 국민의힘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김 대표만 남고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명직 최고위원, 조직부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들의 일괄 사퇴 수순으로 마무리짓는 모양새다.

이철규 사무총장 외에 박수영 여의도 연구원장, 강대식 지명직 최고위원 등도 사퇴한다. 

지난 13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서 당 지도부가 사퇴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대신, 대표가 혁신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거론됐다. 또 다른 쇄신책으로는 미래비전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킬 방안을 검토했다. 미래혁신위는 혁신위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해당 기구가 출범하면 김 대표가 아닌 다른 인물이 이끌 예정이다. 

미래혁신위는 혁신위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체제로 알려졌다. 현재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김 대표는 이르면 다음 주 영입한 5명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인재영입위원장 직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입장에선 이제 원외 인사의 공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는 김기현 지도부에 공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이준석계인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망했다. 폭망”이라며 “원래 험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여당이 험지 메이커”라고 비판했다. 천 위원장의 말처럼 현재 국민의힘은 활로를 찾아야 한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영향은 내년 총선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위기론이 아닌 비상론
대통령실도 변화 모습 보여야

원외 인사 중 비윤계의 대표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도 한마디 보탰다. 유 전 의원은 “완패, 참패”라며 “윤석열정부를 향한 서울 민심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심한 듯 “당 책임보다는 대통령실의 책임”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했고, 형을 선고받은 지 3개월 만에 구청장 선거에 나섰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귀책 사유가 충분했는데도 내세울만한 이렇다 할 명분도 없었다. 처음부터 김 후보의 출마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당 지도부의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차기 총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탓에 대구·경북(TK) 소속 의원의 험지 출마론에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중진, 다선 의원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험지 출마론은 하태경 의원이 가장 먼저 제기했다. 하 의원은 부산서만 3선을 지낸 ‘해운대 터줏대감’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그의 출마지로 거론되는 지역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을이다. 

하 의원을 필두로 당내외서도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 요구가 높아졌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시선이 강한 가운데, 중진 의원들 사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함이 가득한 분위기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에도 불안함이 감지된다. 이른바 윤심 후보로 치르는 시험대였는데,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선 패배에 대해 대통령실은 “어떤 결과든지, 엄중하게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내년 총선서 다수의 대통령실 소속 인물이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들 역시 윤 대통령의 얼굴로만 치르기에는 위태로울 수 있다. 

국정 기조
변화 모색

관건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변화할지의 여부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나름의 뚝심을 보여왔다. 일단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며 한발 후퇴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대통령실이 대폭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대통령실 모두 위기다. 위기론이 아니라 비상”이며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김기현 지도부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표정 관리, 왜?

민주당이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서 승리하면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진교훈 후보가 압승을 거두면서 이재명 대표도 숨통이 트이면서 정국 주도권을 쥐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이 대표는 불구속 기소가 된 상황이다.

검찰은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이에 따라 재판 리스크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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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