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불어닥칠 강서구청장 보선 후폭풍

쏟아부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렸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물 건너갔고 참패, 완패만 남았다. 본격적으로 당내 비윤계가 반발할 조짐이다. 김기현 대표는 사퇴보다는 “잘하겠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에 또다시 혼란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 당선인이 지난 12일 밤 11시30분경 강서구청장 선거서 낙승을 거뒀다. 기호 2번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는 17.15%p로 완승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 진 당선인은 56.52%(13만7065표), 김 후보는 39.37%(9만5492표)로 비교적 큰 표차가 났다. 

13만7065표
9만5492표

김 후보는 자정이 됐을 무렵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김 후보는 입장문을 통해 “지지해 준 분들의 성원에 화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김 후보는 본격적인 선거 활동을 하기도 전에 여러 논란이 뒤따랐다.

그는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당선 무효형에 해당돼 구청장 자리를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다시 후보로 나선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스스로 만든 빈자리에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또 자신 스스로를 공익 신고자로 칭했는데, 김 후보의 죄명은 ‘공무상 비밀누설죄’였고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시작부터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선거에 패배하면서 국민의힘에 불어닥칠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선거 개표 당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아예 자리에 없었다. 이를 두고 어느 정도 패배가 예견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관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리전 격으로 불렸다. 승리에 따라 내년 총선의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였던 탓이다. 패배하는 쪽은 수도권 위기론을 더욱 심화할 수 있는 문제기도 했다. 

해당 문제는 국민의힘 윤상현·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떠올랐는데, 점차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은 이례적으로 사실상 당 전체가 김 후보를 지원사격하고 나서는 등 구청장 선거에 총력전을 펼쳤다. 당협위원장, 현역 의원을 가리지 않고 유세전을 펼쳤다.

하지만, 이 같은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는 압도적 표 차이로 패배하면서 국민의힘 발등엔 불똥이 떨어졌다. 패배가 어느 정도 계산에 깔려 있었지만, 과연 얼마의 표차가 나느냐가 관건이었다. 우선 국민의힘은 출발선부터 내부 상황이 어수선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당초 국민의힘은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가 번복됐고, 결국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면서 후보들 간 내분이 시작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갑자기 대법원 판결이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후보를 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관여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후보를 선정하는 경선 과정서도 파열음이 흘러 나왔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진선 전 당협위원장은 김 후보로 후보가 결정된 뒤 사실상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지난번 강서구청장 선거 당시에도 김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했었다. 경선 결과 김 후보자가 정해지자 김 전 위원장은 지방으로 내려갔고 캠프 개소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진에 17.15%p 차이로 낙마 
다시 폭망 시절로 돌아간 격차


지역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조직이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충청 출신, 기독교 등 구민들의 지지를 상당수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의 지원사격이 있었을 경우, 진 당선자와의 격차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전 위원장의 측근은 <일요시사>에 “상심이 컸을 것으로 본다. 한 번 양보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후보로 나서지 못했다”며 “결국 내부조직도 결속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큰 선거였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거의 모든 수도권 지역서 패배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쉽게 내줘서는 안 되는 선거였지만, 원칙을 깨면서까지 선거를 밀어붙였다. 결국 승리를 내주면서 지도부를 향한 책임론도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당내 갑론을박이 심해질 양상이다.

당장은 공천 실패와 중량급 인사로 선대위를 꾸렸다는 점 등 선거전략의 실패였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김 후보의 선대위에는 정우택 국회부의장을 시작으로 나경원 전 원내대표, 정진석·권영세·안철수 의원 등 중진급 인물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면서 강서구를 찾아 집중 유세를 펼쳤으나 무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김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에 책임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도부는 지난 12일,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선거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본래 험지서 치른 선거임을 강조했을 뿐,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일절 내놓지 않았다. 강서구는 본래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예견된 패배
총력전 실패

그러나 21대 총선을 거치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대선을 거치며 격차가 줄었고,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을 앞질렀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다시 표심이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앞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비주류가 꿈틀거릴 조짐이다. 당직 개편을 시작으로 나아가 대통령실까지 책임론이 분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윤(비 윤석열)계 세력의 당 지도부를 향한 공격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역대급 참패”라며 “당정 쇄신이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사리사욕에 눈멀어, 실패 체제 계속 끌고 갈 것”이라는 예측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로써 김기현호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면서 지도부 개편 목소리도 대두됐다. 현재 체제로 총선을 맞이하게 될 경우, 공천 분란은 불보 듯 뻔한 상황이다. 일단 지도부는 시선을 돌리려고 애쓰는 상황이다. 총선기획단을 빠르게 출범시켜 일찍부터 총선을 대비하기로 했다. 

또 차츰 시행하고 있는 인재 영입을 공식화하며 당무감사도 조만간 착수할 것으로 전해진다. 당 지도부에 책임론이 크게 가해지는 악재를 잡기 위한 전략이다. 일단 조만간 5명의 영입 인사를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현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총선 모드로 빠르게 전환한다고 해도 비상대책위원회나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당 지도부 
시선 돌리기

앞서 강서구청장 보선서 패배하는 쪽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문제는 현 지도부가 사퇴를 하더라도 비대위원장을 맡을만한 인물이 부재하다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비대위원장으로 언급된 인사는 권영세 의원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지만, 둘 모두 참신성이 떨어진다. 두 인물 모두 윤심에 바짝 붙어 있는 인사로 분류돼서다. 


보선 패배로 당 대표가 물러날 경우, 국민의힘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김 대표만 남고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명직 최고위원, 조직부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들의 일괄 사퇴 수순으로 마무리짓는 모양새다.

이철규 사무총장 외에 박수영 여의도 연구원장, 강대식 지명직 최고위원 등도 사퇴한다. 

지난 13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서 당 지도부가 사퇴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대신, 대표가 혁신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거론됐다. 또 다른 쇄신책으로는 미래비전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킬 방안을 검토했다. 미래혁신위는 혁신위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해당 기구가 출범하면 김 대표가 아닌 다른 인물이 이끌 예정이다. 

미래혁신위는 혁신위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체제로 알려졌다. 현재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김 대표는 이르면 다음 주 영입한 5명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인재영입위원장 직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입장에선 이제 원외 인사의 공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는 김기현 지도부에 공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이준석계인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망했다. 폭망”이라며 “원래 험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여당이 험지 메이커”라고 비판했다. 천 위원장의 말처럼 현재 국민의힘은 활로를 찾아야 한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영향은 내년 총선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위기론이 아닌 비상론
대통령실도 변화 모습 보여야

원외 인사 중 비윤계의 대표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도 한마디 보탰다. 유 전 의원은 “완패, 참패”라며 “윤석열정부를 향한 서울 민심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심한 듯 “당 책임보다는 대통령실의 책임”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했고, 형을 선고받은 지 3개월 만에 구청장 선거에 나섰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귀책 사유가 충분했는데도 내세울만한 이렇다 할 명분도 없었다. 처음부터 김 후보의 출마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당 지도부의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차기 총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탓에 대구·경북(TK) 소속 의원의 험지 출마론에 더욱 불이 붙을 전망이다. 중진, 다선 의원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험지 출마론은 하태경 의원이 가장 먼저 제기했다. 하 의원은 부산서만 3선을 지낸 ‘해운대 터줏대감’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그의 출마지로 거론되는 지역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을이다. 

하 의원을 필두로 당내외서도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 요구가 높아졌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시선이 강한 가운데, 중진 의원들 사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함이 가득한 분위기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에도 불안함이 감지된다. 이른바 윤심 후보로 치르는 시험대였는데,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선 패배에 대해 대통령실은 “어떤 결과든지, 엄중하게 선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장을 냈다. 내년 총선서 다수의 대통령실 소속 인물이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들 역시 윤 대통령의 얼굴로만 치르기에는 위태로울 수 있다. 

국정 기조
변화 모색

관건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변화할지의 여부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야당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나름의 뚝심을 보여왔다. 일단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며 한발 후퇴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대통령실이 대폭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대통령실 모두 위기다. 위기론이 아니라 비상”이며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김기현 지도부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표정 관리, 왜?

민주당이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서 승리하면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진교훈 후보가 압승을 거두면서 이재명 대표도 숨통이 트이면서 정국 주도권을 쥐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이 대표는 불구속 기소가 된 상황이다.

검찰은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이에 따라 재판 리스크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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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