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VS 대통령실 ‘영남내전’ 막전막후

폭풍전야 보수 텃밭 ‘장 섰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이제는 영남마저 뒤흔든다. 뒤에 누가 있는 걸까? 어차피 진 싸움이라는 생각에 원하는 사람으로만 꾸리려는 느낌이 강하다. 곳곳에 구멍이 나고 있는데, 애꿎은 페인트칠만 하는 격이다. 이러다 영남 총선마저도 위태로워질 분위기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영남 중진 의원은 수도권 험지로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백같은 희생이 필요하다며 뜬 사람들이 선거를 도와야 한다는 논리다. 대표적인 인물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의원을 콕 집어 언급하면서 당내가 술렁였다. 당 지도부는 인 위원장의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요한발
험지론

김 대표는 “기회가 되면 할 말이 있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하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윤 원내대표는 “이제 막 혁신위의 중지를 모으는 과정이며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한 눈에 봐도 지도부와 영남 의원의 불편한 기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인 위원장이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중진 험지 차출론은 당내서 분란을 키울 수 있는 주제다. 더욱이 공천 시기도 다가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민감한 소재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영남 의원들의 수도권 차출론이 제기돼왔다. 일부 영남 의원들 사이에서는 불안한 기류마저 감지되는 상황이다. 

당내서 가장 먼저 험지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인물은 하태경 의원으로 그는 부산서만 내리 3선을 해왔다. 그런 그가 수도권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면서 중진 험지 출마론에 불을 지폈다. 


당에서도 하 의원의 험지 출마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몇가지 우려를 내비쳤다. 바로 모든 중진 의원의 험지 출마론에 대해서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유상범 수석 대변인은 “지역구 변경이 의미가 있지만, 쉽게 공천될 수 있는 지역구를 버리고 다른 지역에 갔는데 그 사람이 지면 가진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켜버리는 꼴”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진의 험지 출마론은 국민의힘 텃밭으로 분류되는 영남권과 강원권, 서울 강남권의 3선 이상 의원과 당 지도부가 험지로 분류되는 곳에 출마에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중진들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하 의원 외에는 영남권 의원들 중 나서서 험지 출마론에 동의하는 중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남권 의원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다져온 지역을 버리고 떠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남권서 최근 국민의힘을 향한 민심도 악화해 이를 방어하기에도 벅차다. 

영남 65석 중 국민의힘 의석수만 56석으로 상당히 압도적이다. 일단 인 위원장의 ‘험지 출마론’은 당내 비영남권 인사들로부터는 지지를 받는 모양새다.

영남권 중진의 험지 출마 자체가 국민의힘의 변화 시그널로 느껴져 수도권 표심은 물론, 중도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 배경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남권 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총선은 각자도생으로 일단 본인부터 살아야 한다. 영남 중진 의원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내 역할 맡아온 인원도 물갈이?
중진 수도권 가면 TK·PK도 험지

부산서 3선 이상을 한 의원들은 6명이다. 김도읍·이헌승·장제원·하태경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상임위 중 권한이 세다고 알려진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장 의원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윤핵관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장 의원 역시 험지 출마에 관해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상태다.

5선의 서병수·조경태 의원도 있다. 서 의원은 현재 국민의힘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인물로 비대위를 반대하다 전국위원회 의장직서 사퇴하기도 했다. 윤핵관 입장서 그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조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 시작해 현재 국민의힘까지 5선째다. 민주당서 3번, 국민의힘서 2번 당선됐다. 현재 부산 민심도 다소 악화된 가운데, 국민의힘은 부산의 재배치를 고려해야 할 시기다. 

울산의 경우 재선 이상 의원은 2명이며, 3선은 이채익 의원이 유일하다. 이 의원은 울산광역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울산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 역시 울산의 터줏대감이다. 현직 당 대표로서 자신의 지역구를 내주고 수도권에 출마해 낙선한다면 그만큼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김 대표 입장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다. 

대구는 소속 의원 중 12명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으로 3선 이상은 3명이다. 김상훈·주호영 의원, 윤재옥 원내대표가 있다. 대구 서구서만 내리 3선을 해온 만큼 지역서 조직을 무시할 수 없다. 윤 원내대표 역시 대구 달서구을서 3선을 했다. 

19~21대를 거치며 입지를 쌓아온 윤 원내대표는 21대 총선서 65%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 역시 지역구서 입지가 탄탄하다. 현재 원내대표인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역시 자신의 지역구를 옮기는 선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직전 원내대표를 지냈던 주 의원은 대구 수성구을서만 4선을 지냈고, 지난 총선 당시 수성구갑으로 옮겨 당선됐다. 당내서도 안정감, 협상력을 인정받아왔다.

강서 패배
영남 책임?

선거서도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당시 현직 의원이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기도 했던 만큼 국민의힘에 없어선 안 되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경남 상황도 비슷하다. 경남은 부산 다음으로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의 비율이 높다. 김영선 의원(5선), 김태호 의원·윤영석·박대출·조해진 의원(3선)으로 총 5명이다. 이들 역시 나서서 수도권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을 딱히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 의원은 총 16명이다. 하 의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수도권 출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영남 지역도 양지와 험지가 있다”며 “나가라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한 석을 잃게 된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부산서 7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낙동강 벨트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돌아온 뒤로 표심이 바뀌었다. 현재 문재인 전 대통령도 양산에 사저가 있는데, 전직 대통령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 역시 민주당이 승리를 위해 바짝 고삐를 죌 것으로 본다. 그는 “부산의 경우, 이미 7석이 민주당이다. 섣불리 중진 의원을 수도권으로 출마시켰다가 더 내줄 수 있다”며 “중진을 수도권으로 보내도 영남권서 대체할 인원이 없다”고 우려했다.

혁신위가 총선 공천룰에 관한 내용을 혁신안에 담을지는 미지수지만, 여전히 해당 이슈는 국민의힘 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추후 3선 이상 동일 지역구 출마 시 경선 페널티 조항 등을 넣는다면 혁신위가 현역 의원보다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영남권 의원들은 혁신위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편이다. 또 다른 영남권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에 “혁신위 사람들이 아마추어적 사고를 가졌다”며 “영남을 모르고, 전체 판을 읽을 줄 모른다. 본말이 전도된 꼴이다. 혁신위를 꾸리는 이유가 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혁신위를 띄운 이유는 서울시 강서구청장 패배 때문이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패배 원인을 알아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단순히 중진 험지 출마론만 띄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권 민심에게 영남권 의원의 출마를 물어봐도 돌아올 답은 뻔해 보인다. 

다선들
불만 폭발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영남 다선을 건드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의원들도 다 비슷한 의견이다. 서울서 패배한 선거를 서울 사람이 책임져야지, 영남 사람이 책임지는 꼴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더해 영남권 재선 의원들에게도 불안감이 더해진다. TK와 PK의 재선 이상 의원 수는 28명이다. 현재 대통령실에서는 30명 정도 인원이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통령실 인사들이 영남권을 노리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중 절반 정도가 국민의힘의 텃밭인 영남지역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실의 영남권 출마 인원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 

김인규 행정관을 시작으로 이창진·배철순 행정관 등이 대표적이다. 비서관 중에서는 영남으로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더욱 많다. 이 중 이진복 정무수석의 부산 출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또 주진우 법률비서관과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이 각각 부산과 경북 구미에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영남권은 총선 때마다 물갈이 대상 1순위였다. TK의 경우 물갈이 비율이 50%에 달했을 정도다. 그러나 매번 물갈이 대상은 중진 의원들이 아니었다. 

이 같은 연유로 영남 물갈이론은 김 대표를 물러나게 할 명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대통령실서 김 대표에게 겉으로 재신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김 대표가 당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용단을 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대통령실과 당내 영남 중진 의원들의 물밑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영남 의원들 대부분은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 많았다. 

당·실 출마 인원수 비슷해
또 다시 분란으로 부글부글

이런 탓에 정치권에서는 이들을 몰아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보낸다. 당초 혁신위가 처음 발족됐을 때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 뒤에 있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영남 차출론을 띄운 이유를 두고 대통령실이 뒤에 있다고 보고 있다.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대통령실이 직접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탓에 인 위원장의 입을 통해 총선 전략을 내놓고 있다는 것. 

명분은 기득권 포기와 희생이라는 측면이다. 이런 점은 대체로 동의하지만,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여전히 정해진 것은 없으나 당내 중진 의원들의 반발은 이제 시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남의 집토끼마저 떠나가는 중이다. 영남권 의원들의 수도권 차출론은 오히려 당내 상황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소다. 수도권 민심이 폭락했는데, 상식적으로 이들이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혁신위의 1호 안건마저도 비판이 쏟아진다. 1호 안건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해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인물을 ‘사면’하겠다는 안건이다. 

겉으론 끌어안는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윤 대통령과 당에 대한 거듭된 공개 비난 등을 이유로 1년6개월의 당원권 정지가 내려졌다. 홍 시장은 수해 골프 논란으로 당원권 정지 10개월을 받았다. 

두 사람은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혁신위서 이들의 사면을 언급한 이유는 보수의 분열과 균열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이 전 대표가 끊임없이 국민의힘을 때리자, 중도층 표심도 점차 떨어져 나가고 있다. 중도층은 매번 총선서 캐스팅보트로 불리는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들의 이탈이 상당히 뼈아플 수밖에 없다. 사면을 언급하자 오히려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디테일
떨어져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당에서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매번 YS(김영삼), DJ(김대중) 생각에만 빠져 있다. 혁신위 이름에 걸맞게 혁신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지금 혁신위 전면에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권 사람들로 지방의 민심을 모른다. 디테일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a.co.kr>


<기사 속 기사> 총선 또 다른 포인트 ‘김포’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공식적으로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띄웠다.

총선 전략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은 벌써부터 특별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전략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도 무조건 반대보다는 함께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미 메가시티가 된 서울을 더욱 비대화시킨다. 수도권 집중 심화만 초래하는 서울 확대 정책이 맞는가”라고 어깃장을 놨다.

이어 “윤 대통령이 지방화 시대 국토균형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연일 회의를 열고 있는 마당”이라며 덧붙였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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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