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1.27 06:37:09
  • 호수 1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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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만 믿고 투자했다 ‘탈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클락(Clark) 지역에서 한국인 투자자들 간의 법적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인 투자자들의 150억원대 자금이 투입된 제이비 크레스타(JB Cresta Corporation)와 자회사 스카이 블루 골프 앤드 리조트(Sky Blue Golf and Resort Corporation)의 지분과 핵심 자산이 한 사람에 의해 체계적으로 탈취됐다는 것이다.

필리핀 고위층 관계자들과 수십년간 인맥을 형성한 피의자 정모씨는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인 투자자들을 손쉽게 기망했다. 필리핀 법원조차 “즉각 개입하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며 단순 경영권 분쟁을 넘어 단계적으로 설계된 조직적 경제범죄로 설명했다.

모회사
지분 강탈

법률적으로도 이 사건은 지분 탈취, 문서위조, 배임, 무권한 처분 행위, SEC 규정 위반 등 복수의 중대 범죄 요건을 동시 충족한다.

한국 투자자들은 2019년부터 총 104억원을 투자해 제이비 크레스타(JBC)의 법적·실질적 최대 지배주주였다. 계약에 따라 지분도 정상적으로 배정됐고, 각종 투자금도 정당하게 입금됐다. 정모씨는 투자자들에게 JBC의 자회사인 스카이 블루 골프 앤 리조트의 지분 2%만 요구했고, 투자자들은 이를 수락했다.

이후 정씨는 필리핀 국회의원 등 현지인 4명을 리조트에 이사로 등재하고, JBC의 대표이사와 이사진을 사임 등기한 후 지분을 모두 차지했다.

정씨는 스카이 블루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이용해 사실상 JBC와 스카이 블루 두 회사를 동시에 지배했다. 초기 지분은 2%에 불과했으나, 그는 주총에서 “경영권 없으면 못한다” “각서 써라. 자산은 내가 다 책임진다” 등 강압적 발언을 이어가며 실질적으로 경영 전권을 요구했다.

이는 명백히 위법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지분 조작과 회사 장악을 강행한 발언으로, 이후에 발생한 배임·사기·문서위조 행위의 고의성을 뒷받침한다.

정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장기간 활동하며 가족과 친인척, 측근들을 조직적으로 포진시켜 범죄 구조를 구축했다. 며느리·아내·직원 등이 지분 수령자 역할을 맡았고, 이들은 나중에 조작된 주주명부에 대주주로 등장한다. 범행의 첫 단계는 JBC 지분을 사실상 강탈하는 주주명부(GIS) 조작이었다.

피고발인들은 합법적 지배주주 63.98%를 주주명부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2007년 설립 당시 발기인 명단으로 회귀시키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도둑맞기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

조작 수법은 정교했다. 합법적 주주 전원을 삭제하고, 이미 지분을 처분한 과거 발기인 6명을 ‘부활’시켜 등록했다. 이어 회사 명의 자기주식을 75.02% 등재해 주총 성원이 불가능한 허위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 동일 기준일의 GIS를 여러 차례 제출하는 소급 패턴을 사용해 시점을 교란했고, 재조작(B 시리즈) 단계에서 첫 조작(A 시리즈)의 실수를 덮기 위해 다시 주주명부를 소급 조작했다. 최종적으로 정씨의 가족·직원·측근 명의로 지분을 분산해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정씨의 며느리인 현지인 S씨는 조작 전 보유주가 1주에서 조작 후 1378주(27.56%)로 급등하면서 비정상적 대주주로 등장했다. 이는 범죄이익이 고스란히 일가로 집중된 명백한 증거다.

필리핀 리조트 100억대 투자금 탈취 의혹
정씨일가 조직적 침탈 정황···현지 재판 중

정씨 일당은 2024년 11월4일 스카이 블루 주총에서 골프장·클럽하우스·부지를 230억원에 매각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모회사 JBC의 대주주(한국 투자자)는 반대했으나 불과 4일 뒤인 11월8일, 어떤 통지도 없이 주총을 강행해 매각을 승인했다.

필리핀 회사법에 따르면, 회사의 주요 자산 매각에는 주주 2/3의 특별 결의가 필요하고, 99.9%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 JBC 주총의 사전 결의가 필요하다. 정씨를 포함한 피고발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회사 단독으로 매각을 강행했다. 이는 배임 및 무권대리의 전형적 구성요건이다.

이 밖에 정씨에게 추가 피해를 입은 투자자도 있다. 한국인 투자자 함모씨와 김모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협약에 따라 스카이 블루의 증자에 참여했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 송금 내역은 스카이 블루 법인통장으로 확인되며, 일부는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입금됐다.

그러나 이후 정씨는 2년 이상 증자를 등록하지 않았고 투자자 지분도 SEC에 등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조작된 주주명부에서도 이들을 고의로 배제했다. 이는 투자금을 받은 뒤 지분 발행 없이 은폐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배임에 해당한다.

정씨 일당은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주주명부를 위조했다. GIS만 최소 8회 이상 조작, 존재하지 않은 이사회 회의록 작성, 이사진을 친인척으로 교체, 발기인 명단을 허위로 되살리는 등으로 지분 구조를 조작했다. 필리핀 SEC에 제출된 문서가 모두 허위였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기관을 기망한 중대 경제범죄로 해석된다.

필리핀 현직 국회의원이 범행 구조에 편입된 점에서, 이는 조직적이며 고도의 계획성을 띤 범죄임이 명확하다. 특히 허위 GIS 제출은 필리핀에서 최상급 중형에 해당하며, 조직적 공모가 입증될 경우 가중처벌 규정이 적용된다.

가족 동원
정치인까지

정씨 일당의 행위는 단순한 경영 분쟁이나 해석의 문제로 포장될 수 없다. 이는 투자를 미끼로 한 사기, 회사 지분의 조직적 탈취, 자산의 불법 매각, 공문서 위조, 정치권 유착까지 모두 결합된 완성된 범죄 구조다. 지배주주 63.98%가 삭제된 순간 이미 범죄는 시작됐고, 그 이후 벌어진 모든 행위는 배임과 절도, 사기의 연속이다.

범행 과정은 치밀했고, 관련자들의 역할 분담은 명확하며, 피해 규모는 수백억 원대에 달한다.

정씨는 2022년 무렵부터 주주명부를 의도적으로 조작해 이들의 존재를 회사 공적 기록에서 통째로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필리핀 회사법에서 가장 무겁게 다루는 범죄 중 하나인 ‘허위 회사 기록 작성’에 해당한다. 동일 기준일의 GIS를 여러 차례 다른 내용으로 제출한 소급 조작 방식은 범의가 명백하며, 판례상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GIS 제출은 형사 처벌의 핵심 근거로 인정돼 왔다.

여기에 더해 정씨는 2007년 발기인 명단을 다시 끌어와 당시 연락이 두절된 인물까지 포함시키는 조작을 감행했다. 이는 필리핀 형법 제161조에서 금지하는 ‘허위 회사문서 제출’에 해당하며, 필리핀 SEC는 이런 형태의 허위 제출을 조직적 경제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JBC가 보유하던 75% 이상의 자기 주식을 아내·며느리·측근 명의로 이전한 행위 역시 ‘자기 거래’로 간주되며, 이는 이사·대표이사에게 금지된 행위로 형사 책임까지 발생할 수 있다. 자기 주식 매각 과정에 이사회의 정식 승인이나 주주 동의가 없었다는 점은 배임과 자산 편취 행위를 동시에 구성한다.

스카이 블루 핵심 자산 매각 시도는 절차 위반의 총집합체다. 2024년 11월 8일 정씨 측은 한국 투자자에게 아무런 통지 없이 골프장 18홀, 클럽하우스, 대규모 부지, 장비 일체, 향후 개발 사업권까지 포함한 약 230억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일방적으로 승인했다.

이는 회사법상 ‘통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주주총회 결의의 적법성을 완전히 상실시키는 중대 위법 행위다.

증자한다며 돈만 받고 미등재
GIS·회의록·이사회 결의 위조

매각 상대가 한국의 모 자산운용사라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해당 부지가 필리핀 국유지로 BCDA 승인 없이는 어떤 처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BCDA 승인 절차를 고의로 생략한 것은 명백한 무권한 처분 행위며, ‘본질적으로 무효’로 규정한다.

필리핀 법원의 개입 그 자체가 이 사건의 심각함을 증명한다.

필리핀 법원은 지난해 9월26일, 단 한 차례의 정식 심리도 없이 72시간 임시 가처분명령을 발령했다. 이는 필리핀 사법부가 극도로 중대한 위험이 확인되었을 때만 사용하는 비상 조치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투자금 전체가 무의미해질 위험이 있으며, 매각 절차가 비정상적으로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법원이 정씨 측의 행위가 정상적 경영권 행사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형사 고소는 정씨의 범죄 의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고소장에 따르면 정씨는 스카이 블루 지분을 배정한다는 명목으로 약 46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발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 구성요건에 정확히 부합한다.

투자 유치 당시부터 이행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이는 ‘고의 기망행위’로 간주되며, 형량은 일반 사기보다 훨씬 무겁다. 특히 허위 주주명부 이메일 송부는 문서위조 및 위조문서 행사죄 성립의 핵심 근거가 된다.

한편, 정씨의 집안 배경을 보고 투자한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그의 아버지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24년 동안 기부활동과 장학사업에 헌신해 왔다. 서울대에 3차례 신양학술정보관을 기부한 것을 포함, 약 155억원을 기부한 인물로 알려졌다.

정 이사장은 1998년 신양문화재단 설립 이래 지난 12년간 장학금과 연구비 등을 지원했다. 특히 정 이사장은 모교인 서울대에도 신양학술정보관 건립, 난치병 연구기금, 의대 연구기금, 교수 초빙 기금 등을 지원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100회에 걸쳐 약 133억원을 기부했다.

장학재단
이사장?

정씨의 아버지인 정 전 이사장은 ‘신양 할아버지’란 애칭으로 불리며 서울대 학생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52년 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전 이사장은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고무의 국산화 등 우리나라 산업화에 이바지해 온 인물이다. 서울대에는 신양학술정보관 1·2·3호관을 건립하는 등 총 155억원 상당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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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