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조갑제가 보는 보수 분열 시대

“부정선거 음모론자 제거부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박형준 기자 = 올해 56년 차 기자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거침이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현 정치권의 문제점을 누구에게나 가감 없이 전달한다. 그런 그의 눈에는 국민의힘이 어떻게 비칠까? 지지고 볶는 싸움판 한 가운데서 조 대표의 쓴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따끔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윤석열정부를 파멸시켰다. 보수를 분열시키고 국민의힘을 갈랐다. 악의 씨앗이다.” 최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조 대표는 무너지는 보수의 문제점은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조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설 특집 대담에서 “보수 재건을 위해서는 극우와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대표와의 일문일답.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중도층의 거부감이 클 수 있을 것 같은데….

▲중도를 말하기 전에 우선 보수의 정의를 정확히 해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 당권을 잡은 사람은 보수가 아닌 극우다. 극우는 보수의 반대말이다. 특히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그 일파는 불법 계엄 옹호자다. 국민의힘은 극우 대표에게 끌려가고 있다. 헌법을 부정하는 보수가 어디 있나? 극우는 보수가 아니다. 극좌에 더 가깝다.

-왜 그런가?

▲극우와 극좌에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두 집단 모두 법을 무시한다. 둘째는 사실을 무시한다. 셋째는 반일, 반중, 반미 등 인종적 선동을 한다. 말발굽의 처음과 끝이 제일 가까운 것처럼 극우는 극좌에 더 가깝다. 대한민국 정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 보수, 중도가 아닌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법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국민이 약 70%다. 어중간한 ‘중도’가 아닌 결정적일 때 발언하고 투표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들을 ‘국가 중심 세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의 특징은 굉장히 활력이 있다는 점이다.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아닌 ‘바이털 센터(Vital center)’다.

대한민국 사회를 끌어나가는 집단으로서 4050 세대·중산층·화이트칼라가 주를 이룬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들이 중심을 잡아 줬다. 이 중심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과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를 ‘보수의 구명정’이라고 표현하셨다.

▲이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싸운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를 높게 평가하고, 또 대한민국의 보수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싸웠다는 게 이 대표의 정치적 자산이다.

-한 전 대표도 계엄에 반대했다. 이 대표와 함께 두 사람의 상호 협력과 경쟁을 주문했는데, 두 지지층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수의 구명정이라고 본 것이다. 경쟁과 협력을 통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보면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은 야당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지만 협력할 때는 극적으로 함께했다. 지지자들이 감정적으로 싸우는 것이 문제이다. 지도자는 그 지지자를 뛰어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 전 대표는 세가 있는 사람이다. 개인적 실력이 뛰어나고 참모들도 아주 단단하다.

-전한길씨와 유튜버 고성국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를 만류하지 않았다. 손현보-전광훈 등 기존 극우 세력이 구속된 이후 무주공산이 된 극우 세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셈법일까?

▲국민의힘은 자당을 극우화시켜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는 게 목표 같다. 가장 좋은 예가 당무감사위원장으로 발탁된 이호선 교수다. 부정선거와 불법 계엄을 옹호한 사람에게 특혜를 준 건데, 그런 사람들로 당을 장악해 극우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극우파는 자기들끼리 더 뭉칠 수 있다. 당권파 입장에서는 좋은 상황이다.

한동훈 빼고 전한길·고성국 투입
“지방선거 지려고 작정했나” 일침

-보수의 수도권 조직이 축소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이 진보 일색으로 변한 것은 사회·경제적 배경 때문이다. 세계에서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몰려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도시화가 되면 좌경화가 되고, 진보 표밭이 된다. 대통령선거는 이야기가 다르다. 1대 1로 붙기 때문에 근소한 차이로 보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역설적으로 살기 좋은 수도권을 만든 건 보수 정권으로, 자기 성공의 희생자인 셈이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한동훈 다음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어떻게 보셨나?

▲논평하고 싶지 않다. 도움이 안 되는 정보를 기사화한다거나, 그런 정보로 논쟁거리를 만들면 그 사람만 키워주는 꼴이 된다. ㅜ부정선거가 그 예시다. 부정선거 ‘선동’이라고 해야 하는데 언론에서는 ‘의혹’으로 부른다. 부정선거는 100% 거짓말이다. 이를 의혹으로 다루니 여기에 속는 사람이 1000만명 이상이다.

-장 대표가 단식을 진행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로 찾아와 직접 그를 만류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대통합 신호탄을 쏘아올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극우를 몰아내고 나머지가 통합해야 보수 재건이 되는 것으로, 극우와 보수의 통합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정치 이념이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상징성은 있겠으나 표로 환산되는 영향력은 없다고 본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경우에도 보수 연합 구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맑은 물에 빨간 점이 하나 딱 들어가면 다 빨갛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12·3 비상계엄에 대해 법원이 “친위 쿠데타 성격의 내란”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는지?

▲이번 사태는 기존 양형에 해당되지 않았다. 법원이 새로운 기준으로 친위 쿠데타는 더욱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덕수 피고인의 선고문을 보면 재판장이 “친위 쿠데타에 성공했으면 독재의 길, 장기 집권의 길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재건이 시급해 보인다.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일까?

▲보수층은 건재하다. 위기에 빠진 것은 보수 세력이다. 지난 3년간 보수 언론, 보수 지식인, 보수 단체가 윤 전 대통령의 팬클럽이 됐다. 진영 논리에 빠져 ‘박수 부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과 손잡고 같이 뛰어내렸다. 보수 세력이 궤멸적 타격을 받았고 그런 보수 세력과 국민의힘이 한 몸이 됐다.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여기서 한 전 대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재건 시나리오 중 한 전 대표의 창당 가능성도 있을까?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다음 극우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람으로 당을 꾸리는 게 맞다. 장 대표의 노림수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당권을 잡는 것이다. 재건 과정서 저항이 있을 테고 극우 색채를 유지하려 할 텐데, 그때는 탈당이나 분당 이야기가 불가피하다.

“윤 손잡고 다 같이 나락행”
막막한 보수 재건 시나리오

-정부·여당 상황도 짚어보겠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 자체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이 대통령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실리주의자다. 윤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미련했다. 의료 대란, 탈원전 등의 실수를 하고도 체면 때문에 굽히지 않다가 결국 그 길로 망해버렸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고치려고 한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 이 대통령의 실리주의가 돋보였다. 역사와 영토 문제는 논의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으니 “이건 논쟁거리로 남겨둡시다. 그리고 시급한 외교 문제를 먼저 해결합시다”라고 했다. 분쟁의 소지를 제거했다. 국민은 한미 외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한일 외교가 우선이다. 한일 관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미·한중 관계가 돌아간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경우 “사법개혁 때문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렇다고 보시나?

▲검찰개혁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지난 80년 동안 검찰이 쌓은 수사 노하우가 흔들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국민이 문제점을 느낄 것이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으로 수사 기능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국민이, 다음에는 범죄 피해자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법이 복잡할수록 범죄자들이 잔꾀를 부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검찰청을 없애는 것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정치 검사가 편파적인 수사를 했다는 게 검찰청 폐지의 이유인데, 그런 수사는 전체 비중에서 5%도 안 된다. 감기 환자를 상대로 대수술하는 격이다. 후유증이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나?

검찰청 폐지로 인한 문제는 천천히, 그러나 광범위하고 확실하게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시기는 다음 대통령선거 때쯤이 될 수도 있겠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다. 합당이 두 당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을까?

▲혁신당의 지지율이 3%고, 조국이라는 브랜드가 절대로 아름답지만은 않다. 지방선거를 명분으로 제시했는데 3% 정당과 합치는 게 어떤 도움이 되겠나?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연임을 위해 합당을 제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도 합당을 정 대표 개인의 야망과 연결하니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정 대표가 1인1표제를 띄우는 등 ‘당원 주권 정당’을 외치고 있다. 당의 주인은 당원인 게 마땅하다는 것인데, 본래 당의 주인은 누구인가?

▲법적으로 당의 주인은 국회의원이다. 선거를 통해 뽑힌,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사람이다. 당원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당원 중심의 정당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본다. 포퓰리즘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원이 성숙하고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괜찮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 국민의힘 상황을 보더라도 당원들이 앞서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외치고 있다. 의원들이 당원의 눈치를 보니 국민의힘이 극우가 된 것이다. 당원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수로 밀어붙이는 포퓰리즘의 극치로 치닫게 된다. 1인1표제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좌우를 떠나서 대한민국 정치가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대한민국은 항상 위기였다. 그럼에도 위기의 대부분을 스스로 해결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가진 저력이다. 그 힘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서 나온다. 문제를 덮지 않고 터뜨리고 공론화한다.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디는 제도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보낼 수 있도록 <일요시사> 독자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대한민국은 매우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다. 불법 계엄이라는 엄청난 사건에도 사상자 없이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했다. 민주주의 수준은 문제 해결 능력에서 가늠된다. 대한민국은 ‘패스포트 파워 랭킹’ 2위다. 이것이 세계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질서를 잘 지키고 정직하고, 세계의 모범 시민이라는 평가를 만든 게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신을 갖고, 또 자신감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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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