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인터뷰> 박민우 전 정보사 여단장 베일 속 정보사를 말하다

“내란 가담자들, 그 안에 지금도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이 세상에 공개된 2024년 12월이다. 일각에서는 신빙성을 낮게 봤다.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건 한 장성의 증언 이후다. 증언자는 박민우 전 정보사 여단장이다. 30년 넘게 블랙 요원이었던 그의 실명은 지난해 2월 국회 내란 청문조사특위를 통해 알려졌다. 신분상 얼굴조차 공개된 적 없던 박 전 여단장은 12·3 내란 이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어서 뿌듯했고 행복했고 아쉽다.” <일요시사>와 서울 용산구 모처에서 만난 박민우 전 국군정보사령부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의 말이다. 지난해 말 전역한 그는 30년간 정보사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으로 일했다. 이른바 ‘블랙’이었다. 박 준장은 군 생활 중 아쉬우면서도 ‘최악’이었던 순간을 12·3 내란에 자신이 몸담았던 정보사 조직이 동원된 일을 꼽았다.

대북공작
수행 30년

박 준장은 육군사관학교 47기다. 생도 때부터 죽마고우로 알려진 장성 대부분이 유명 인사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위탁교육을 마친 20대 후반, 강원도 속초 HID(북파 공작부대) 팀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그의 대북공작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박 준장은 “휴민트 업무가 적성에 맞았다. 원래 정보사에 들어가기 전의 내 꿈은 기자였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항상 무언가를 잘 기록했다. 기자들도 사건을 취재할 때 출입처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외곽 취재로 정보를 습득한다. 휴민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군도 임무 수행 과정에서 기록이 생명이지 않나”면서도 “다만 휴민트 업무는 평시에 어떤 오퍼레이션이라서 상당히 변화무쌍, 복잡다단하고 위험이 수반된다. 30여년간 보람찬 기간이었지만 마무리가 좀 비정상적이었다. 개인적인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다. 가장 심각한 건 12·3 내란에 내가 30년 넘게 근무한 조직이 동원되면서 쑥대밭이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준장의 대북공작 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소령부터 중령까지 필드에서 뛰던 때를 회상했다. 공작 성과를 인정받아 실제 여러 차례 정부 포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공작 임무를 100% 성공할 순 없다.

박 준장은 “실패한 사례도 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내 에이전트가 피해를 보거나 체포돼 북한 내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마음의 짐으로 남는 휴민트의 숙명이다. 그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 알기에 일부러 확인까지 하진 않았다. 나중에 통일이 된 이후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던 이들에 대해선 국가가 최소한 그들의 가족들에라도 보상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대북공작 휴민트·블랙 임무 수행·지휘
“계엄법 없는 정보사 임무 노상원 때문에 쑥대밭”

박 준장은 북한의 대남공작 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휴민트 강국이자 사이버 심리·여론전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실제 국내에서 드러난 간첩 사건들만 봐도 북한의 능력을 알 수 있다는 게 박 준장의 평가다.

“확인되지 않았거나 드러나지 않은 북한의 대남공작 성공 사례는 무수히 많다. 북한은 우리와 다르게 공산주의 국가다. 공산주의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정해서 그 임무를 국가가 필요한 부서 및 조직에 활용할 수 있다”는 그는 “개인적인 능력이든 국가 시스템이든 휴민트의 공작 여건과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데, 그건 모든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가 그렇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 영국의 정보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세계적인 정보 강국은 과학기술 강국이 아니다. 휴민트의 문제”라고 짚었다.

정보사와 국정원은 경쟁 관계이자 협력·갑을 관계다. 정보사의 공작 예산을 국정원에서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에는 대테러·사이버·방첩 등 다양한 부서가 있지만 국정원 내에는 한 부서가 정보사의 휴민트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 준장은 “갑을 관계라고 보는 게 옳다. 경험상 국정원의 갑질이라고 느껴지는 게 많았다. 에이전트를 데려가거나 우리가 선점하기로 한 정보를 중간에서 가져간다는 등 좋지 않은 일들로 인해 부딪히기도 했다. 어떤 좋은 성과나 영향력을 미치면 괜찮은 건데 정보사의 역량을 제한하고 통제하기도 한다”며 “해외 출장을 나가거나 해외 블랙 거점에 대한 모든 통제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에서 블랙이라고 하면 국정원 요원으로서 총칼 빼들고 멋있는 액션을 보여주지만 국정원은 그런 위험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아하고 좋은 곳을 선점하고, 우린 두만강·압록강과 같은 북한과 직접 접촉하면서 임무를 수행한다. 뭐가 더 위험하겠나.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블랙의 위험 임무는 정보사가 맡는다. 국정원이 블랙? 그레이가 맞지 않나”라고 말했다.

국정원과
다른 건…

이런 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명단 등 군사기밀이 유출된 적도 있다. 지난 1월20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전직 정보사 군무원 천모씨의 일반이적 등 혐의 재판 상고심에서 상고 기각 판결하며 천씨에게 징역 20년에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천씨는 2017년 4월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정보기관 소속 인물로 추정되는 B씨에게 포섭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천씨는 2019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문서 12건, 음성 메시지 18건 등의 형태로 블랙 요원 명단, 정보사 조직 편성, 작전 계획 등 총 30건의 군사기밀을 B씨에게 유출했다. 천씨는 그 대가로 2억7852만원을 요구해 1억6205만원을 받았다.

1심을 맡은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천씨에게 징역 20년에 벌금 12억원, 추징금 1억6205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이 오랜 기간 정보사에 근무하면서 정보관들의 인적 정보가 누설됐을 때 생명에 큰 위해가 가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동료들의 생명을 거래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2심은 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며 벌금만 10억원으로 감형했다.

박 준장은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정보기관 휴민트망이 와해돼 복구하기 어렵다는 우려는 사실보다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박 준장은 “언론에 나오기 이전 이미 사전 조치를 끝냈다. 물론 실명이 넘어가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던 만큼 전원 복귀했다. 또 개인적인 신상이 완벽하게 넘어갔던 게 아니다. 위험의 정도가 과장된 측면이 많다. 자세한 사안을 말할 수 없지만 정보기관이 와해된 수준이라는 분석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예시로 동남아 국가 등에 블랙요원 거점이 드러났다고 치자. 정확한 현지 활동명, 주소, 인적사항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북한 애들이 찾을 수도 없고 찾아다니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보사 업무 이해에 두세 달 걸렸다? 동의 못 해”
“군검찰, 공작보고서 턴 적 있어…압색 왜 안 했나”

그러면서 “제3국이라 북한 요원들의 활동도 노출될 수 있다. 우리도 문제지만 지금 북한도 해외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이 없어서 공관 철수 등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김정은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북한도 불필요한 위험과 노력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박 준장의 군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12·3 내란의 주요 피의자인 노상원·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다. 이들 모두 휴민트가 아닌 일반 군사·야전(150) 정보병과다. 노 전 사령관과 박 준장은 초반부터 사이가 나빴다. 잠시 좋았던 적도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업무 스타일과 성격은 ‘상극’이었다.

박 준장은 “노상원은 공작의 ‘ㄱ’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정보사라는 조직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용한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우리 휴민트 820을 파리똥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건 휴민트 전체에 대한 모욕이자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상원 같은 작자들이 무슨 북한군을 만나봤겠나, 뭘 했겠나. 그저 권력자 근처에 빌붙어 30년간 호의호식한 것이다. 노상원은 그런 인물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았다. 성폭력으로 옷을 벗은 것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던 인물이다. 그러니 임무 수행 중인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시는 노 전 사령관이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박 준장이 속초 HID 부대장 시절 지시했던 내용이다. 실제 공작보고서가 존재한다고 한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지시를 이행해 북한 내 HID 요원들이 사망했다면 남북 간 전쟁이 벌어졌을 수도 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당시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이 노 전 사령관의 해당 지시와 연관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무너진
휴민트

박 준장은 “OO계획을 말하면 그로 인해 피해 볼 사람이 많다. 그 계획에 참여하고 실행하고 수행했던 인물 다수 중에는 아직 근무 중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차후 내란전담수사본부나 종합특검에서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박 준장을 축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진술조서를 보면 여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언급된 두 대령은 실제 노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제2수사단에 편성할 정보사 요원 40명을 직접 선발했다. 노 전 사령관이 지휘하는 제2수사단은 계엄 선포 다음날인 2024년 12월4일 아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해 선관위 직원 30명을 붙잡아 조사할 계획이었으나 계엄이 해제되면서 실행되지는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씨의 재판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내란 특별검사팀(조은석 특별검사)이 수사를 제대로 끝내지 못해 법리구성에 실패했다거나 봐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노상원이 김용현 말 적었다고?
김은 휴민트 임무 전혀 모른다”

문제는 지귀연 재판부도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대해 직권조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특검팀 관계자들도 정보사를 수사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박 준장의 생각은 달랐다. 특검팀이 애초 수사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정보사 업무 보안 문제가 있는 데다 전문성이 있어도 수사하기 어렵다. 군 검사와 수사관 및 군 수뇌부도 자세히 알 수 없는 조직이 정보사인데 나에게 내란 특검 참고인 조사 당시 무인기 외에는 그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노상원 수첩과 관련해 많은 걸 물어볼 줄 알고 준비도 많이 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노상원 수첩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노상원 수첩 수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력이나 자문이 필요하다. 정보사 현직 요원들이 특검팀 조사에서 솔직하게 말하겠나? 부담감이 클 것이다. 나 같아도 현직이었다면 먼저 대놓고 말하기 어려웠을 거다. 무엇보다 지금 휴민트 상급 요원들은 상당수 내란 준비 및 실행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준장은 “특검이 정보사를 압수수색하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다. 과거 군검찰이 수사를 목적으로 공작 문서를 싸그리 가져간 적도 있는데 군검찰보다 훨씬 강도 높게 수사가 가능한 특검이 왜 정보사를 압수수색하지 않고 노상원 수첩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수사 의지 문제다. 수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초기 경찰 조사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변호인을 선임한 이후 “계엄 선포 이후에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며 아이디어 차원으로 메모한 내용”이라며 진술을 뒤집었다.

박 준장은 “헛소리다. 수첩 내용을 보면 전부 휴민트 임무다. 김용현이 알 수가 없고 머릿속에서도 나올 수 없는 내용이다. 김용현이 말한 내용을 받아적었다는 진술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주장으로 보인다. 수첩은 내란 계획과 준비 과정을 김용현에게 보고하기 위해 자기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적은 내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노 수첩
미스터리

아울러 그는 “심각한 게 지금 휴민트 재건인데, 국방부의 관심이 약한 것 같다. 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내란에 가담한 인물 중 어떤 이는 처벌이 약하게 나오고 어떤 이는 과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내부가 분위기에 휩쓸려 징계도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을 정도”라며 “정보사 안에는 여전히 내란에 가담했음에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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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