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준연대’ 몸값 올리는 막후 세력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낙연 전 총리의 신창 창당이 가시권에 돌입했다. 한발 앞서 창당을 선언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나란히 언급되면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낳았다. ‘내부 저격수’ 외에 교집합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그려나갈 그림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겠다며 큰 목소리를 치는 건 결국 몸값을 올리기 위한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창당설이 우후죽순 솟아나면서 폭풍전야 기운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내 창당 선발주자는 이준석 전 대표다.

최근 이 전 대표가 신당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탈당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됐다. 이 전 대표가 선언한 마지노선은 오는 27일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당정관계에 변화가 없을 경우 국민의힘을 떠나 새로운 당을 꾸리겠다고 줄곧 예고해왔다.

힘 받는
창당설

이 전 대표는 지난달부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 연락망 구축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세 모집에 나서는 동시에 함께할 인사를 모으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총선 출마 희망자도 모집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야당의 신당 창당 후발주자로 뛰어들면서 단숨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굵직한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움직이자 자연스레 이목이 쏠린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이달 초 민주당 강성 지지자의 출당 요구를 받으면서다. 지난 3일, 민주당 청원 홈페이지인 국민응답센터에는 이 전 총리를 ‘당내 통합 장애물’로 칭하며 “더는 민주당에 둘 수 없다”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77.7% 당원이 뽑은 이재명 대표를 통해 민주당 당원은 총선을 치르길 원한다”며 “이낙연은 민주당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원글에 따르면 올해 3월에 7만명이 넘는 당원들이 이 전 총리에 관한 영구 제명 청원을 넣었지만, 이 대표가 통합의 차원으로 이를 무마시켰다. 그런데도 연일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풀이된다.

작성자는 “이제 당내 통합을 저해하는 이낙연 당신을 향한 당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더 이상 민주당에 둘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당원들의 민주당인데 당신이 무엇인데 선출로 뽑은 당 대표의 거취를 결정하는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해당 청원은 이틀 만에 약 1만5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법원에 출석하는 이 대표를 향해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당연히 함 직하다”며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한 라디오에서는 “민주당이 상당히 많이 변했고 많이 낯설어졌다”며 참담함을 느낄 지경이라고 직격했다. 당내 민주주의가 시들어가고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을 꼬집은 셈이다.

이낙연·이준석 저격수끼리 뭉친다?
기상천외한 조합…가능성은 ‘글쎄’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의 조짐이 보이자 이 대표가 진압에 나섰다. 문제의 소지가 된 탈당 청원글을 삭제하도록 직접 지시했으며 이 전 총리와의 만남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발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과 이 대표가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 응하겠지만, 단순한 사진 촬영을 위해서라면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당을 창당할 계획이 있는지’에 관한 언론의 질문에는 “머지않아 결정될 것”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던 이 전 총리가 최근 마음을 굳히면서 본격적으로 내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내년 총선서 원내 제1당을 목표로 연대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실제로 신당을 창당할 것인지에 관한 진행자의 질문에 “예”라고 짧게 답한 뒤 “절망하는 국민께 작은 희망이나마 드리고 말동무라도 돼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창당 진행 단계에 관해 “아주 실무 작업의 초기 단계”라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애를 많이 쓰고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해 초에 새 희망과 함께 말씀드리겠다”며 이전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물꼬를 튼 셈이다. 두 물줄기가 하나로 이어질지가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전 대표는 이 전 총리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의견을 비쳤다. 이른바 ‘낙준연대’에 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서 활동하신 이력 등을 볼 때 이재명 대표보다 더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큰 틀을 벗어나는 것에 많은 고민이 있으실 거고, 큰 정치인이 움직일 때는 명분을 아주 크게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연대
나비효과

이 전 총리는 대선주자로 나섰던 인물인 만큼 향후 거취를 정하는 데 있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만일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각각 TK(대구·경북)와 호남을 기반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 비율이 30%에 달하는 만큼 중도 세력을 ‘쌍끌이’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문제는 두 사람의 정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친낙(친 이낙연)계로 알려진 이병훈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오히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광주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대선서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은 ‘대장동 사건’을 이 전 총리가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의혹 역시 떨쳐내야 할 과제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서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만큼 호남서 긍정적인 시그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의 경우 TK서 ‘비호감’으로 낙인이 찍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대구는 특히 다른 지역보다 의리가 강한 면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 번 배신자로 찍히면 얼굴 들고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물며 당에서 ‘내부총질’ 소리를 들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 이쪽을 노린다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의견을 보탰다.

이낙연·이준석 조합이 뚱딴지같다는 평도 적지 않다. 둘은 각각 여야의 대표를 지내는 등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한때 당을 대표했던 만큼 정치 이념서 엇갈리는 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의 지지자가 다른 한쪽의 이념을 지지할 가능성 역시 미지수다.


신당을 창당하는 목적과 방향성도 사뭇 다르다. 이 전 대표는 윤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 전 총리는 민주당의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중도 세력을 흡수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제외한다면 이들의 교집합이 확장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나서서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성급했나?
흐릿한 노선

낙준연대는 이 전 대표만의 희망 사항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전 총리의 뉘앙스가 여러 번 바뀌면서다.

당초 이 전 총리는 창당이 가시화되기 이전부터는 이 전 대표와의 만남에는 선을 그었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때가 되면 만날 것”이라며 초반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긍정적인 메시지에 이 전 대표 역시 “만날 준비가 됐다”며 화답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또다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서 낙준연대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최근에는 이 전 총리가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와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를 향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면서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가 이 전 대표를 벗어났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에는 총선을 앞두고 제 몸값을 불리기 위해 서로의 유명세를 빌리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지금, 넘어갈 듯 말 듯 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당 지도부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원로’에 가까운 만큼 어떤 선택을 하든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과거 꾸준히 언급됐던 제3지대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속도감 있는 행보를 두고 당내 친·비명을 막론하고 민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도부를 대신하듯 이 전 총리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이들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윤정부와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날아가 버리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 내 다른 목소리가 수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많이들 지적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잘못됐다”며 이 전 총리의 개혁 방식을 꼬집고 나섰다. 그는 “당의 원로이고 당 대표도 지내셨다. 문재인정부의 총리까지 지셨던 분인데 당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주당을 떠나려는 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총리까지 하신 분이 굳이 왜?”
서서히 붙는 ‘배신자’ 꼬리표

이 전 총리를 향해 연일 날을 세우고 있는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정치인 이낙연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내일도 신당 얘기를 할 거면 오늘 당장 나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덕으로 평생 꽃길을 걸은 분이 왜 당을 찌르고 흔드냐”며 “신당을 할 거면 안에서 흔들지 말고 나가서 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식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 독재의 협조자로 기록되실 거냐. 이 전 대표는 ‘사쿠라’ 노선을 포기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쿠라는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로 정치권에선 ‘배신자’를 뜻한다.

혁신계 모임 ‘원칙과상식’을 이끄는 이원욱 의원조차 “매우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숨 고르기가 좀 필요한데 갑자기 링에 뛰어들어서 100m 질주를 하고 계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이 대표 체제와 결을 달리하는 이들조차 선뜻 민주당을 떠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적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양두구육’이라고 일침을 가했지만, 지금의 이 전 대표 역시 “창당을 위해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전 총리가 “큰 줄거리를 함께하겠다”고 밝힌 새로운선택 측 역시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선택 관계자는 “금 대표는 양당의 문제점과 문제의식을 느낀 분이라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이 전 총리가 연대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실제로 어떤 생각이고, 또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낙준연대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중도 세력을 끌어오는 데 실패한다면 미미한 성과에 그치는 것은 물론 ‘명분도 실리도 없는 신당’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낙장불입’
그 결과는?

지금까지는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양당의 지도부가 안심하기엔 이르다. 다음 해 총선까지 채 반년도 남지 않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여의도의 판을 뒤집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두 사람은 연일 신당 창당에 힘을 실으며 스스로 퇴로를 끊어내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자충수로 전락할지 양쪽의 귀추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색한 삼자대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낙연 전 총리 이외에도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와의 회동 추진에 나섰다.

‘이낙연 신당’ 파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문재인 3총리’의 연대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에 따른 당내 갈등을 사전에 수습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 전 총리는 이 대표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김 전 총리와는 오는 18일 예정된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를 계기로 삼자대면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전 총리가 연일 선을 긋고 있는 만큼 3총리와의 회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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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