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민주당 비대위설 막전막후

총선까지 마지막 한 고비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8·9·10월에 걸쳐있던 더불어민주당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가 수그러들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진교훈 강서구청장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연달아 호재가 터지면서 당내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유력하게 거론됐던 ‘민주당 12월 비대위 전환설’을 무사히 잠재울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달 18일, 검찰은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묶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달 21일,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 가결로 막을 내렸다. 이후 27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손내민
이재명

민주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찰을 향해 반격에 나섰다. 이 대표의 정치 생명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예상되는 비명(비 이재명)계를 둘러싸고 당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숙청과 화합이라는 선택지를 두고 양쪽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 최고위원회의서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라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당일에는 “검찰과 한통속이 돼 이 대표 구속을 열망했던 민주당 가결파 의원들도 참회하고 속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등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가결파에는 공천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여론까지 형성했다.

그러자 비명계도 크게 반발했다. 오히려 가결표를 던진 것이 민주당의 숙원이었던 ‘방탄 정당’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이들을 화합의 길로 이끈 것은 다름이 아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였다.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선거서 민주당이 두 자릿수가 넘는 득표율 차이로 이기면서 ‘정부·여당 심판’이라는 통일된 목적이 생겼다.

지난 11일 치러진 보궐선거는 여의도 안팎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총선 전, 수도권 민심을 알아볼 수 있는 마지막 선거인 만큼 이례적으로 주목받았다. 민주당은 진교훈 문재인정부 마지막 경찰청 차장을 후보로 내보냈다. 국민의힘에서는 공무상 비밀 누설로 강서구청장직을 상실했다가 사면받은 김태우 후보가 나섰다.

단식 후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이 대표는 지난 9일, 퇴원 후 첫 행선지로 강서구를 찾아 진 후보 유세에 힘을 더했다. 유세 발언 중 이 대표는 “우리 앞에 거대한 장벽이 놓여 있다. 그 장벽의 두께와 높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우리 안에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함께 손잡고 반드시 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손을 잡고 넘어가야 한다’는 대목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비명계와의 화합을 암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구속영장이 가결된 이후 처음으로 제시한 메시지가 화합인 만큼 당내에서도 이를 따를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곧바로 가결파를 숙청하겠다던 여론이 잠잠해졌다. 특히 정 의원이 한 라디오를 통해 “가결파 색출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고, 당연히 축출, 숙청이란 말을 꺼낸 적도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이 대표의 발언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자신의 발언을 기자들이 해석했을 뿐, 가결파를 향한 숙청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진교훈 버프’ 제대로 받았다
통합의 길로 들어선 민주당

당이 통합의 길로 들어서는 동시에 민주당이 보궐선거서 압승을 거두면서 비·친명의 갈등은 본격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지난 12일 오전 0시40분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를 완료한 결과 진 후보는 13만7065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는 전체 투표수 24만3663표에서 56.52%를 차지한다. 김 후보는 39.37%인 9만5492표를 얻었다. 양자 간 격차는 17.15%p로 집계됐다. 이번 승리를 통해 계파에 상관없이 하나 되어 ‘윤정부 심판’을 외치는 것이 곧 총선 승리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미니 총선’서 승리를 따낸 만큼 이 대표의 리더십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 체제가 견고해진 만큼 이대로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다만 일부 비명계 사이에서는 “승리에 도취해 민심을 잘못 읽으면 안 된다”며 신중론을 내세우고 있다. 보궐선거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총선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원욱 의원은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서 “당장 지도부 권한을 강화하는 데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페닌실린 주사를 맞은 격”이라며 오히려 당이 현재 체제에 안주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민심 흐름에 일희일비한 나머지 총선을 앞두고 개혁 시기를 놓칠 것이라는 우려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 역시 ‘민심 쇠몽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따끔하게 경고했다. 조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체제로 이겼다’ ‘이 상태로 내년 총선도 압승이야’라고 하면 대걸레가 우리 쪽으로 온다”며 “그땐 대걸레 없이 바로 쇠몽둥이가 날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보궐선거에 필요 이상 힘을 쏟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의 긍정적 기류가 연말까지 이어질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모두 떨쳐내지 않은 채 총선 체제가 굳혀진 상황이 오히려 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당설
이유는?

구속영장 기각 이후 한 장관은 “기각이 곧 무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야당 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을 거론하며 “다 영장이 기각됐었지만 실제로 중형을 받고 수감됐다”고 말했다.

검찰의 자신감이 꺾이지 않는 상황서 민주당 지도부가 대부분 친명으로 꾸려진 것 역시 불안 요소 중 하나라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민주당은 달마다 ‘비대위 전환설’ ‘이재명 사퇴설’에 시달렸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언제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계파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을 때마다 분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새 나왔다. 가장 먼저 운을 띄운 것은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쏴올린 ‘유쾌한 결별’ 발언이다. 지난 7월 이 의원은 당내 계파 갈등에 관해 “때로는 도저히 뜻이 안 맞고 방향을 같이할 수 없다면 유쾌한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뜻이 다른데 한 지붕 아래 있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20명 이상 탈당이 가능하다”며 분당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같은 달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이 대표의 회동이 연이어 미뤄지면서 친낙(친 이낙연)계와 친명계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렵게 성사된 회동에서도 이 대표는 당의 단합과 단결을 주장했지만 이 전 총리는 “단합을 위해서 더 가열차게, 그 다음에 근본적으로 혁신을 통해 당을 바꿔나가야 된다”며 입장 차를 보였다.

집안싸움에 내홍이 일면서 이 대표가 리더십에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얼마 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8월 즈음 비대위를 꾸릴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8월 중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날아들 것을 대비해 이 대표가 스스로 직을 내려놓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후 차분하게 뒷선서 총선 승리를 위한 플랜B를 모색할 것이란 의견이 대두됐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8월31일 이 대표가 돌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면서 ‘동정론’이 대체했다.

9월 사퇴설에는 김은경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뇌관이 됐다. 당내 쇄신을 위해 지난 6월 출범한 혁신위가 외려 당의 발목을 잡으면서다. 혁신위가 핵심 혁신안으로 ‘대의원제 폐지’ 논의에 나서자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악재가 겹치면서 ‘김은경-이재명 동반 사퇴’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결국 혁신위는 이 대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급조한 방탄에 지나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타이밍
노림수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건 지난 7월 불씨를 지핀 ‘10월 이재명 사퇴설’이다. 이는 한 정치 평론가가 “이 대표가 10월에 퇴진한다고 한다”며 “그래야 내년 총선서 이긴다. 그래서 K 의원을 당 대표로 밀겠다는 말이 나온다”는 발언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대표 사퇴를 두고 40여명의 의원들이 하나의 뜻을 모은 만큼 조만간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포스트 이재명’으로 거론된 K 의원이 민주당 김두관 의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사퇴 여부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이를 최초로 주장한 평론가는 자신의 발언을 일부 철회했다. 자신이 사퇴 계획을 일찍이 누설해버리는 바람에 이 대표가 김이 빠져 사퇴할 수 없게 됐다는 취지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이 대표가 난항을 겪을 때마다 민주당은 균열과 봉합을 반복하면서 위기를 넘겨왔다. 과연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남은 ‘12월 비대위 전환설’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12월 비대위 전환설은 앞서 제시된 추측보다 유력하다는 평을 받았다. 사법 리스크에 발목을 잡힌 이 대표가 무리 없이 당 대표 직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가 12월 말 이전까지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검찰이 이 대표의 백현동 의혹을 먼저 기소하면서 당내 화합 분위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날 검찰은 이 대표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인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위증교사 의혹과 대북송금 의혹은 보강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로써 민주당과 검찰의 싸움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주 먹잇감이었던 당 대표 리스크를 겨냥해 이 대표를 흔들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번 실수로 비대위 전환?
‘정권 심판론’ 유지가 관건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현재로서는 민주당 내 화목한 기류가 흐르고 있지만 삐끗해서 역풍을 맞게 된다면 그대로 비대위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내년 총선을 이 대표 얼굴로 치르기 곤란한 상황이 온다면 당내 여론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교훈 약발’이 떨어지면서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서는 12월28일 이전을 콕 집어서 비대위 전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는 이 대표의 잔여임기가 정확히 8개월 남은 시점이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당 대표가 잔여임기 8개월 이상을 두고 공석이 될 경우 임시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당 대표를 새로 뽑아야 한다. 반대로 8개월 미만일 경우에는 중앙위원회서 당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 강성 지지자를 비롯한 당원의 힘을 입어 친명계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친명계 위주의 비대위가 꾸려지면 공천에 대한 권위 역시 강해진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면 공천을 둘러싼 파동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컷오프된 의원이 대거 탈당하면서 분당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포용의 정치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지만 일부 친명계 의원과 강성 지지자의 ‘가결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비명계 의원의 지역구에 친명계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 경우 표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갈지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손대지 않더라도 ‘뜻밖의 공천 학살’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지 지펴질 것으로 예상된다.

끝까지
버텨라

민주당이 12월 비대위 전환설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정권 심판론’ 여론을 연말까지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보궐선거로 인해 총선 승리가 민주당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는 시점서 굳이 비명계가 이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론센터 장성철 소장 역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현재 비명계 의원의 발언을 두고 지도부가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백스텝’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궐선거 압승에 따른 신중론에 관해서도 “이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오만하지 말자’라는 내부 경고 차원으로 싸움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다”며 “내년 총선의 판세가 유리해진 만큼 여론의 움직임이 가장 중요할 때”라고 전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샌드백 이재명? 반격 나선 여당

지난 12일 백현동 개발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자 민주당은 “민심의 심판을 받은 선거 결과를 덮지 말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의 패배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인데 윤석열정부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앞세워 국민의 경고를 무시하는 최악의 수를 뒀다는 것이다.

이날 민주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패에 전광석화처럼 기소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던 윤석열정권의 첫 응답이 국정 쇄신이 아닌 ‘정적 죽이기 기소’”라며 “후안무치한 윤석열 검찰의 행태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박>

 



배너

관련기사

4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