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 임박’ 황태자 띄우기 막전막후

어명이오, 길을 비키시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석열정부의 실질적 2인자가 국민의힘에 곧 등판할 태세다. 몸값을 충분히 불렸다는 계산이 깔렸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에 들어오면 총선 승리가 가능해질까? 오히려 혼란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서 나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결국 물러났다. 당 대표로 뽑힌 지 9개월 만이다. 여기저기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 더 이상 버티는 게 무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조기 종료하자 그 책임론이 김 전 대표에게 가해졌다. 혁신위가 막 출범했을 무렵, 김 전 대표는 분명 전권을 약속했다. 그러나 중진 험지 출마 및 불출마를 혁신위 안건으로 올리자, 김 전 대표는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의 남자들
속속 불출마

결국 혁신위와도 대치 전선이 펼쳐졌고, 결국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조기 종료해 버렸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사실상 대표직을 버티면서 시간을 끌기 위해 발족한 게 아니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혁신위의 안건 중 당 지도부 등 주류가 불편할만한 사안은 여전히 공식 의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에서는 김 전 대표를 점점 옥죄어왔다. 가장 먼저 김 전 대표의 사퇴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이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다. 국민의힘 내부 보고서가 공개된 뒤다. 해당 보고서엔 국민의힘이 다음 해 총선 시 서울서 6석 확보에 그칠 것이라는 자체 분석 결과를 담고 있다. 

이후 줄줄이 당내 의원들로부터 김 전 대표의 사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허은아·김미애·김태흠·서병수 의원 등 초선 및 중진들이 김 전 대표에게 물러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만 해도 김 전 대표는 아무 소리 없이 버텼다. 그러나 점차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부터 잠행에 들어갔다. 그사이 대표적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장 의원은 지난 12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나를 밟고 윤석열정부를 성공시켜 달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 비서실장 역할을 맡았을 때부터 불출마를 생각했다”며 “또 한 번의 백의종군의 길을 간다”고 밝혔다. 장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시선이 다시 김 전 대표에게 쏠렸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2일, 13일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측근과 함께 거취를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 따르면 앞서 김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물러나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말을 듣고 김 전 대표도 거취를 결단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일간의 잠행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준석 전 대표에 이어 벌써 두 명의 당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김 전 대표는 “지난 9개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신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정부의 성공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진심을 다 했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소임을 내려놔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김기현 279일 만에 자진 하차
국힘 3번째 비상위 체제 전환 

이어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 대표인 내 몫이며,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오롯이 내 몫이다. 더 이상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되서는 안 된다”며 입장문을 통해 사퇴를 선언했다.


김 전 대표가 물러나면서 국민의힘은 당분간 윤재옥 원내대표의 권한대행 체제로 유지된다. 

김 전 대표는 최측근과 거취를 고민할 때 3가지 사안으로 고민했다. 우선 당 대표직만 내려놓고 울산 남구에 출마하는 안이다. 이번 입장 발표엔 지역구인 울산(남구을)을 포기한다는 워딩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해당 안이 가장 가능성 높았던 이유는 출마를 저울질하던 울산 남구청장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찍 선거대책위원회를 띄우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선대위 체제는 가장 안정적인 안으로, 간판만 바뀔 뿐 내부는 변화가 크지 않다는 면에서 고려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표만 물러났을 뿐, 지도부는 여전히 견고해 혁신 의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최종 의결권이 여전히 지도부에 남아있기도 하다. 사실상 국민의힘에는 남은 카드가 몇 개 없는데 그나마 현실적인 카드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로 신속하게 전환하는 방법이다. 

이와 관련해 윤재옥 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중진의원연석회의 직후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의견을 수렴했다”며 “중진 의원님 대부분이 비대위 구성이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다”고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시사했다. 

비대위원장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 여러 인사들이 거론된다. 

대대적 
물갈이

이로써 국민의힘은 3번째 비대위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비대위나 어떤 체제가 바뀐다고 해도 길이 크게 바뀌겠느냐”고 의아해했다. 이는 사실상 어떤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어렵다는 말로 해석된다. 

결국 위기를 돌파할 인물로 한 장관이 다시 소환됐다. 일각에서는 한 장관의 소환이 다소 이르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한 장관은 대구, 울산, 대전 등 지방 방문을 시작으로 사실상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장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를 찾아 보폭을 넓히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 자리서 한 장관은 “300명이 쓰는 언어가 아닌 5000만명이 사용하는 언어를 쓰겠다”는 말로 정치 참여를 하겠다는 의중을 에둘러 내비쳤다. 그는 이달 초 개각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민관리청 신설건이 마무리된 뒤, 연말 또는 연초 원포인트 개각 대상에는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장관은 윤석열정부 스타 장관 중 가장 핫한 인물로, 국민의힘을 이끌 새로운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한 장관의 이른 등판이 과연 도움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일단 차기 대선주자로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격차를 많이 줄였다.

보수 대권후보에서는 연일 1위를 차지하면서 명실상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위기 때마다 소환되곤 했으며 일단 이름만 거론되면 기대치부터 높아진다. 자신들의 잘못을 한 장관의 이미지를 빌려 덮는 식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설이 나오는 이유도 한 장관으로 인적 쇄신을 하고, 그의 얼굴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구상이다. 보수진영에서는 단연 몸값이 높은 터라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등판 시 이준석 전 대표에게 쏠린 신당 창당론을 어느 정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깔려 있다.

등판 자체만으로 이슈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는 한 장관의 거취가 조만간 분명해질 것으로 내다보는 가운데, 다만 이른 이미지 소비는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윤의 그림자
왕좌 만들기

이제 국민의힘에 중요한 부분은 한 장관을 사용하는 법 외에도 그가 필요한 이유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역구로 출마할지, 비례대표로 출마할지, 지역구로 출마하는 경우 보수 텃밭과 험지 중 어디로 출마하느냐도 관건이다. 

출마 지역의 경우, 수도권이 유력해 보이는데 보수의 상징성이 큰 곳과 대권주자로 한층 더 발돋움할 수 있는 비교적 험지 지역들이 거론된다. 안전을 위해서는 보수 성향이 강한 서울 강남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유세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전국적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보수를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반면 종로 등 수도권 험지로 나섰다가 당선만 된다면 중도층에도 소구력이 있다는 게 입증된다. 비례대표 출마 시에도 선 순위라면 당선이 수월해진다. 또 지역구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돼 다른 후보를 지원하기도 쉽다. 

총선 국면서 한 장관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선대위가 꾸려지면 한 장관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임무를 부여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국민의힘이 일찍 선대위를 꾸리지 않고, 비대위로 돌입하는 이유로 해석된다. 한 장관이 장관직서 물러난 후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반응을 살펴야 한다. 

보수층은 단연 그를 치켜세우지만, 문제는 중도층이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인식 때문에 중도층은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면 가장 먼저 털어내야 할 이미지다. 윤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경우,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도 한 장관만 바라보다가는 총선서 미역국을 들이킬 수도 있다. 정치 이력이 전무한 그가 선거판서 장관 시절의 모습을 보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장관 때는 가진 무기가 많아 공격력이 높았던 데다 명실상부한 윤 대통령의 황태자로 불리고 있지만 유세장에선 이런 장점들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한동훈 등판?
“이르다…대선까지 아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2인자가 대권 도전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결국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야 장관도 득을 보는 구조다. 한 장관으로 박스권 지지율을 탈출하겠다는 국민의힘의 시도가 무위에 그친다면, 앞으로 한 장관의 행보도 빛을 보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당내서도 한 장관을 비롯한 윤 대통령의 측근 세력들이 투입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 측근을 대거 총선에 투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한 장관 역시 윤 대통령의 사람으로서 윤정부 출신 중 가장 전면에 서게 된다. 현재 대통령실서 근무했던 인물 중 총선 출마자로 예상되는 인물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김은혜 전 홍보수석,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외에도 행정관, 비서실 출신 등 무려 30명이 넘는다.

이 중 몇몇은 실제로 출마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출마 교통정리를 두고 혼란이 지속 중인 가운데, 최악의 경우 한 장관과 대통령실 인물들 및 현역 의원들 간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총선까지 갈등 봉합은커녕 혼란만 지속되다가 총선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만큼 그가 확실한 구원투수가 될지 패전투수가 될지는 미지수다. 한동훈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게 단순히 윤 대통령의 바람으로 그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한 장관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을 때도 발생한다. 비대위원장은 당연직이므로 선대위원장을 겸임할 수 있다. 당 대표직을 대행하며 공천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또다시 용산의 국민의힘 장악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입당하면
분란 요소?

이와 관련해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한 장관이 중요한 직책을 맡아 국민의힘 선거를 이끌어가려면 국민적 신망이 있어야 한다”며 “지지층의 지지와 환호만 갖고 뭔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국민의힘 내년 총선 전략이 허약하다는 반증”이라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비대위원장 후보는?

국민의힘이 본격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에 돌입한다.

이번에도 누구를 비대위원장에 앉히느냐가 관건이다.

당내에서는 중량감과 스피커가 큰 인물을 선호한다고 전해진다.

현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만 해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다.

또 최근 국토부 장관직을 사임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과 이준석 전 대표 사태 당시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정진석 의원이 꼽힌다.

이 밖에 나경원 전 원내대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얼마 전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도 거론되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조속히 비대위를 추진할 예정으로 체제 전환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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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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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