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석’ 정의당의 한계

‘자강론’ 황소고집 대표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양당의 대결구도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만큼 제3당이 설 공간은 쪼그라들었다.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그 예시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정의당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당내 비판이 이어진다. ‘자강론’을 고집하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부딪히면서 파열음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패배한 정의당이 난항을 겪고 있다. 명색이 제2야당인 정의당서 내보낸 권수정 후보의 득표율이 1.83%에 그치면서다. 원내 1석에 불과한 진보당 후보가 얻은 1.38%와 비슷한 수치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벼랑 끝

보궐선거에 국민의힘은 김태우 후보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진교훈 후보를, 정의당은 권수정 후보를 각각 내보냈다. 권 후보는 민주노총 여성위원장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등을 거쳐 강서지역위원장을 지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권 후보는 유세를 통해 “두 거대 정당 사이서 수많은 약자의 목소리 그리고 눈물 나고 있는 서민들을 보듬으면서 20년 동안 노력해왔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양당이 재개발, 고도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반면 정의당은 돌봄, 녹색, 주거를 약속했다. 특히 강서구는 전세 사기가 많은 지역인 만큼 약자의 편에 서서 해당 문제를 1순위로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1%대 득표율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1.38% 득표율을 얻은 진보당 권혜인 후보와의 격차도 0.4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12일 당 상무집행위원회서 “이번 선거의 패배는 모두 정의당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라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어 “뼈를 깎는 성찰과 근본적 변화가 없이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더욱 분명해졌다”며 “당을 다시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당 안팎에서는 저마다 참패 원인을 분석했다. 당초 이번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에 무게가 실렸던 탓에 제3당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투표 직전까지 양당 중심 구도로 흘러가다 보니 정의당을 포함한 소수 정당의 목소리가 묻혔다는 설명이다.

한 자릿수 성적표에 담긴 민심
‘재창당’ 인공호흡기 달았지만…

일각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며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정의당이 내년 총선을 위한 ‘존재감 시험대’에 올랐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당 재정비에 나선다면 적어도 제2야당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궐선거 후폭풍이 이 대표 사퇴론까지 몰고 오면서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는 평이 나온다. 당 지도부가 11월 예정된 재창당에 사활을 건 이유다.

지난해 3월 치러진 대선과 6월 지방선거까지 연달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정의당은 지난 6월 녹색·노동·제3세력과 연합해 통해 재창당 의사를 밝혔다. 의원단 회의를 비롯한 시·도당 위원장 연석회의 등을 거친 뒤 다음 달 19일 당대회까지 준비를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이 대표 체제가 추진해온 ‘자강론 개혁’이 실패로 돌아섰다는 질책이 이어지면서 이 대표 리더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앞서 당내에서는 재창당 방향을 두고 ‘자강론’과 ‘연대론’으로 파가 나뉘었다. 이 대표는 신당 ‘새로운 선택’ 금태섭 대표와 ‘한국의 희망’ 양향자 대표 등 제3지대와의 연대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의당의 역사와 기조를 바탕으로 자강하는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당내 제3지대 확장을 이야기해온 ‘대안신당 당원모임’과 정의당 류호정·장혜영 의원 등이 주도하는 ‘세번째권력’은 입장문을 통해 자강론을 비판했다. 대안신당 당원모임은 “비상지도부를 구성해 확장노선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번째권력 역시 “양당 대안 세력을 통합하고 제3당 건설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며 외연 확장을 강조했다.

궤를 달리한 이들이 이탈하는 일도 발생했다.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지도부 사퇴를 시작으로, 정의당 재창당과 신당 추진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 목표였던 제3정당으로서 지위를 확실하게 확인하기는커녕 정의당은 유효정당으로서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며 이 대표 지도부의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이처럼 당내 여러 계파서 새로운 노선 선택과 사퇴 요구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만큼 갈등을 봉합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커지는 이 대표 사퇴론
꿋꿋이 버티다 부러질라

당 지도부는 사퇴 대신 재창당을 위한 마지막 한 달 동안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의 ‘자강론’ 고집은 꺾이지 않은 채였다.

정의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당 안팎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지도부 입장은 당장 치러질 창당대회를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는 것”이라며 “녹색당과의 연합을 강하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이 위기에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안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제3지대와의 연대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는 “그쪽으로 가길 원하는 일부 당내 세력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뚜렷한 목표가 정의당에 없다면 지도부 사퇴서 끝나는 게 아닌 당의 존폐 자체가 기로에 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대표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7월에 걸쳐 21일 동안 단식을 이어갔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묻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점을 예시로 들었다. 노란봉투법 같은 노동 관련 현안 역시 민주당이 밀고 나가면서 정의당의 역할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사퇴론에 관해 입을 열었다. 그는 “한 달 남은 당대회까지 기존 노선을 정비하고 총선 체제로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굳히면서 사퇴론을 일축했다.

열린 결말

이어 “제가 사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당의 위기를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당 차원의 고민들도 필요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의견을 수렴한 끝에 ‘사퇴 없음’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재창당 이후에도 모든 사안에 열린 태도로 대할 것”이라며 “당 안의 여러 가지 논의가 나올 가능성은 있는데, 다양한 방식을 향해 결정해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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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