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리는 비명계 1번 타깃

답은 정해졌다 ‘진실의 방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2대 국회를 향한 신호탄이 울렸다. 시합 초반부터 ‘자객 공천’ ‘공천 학살’ 의혹이 여의도를 오르내린다. 친명계 인사가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면서다. 아무렇게나 굴러가도 박힌 돌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비명계를 겨눈 표적이 하나씩 좁혀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을 기점으로 당내 ‘공천 학살’ 우려가 가시권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신임 지명직 최고위원에 친명(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을 내정하면서다. 원래는 비명(비 이재명)계인 민주당 송갑석 의원 자리였지만, 지난 9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공석이 됐다.

짙어지는
친명 색채

이 대표가 당무 복귀 후 첫 메시지로 ‘통합’을 내건지 불과 닷새 만에 ‘도로 친명당’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내년 총선까지 반 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서 친·비명 간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김민석 전 정책위의장이 사임하면서 공석이 되자, 이개호 의원을 임명했다. 이 의원은 친낙(친 이낙연)계 인물이지만 당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박 최고위원이 몰고 온 후폭풍을 상쇄하기 위한 ‘형식적 인선’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은 지역 안배와 당내 통합 등 이 대표 인선 기조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지도부의 인선 논의와 관련해 “특별한 이견은 없었다”며 “두 분에 관해 최고위원들 의견이 일치했다”고 부연했다.


박 최고위원은 대전 대덕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덕은 비명계인 민주당 박영순 의원의 지역구다. ‘비명계 솎아내기’가 시작됐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시작으로 비명계 측은 공천 학살이 본격 시작됐다고 이구동성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지도부는)박 최고위원이 충청 여성 정치인이라는 명분으로 직을 줬다”며 비명계 지역구에 출마를 결심한 인물을 발탁한 지도부의 속내를 비판했다.

이어 “이번 지명은 통합이 아니라 동지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는 행위”라며 “박영순 의원을 찍어내기 위함이 아니라면 불출마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공식적으로 당무위원회를 통해 최고위원직을 임명받은 박 최고위원은 ‘자객 공천설’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충청권의 총선 승리를 통해 전국 승리를 견인하겠다는 당의 의지가 포함된 것”이라며 자신이 임명된 이유를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자객 공천설이 불거진 데는 비단 박 최고위원 한 명뿐만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강성 친명계로 구성된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더민주) 인사를 비롯해 원외 친명계가 비명계 지역구에 대거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여의도 떠도는 숙청 리스트
친명·개딸 합세해 총공격

더민주 강위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15일 송 전 최고위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갑 출마를 선언했다. 관련해 송 전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나 정치에 출마를 할 수 있다”면서도 “몇몇 출마하시는 분들이 정치로서 지역구민에게 어필하기보다는 친·반명 경선 구도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더민주 상임운영위원장인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은 비명계 강병원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출마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박 당도 5’로 분류되는 이들의 지역이 가장 위태롭다는 평이 나온다.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으로 강성 지지자들이 비명계를 비하할 때 쓰이는 단어다. 당도가 높을수록 강성 비명계로 통한다.

당도 5에 해당하는 민주당 이원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을에는 진석범 동탄복지포럼 대표가 출마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진 대표는 이 대표 경기지사 시절 경기복지재단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내리 5선을 지낸 대전 유성을에는 이 대표의 대선경선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경 상근부대변인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대변인은 과거 이 의원이 친명계 인사들을 싸잡아 ‘곰팡이’에 빗댄 발언을 정면으로 저격했다.

중진 의원이 자극적인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형편없는 기득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민주당 김종민 의원 지역구(충남 논산계룡금산)에 황명선 전 논산시장, 전해철 의원 지역구(경기 안산상록갑)에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윤영찬 의원 지역구(경기 성남중원)에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각각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명계
밀어내기

현재 강력하게 거론되는 ‘비명계 숙청’ 시나리오 중 하나는 당이 친·비명 의원을 경선투표에 올려 당원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비명계 의원에게 속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아무리 지금의 이 대표가 통합의 메시지를 내더라도 총선이 다가오면 경선을 거쳐 몽땅 ‘합법적 숙청’으로 잘라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곳은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지역인 만큼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뜻하는 ‘개딸’(개혁의 딸)의 입김이 세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친·비명 두 인물을 나란히 경선에 올렸을 때 개딸은 친명이거나 계파색이 옅은 의원이 새로 깃발을 꽂는 데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5월 다음해 총선 공천특별당규(공천룰)를 발표했다.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 체제 당시 만들어진 ‘시스템 공천’ 기틀을 유지한 것으로 ▲지역구 경선 원칙 ▲권리당원·국민 50:50 여론조사 ▲전략공천 최소화(20% 내)를 골자로 한다.

이 중에서 뇌관이 된 것은 권리당원과 국민 여론조사 비율이 각각 50%씩 반영된다는 점이다. 민주당 권리당원 중 대다수는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부상한 2021년 이후 입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주말 사이에 약 1만명의 당원이 가입하기도 했다.


과도한 ‘팬덤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그와 맞먹는 힘을 쥐고 있어 경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강성 지지자는 연일 비명계를 향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이원욱 의원의 사무실 앞에는 ‘민주당 내의 검찰 독재 윤석열의 토착 왜구 당도5 잔당들’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이 의원을 비롯한 윤영찬·이원욱·박용진·박광온·설훈·김종민·이상민·송갑석·조응천 등 비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수박을 뒤집어쓴 합성 사진이 함께 실렸다.

‘나에게 한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협박성 문구는 당내서도 논란이 됐다.

일부는 이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가 소란을 일으켰다. 이를 두고 비명계 측은 “이 대표가 말한 통합 메시지가 단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이 대표가 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연말까지
갑론을박

비명계는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총선을 관리하는 총선기획단 단장은 관례적으로 당의 사무총장이 맡는데, 친명계 중진으로 꼽히는 조 사무총장이 키를 쥐면 공천 보복이 현실화할 것이란 해석이다.


체포동의안 가결 후폭풍으로 송 전 최고위원과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직을 내려놨을 당시 조 사무총장은 예외였다. 당시 조 사무총장을 비롯한 정무직 당직자 전원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비명계를 중심으로 조 사무총장의 사퇴 여론이 일었다. 사무총장직은 경선 전 정무적 단계서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립적인 인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는 조 사무총장의 사퇴론을 일축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사무총장은 대표와 최고위원회 의결 사항을 실무적으로 빈틈없이 지원하는 직책”이라며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거취 논란이 계속되던 지난 1일, 민주당이 조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총선기획단을 발족시켰다. 총선기획단은 단장인 조 사무총장을 비롯한 13명의 관련직 위원으로 구성됐다.

총선기획단에는 ▲정태호 민주연구원장 ▲김성주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한준호 홍보위원장 ▲이재정 전국여성위원장 ▲전용기 전국청년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일반직 위원은 ▲신현영 의원 ▲최택용 부산 기장 지역위원장 ▲박영훈 당 청년미래연석회의 부의장 ▲장현주·장윤미 변호사가 임명됐다.

총선기획단이 출범하자 비명계의 불만이 즉각 터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이 계파색이 옅거나 일부 친명 성향이 드러난다는 게 비명계 의원들의 주장이다.

경선까지 붙여놓고 팽?
합법적 컷오프에 반발

특히 최 위원장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서 가결표를 찍은 의원을 겨냥한 적 있어 친명 색이 짙다는 평을 받는다. 최 지역위원장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두고 SNS를 통해 ‘검찰 독재 부역자’라고 비난하며 “당내 청소에 나서자”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1대 총선과 비교했을 때 중립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시 총선기획단에는 ‘대표 소장파’로 꼽혔던 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합류했다. 프로게이머 출신이자 현 노무현재단 이사인 황희두씨를 영입하기도 했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 대표의 결함이자 한계”라며 이번 인선을 평가했다. ‘친명 일색’이라는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조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앉힌 건 민주당이 이 대표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백날 통합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말을 뒤집는 선수”라며 “이 대표 체제에 관한 불신이 치유되긴커녕 오히려 부채질한 꼴”이라고 소리 높였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통화서 “이번 인선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절차”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22대 국회서 민주당이 ‘이재명 사당화’될 경우 민주당의 승패는 아무도 모른다”며 “지금 이 대표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크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명계의 우려 목소리가 우후죽순 솟아나자 지도부에서는 논란에 반박하고 나섰다. 모든 공천은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만큼 비명계만 축출될 가능성은 작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중진 비명계 지역구를 노리는 인사가 대부분 신인인 점을 감안했을 때 경선을 치른다면 국민에게 인지도가 쌓인 비명계 의원이 유리하다는 해석도 내놨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자객 공천 논란을 두고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대부분 이재명 대표와 가깝다고 얘기하는 분들은 정치 신인이나 도전자들의 ‘자가발전’”이라며 “전혀 이재명 대표하고 연관된 분들은 없다”고 주장했다.

지도부가 진압에 나섰지만 친·비명 간의 갈등은 공천 결과가 판가름 나는 연말·연초까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친명계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자”는 주장을 이어가며 본격 비명계 압박에 나서면서다. 내년 총선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여 강경 투쟁’이 필요한데, 비명계가 소란을 일으켜 당에 균열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기약 없는
마침표

정치권 안팎에서는 비명계가 공천받지 못한다면 대거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는 등 그들의 정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현재 비명계의 결집력이 약한 만큼 ‘각자도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해석도 제시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기는 위해서는 결이 맞는 인물을 끌어모으는 구심점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서는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며 결집 가능성이 작다고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비명계 의원이 여러명 있지만 이들이 하나로 뭉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면서도 “만일 하나의 계기가 기폭제가 된다면 (창당이)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예산·민생 잡는 이재명 논란은 뒷주머니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체제에 들어섬과 동시에 예산 정국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비명계의 ‘친명기획단’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관련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내 갈등을 재점화할 여지를 줄이는 대신 예산안에 집중하면서 민생을 챙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민생경제 기자회견서 “윤석열정부가 오로지 건전 재정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위기 극복 방안을 총동원하면 3% 성장률 회복이 가능하다”며 이를 뒷받침할 ‘쌍끌이 엔진’으로 미래형 SOC 투자와 소비 진작 두 가지를 강조했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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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