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격전지를 가다> ‘무주공산’ 부산 중·영도구

파도치는 텃밭 민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정부와 거대 야당이 서로를 겨냥해 ‘심판론’을 펼치는 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2023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보수 텃밭이었던 부산시에 변화가 감지된다. 부산시 중·영도구는 현역이었던 국민의힘 황보승희 전 의원이 탈당하면서 무주공산이 됐다. 중·영도구에 누가 출마할지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부산시 중구와 영도구는 각각의 단일 선거구였다. 중구 인구가 감소하면서 인접한 동구와 합쳐서 중·동구 선거구로 묶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조정으로 인해 동구를 서구와 합쳐 서·동구를 형성했고, 중구는 영도구와 묶어 지금의 중·영도구로 형성됐다.

쟁탈전

과거의 부산은 지금과 달리 진보진영이 힘을 받던 곳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박정희정권을 무너뜨린 ‘부마 민주항쟁’이 발생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진보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 무렵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이 보수정당과 합당하면서 신한국당,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아진 것이 이유로 제시된다.

보수 텃밭 속에서도 부산은 꾸준히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진보 인사들을 배출했다. 문 전 대통령은 부산서 인권·노동변호사로 활동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부산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을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이처럼 부산은 민주당에게 의미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부산시 중·영도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인사가 앞다퉈 출사표를 던지면서 예전과 다르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곳 역시 대대로 보수 깃발이 휘날리던 곳이다.

하지만 현역이었던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 논란과 지난해 부산엑스포(이하 엑스포) 유치 실패로 민심의 추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민주당에게 있어 중·영도구는 지금에서야 이른바 ‘해볼만한 지역구’로 꼽히지만 과거에는 보수정당만 줄줄이 당선됐다.

제20대 총선에서는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전 대표를 지낸 김무성 의원이 6선을 노리며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김비오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었다. 김 전 행정관은 단독 선거구이던 18대 총선부터 도전해왔던 인물이다.

개표 결과 김무성 후보가 55.80%로 김비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비오 후보는 40.7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정치권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평이 돌았지만 보수 색채가 더욱 진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의미 있는 숫자라는 해석도 나왔다.

현역이었던 김 전 대표는 21대 총선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김 전 대표는 “당이 어렵게 되는 과정서 책임자급으로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게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며 품위 있는 퇴장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6·13 지방선거서 참패하자 스스로 퇴장함으로써 보수통합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후폭풍?
국힘 후벼 파는 ‘정권 심판론’

중진이 물러난 중·영도구에서는 3선 구의원이자 재선 시의원을 역임했던 국민의힘 황보 의원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행정관이 공천을 받아 또다시 도전에 나섰다. 이때 미래통합당은 서·동구에 출마했던 곽규택 후보를 중·영도로 데려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돌연 계획을 물리고 그를 다시 서·동구에 출마시켰으며, 황보 후보에게 공천장을 쥐여줬다.

민주당 측에 따르면 황보 의원은 당시 김형오 공관위원장의 최측근이라는 평을 받았다. 인맥을 이용해 이른바 ‘꿀 지역구’에 공천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면서 황보 의원의 출마가 뜬금없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제21대 총선 결과 황보 의원이 51.86%를 득표하면서 44.91%를 얻은 김 후보를 6.9%p로 제치고 당선됐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6선이었던 김 전 대표의 후광과 더불어 황보 의원의 인지도가 합쳐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지난해 황보 의원을 둘러싸고 정치자금법을 비롯한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현재 황보 의원은 2020년 3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부동산 개발업체 회장인 A씨로부터 서울 소재 아파트 보증금과 현금, 월세 등 82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또 검찰은 황보 의원이 A씨가 제공한 신용카드로 약 6000만원을 사용하는 등 총 1억4000여만원을 수수했다고 보고 있다.

이후 황보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동시에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6월 황보 의원은 “20년간 저를 키워주신 사랑하는 중구·영도구 구민께 거듭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황보 의원의 구설수로 부산 민심이 뒤숭숭하던 중 엑스포 유치 실패까지 실책이 이어졌다. 뿔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시 중구 깡통시장에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먹방’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풍만 맞은 형국이다.

‘4전5기’ 김비오 VS ‘친윤’ 박성근
설설 끓는 ‘6선’ 김무성 등판 주목

이를 기회로 삼은 민주당은 이번에야말로 중·영도구에 파란 깃발을 꽂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앞다퉈 예비후보를 등록했다.

우선 2008년부터 출사표를 냈던 김 전 행정관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선다. 김비오 예비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복싱선수 홍수환의 4전5기처럼 화려한 결과가 보장돼있지 않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와 약속했던 그 길을 가려 한다”며 출마를 시사했다.

김의성 전 청와대 행정관과 한국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출신인 박영미 전 중·영도구 지역위원장도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면서 총선 대열에 합류했다. 김 전 행정관은 ‘영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며 민심 챙기기에 나섰다. 박 전 위원장은 일찌감치 지역주민과의 스킨십에 힘을 쏟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힘 출마 후보군으로는 ‘친윤(친 윤석열)’으로 분류된 검사 출신의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거론된다.


박 실장은 “오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바르고 다른 정치를 실현할 준비를 마쳤다”며 중·영도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어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인 교통을 비롯해 경제·교육·의료복지 등이 필요해 핵심 정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중·영도구의 최대 관심사는 김 전 대표의 재등장 여부로 당사자인 그는 중·영도 출마 가능성에 대해 “주민들로부터 다시 출마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몇 번 거절하고 외면하기도 했는데, 마음이 조금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김 전 대표가 정치권으로 돌아온다면 여야를 막론한 후보는 ‘6선의 힘’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특히 민주당은 여당 중진과 ‘용산발’ 후보라는 양대 산맥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심판대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장관과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하마평에 오른다. 윤정부서 주요 전·현직을 맡았던 인사들이 중·영도를 예의 주시함에 따라 민주당의 총선 계산기도 빠르게 돌아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각종 악재가 겹쳐 발생한 ‘정권 심판론’이 민주당의 돌파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번 총선서 부산이 마냥 승산 없는 싸움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민주당 후보가 격차를 좁혀나가는 모양새다. 결국 정권 심판론이 얼마나 예리하게 작용할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