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4월 총선 ‘동네북’ 선관위 잔혹사

‘헌법기관’ 방패로 60년 고인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년 4월, 여야 양 진영의 명운을 건 경기가 열린다. 경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은 쪽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자리는 총 300개. 무승부는 없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진다. 문제는 심판이다. 초대형 경기를 6개월 앞두고 심판의 자질이 문제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승자의 이득은 곧 패자의 손실이 된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다시 말해 승부서 밀리면 손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사활을 걸고 덤벼드는 이유다. 

심판 역할
자질 부족

선거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이기고 지는 결과만 있기 때문에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심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패자의 승복은 바랄 수 없다. 이긴 자 역시 찝찝한 승리를 누릴 뿐이다. 심판을 맡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 전반을 관리한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대형 정치 이벤트를 비롯해 협동조합의 이사장 선거까지 투표를 통해 당락이 갈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선관위가 있다.

최근 선관위가 끊임없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60년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취약한 보안 상태도 드러났다. 특히 보안 문제가 언급된 부분은 ‘혹시?’라는 의구심을 국민에게 심어줬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중앙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함께 지난 7월17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합동보안점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앙선관위의 투·개표 관리 시스템은 북한 등이 언제든 침투할 수 있는 상태로 드러났다. 선관위의 사이버 보안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국정원은 기술적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가상의 해커가 선관위 전산망 침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서 투표 시스템, 개표 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에서 해킹 취약점이 다수 발견된 것.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선관위가 보유한)전체 장비 6400여대 가운데 약 5%인 317대만 점검했다”고 말했다. 백 3차장은 “선거의 제도적 통제장치는 고려하지 않고 기술적 측면서 해커의 관점으로 취약점 여부를 확인한 것”이라며 “과거의 선거 결과 의혹과 결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안 부분서 취약점이 발견된 것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 현황과 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선관위의 ‘통합 선거인 명부 시스템’은 인터넷을 통해 침투할 수 있고 해킹도 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사전투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시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을 투표한 사람으로 표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유권자를 정상 유권자로도 등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점검으로 해킹 가능성
투·개표 시스템부터 전산망까지

사전투표 용지에 날인되는 청인(선관위 도장)과 사인(투표관리관의 도장) 파일을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훔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 테스트용 사전투표 용지 출력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사전투표 용지와 QR코드가 같은 투표용지를 무단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사전투표소에 설치된 통신장비에는 인가를 받지 않은 외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어 내부 선거망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개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특히 투표용지 분류기에서는 USB 등 외부 장비의 접속을 통제해야 하는데도 비인가 USB를 무단 연결하면 해킹 프로그램 설치가 가능했고 이를 통해 투표 분류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 

선관위 전산망 역시 해킹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선관위 전산망은 홈페이지 등이 연결된 인터넷망, 선거사무 관리를 위한 업무시스템을 운영하는 업무망, 투·개표 관련 주요 선거 시스템을 포괄하는 선거망 등으로 구분된다.

중요 정보를 처리하는 업무망과 선거망 등 내부 전산망은 인터넷과 분리해야 하는데 선관위의 경우 망 분리 보안 정책이 미흡해 전산망 간 통신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인터넷서 업무망·선거망으로 침입할 수 있는 것. 

또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재외공관의 재외선거망까지 침투가 가능했다. 재외선거관리시스템서 재외국민선거인명부를 탈취하고 재외 공간의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보안에 대한 선관위의 안일한 인식이다. 선관위 시스템 비밀번호는 ‘12345’ 등 초기 설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커한테
다 뚫린다

심지어 해킹에 대한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선관위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국정원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선관위에 관련한 해킹 8건을 통보했다. 선관위는 국정원 통보 전까지 해킹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처는 더 최악이었다. 해킹 원인을 조사하지 않았고 피해자 보안조치 역시 실시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 과정서 2021년 4월 선관위의 인터넷 컴퓨터가 북한 ‘김수키’ 조직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상용 메일함에 저장됐던 대외비 문건 등 업무 자료와 저장 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자체 평가서 스스로를 100점이라고 진단했지만 국정원의 평가는 3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보호대책 이행 여부 점검’을 자체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이었다고 국정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이번 점검서 같은 기준으로 재평가했더니 31.5점에 불과했다. 

국정원은 “선관위는 그동안 국정원의 현장 점검을 거부하고 자체 점검 결과를 서면으로만 제출했다”면서 “31.5점은 지난해 102개 기관 중 최하점에도 미치지 못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선관위가 100점 만점을 통보했을 때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선관위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관위는 국정원 점검 이후 내년 총선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앙선관위는 총선 사전투표함과 우편투표 보관 과정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전국 사전·우편투표함 보관장소에 설치한 CCTV 화면 전부를 실시간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대처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앞서 선관위가 채용 문제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것도 불신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선관위는 그동안 외부의 관리·감독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타이틀로 철옹성 같은 방어막을 구축했다.

반쪽 조사
문제 많아

그 결과 내부가 완전히 ‘고인물’화되면서 신뢰도가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지난 7년간의 선관위 공무원 경력채용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선관위가 권익위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핵심인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채용 비리 정황이 드러났다. 권익위는 353건을 적발, 이 중 312건을 수사 의뢰했다.

반쪽 조사였지만 특혜 채용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조사 결과 ▲법적 근거 없이 임기제 공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채용공고 게재 ▲경력증명서 미제출에도 채용 ▲나이 등 자격요건 미달자의 합격 등이 적발됐다. 특혜 채용 의혹 합격자와 선관위 직원 간 가족 및 친인척 여부는 향후 검찰 수사 단계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선관위에 수차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인사기록 카드, 인사시스템 접속 권한, 채용 관련자 인사 발령 대장, 비공무원 채용 자료 등을 요구했지만 전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 주민등록번호 제공에 동의한 게 41%에 불과했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위임 규정에 따른 정례적 인사 감사도 전혀 실시하지 않아 불공정 채용이 반복됐다고 보고 있다. 

특혜 채용으로 도덕성 타격
‘노태악 사퇴론’ 다시 불거져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선관위는 ‘규정 미비’ ‘당사자의 실수’ 등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지난 7월에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과 관련해 정당성을 따져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이서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선관위는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진 후 감사원이 직무감찰 계획을 밝히자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거부했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부분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선관위 측은 “이번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경력 채용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명확히 정리돼 국가기관 간 불필요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에 이어 지난 12일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선관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채용 비리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중앙선관위 해킹 의혹 관련 대응 TF를 구성하는 등 선관위 압박에 나섰다.

선관위는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선거 불복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신이냐
회복이냐

선관위를 둘러싼 잦은 논란에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론도 불거지고 있다. 노 위원장은 지난 5월,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사과하면서도 사퇴 계획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이 선관위 관련 의혹에 책임을 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판의 자질이 부족하면 경기를 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람객까지 피해를 입는다. 결국 선관위의 문제는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 감사원, 권익위, 국정원 등 선관위는 현재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선관위에 대한 평가가 갈릴 듯하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열 3위와 6위 차이?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탄 승용차가 대법원장 일행인 것처럼 버스전용차로로 달렸다가 적발돼 과태료를 문 사실이 드러났다.

노 위원장이 탄 선관위 관용차는 지난해 10월1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다 단속카메라에 찍혔다. 

국가의전 서열 3위인 대법원장 관용차는 경찰 호위 대상으로 버스전용차로로 통행이 가능하지만, 서열 6위인 선관위원장은 버스전용차로로 다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0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위해 선관위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노 위원장은 이번 일과 관련해 “앞으로 좀 더 세심히 주의하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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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