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게 붙은’ 의대 정원 확대의 이면

17년 지킨 밥그릇 “엎을 때 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방팔방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말 그대로 ‘동네북’이 된 신세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위한 ‘꽃놀이패’라는 말까지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선망의 직업으로 손꼽히는 의사 이야기다. 최근 의사 수를 늘리는 의대 증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의료계에 ‘의대 정원 확대’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윤석열정부는 20년 가까이 유지되던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이다. 사회 전체가 해당 이슈를 두고 들썩이는 모양새다. 

사면초가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17년간 3058명으로 고정된 상태다. 2000년 3507명이던 정원이 의약분업 시행 때 감축되기 시작해 2003년 3253명, 2004~2005년 3097명, 2006년 3058명으로 줄었다.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자 ‘2002년까지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고 전공의 보상을 강화한다’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감소한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는 2010년대 들어 분출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미래에 의사 수가 부족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문제는 의료계의 저항이 강력하다는 점이다. 실제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이전 정부서도 여러 차례 있어왔다. 

문재인정부 역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다가 의료계의 반발에 밀려 손을 든 바 있다. 당시 의료계는 파업, 국가고시 거부 등의 카드로 정부를 압박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여서 의료계의 파업은 즉각 의료현장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정부가 이른바 ‘백기 투항’했고 이 과정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중심으로 ‘9·4 의정 합의’가 이뤄졌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논의를 중단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후 잠잠했던 이슈는 윤정부가 문정부 때보다 더 큰 규모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을 지피다가 최근 폭탄을 던진 것이다. 

윤정부는 의사 수가 늘어나면 부족한 필수 의료인력이 채워지고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의대 졸업생이 수도권이나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에 집중돼 시장이 포화되면 지방이나 필수 의료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도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 찬성
정치권·정부 추진 동력

특히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50년 고령인구 비중이 40%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2050년 의사가 최대 2만2000명 부족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면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반박했다. 의협은 시종일관 수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과와 지역에 의사가 쏠려 있는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늘어난 인력이 피부미용, 성형, 안과 같은 분야로 진출해 정책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다.

처우개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 부담 경감 등 대책 마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정부는 정원 확대를 기본 전제로 그 규모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연 300~500명을 늘리는 등의 점진적 방안과 한 번에 1000명 이상을 증원하는 급진적 방안이 거론된다. 규모와 속도에 있어 조절하는 것일 뿐, 정원 확대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 전제로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사 인력 전문위원회 모두 발언서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서 벌어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의사 수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이례적으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윤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이견이 있던 여야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는 한목소리를 내면서 입법 동력이 마련될 가능성이 생겼다. 여야와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문재인정부 땐 파업으로 막아
국민 여론은 찬성 쪽으로 쏠려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파업 등 강경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지난 17일 ‘의대 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서 “정부가 2020년 9·4 의정합의 정신을 위반하고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료계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를 강행한다면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3년 전보다 더욱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대목은 국민 여론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크게 쏠려 있는 것.

<매일경제신문>이 여론조사 기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의대 정원 관련 여론조사에서 71.1%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반대는 18.4%에 그쳤다. 

정치권과 국민이 의대 정원 확대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정부는 추진 동력을 얻게 됐다. 반면 의료계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의료계의 반발에 대해 ‘밥그릇 지키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17년 동안 의대 정원이 유지되면서 만들어진 이권 카르텔을 위한 반대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의료계서 예고한 파업 등에 대한 국민 여론 역시 심상찮다. 문정부 당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한 뒤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된 바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응급환자가 늘어난 시기여서 의사가 환자 목숨을 볼모로 삼아 이권 지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현재는 3년 전보다도 여론이 더 좋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누리꾼을 중심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의사 유튜버에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게시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의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댓글이 대체적으로 다수인 편이다. 

공감대

이 같은 국민 여론은 의료계의 강경 투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정부 때만큼 의사와 의대생이 전면 대응에 참여할지 여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민심이 악화될수록 정부는 동력을 얻는 구조라 의료계 역시 국민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3058+α’서 이제 의료계는 α가 어느 정도일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와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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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