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의료 붕괴, 데드라인 10년”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는 ‘본질을 봐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7개월간의 의정 갈등은 이른바 ‘트리거’였을 뿐 의료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암울한 진단과 함께였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벽돌 하나만큼의 공백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년,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남은 시간은 그 정도뿐이다.

지난 2월6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3028명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린다는 내용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했다.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린다는 취지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자체에 반발해 사직 등의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의정 갈등’의 시작이다. 

7개월째
평행선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정부는 법원 판결을 동력 삼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내년도 전국 40대 대학의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된 이후 27년 만이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어든 뒤로는 19년 만이다.

윤석열정부는 초기 발표 때의 2000명에는 못 미쳤지만 이전 정부서 번번이 무산됐던 의대 증원을 이뤄냈다고 자찬했다. 문제는 의료계와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선봉에 섰던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 역시 정부와 학교의 회유책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의료 현장의 주축과 미래 자산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면서 대형병원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글은 누리꾼 사이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응급실에 와도 처치할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니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의료 현장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와 교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일요시사>는 7개월째에 접어든 의정 갈등에 대해 묻기 위해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 교수는 의대 증원이나 전공의 복귀 등 의정 갈등 관련 이슈보다는 ‘의료 붕괴’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의료 붕괴는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이번 의정 갈등은 그 속도를 높이는 이른바 ‘촉매’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의료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방식의 의료체계와 유럽·영국식인 사회주의 방식, 그리고 정부와 의사, 환자의 3각 관계를 설명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방식은 비싸다. 돈이 많은 환자는 질 좋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의료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유럽·영국식 사회주의 방식은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대신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의 장점이 혼합된 형태다. 다시 말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에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어 조 교수는 의사 개인과 의사 집단 전체, 그리고 특정 환자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뒤 환자와 국민·의사와 병원·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서비스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크게 셋으로 분류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3자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올 초부터 의료계 이슈 펑펑
이재명 피습·의대 정원 증원

조 교수가 제시한 대전제를 두고 현재 상황을 바라보면 7개월의 의정 갈등은 오랜 시간 곪아 있던 의료계의 모순점을 수면 위로 올린 ‘트리거(방아쇠)’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조 교수는 이를 ‘레고 블록 쌓기’ ‘성냥 쌓기’ 등으로 표현했다.


한순간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블록과 성냥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이 그 ‘삐끗한 순간’이었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질 높고 신속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전공의다. 수십년간 전공의가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서 쌓여온 모순점이 의대 증원 정책과 동시에 터져 나온 게 현재 상황이다. 전공의는 자신들의 미래에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조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식 의료체계서 의료서비스의 생산자는 의사와 병원, 구매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즉 정부가 된다. 환자와 국민은 국가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배급’받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환자와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동시에 짊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과정서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악마화’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주의식으로 하려면 국민 전체가 사회주의 의료체계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식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을 막 섞어 놓으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방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섞다 보니 엉망이 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현재 의료계 상황을 ‘불난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활 타고 있는 불은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불이 꺼진 후에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불이 난 이유를 파악하고 불이 다시 나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지은 집은 금방 다시 불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희생 위
쌓인 성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의료 붕괴’를 언급했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전공의 이탈 등의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문을 닫는 대학병원이 1~2년 내로 생겨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의료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중반에 건강보험체계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이 (정부로부터)돈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나. ‘보험 환자 못 받겠다’하고 나가떨어지는 거지. 그때가 되면 정말 돈 있는 사람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식 의료체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포함돼있던 공공성이 망가진다고 보면 된다.”

조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식 의료체계는 경제 수준이 중간 정도인 중산층에 타격을 입힌다. 빈곤층은 정부의 우산 아래 있고 상류층은 돈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값비싼 의료서비스에 좌절하듯 우리나라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의료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에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과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을 뿐 이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는 주장이다. 촉매의 역할이 반응속도의 변화듯,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환자, 그리고 의사가 모두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환자는 의정 갈등서 피해자 포지션으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상황에 환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진료권을 벗어나 경증이어도 빅5 병원으로 향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없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이 대표의 피습사건 때 의료계는 분노했지만 국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점을 언급했다. 당시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을 시찰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한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뒤 수술을 받았다.

전원 과정, 닥터 헬기 이용 등을 두고 의사회는 성명을 내는 등 비판을 제기했다.

지방 의료를 살리자던 야당의 대표가 닥터 헬기까지 이용해 부산서 서울로 이동한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교수는 “이 대표 사건은 문제를 표면화시켰을 뿐 이미 지방의 환자는 모두 KTX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약이
무효하다

필수 의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오랜 시간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해 온 환자는 현 상황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고 정부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료 수가를 조정하지 못하면서 ‘기피과’가 생겼다. 또 비급여 등의 항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비필수 의료 쪽으로 빠졌다. 

조 교수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건을 거론했다. 지난달 22일 김 전 위원장은 오른쪽 이마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새벽에 잘못하다 넘어져 이마가 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에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응급실서 이마 약 8㎝를 꿰맸다. 

조 교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에 널리고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찢어진 이마 상처를 꿰매줄 성형외과는 없다. 비필수 의료를 하는 성형외과는 많지만 필수 의료를 해줄 성형외과는 없는 상황이다. 의사를 늘린다고 필수 의료가 살아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본질은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돈을 쫓는 것을 굉장히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덜 힘들고 돈을 더 버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의사에게만 더 힘들고 덜 버는 삶을 살라고 강요할 순 없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어떤 형태든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빈약한 철학·마구잡이식 체계
정부·환자·의사 서로 포기해야

조 교수는 의대 정원 역시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배치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작정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를 할 수 있게 정부와 환자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왕’ ‘환자가 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환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후자 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그 대신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환자에 한해 진료권역을 지키도록 제한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조 교수는 환자와 정부, 의사의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당초 의료체계를 만들 때 부족했던 철학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외국서 의료체계를 베껴 올 때 그 철학을 외면하고 가져오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섞이고 빠지고 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고 한탄했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여론에 휩쓸려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손님은 왕이에요’라는 말만 했지 ‘갑질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상황에 대한 암울한 진단도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 복귀 문제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 내년 3월에 인턴 자체가 안 들어올 것이고 레지던트는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불투명하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인력 문제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갑갑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응급의학과뿐만 아니라 각 과 교수들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 특히 응급실은 병원서 보던 환자가 아니면 안 본다든지, 온갖 사유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악화되면 대학병원의 진료 능력 자체가 악화될 것이다. 그나마 내년 3월이 레지던트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때 수급이 안 되면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이날 인터뷰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철학과 기본 개념이 부족한 상황서 생각나는 대로 지은 집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도 했다. 그나마도 현재 불타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3월
고비될까

“각 나라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고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먼저 정한 뒤 각자가 포기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환자와 의사, 그리고 정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 짜 맞춰가야 한다. 하지만 3자 모두 그걸 이해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타깝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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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