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의료 대란 막전막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26 11:33:26
  • 호수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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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사 버렸고 의사는 환자 버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는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로, 의사가 지켜야 하는 윤리를 말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이 선서를 낭독하고 의사가 되지만, 이를 기억하는 의사는 사라졌고, 갈 곳 잃은 환자만 남았다. 

지난 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서 19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풀고, 2025년까지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까지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되어, 2035년까지 최대 1만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강
피해는… 

이날 조 장관은 “2006년부터 19년 동안 묶여있던 의대 정원도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이룩한 우리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10월26일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 역량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는 등 현장 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

또 의사들이 지역과 필수 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민생토론회서 ▲의료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지금이 의료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다양한 분야서의 개혁 과제를 발굴해 정진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정부와 새로운 의료체계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고 그 여파로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7813명이 병원을 떠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8816명에 달했다.

그 결과 병원이 마비됐다. 그 여파로 피해를 받는 것은 국민이다. 응급환자가 아니면 아무리 중증환자라도 병원에 갈 수 없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병원서 응급환자가 아니라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집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응급 이송돼 뇌출혈 증상 진단을 받고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간 대학병원은 A씨에게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기기가 없다. 다른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급한 마음으로 또 다른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병원은 A씨에게 “응급환자가 아니라서 치료 날짜를 바로 잡지 못한다. 집에서 기다리면 연락을 주겠다”고 전했다.

뇌 손상은 빨리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A씨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다. A씨 가족이 “‘입원해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병원 측은 ‘수술 환자가 아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80세 B씨는 지난 7일 전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B씨가 이송된 지역 2차 병원 측은 그가 나이가 많은 데다 후두암, 심근경색 등의 기저질환이 있어 3차 병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19년 만에 2000명 증원한다고…
줄줄이 사직서 던지는 전공의들

이후 B씨의 딸이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서울대·한양대·경희대 등 대학병원에 문의했으나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딸은 요양병원까지 알아봤으나, 수술이 끝난 후 뼈가 붙은 상태의 환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B씨 가족이 찾은 병원은 군 병원이다. B씨는 “오늘 아침에 TV 뉴스를 보는데, 군 병원이 환자를 받는다고 해서 (수도병원에)전화했다. 수도병원에선 ‘알아보겠다’고 말하더니 곧 ‘바로 오라’고 전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B씨 딸은 “그 전에 통화한 대학병원에선 아버지가 연세가 많고 기저질환이 있어 수술이 어렵다고만 말했는데, 여기선 만나자마자 ‘무조건 수술하겠다’고 말해주니 안도감이 들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고 밝혔다.

혈액암을 앓는 두 살된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C씨는 “당장 수술이나 치료가 밀린 건 없다. 그런데 의료 파업이 몇 주 동안 지속하면 수술이나 치료가 지체될까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과 난치 질환자들은 치료 기간이 밀리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크다. 항암 치료에는 순서가 있는데 치료가 늦어지면 전이 위험도 있고,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문의 등 전공의 외 다른 의사들은 업무시간을 최대한 조정해 의료공백을 최소화할 계획”이라며 “실제 사직서를 낸 인원과 업무를 중단하는 인원의 수가 다를 가능성도 있기에 상황을 보고 세부 대응 방침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소속 한 교수는 “지난 13일만 해도 이런 파업 얘기는 전혀 몰랐다. 환자들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전혀 아닌데 급작스레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 전공의 없이 가능한 수술을 수행하고 인력, 일정 등을 조율하면서 다들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대표들이 모여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총회에는 박단 대전협 회장을 포함해 150여명의 전공의가 참석했다. 각 병원 전공의 대표뿐만 아니라 일반 전공의 10여명도 모니터링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학병원
사실상 스톱

대전협은 의협 대강당 벽면에 “의대 정원 졸속 확대 의료체계 붕괴한다” “비과학적 수요조사 즉각 폐기” 등 윤석열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비판하는 게시물이 걸려 있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진료 유지 명령’을 전격 발동했다. 현재의 의료행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상황이 악화하면 의원급 재진만 허용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를 일시적으로 전면 허용하고, 공공병원도 일반환자들에게 개방하는 의료공백 장기화 대책까지 꺼내 들었다.


이는 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에 대응하면서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또 2000명 증원 방침에 타협은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등에 법적 대응을 경고한 상황서 이날 경찰청이 사태 주도자에 대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 일각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는 데 대해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의 관점서 국방이나 치안과 다름없이 위중한 문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같은 발언은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으로부터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돌입 등 의료계 집단행동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나왔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벌어져도 2~3주가량은 해당 병원 소속 교수나 전임의, 입원이나 중환자실 전담의 등 전공의 외 인력으로 버틸 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 기간이 지나면 의료진 피로도 증가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군의관이나 공보의 등을 전격 투입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과 관련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엄하게 다스린다는 방침을 여러 번 재확인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경찰 출석에 불응하는 의료인에게는 체포영장, 주동자는 검찰과 협의를 통해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관련한 수사는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윤 청장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고발장이 접수되는 그날 즉시 문자메시지나 등기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낼 것”이라며 “출석 일자도 2~3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출석하지 않으면 소재 수사를 포함해 제대로 출석요구서가 전달됐는지, 출석 의사가 없는지 확인하겠다”며 “불출석 의사가 확인되면 이른 시일 안에 체포영장을 신청하겠다.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은 그보다 강한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나

그렇다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의료공백은 누가 메꾸고 있는 것일까? 바로 간호사다.

지난 20일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들이 전공의들의 진료 중단으로 생긴 의료공백을 간호사에게 메우게 하는 등 ‘불법 의료’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해 불법 의료를 조장하고 있고, 주 52시간 이상 노동을 요구하며 근무 시간 변경동의서를 받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전가된 책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안고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고,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 인력에 연차 사용을 권하는 등 긴급한 스케줄 조정까지 종용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전공의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데도,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7월 부산대병원 의사들이 간호사들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던 대자보가 재조명받고 있다. 부산대학교 병원에는 ‘부산대학교병원의 동료분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원내 곳곳에 붙이며 간호사의 복귀를 촉구했던 바 있다.

간호사들이 주축인 전국보건의료노조가 파업을 선언하고, 부산대병원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세우며 파업을 벌일 때였다. 당시 대자보에는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함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수많은 환자분이 수술, 시술 및 항암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우리 부산대학교 병원은 동남권 환자들의 최후의 보루로 선천성 기형, 암, 희소 질환 등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받으시는 분들의 희망이다. 하루속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진료와 치료를 간절하게 기다리시는 환자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갈 데까지 가 버린 파업 사태
치료도 못 받고 ‘발만 동동’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 같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꼴’ ‘의사라면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외국에선 의대 정원 확대를 해도 조용하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파업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4만3000여명 가량 의사를 증원해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의사들의 반발은 없다. 우선 우리와는 다르게 ‘지역 정원제’를 실시한다. 지역 정원제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지역 의대에 진학하고, 해당 지역의료기관서 의무적으로 9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지역 정원제와 관련한 일반 의사들의 불만도 없다. 지역 정원제를 일반 의사와는 다른 트랙으로 선발하고 입학 합격점도 더 낮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 보조금 삭감 등의 패널티를 발 빠르게 부여한다.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을 연 5000명씩 늘리기로 했다. 이에 독일 최대 의사 노동조합 ‘마부르크분트’는 오히려 의대 정원 증가를 위해 정부가 당장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은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과와 관계없이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치료비 적용을 받는 과(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그렇지 않은 과(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나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개원의도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30대 중반 전문의가 받는 연봉 수준을 공개하면서 의료 대란 해결책에 대해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된다”고 제안했다.

누가 이기나
결국은 ‘돈’

김 교수는 “2019년에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월급 의사 연봉이 최근에 3억~4억원까지 올랐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서 전공의들이 8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은 PA라는 간호사 위주의 진료 보조 인력만 2만명이다.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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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