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 거리로 나온 의료계 현실

정부가 누르고 국민 등돌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료계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압박하고 국민은 외면하는 모양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힘겨운 한 해를 보내야 할 상황이다. <일요시사>가 의료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봤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응급실서’ 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길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사건으로 일부 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 13일에는 응급실서 대기 중이던 노인이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한 채 7시간 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 거부

일반 국민은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119에 신고하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응급의료체계의 구멍이 확인되면서 대책 마련 요구가 확산됐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의료정책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고정된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 의료·지방 의료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의대생과 의사단체는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필수 의료 기피, 지방 의료 붕괴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맞서는 중이다. 의사단체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소속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날 의협은 서울 광화문 일대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제1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의협은 “일방적인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론이 완벽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대정부 투쟁을 위해서는 여론이 동력이 돼야 하는데 그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여론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의사단체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서 열린 ‘22차 의료현안협의체’서 보건복지부는 해당 여론조사를 언급하면서 의료비를 부담하는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은)의사 인력 증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때 ‘전문가인 의사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해야 된다’ ‘의사 단체와 합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 확대 이어
비대면 진료 ‘폭탄’

반면 의협 측은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늘어난 인력이 필수 의료 분야로 유입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국민 의료비가 급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회장은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국민 의료비는 급증하고 있다. 노인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인 진료비가 44조원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늘어난 인력이 전문의로 배출돼 나오는 시기인 2040년에는 생산연령 2.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서 국민 의료비가 급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는 ‘비대면 진료’라는 또 하나의 폭탄을 의료계에 던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시행했다.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기준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대상자가 만 18세 미만으로 한정됐는데 이날부터 연령 제한이 폐지됐다. 약 처방도 가능해졌다.


평상시에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됐다. 종전에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1년 이내, 그 외 질환자는 30일 이내 동일 의료기관서 동일 질환에 대해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다. 사업 시행 이후부터는 최근 6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으면 해당 의료기관서 질환 구분 없이 의료진 판단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확대로 5년간 최대 152만명의 고용 증가가 예상된다면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비대면 진료 확대에 강하게 반발 중이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확대 발표 이후 일부 의사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검찰에 고소하는 등 강대강으로 맞부딪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을 형법상 형법죄, 강요죄, 업무방해죄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의사단체와 전혀 상의 없이 대상을 대폭 늘리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사업자 단체서 회원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불참을 요구하고 있다며 엄중 조처하겠다고 밝혀 의료 현장 전문가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져버렸다”고 배경을 밝혔다.

응급실 찾아 헤매다
길에서 사망 잇달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에 이어 비대면 진료 확대로 의사단체와의 전선을 넓혀 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코너에 몰리고 있는 의사단체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 여론이 의사단체의 반대편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물론 정부가 고용 창출을 근거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관련 법안도 속속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52개 안건을 상정, 심사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서 복지위는 ‘지역의사양성을위한법률안(지역의사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설립운영에관한법안(공공의대법)’을 두고 표결까지 간 끝에 두 법안을 모두 의결시켰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되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에는 특정 지역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공공의대법은 의대 교육비 전액을 국민이 부담하는 대신 의사면허 취득 후에는 의료 취약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위 내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의결됐다. 해당 법안이 복지위서 통과되자 의료계는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2020년 9월4일 민주당과의 ‘의당합의’를 내세웠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대해서는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9·4합의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법안이 통과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의대 정원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비효과?


의료계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정책 드라이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법제화, 국민 여론이라는 ‘삼중고’를 떠안은 채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됐다. 여기에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책 중 일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의 시계 상황은 현재 ‘제로(0)’ 상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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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