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의료계 전면전

4년 전과는 다르다,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부는 공을 던져놓고 의료계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몇 년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의료계의 태도다. 강경 대응이라는 기조는 같지만 그 수위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기존 3058명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고 밝혔다. 2035년까지 의사 인력을 1만명까지 확충하겠다는 방침이다. 2006년 이후 변동이 없던 의대 정원은 19년 만에 60% 이상 급증하게 됐다. 

되로 주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서 “2035년 수급 전망을 토대로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의료 취약 지구서 활동하는 의사 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약 5000명이 필요하며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안하면 2035년에 1만명 수준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는 500~1500명 정도 증원될 것으로 본 의료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의료계는 당장 반발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는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정부가 의대생 증원을 꾀할 때마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지만 그동안 대부분은 의료계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2020년 7월 의대 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계는 전공의 집단 휴진, 인턴·레지던트 4년 차 무기한 파업, 전국 의사 총파업 등 강경 대응을 불사하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코로나19로 의료공백이 치명적인 시기였다. 결국 문정부는 백기를 들고 코로나 유행 상황이 안정된 뒤 논의를 재개하자고 합의했다. 당시 갈등 끝에 의료계와 당(더불어민주당)·정은 9·4 의정합의를 맺었다. 

9·4 의정합의 이후에도 의대생이 국가시험 실기시험(국시)을 거부하는 등 여진이 계속됐다. 의대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해 ▲공공의대 신설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확대 등 의사협회가 규정한 이른바 ‘4대악’ 의료정책에 반발해 국시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냈다. 

국민·환자 볼모로 ‘치킨게임’
명분 잃고 지지 잃고 사면초가

실제 당시 국시 응시율은 14%에 그쳤다. 전체 응시 대상자 3172명 가운데 423명만 최종 응시하면서 집단 사태로 번졌다. 의료공백이 가시화되자 문정부는 국시 응시를 거부한 의대생 2700여명에게 재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형평성 문제로 국민 여론은 부정적이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의료인력이 부족한 점을 우려한 조치였다.

일각에서는 문정부의 조치가 이후 일어날 일련의 사건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로부터 3년여 뒤 윤석열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이 화두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의대를 보유한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의대 정원 수요 조사한 결과 2025년 2151~2847명, 2030년 2738~3953명 수준의 증원을 희망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윤정부는 수요 조사 결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문정부 때와 비교해 5배 많은 의대생 증원 숫자를 내밀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의료계의 대응 수위다. 의료계는 윤정부의 발표에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경일변도였던 문정부 시기와 비슷한 대응이다. 하지만 강경 대응 입장과는 별개로 그 속도가 더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 내부서도 의대 정원 증원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유보 상태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총회에서 파업 여부에 대한 찬반이 상당히 팽팽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1월에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전공의 88%가 파업에 찬성하고 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을 결의하는 등 전공의 총파업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온라인 총회에서는 신중론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대전협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전공의의 행보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의 강경 기조와 국민 여론이 전공의를 멈춰 세웠다는 의견과 더 강한 투쟁을 위한 준비 태세라는 의견이다. 후자의 경우 집단행동 가능성을 열어두되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행보도 포함된다. 

전공의 총파업 유보
강경 기조 먹혔다고?

일각에서는 전공의의 이 같은 신중한 행보가 정부의 대응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의사의 집단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예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이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할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의협에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린 상태다.

전공의들의 집단퇴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 각 수련병원에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도 내렸다. 

정부의 강경 기조에 더해 의료계는 국민 여론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국민 대다수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것은 물론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 장관은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하는 자리서 “19년이라는 오랜 기간 완수되지 못한 과제를 책임감 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의 높은 관심과 지지 덕분”이라면서 “오직 국민만 보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유로 국민 여론을 꼽은 것이다. 실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찬성한다고 답한 것이다. 언론 매체 등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0년 때보다 국민 여론이 더 부정적인 쪽으로 쏠린 것이다. 


말로 받았다

그 배경으로는 최근 들어 문제로 떠오른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나 지방 의료 붕괴 등이 꼽힌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료계의 빈약한 명분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 눈에는 의료계의 행보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의대 정원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집단휴진, 사직, 파업 등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이 거듭되자 의료계에 대한 국민 여론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됐다는 것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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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