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터진 당정 갈등 막전막후

길목마다 사사건건…헤어질 결심?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틈만 나면 싸운다. 싸우는 주기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 러브샷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관계 회복이 어렵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은 굴복시키려, 다른 한 명은 탈출하려고 애쓴다. 이 정도면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이제 놔 주는 게 차라리 편해 보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 예정돼있던 오찬이 취소됐다. 당초 지난달 30일로 예정된 두 인물의 만남이 추석 이후로 미뤄졌다. 한 대표 체제의 인선이 완료된 만큼 당정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추석 이후지만 공식적으로 확정 날짜는 아직 미정이다. 

또 시작된 
주도권 잡기

대통령실은 일정을 연기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연기했고, 민생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며 만찬 일정을 다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의료개혁을 두고, 당정 갈등이 또다시 분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만간 공식적으로 당정 갈등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오찬은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이 자주 만나자며 마련된 자리였던 만큼 화해의 제스처를 서로 취하는 모양새였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차별화를 꾀해 독자적인 노선 꾸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제는 사실상 완전히 등돌린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헤어질 결심을 한 듯 단호한 모습도 아른거린다. 대통령실도 예정됐던 오찬 취소 소식을 추경호 원내대표에게만 전달하고, 한 대표 측에는 전하지 않아 한 대표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줬다.


윤 대통령은 공식 브리핑서 당정 갈등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둘의 불편한 기류가 계속되고 있다. 두 인물의 갈등은 이번이 공식적으로 다섯 번째다.

갈등의 시작은 한 대표(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된 사과 요구로 지난 1월에 불거졌다. 이후 총선 직전, 이종섭 국방부 전 장관과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2라운드를 맞이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갈등은 22대 총선 후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다시 떠올랐다. 바로 김 여사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면서다. 이후 지난달에는 광복절 특사 명단 중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포함된 것을 두고 한 대표가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불안한 두 인물의 관계는 이뿐만 아니다. 당내 인선과 관련해서도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정책위의장 유임 및 사퇴를 두고서도 친윤(친 윤석열)계와 충돌했다. 최근에는 윤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서도 본격적으로 갈등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윤정부는 의료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의대 인력 증원을 추진해 왔다. 

지난 2월 의료개혁 4대 과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2025년부터 ▲5년간 의대 정원 본격적인 증원 ▲전공의 수련 환경개선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면허관리 선진화 등 의료인력 확충 방안 등을 띄웠다. 초기 여론은 정부에 유리한 국면이었다.

다섯 번째 충돌 “이제 화해 어렵다”
단순 중재안 때문? 설득 시도 없어

그러나 전공의, 전문의 등 의료 현장서 반기를 들었고 이 같은 분위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예상했던 밑그림과는 다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껏 의사와 싸워서 승리한 정부가 없다지만 의정 갈등서 윤정부는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의료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전공의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2000명가량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이들의 출근율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사직 여부 미응답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를 보류하며 버티는 지방 수련병원들은 최근 이들을 일괄적으로 사직 처리하고 있다.

특히 응급실은 무너지기 직전이다. 전문의들도 잇따라 사직서를 내며 병원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분명 의료개혁은 필요하나, 문제는 지금 사태가 돌아가는 방향성이다. 의대생 1학년도 유급이다. 결국엔 돌아온다고 예상하던 정부 입장과는 달리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여전히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의사와 정부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병상 위 환자들만 죽을 맛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대표가 지난달 25일 고위당정협의회서 의정 갈등 사태 해소를 위해 정부에 의대 증원 보류를 제안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통령실은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며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의 갈등이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그 사이 한 대표는 박단 전공의협의회 회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졌는데, 이마저도 언론에 공개돼 박 회장이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로부터 퇴짜 맞은 한 대표는 예상했던 일인 듯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는 “당이 민심을 전하는 것이고 그에 맞게 의견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국민의힘 소속 보건복지위 여당 위원들을 만나 의정갈등 해법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추 원내대표도 한 대표가 띄운 의대 증원 보류 의견을 전달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대강
대치 중

일련의 사태에 관해서는 두 가지 관점서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의대 증원 유예가 실제로 실효성이 있는지의 여부고, 나머지 하나는 갈등에 대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첫 번째 실효성 문제는 보건복지부 입장서 ‘증원 유예’를 한다고 해도 몇 명의 전공의들이 복귀할지 알 길이 없다. 이미 취업을 한 전공의도 있고, 개원을 준비하는 등 전공의마다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에 처한 상황에 따라 유예안을 찬성 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셈인데 전공의들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머지 하나는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까지 확전될 경우, 국민의힘에서는 고위당정협의서 꺼내기 전 최고위원회의, 의원총회서의 선제적 대응으로 불필요한 분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대 증원 문제가)원내대표와 협의되지 않았다. 의견을 모아 윤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반대하면 설득했어야 한다. 뭐라도 방법을 써야 된다고 했으면 간단했던 문제”라며 “대통령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고, 보건복지부도 매일같이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특정 사안을 언론에 미리 흘려 논란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단순히 중재안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본인을 설득하기 위한 약속을 잡거나 액션을 취하지 않았던 데서 서운함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는 당정 관계를 수평적으로 이끌고 가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대부분도 여기에 공감한다. 원론적으로는 당이 정부가 못하면 비판하며, 함께 보완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게 그의 인식이다. 실제로 과거의 정부여당은 수직적 당정 관계로 질질 끌려다녔다.

이 같은 한 대표의 기조는 당내 주류인 친윤계에게 반감을 사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불협화음을 유발시켰다. 당초 한 대표가 당권을 잡을 경우 수직적 당정 관계가 우려됐으나, 보기 좋게 이를 깨버렸으며 나아가 윤 대통령과 다른 독자적 노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의 이 같은 행보가 당헌·당규 위반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국힘의힘 당헌 8조에 따르면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결과에 대해 대통령과 함께 책임지며,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이웨이
독자노선

여의도 정가에 밝은 한 정가 관계자는 “대선 상황이면 다를 수 있는데, 당은 언제든 협의해서 풀어야 한다”며 “국정운영이 잘못됐으면 방향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건강한 당정 관계로 이끌어야 한다. 차별화는 건강한 게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민심의 측면서 한 대표에겐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 여론을 철저하게 신경쓰는 성격으로 알려진 만큼 이를 묵과하기는 힘들 듯 보인다. 한 대표 측은 되레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면서 “해결 대안을 제시하라. 국민의 건강을 놓고 베팅하는 일과 다름없다”고 타격했다. 

이를 두고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대표의 행보가 내부 총질을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미 한 대표는 내부 총질을 하는 인물이라는 프레임마저 씌워졌다. 채해병 특검법으로 여야 간 기싸움을 벌이던 상황서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띄우면서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던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자신만의 독자노선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한 대표 입장에서는 부득이하게 대통령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반면, 대통령실은 “나를 따르라”며 한 대표를 압도하려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과 한 대표의 지지율은 어느 정도 분리된 듯 싶지만 한 대표가 이를 더욱 확실히 하려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압박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제3자 특검법의 키는 한 대표가 쥐고 있다. 

또 최근의 ‘바지 사장’이라는 프레임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도 해석되는데, “급하면 민주당이 발의하라” 등 한 대표의 말은 계속 바뀌기도 하고 때론 침묵하기도 한다. 당내서도 여러 정치적 사안들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한 대표가 아무리 당내 의원들을 설득한다고 해도 제3자 특검법 발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입장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
한 대표, 대통령서 완벽한 독립 꿈꾸나

한 대표의 차별화 시도는 그동안 무위에 그쳐왔던 만큼 무리하면서까지 이들을 설득시킬지도 의문이다. 

이번마저 실패에 그친다면 한동안 또 잠잠하게 용산 눈치를 봐야 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리더십에는 타격을 받고, 정치력마저 의심받게 된다. 한 대표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격적으로 계파 전쟁에 불을 붙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 대표의 의견에 동조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정 관계에 균열이 가는 모습을 앉아서 구경만 하겠다는 셈이다. 덕분에 여야 대표 회담서도 공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얘기가 나왔다. 

이번에 패배하는 쪽은 거의 몰락 수준으로 설 곳을 잃는다. 한 대표가 지금껏 양보를 몇 번 해왔지만 의료개혁 문제는 물러날 기미가 없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건과 달리 이번에는 민생과 직결된 문제라 목소리를 계속 낼 가능성이 크다”며 “(의료개혁은)국민의 생명 건강권과 직결돼있다. 정부여당이 독박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을(한 대표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 원내대표와의 협의는 선택이고 (그의)결재를 받는 게 의무는 아니다. 서운할 수도 있지만 당 대표를 흔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추후 한 대표는 민주당을 공격하면서도, 대통령실도 견제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패싱 등 독자 행보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친윤계 일색인 당내서 한 대표의 세력은 많지 않은 만큼 당외 세력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강한 셈이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다. 친윤 세력을 동원해 한 대표를 견제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자신이 중재자로 나선 이유는 중재가 필요할 정도로 급한 사안이었을 뿐, 당정 갈등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이쯤 되면 
결별할 때?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변한 상황에 맞게 플랜을 다시 짜야 하는데 대통령실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한 대표 입장서 볼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두 인물이 사사건건이 부딪히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료개혁 당정 갈등 의대 교수들 입장은?

힘을 합쳐도 모자른 판에 여당의 대표와 대통령실이 제대로 맞붙었다.

이런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유예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의교협 측은 “집권 여당이 현재 의료붕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내년 정원인 1509명 증원이 불합리하고 근거 없이 진행됐다는 게 국회의 청문회를 통해서 확인됐지만 유지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여전히 2000명 증원을 고집 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실제로 의료공백이 곧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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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