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만나다> 간호사 출신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간호법은 시대적 흐름이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간호법은 세 번의 입법 시도 끝에 본회의 의결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현재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 공포를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반대 입장인 의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에 반대한다며 부분 파업을 벌였다. 현재 간호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 

“간호법은 시대적 흐름이다.” 간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던 지난달 27일, 외롭게 본회의장을 지켰던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이같이 말했다. 간호사 출신의 최 의원이 말하는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는 정치적 고려가 아닌, 국민을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요시사>는 최 의원에게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 당론을 거스른 이유 등을 물었다. 

-간호사로 약 40년간 근무했다. 기억나는 일화는?

▲의료현장서 일하면 건강, 삶의 문제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중에는 아동이나 청소년도 많았는데, 학대로 아픔을 겪거나 보호자도, 치료비도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봐왔다. 각종 사고와 재난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도 많다.

사고 후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다수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일화를 바탕으로 권역별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 가족이나 의료진까지 심리 지원을 받도록 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0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해 현재 시행 중이다.

이 법에 따라 설치된 트라우마센터가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 큰 역할을 했다. 평소 고민한 것을 법률로 만들었고, 입법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체감하면서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늘 다짐한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간호사의 근무 환경은 나아졌다고 보나?

▲40~50년 전에는 간호사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서도 말렸었다. 지금이야 간호사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고, 근무 환경도 개선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아직 신규 간호사들 이직률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간호사 평균 근속 연수는 7년 정도에 불과하다. 현장에는 숙련된 간호사 수가 적다. 근로 환경개선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장서 많은 간호사들이 불법과 합법 경계서 혼란을 겪고 있는데 선배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들어봤나?

▲숙련된 간호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만 한다. 더 나은 간호 돌봄을 제공해야, 신속한 감염병 대응이 가능하다. 현재 상당수 1~2년 차 신규 간호사는 과도한 업무, 업무 부적응 등으로 임상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아 경험을 쌓아야 숙련된 간호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교육전담간호사다.

숙련된 전문 인력 부족 확보해야
정치적 고려 안 해 국민들이 우선

교육전담간호사제는 신규 간호사가 잘 적응해 우수한 간호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시범 사업 결과 신입 간호사 이직률이 감소하고, 안전사고 보고율이 줄었다.


프리셉터(일정한 시간동안 신규 간호사 교육, 상담, 시범을 보여주는 경력 간호사)의 시간 외 근무시간이 단축되는 등 효과가 좋다 보니, 현장서 사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안정적인 지원을 위한 법제화 요구가 많았다. 이번에 발의한 간호법에도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있다.  

-당론을 거슬렀다. 지도부와 달리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과 의료기관 중심의 법이다. 의료인 중 간호사는 현재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학교,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에서 근무 중이다. 법은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70년 전에 만들어진 의료법은 의료기관과 치료 중심의 법이다. 의료기관 밖인 ‘지역사회’서 초고령사회와 만성질환에 맞는 간호돌봄체계를 담기에는 법 체계나 성격상 맞지 않다. 

과거 의료인으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의료현장에 있었다. 간호와 관련해 현행 의료법의 미비점들로 인한 문제들을 직접 봐왔다. 국민에게 질 높은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론을 거슬렀다. 

당선 직후부터 21대 국회서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록 당시에는 국민의당 소속 의원이었지만, 당적·당론과는 상관없이 보건의료 전문가로서 양심과 신념을 가지고 간호법을 추진해왔다. 

-본회의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당연히 심적 부담이 있었다. 그렇지만 간호법은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국민의 간호돌봄체계를 만들어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만든 법이다. 정치적 고려보다는 국민의 건강증진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소신에 따라 행동한 게 전부다. 자리를 지킨 이유는 국민께 더 나은 간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 불법과 합법서 혼란
“대통령도 잘 알거라 생각한다”

얼마 전 한 20대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다. 바로 요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간병 살인’이다.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간호·간병·돌봄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코로나19 당시에도 숙련된 간호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걸 모든 국민이 지켜봤다. 이번에 통과된 간호법에는 숙련된 간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은 이미 간호법이 존재한다. 이 나라들은 간호법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간호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만큼 그에 걸맞게 간호법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 진입 등으로 보건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제도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본회의서 간호법 통과로 우리 보건의료 체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계기가 마련됐다.


개혁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과의 갈등과 마찰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과거 변호사법, 변리사법, 세무사법 등이 만들어질 때도 기득권과의 갈등이 심했다. 현재는 잘 작동되고 있는데, 윤 대통령도 이를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정치는 국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내 정치 슬로건은 ‘경천애인, 정치도 간호처럼’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하고, 국민의 불편한 곳을 살펴 입법 공백을 메우겠다. 정치인은 소신을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적인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소신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믿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는 강한 의지도 필요하다. 그래서 간호와 정치는 국민의 불편을 살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환자를 간호할 때 따뜻한 위로와 배려는 어떤 약보다도 효과가 뛰어난 좋은 치료제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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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