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진 막냇동생 마취 사망? 끊이지 않는 기레기 논란, 왜?

지난 4일, 연예 매체서 SNS 인용 보도
과거 여러 차례 한자 표기 오류도 입길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언론인들을 비하하는 표현 중 가장 흔히 쓰이는 말 중에 ‘기레기’라는 말이 있다. 통상 ‘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 흔히 수준 이하의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통칭하는 신조어다. 단순히 수준이 떨어지는 기사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발제를 낚시성으로 뽑거나 원래 단어와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는 수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펌)가수 박서진 막내동생 마취사고로 사망’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됐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대중가수 박서진의 막냇동생이 병원서 마취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해당 기사는 해당 가수의 막냇동생 사망 기사가 아니었다.

온라인 연예 매체 <텐OOO>는 지난 4일, ‘박서진 막내 동생, 마취 사고로 사망…“똑똑하고 애교많은 아이였는데”[TEN이슈]’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매체는 ‘가수 박서진이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박서진은 3일 인스타그램에 “‘백설기’(반려견 이름), 하늘나라로 소풍갔다”며 “똑똑하고 애교많은 아이를 보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어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도 많이 미안해 하고 사과해줬다. 정말로 착하신 분이구나 설기에게 정말로 미안해하시고 계시구나, 설기를 보며 진심으로 우시길래”며 “더 이상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된다. 괜찮다. 아무 것도 안해주셔도 된다. 좋게 마무리 지었다‘고 적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서진은 지난달 3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슬개골 탈출 수술 중 병원의 마취 실수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며 “병원에서는 보상을 해주시겠다고 하지만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를 돌릴 수 없고 어떻게 보상한다는 말이냐”고 토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 말미엔 ‘한편 박서진은 2013년 싱글 앨범 ’꿈‘으로 데뷔했다. 또한 그는 KBS 1TV ’아침마당’, ‘전국노래자랑’, TV조선 ‘미스터트롯2’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지난 3월에는 새 앨범 ‘춘몽’을 발매했다’고 소개했다.

보배 회원들은 “요즘 기자라는 사람들 수준이 딱 이 정도니 쓰레기라는 말을 듣는다. 텐OOO? 뭐하는 아시아인데? 여기도 언론 축에 들어가는 거냐?” “욕 나오네, 정말” “이런 건 박서진이 들고 일어나야 되는 거 아닌가요?” “기자 양반이 개요? 선은 지킵시다” 등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회원 ‘reOO’는 “박서진이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개 죽은 걸 동생이라고 하는 기레기는 도대체 뭐냐? 개 전용 신문이냐?”고 비판했다. 회원 ‘MrOOO’은 “박서진이 개라는 거니? 개가 사람이라는 거니? ‘이러니까 기레기란 소리를 듣지’란 댓글 먹어가며 클릭 장사 겁나 하시나 보다”라고 질타했다.

다른 회원들도 “참 가지가지한다. 기자가 낚시 하냐?” “미쳤네. 이딴 게 제목이라니…” “저 정도면 고소감 아닌가? 동생이 개도 아니고” “동생이라니…기자가 미쳤나?” “제목만 보면 사람인 줄 알겠네” “이제 개까지 기사에 나오냐? 죽던 말던 무슨 상관인데…막말로 진짜 막냇동생이라도 이게 기사감이냐고?” 등 비판에 동참하고 있다.

기사 댓글에도 ‘어이없다’는 분위기의 비판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SNS를 통해 로긴한 누리꾼들은 해당 기사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기자라고 하지 않는 게…다른 기자님들 욕먹어요. 탈고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게 큰 문제인데 문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못하니 대책이 없는 것”이라며 “그냥 어그로 끌려고 쓴 제목인가요?”라고 탄식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진짜 역겹네요. 제목” “류XX 류XX 류XX 류XX” “적당히 해라” 등의 어이없다는 댓글을 적었다(6일 오후 2시 기준).

6일, 사진 커뮤니티인 ‘SLR클럽’에도 ‘현직 욕먹는 기레기 상황이라네유’라는 제목으로 캡처 사진 한 장과 함께 동일 기사에 대한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에는 6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추천인기글에 올랐다.

해당 게시글에도 “커피 마시면서 내리다가 뿜었네요. 아오” “반전에 반전이네요” “그냥 참담합니다” “기레기들, 저런 기사 쓰고 돈 받나?” “저런 건 경고하고 몇 번 쌓이면 쫓아내야 한다” “어처구니없네” 등 참담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해당 기사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지점은 낚시성 제목과 맞춤법으로 요약된다.

‘박서진 막내 동생’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많은 독자들은 ‘박서진이라는 사람의 막냇동생이 마취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사에선 그의 실제 동생이 아닌 반려견을 떠나보냈다고 보도했다. 정상적인 발제라면 ‘박서진 애완견’ ‘박서진 애완견 백설기’라고 발제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맞춤법(띄어쓰기)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맞춤법상 매체가 뽑은 제목 중 ‘막내 동생’은 막냇동생으로 표기하는 게 맞고 ‘애교많은’도 ‘애교 많은’으로 써야 하며, ‘미안해 하고’는 띄어쓰기 맞춤법 상 ‘미안해하고’로 쓰는 게 맞다.

비판 댓글과 함께 해당 기사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해당 매체는 기사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같은 날 다른 매체들은 ‘박서진, 의료사고로 사망한 반려견 추억 “우리집 막내딸”’(<매일경제>), 박서진 ‘박서진 “반려견, 병원 실수로 무지개다리 건너”’(<머니투데이>), ‘박서진 “병원 마취 실수로 반려견 떠나…좋게 마무리”’(JTBC), ‘박서진 “병원 마취 실수로 반려견 무지개다리 건넜다…의사 울며 사과”’(<뉴스1>), ‘박서진, 반려견 의료사고 마무리…“수의사 눈물로 사과”’(<스포츠경향>) 등으로 보도했다.

한자어를 다른 한자어로 표기해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앞서 <OO일보>는 지난달 13일,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기사를 ‘‘LG의 우승 韓 풀어준 명장’ 염경엽 감독 “우승 압박,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다”[승장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문맥상 한자어는 ‘韓’이 아닌 ‘恨’이 들어가야 했다.

당시 해당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아이고 기자야, 모르면 그냥 한글로 써라”라며 “아니며 기자의 심오한 뜻이 담겼나?” “수준 보소” “데스크 감수 안하고 노냐?” “기자는 잘 빨기만 하면 됨” 등 해당 매체와 기자를 싸잡아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매체는 한자를 恨으로 수정 조치했다.


지난달 15일에는 국영 통신 매체 <OO뉴스>서 광화문 새 현판 공개 소식을 보도하면서 ‘흰 바탕에 검은 ‘文化光’은 역사 속으로…새 현판 15일 공개’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서울 종로구 소재의 광화문(光化門)을 전혀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기존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의 ‘광화문’(한글)로 돼있었으나 새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빛 글씨(한자)로 변경됐다. 통상 한글 현판은 좌측서 우측으로 쓰고 읽지만, 한자로 된 현판은 반대로 우측서 좌측으로 쓰고 읽는 게 관례다.

심지어 해당 기사는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등 문을 뜻하는 問이 아닌 글을 뜻하는 文으로 표기해 더 입길에 올랐다.

폭염, 위생 문제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등 사회 여론에 대해 정반대의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지난 8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세계잼버리대회를 두고 한 매체는 ‘“텐트 생활했던 새만금 그리워”서울 곳곳 즐기는 잼버리 참가자들[현장 르포]라는 기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기사엔 “새만금 폭염으로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스카우트 대원들이 경복궁을 둘러보고 뮤지컬 관람까지 했다” “인천대학교 숙소가 크고 아름다웠다”는 이탈리아 대원의 소감과 함께 “텐트 생활했던 새만금이 그립다. 캠핑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보도했다.


간척지를 메워 빗물이 빠지지 않았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400여명이 발생하는가 하면, 조직위서 제공한 달걀서 곰팡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일부 남녀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 등 편의시설 문제와 함께 태국인 남성 지도자가 여성 샤워장에 들어갔다가 성범죄 논란도 불거졌다.

또 운영 과정서 전북도(도지사 김관영) 및 여성가족부(김현숙 장관), 행정안전부(이상민 장관) 등 수장들의 부적절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언론사 간부 출신 인사는 “언론들이 자체적으로 자정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데 기사 클릭 수가 많아질수록 광고비도 올라가기 때문에 유혹을 떨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며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매체 유입환경이 오프라인서 온라인, 온라인서 모바일로 급격히 변하면서 소비성 기사들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라며 “한국기자협회 등 각 매체사마다 가입돼있는 협회 강령 등을 제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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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