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어치 음쓰 샀다” 경동시장 ‘자두 한 박스’ 판매 도마

“이젠 재래시장 안 갈 것”
지난해 속여팔기 비판글도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이 정도 쓰레기일 줄 몰랐습니다. 경동시장 소매 과일 가격이 동네 재래시장과 별 차이도 없지만 요즘 뜨기도 했고 가끔 동생과 구경하는 기분으로 가곤 했는데 이젠 가고 싶지가 않네요. 굳이 먼 시장까지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 들고 오는 게 별 의미 없어 보여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

최근 한 누리꾼이 서울 경동시장(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서 구매한 4만원어치 자두가 상했다며 “경동시장 OO상회 과일가게 여사장님, 이거 쓰레기 맞죠?”라며 이같이 개탄했다.

글 작성자 A씨는 1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가게서 전화를 받지 않아 연락할 방법이 없어 환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상습적이라면 저처럼 집에 돌아가서 화난 손님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아는 동생 B씨와 함께 경동시장 청과물시장을 찾았다. 도중에 모녀로 보이는 과일가게 상인 둘이 자두 한 박스를 보이면서 ‘이제 자두는 시즌 끝이나 없다. 4만5000원짜리인데 4만원에 가져가시라’고 권유했다. 자두를 좋아한다는 A씨는 매대 앞쪽에 있던 과실 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도 한 박스의 양이 부담스러워 B씨와 반반씩 결제한 후 나눠 담기 위해 비닐봉투 2개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인 아주머니는 매대 안쪽으로 들어가 손수 봉투 2개에 나눠 담았고, 집으로 돌아와 사온 과일들과 함께 바로 냉장고에 넣었다.


이틀 뒤, 함께 갔던 B씨로부터 ‘자두 먹어봤어?’라는 무척 격앙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전날(지난달 29일) 경동시장서 구매했던 자두를 먹었는데 모두 속이 상해 있고 몇 개는 쪼그라들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구매 후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통화를 마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 안의 자두 상태를 확인한 A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자두의 상태들이 단순히 무른 상태를 넘어서 음식 쓰레기 수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러터지고 썩은 상태의 자두 12개 사진을 함께 첨부했다.

A씨는 “‘와, 이 정도일 줄이야’ 우리가 4만원이라는 돈을 주고 사온 건 바로 과일 쓰레기였다. 제가 가져온 대부분의 자두가 이렇다. 단 몇 개 멀쩡해 보이는 것도 잘라 보면 속은 다 상해 있었다”고 속상해했다.

“시장서 박스로 봤을 땐 정말 멀쩡해 보였는데, 과일 박스 만들 때 위쪽엔 알이 크고 멀쩡해 보이는 것들을 올려놓고 아래쪽엔 상하고 자잘한 것들로 채워놨던 것 같다”는 그는 “동생이 가져간 게 그나마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자두였던 것 같은데, 일부 멀쩡한 자두들은 다 상해 있었고 제가 가져온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를 화나게 했던 건 따로 봉지에 직접 자두를 담아가겠다고 요구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상인이 직접 담아줬다는 부분이다.

그는 “(자두 상태가)이 정도면 봉지에 담을 때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건 그냥 저희가 당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며 “상해서 버려야 할 과일들 모아서 교묘하게 정상적인 것처럼 박스로 만들어놓고 우리 같은 ‘뜨내기 손님 한 명 걸려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리가 나눠 가겠다는 걸 직접 나눠 담아주겠다고 했는지 이해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둘이서 30개 정도의 자두를 사왔는데 애초에 4만5000원이었겠나? 4만원이라고 해도 비싼 가격이다. 쓰레기를 사면서 바가지까지 당했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호구당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개했다.


아울러 “가게는 전화를 받지 않아 연락할 방법이 없어 환불도 못 받고 있다. 상습적이라면 저처럼 집에 돌아가서 화낸 손님들이 많았을 것”이라면서도 “전화 안 받는 게 이해되기도 한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보배 회원들의 댓글 분위기는 “재래시장 상품은 잘 보셔야 한다. 어르신들이 판매하는 물건은 도와드린다고 구매했다가 비슷한 경우를 몇 번 겪었다” “아쉽다” 등 A씨의 불편한 심경을 이해한다는 반응과 반대로 “구매 당일에 바로 확인 후 컴플레인을 걸었어야 했다” 등 부주의를 지적하는 댓글로 나뉘는 분위기다. ‘중립’ 댓글도 달렸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바로 확인하셨어야…이틀이나 지나서 아쉽다”는 의견이었고 두 번째는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재래시장 컴플레인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저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 전 재래시장서 절대 사지 않는다”는 조언이었다. 셋째는 “사진상으로 보니 보관 시 자두 위에 다른 과일이나 무엇인가를 올려둔 것으로 예상됩니다만…말은 아끼겠다”며 A씨의 보관에 의문을 제기했다.

거주지가 청량리 인근이라 초기에 자주 재래시장을 찾았었다는 한 회원은 “지금은 절대 안 간다. 가끔가다 저 정도는 아니어도 어이없을 정도로 품질 나쁜 상품들을 사오곤 했다”며 “조금 비싸도 대형마트 가서 사는 게 맛과 품질 상태가 좋고 혹시나 이상하면 반품 처리도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사오자마자 드셨더라면 아주 맛있었겠다”는 다른 회원은 “상한 거라기보단 물러진 것으로 보인다. 상한 건 반나절만 실온에 보관해도 썩어문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또 다른 회원은 “들고 가셔서 환불받으시라. 보관 시 자두 위에 다른 과일 올려둔 것으로 예상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오랫동안 팔지 못해서 물러진 게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현재 경동시장서 장사하고 있다는 한 회원도 “자두가 2일 지났는데 저렇게 됐다면, (가게서)속인 것이다. 전에 방울토마토 사러 돌아다니다가 싸서 구매하려고 보니, 위쪽만 괜찮고 아래쪽은 물러터져 있었다”며 “경동시장 과일도 정품과 비품이 있다. 싼 건 될 수 있으면 구매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반면, A씨가 구매 당시에 물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는 댓글도 눈에 띈다.

한 회원은 “구매 시 물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문제고, 전 재래시장 가서 물건 사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회원은 “이틀 뒤…시즌이 한참 지난 과일을 이틀 뒤라니…편들기보다는 말을 아끼겠다”고 적었다. 다른 회원들도 “가격도 많이 비싼데 대체 왜 저런 곳에 가서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자두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거 자체가 리스크 있는 과일일 확률이 높다”고 거들었다.

온라인 사이트 ‘경동시장 스마트스토어’서 판매되고 있는 국산 대석 자두 가격(대과 2kg)은 2만6000원으로 확인된다(1일 기준). A씨가 구매했다는 동종의 자두인지는 직접적인 확인이 불가하지만 한 박스에 담긴 수량(22~28과 내외)을 감안할 때 2배가량의 가격으로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홈페이지엔 “상품 수령 후 냉장 보관 필수! 냉장 보관 시 1주일가량 보관이 가능하다. 다른 야채·과일과 구분해 신문지나 키친타월로 감싼 후 따로 보관하는 게 좋다”고 보관 방법이 명시돼있다. 그러면서 “수령 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섭취하는 것을 권장드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A씨는 “과일가게로는 연락이 되지 않아 글을 올린 이후로는 더 이상 연락해보지 않았다”며 동생으로부터 받은 추가 사진이라는 사진을 한 장 제보했다. 그는 “상자 위쪽에 멀쩡해 보였던 자두들”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과일가게는 경동시장 내 1층에 위치한 과일가게로 파악됐다. 이날 취재진은 A씨의 주장에 대한 입장, 사실관계 확인 등의 확인을 위해 해당 업주 및 경동시장 상인회장에게 수차례 연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지난달 30일에 촬영된 해당 과일가게 사진엔 박스 위에 매대가 설치돼있고 그 위에 사과, 배, 방울토마토, 샤인머스켓, 레몬, 귤 등의 과일들이 놓여져 있다.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진 과일들은 1만원, 또는 1kg당 1만2000원 등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모습도 담겼다.

한 네이버 블로거는 지난 4월, 경동시장의 한 과일가게서 방울토마토를 구매했다가 ‘눈 뜨고 코 베인 후기’를 올리기도 했다.

3근(1.2kg)의 방울토마토를 5000원에 구매 후 ‘어쩐지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도착해서 재보니 고작 850g 남짓이었다. 바로 해당 가게에 전화해 항의하자 상인은 “다음에 시장 오면 나머지 150g은 받아가시라고 응대했다”며 어이없어했다.

그는 “요즘 시대에 대놓고 밑장 빼기 당할 줄이야 몰랐다. 하루 내내 기분이 굉장히 언짢았다. 그람 수 정확히 지키는 거 어려우면 어느 정도 오차는 이해하는데 대놓고 적게 주고 사과도 안 하는 태도는 진짜 문제”라고 비판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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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