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하고 먹지도 못했는데…” ‘환불 거부’한 울산 대게집 공분

“당일 자리 만석으로 다른 식당 발길”
업주 측 “대게 죽어서…벌금 내겠다”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예약돼있던 울산 소재의 한 대게 음식점을 찾았다가 만석으로 앉지도 못하고 카드결제 취소를 거부당했다는 사연이 공분을 사고 있다. 심지어 해당 음식점 측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무조건 예약 손님에게 이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3일,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식당의 환불 거부 어디서 도움받을 수 있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자신을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보배 회원 A씨는 “지난 2일이 장모님 칠순이라 동서 형님 내외, 처남 내외 등 어른 7명, 아이 2명 총 9명이서 지난해 12월30일에 거제도 여행을 떠났다”고 운을 뗐다.

A씨에 따르면 30일 숙박 후 31일엔 울산 정자항 인근 음식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으며, 음식점은 출발 7일 전인 12월25일에 전화 예약이 돼있었다.

A씨는 “연말이라 사람들이 많을 것 같고 칠순잔치니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고 싶어 룸이 있는 방으로 예약했고, 당연히 사장님도 ‘룸으로 예약해놓겠다’고 말했다”며 “거제 여행 중이던 30일에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31일, 거제도 여행 일정을 마치고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음식점에 도착한 A씨 일행은 “선결제해야 하고, 대게를 고르고 올라가면 된다”는 음식점 측의 안내를 들고 체크카드로 결제했다.


그는 “선결제도 그렇고 여사장님이 손님 대하는 태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 대게 가격도 썩 내키진 않았지만 ‘이쪽은 원래 선결제 방식이구나’ 생각하고 75만원을 결제한 뒤 2층 식당가로 올라갔다”고 부연했다. 일행은 모두가 정자항은 처음 방문이라 인지하지 못했는데 해당 지역은 아래서 대게를 고른 뒤, 위층 식당으로 이동해 이른바 ‘자릿세’를 내고 식사를 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2층은 이미 만석이었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갔지만 역시나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A씨는 “1층에서 ‘룸이 있다고 예약 확인하고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왔다’고 하니 직원이 ‘자리가 없다’며 9명 예약조차 모르는 눈치였다”고 주장했다.

경남 거제서 칠순잔치를 위해 2시간을 달려 예약했던 식당을 찾은 A씨 일행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이 예약돼있는 상황조차 모르는 것 같았고 언제 자리가 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A씨는 음식점 측에 결제 취소를 요청했다.

그러자 여사장은 “대게가 죽어서 환불 안 된다”는 귀를 의심할만한 말을 했다. 게다가 당시 A씨 일행은 음식을 먹기는커녕,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했다. 

A씨는 “결제 후 올라갔다가 내려온 시간이 대략 5분~10분 정도고 예약한 룸은 물론, 홀에 앉을 자리도 없고 룸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계속 기다릴 수도 없어 다른 곳에 가겠다고 하는데 절대 카드 취소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한탄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남성 사장은 “그럼 저 대게는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시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지만 “결제 취소는 무조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서로 간 언성이 높아졌다. 당시 옆에 다른 한 팀도 예약 후 자리가 없어서 항의 중이었다고 한다.


음식점 측은 “자리 마련해줄 테니 기다리고, 아니면 대게 포장해가서 먹으면 되잖아” 등의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A씨는 “(음식점서)‘결제할 때 위층 상황을 잘 확인하지 못한 점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조금의 손해도 보기 싫고, 무조건 우리 보고 이해하라는 식으로 카드 취소는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여사장님은 ‘위층에 룸은 없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니 홀에서 먹고 가라’며 이미 결제했는데, 어쩔 수 있겠냐는 듯한 태도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홀에서 먹을 것 같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고 분명 일주일 전에 룸으로 예약하고 온 건데 카드 취소는 해주기 싫고, 먹고 가던지 갖고 가라는 식으로 나오길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여사장은 ‘경찰이 개입할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우리가 해결하고, 나중에 벌금 나오면 내겠다’며 자리를 떴다.

A씨는 “오히려 출동하신 경찰분이 칠순잔치인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위로하면서 구청 위생과에 도움을 요청해라고 조언해주시고 떠나셨다”며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으며 별 일 아닌 듯 카드 취소는 안 되겠다 싶어 기분만 상해 다른 곳으로 가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 취소가 되지 않아 장모님께서도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면서 다른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이런 경우 결제한 금액 돌려받으려면 민사소송 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냐?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장사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예약 손님과의 약속을 못 지켰으면 본인들이 그 손해를 감수해야지, 아무 잘못 없는 손님에게 이해하라면서 손해보라고 하는 건 제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렵다”고 마무리했다.

추천 수가 가장 많은 베플에는 “이건 다툼의 여지없이 무조건 식당의 잘못이다. 무조건 환불받아야 한다” “많은 분들 보시라고 추천드린다. 능력자 형님들 나와 주세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외에도 “이렇게 하는데도 장사 잘되는 거 보면 참 씁쓸하다” “구청 위생과에 계속해서 민원 접수해야 한다” “장사 참 더럽게 하네. 부디 이름이 알려져서 망해야 할 듯” “울산 사람들은 정자항 가지 않는다. 물치기, 저울치기 하는 맛집” “착한 가게 아닌가? 돈줄 내주고 싶은데 상호 좀 알려 달라. 저차가 울산이라 자주 간다” 등의 비토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한 회원은 “식당 찾을 수 있는 힌트를 달라. 그런 식당이라면 건축물 등 불법 찾을 거 많이 나올 것”이라며 “현금영수증 발행, 세금신고 이행 여부 등 끊임없이 신고하면 구청 공무원들은 움직이게 돼있다”고 제언했다.

회원들의 상호 공개 요청에 대해 A씨는 “정말 몇 번이나 생각하고 글을 썼다. 그분들도 생계가 있는데 나중에 후회될 것 같다. 단지 현실적으로 민사소송 외에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다.

통상 음식점은 여러 명의 단체 예약을 받을 경우, 해당 테이블에 ‘예약석’ 또는 ‘예약 완비’라는 안내판을 세워놓고 해당 룸이나 테이블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 식으로 운영한다.


한 회원도 “두 번이나 예약 전화를 했다면 누군가는 예약판에 적어놨을 텐데 연말이라 예약이 아니더라도 손님들 들이닥치는 거 놓치기 싫어 다 받은 거 아니냐”며 “절대 예약석이라고 세팅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바쁠 때라 예약 전화 받고 오거나 말거나 생각했을 듯”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다른 건 몰라도 저런 대형 식당서 선결제하는 건 평생 처음 들어본다. 상호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며 주작을 의심하는 댓글도, “일단 중립이 맞지 않을까?”라는 중립 의견도 달렸다.

이는 A씨가 보배 회원들이 경계하는 이른바 ‘당가(당일 가입)’가 아니긴 하지만, 보통 억울한 글을 올릴 때 첨부하는 결제영수증이나 현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일 <일요시사>는 사실관계 확인 및 취재를 위해 A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5일엔 해당 음식점으로 추정되는 인근 대게 전문점 두 곳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해당 업주 측은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통화서 “방을 잡아두긴 했는데 앞서 이용하던 손님이 오랜 시간 이용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홀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포장도 권유했지만 손님이 막무가내로 환불만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A씨가 결제했던 대게는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으며 법에 따라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업주 측 주장에 A씨는 “예약은 오후 7시였고 연말이라 차가 막힐까 봐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며 “8시 가까이 가게서 자리를 떠난 것 같은데 그때까지 룸이 생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지난해 연말, 강원도 속초 대게집을 찾았던 한 보배 회원이 곰팡이가 피어 있는 듯한 대게를 받았다고 폭로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튿날인 3일, 해당 업주로 추정되는 회원이 직접 사과문을 게재했다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다수의 비판 댓글로 되레 역풍을 맞았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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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