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망사건’ 말바꾼 피의자들

이랬다 저랬다 엇갈린 말말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망사건 관계인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누가 지시했는지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폭탄 돌리기’를 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 경북경찰청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는 점차 핵심 피의자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이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채 상병 수사외압 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핵심 피의자들의 진술과 말은 엇갈리고 있다. 경북경찰청서 수사 중인 채 상병 사망사건 당시 책임자들도 상반된 진술을 계속 내놓으며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폭탄 돌리기

공수처는 지난달 26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공수처는 당시 지난해 8월2일 국방부가 경찰로 넘어간 채 상병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 과정서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한 이유를 중점적으로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관리관이 사건 기록 회수를 누구에게 지시받았는지 여부는 현재 수사외압 사건의 최대 관심사다. 지난해 국회서 유 관리관이 사건 기록 회수는 “국방부 검찰단서 지시한 사항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를 지시해 증거 서류로 사건 기록을 가져왔다”며 자신이 사건 기록 회수를 지시한 적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앞선 국방부 검찰단 등에 대한 압수물 분석을 통해 사건 회수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경찰 쪽에 전화해 사건 회수를 미리 조율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행정관 A씨의 상관이 이 비서관이 유 관리관과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고 공수처는 유 관리관을 불러 지난해 8월2일 이 비서관과 통화한 내용을 물었다. 유 관리관은 이 비서관과 통화한 적은 있다면서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병대 사건 관련 내용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한테 물어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관리관이 대통령실의 지시를 받고 사건 기록 회수했다는 의혹이 커진 상황서 “수사기관에 협조하겠다”는 말과 달리 사실 확인과 책임을 이 비서관에게로 미룬 셈이다.

공수처는 지난 26일, 14시간의 조사를 진행했지만 유 관리관이 답변을 회피하고 있으며 수사기록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지난 29일 사흘 만에 다시 불러 12시간 동안 다시 조사를 진행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사건 기록 회수 지시가 국방부서 나왔는지 아니면 대통령실로부터 나왔는지 여부는 수사외압 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유 관리관과 이 비서관이 어떤 통화를 했는지에 따라 수사 범위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관리관의 진술은 지난해 군 검찰단 조사에서도 다른 피의자와 진술과 달랐다. 

국방부와 대통령실 책임 회피
“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국면”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지난해 7월31일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적은 메모에는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됨’이라고 적혀 있다. 이를 두고 정 부사령관은 지난해 8월4일 군검찰에 출석해 “장관님이 크게 4가지를 말씀하셨다”면서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지난해 9월8일 스스로 군검찰에 출석해 진술을 뒤집었다. ‘누구누구 수사 언급’이라는 말은 유 관리관이 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유 관리관은 정 부사령관과 정반대로 진술했다. 그는 지난해 8월29일 군검찰에 출석해 “정 부사령관이 장관에게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는데 관련 조언을 한 적 있냐”는 질의에 “지시하거나 법적 조언한 게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발언은 채 상병 사건 수사를 맡았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특정하지 말라고 지시한 윗선을 가리는 데 있어 중요한 점으로 꼽힌다. 박 전 수사단장의 항명 혐의를 재판 중인 군사법원도 이달 17일 열릴 4차 공판기일에 유 관리관과 정 부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오는 4차 공판서 정 부사령관을 상대로 지난해 7월31일에 있었던 회의 내용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유 법무관리관을 상대로는 해병대 수사단에 혐의자 및 혐의 내용을 제외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 과정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을 개진했는지 등을 물을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유 관리관의 진술이 다른 핵심 피의자들과 계속해서 엇갈리게 될 경우, 공수처가 유 관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그간 공수처는 피의자가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해 왔다”며 “특히나 채 상병 사건은 연루된 관계자들이 많아 적은 인력으로 수사를 원활하게 하려면 구속 수사가 필요해 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아직 구속영장 청구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공수처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게 예상할 수 있지만 현 시점서 영장을 검토하거나 하는 건 없다”며 “사건 관계인이 많고 다 연결돼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와 본인의 진술을 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중 수색 지시 여부도 엇갈려
임성근 자필 서명 문건도 나와

채 상병 사건의 책임자로 꼽히는 피의자들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나 포병7대대장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서로 ‘폭탄’을 돌리고 있는 모양새다. 임 전 사단장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자신은 권한도 없었고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채 상병이 실종되기 이틀 전인 지난해 7월17일 오전 10시에 실종자 수색 작전통제권은 육군 2작전사령부로 넘어갔다. 임 전 사단장이 자신이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최근 경찰 수사 과정서 임 전 사단장이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달 22일 해병대 제1사단 7포병 대대장인 이모 중령을 소환 조사했다. 이 중령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 발생 하루 전날인 지난해 7월18일 오후 3시께 7여단장(작전 과장)에게 전화 통화로 “호우로 인한 수색 종료”를 건의했다.

하지만 그는 변호인을 통해 “마침 예천 현장에 방문한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수행 중이던 7여단장이 대화로 임 사단장에게 종료 명령을 건의했으나 임 사단장이 ‘오늘은 그냥 지속해야 한다’고 지속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 중령은 작전통제 전환에도 7여단장이 육군 50사단장이 아닌 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 지속 명령’을 묻거나 호우 상황을 알리며 보고체계를 유지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녹취록서 7여단장은 이 중령에게 현장 상황을 설명하며 “정식으로 ‘철수 지시’는 좀 상황이 애매하다. 사단장님께 몇 번 건의를 드렸는데…첫날부터 알잖아”라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의 자필 서명이 담긴 문건도 나왔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문건이 예하 부대에 배포된 시각은 같은 달 17일 오후 9시55분으로 작전통제권이 2작전 사령부로 넘어간 지 약 12시간 뒤였다고 한다. 즉, 임 전 사단장은 수색작전을 지시할 권한이 없는 상황임에도 해병 제2신속기동부대의 실종자 수색을 명령했고,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여단에는 복구 작전 시행을 명령한 것이다.

누굴 위해?


법조계에서는 핵심 피의자들의 엇갈리는 진술은 이들에게 ‘자충수’라고 보고 있다. 결국 사건의 수중 작전을 지시한 책임자는 누구며 누굴 보호하기 위해 수사외압을 행사하려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채 상병 사건은 누가 수중 수색을 지시했는지, 누가 수사 기록 변경 지시를 했는지에 달려 있다”며 “지시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위법적인 일이 만행된 것인 만큼 후폭풍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 사건 관계인들의 말이 다른 것은 해당 진술 사이사이 거짓말이 껴있기 때문”이라며 “해당 거짓말이 자신을 옥죄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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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