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채 상병 사건 핵심 관계자들 제 식구 감싸기

군검찰 진술 확인···이종섭 옹호·박정훈 깎아내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이 미궁에 빠졌다. 대통령실의 직접 개입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정작 소환된 인물은 거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가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일부 핵심 관계자는 이미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옹호하고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여러 차례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죄 없는 관계자들이 얼마나 억울할지 생각하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적절한 판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현 주호주한국대사)의 최측근인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이 국방부 검찰단(이하 군검찰)에 출석해 한 말이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김형래 해병대 대령의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채 상병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을 비판하는 말뿐이다.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에 올인한 것이다.

독립성 파괴

박 전 보좌관과 김 대령은 지난해 군검찰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이 조사를 받은 날은 각각 지난해 8월22일과 9월15일이다. 두 사람이 조사받은 사이 군검찰은 같은 해 8월30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이 항명 등 혐의와 관련한 수사를 거부하고 있고,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중앙지역군사법원은 박 대령이 향후 수사 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등을 볼 때 이 같은 우려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군검찰은 박 전 보좌관에게 지난해 7월30일에 벌어진 상황에 관해 캐물었다. 이날은 채 상병 사건 경찰 이첩을 위해 박 대령과 김계환 사령관이 이 대사에게 보고한 날이다. 당시 배석한 인물은 김 사령관과 박 대령,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전하규 대변인, 박 전 보좌관, 허태근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등이다.


박 전 보좌관은 “어떤 보고서도 배부하지 않아 내용만 청취했고 제목과 내용을 인지하는 게 제한됐다. 일부 배석자가 ‘그런 부분까지 혐의로 보는 건 과하다’고 하자, 박 대령이 ‘경찰 수사를 통해 입증될 것’이라고 했다. 보고 말미에 사령관이 결재를 요청했고 장관님이 ‘결재를 해야 되냐’고 물었다. 장관님께 보고되는 문서는 사전에 군사보좌관실로 보고돼 결재 필요성을 검토하는 게 통상의 절차”라며 “이번과 같은 사고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는 한 번도 결재받은 전례가 없고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가 있거나 후속 조치 사항이 있는지를 알아보려 결재문서 사본을 박 대령에게 요청했으나 수사 관련 내용이라며 거부했다”며 “장관님께서는 ‘임성근 전 사단장을 빼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다. 정책실장은 현장 통제 간부들까지 포함하는 건 과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이 최측근’ 박진희, 김계환에 이첩 보류 수차례 전달
“현장 통제 간부 경찰 이첩 과도하다” 개인 의견 어필

박 전 보좌관은 다음 날인 7월31일 이 대사에게 “현장 통제 간부들까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는 건 과한 것 같다”는 개인 의견을 전달했다.

박 전 보좌관의 조언대로 이 대사는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경찰 이첩 보류 지시가 법적으로 가능한지 확인받고 귀국 후 지침을 받도록 지시했다. 같은 날 이 대사는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을 불러 전 대변인과 박 전 보좌관, 유 관리관 앞에서 임 전 사단장의 정상적 지휘 활동을 조처하고 국회 및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는지 확인했다.

다음날 김 사령관은 박 전 보좌관에게 “조사본부로 이첩해 재검토하는 것을 건의드린다”고 했으나 박 전 보좌관은 “수사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조사본부로 이첩하는 건 판단할 단계가 아니기에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박 전 보좌관은 “이첩을 보류하라는 정당한 지시를 위법·부당하다고 하는 판단을 이해할 수 없고 졸속수사와 미흡한 법리판단으로 범죄혐의자를 과도하게 판단한 걸 숨기기 위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박 대령의)성급한 판단으로 업무상과실치사죄 혐의로 경찰로 이첩돼 경찰 수사를 받게 될 죄 없는 관계자들이 얼마나 억울할지 생각하면 장관님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 식구를 감싸고 영향력을 행사한 건 유 관리관도 마찬가지다. 수사단의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에 ‘혐의자를 2명 특정해서 경찰에 이첩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이는 유 관리관이 지난해 군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박 대령에게 ‘혐의자에서 사단장을 빼라고 한 적이 없고,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는 게 군사법원법 취지에 맞다고 했을 뿐’이라던 진술과 대조된다.

결국 수사단이 이첩했던 사건은 이 대사 지시로 회수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유 관리관의 의견을 듣고 사건을 재검토해 혐의자를 2명으로 줄여 경찰에 재이첩했다.

김 대령은 채 상병 사건 관련 언론 브리핑 자료를 확보해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에게 전달했다. 그는 군검찰 조사에서 “순수한 마음을 갖고 해병대를 위해 관련 업무를 한 사람에게 안보실 개입 프레임을 씌워 외압을 행사한 대상자로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건 유감”이라며 자료 확보가 통상적인 업무 수행이라고 주장했다.

안보실 “자료 확보 통상적 업무 수행”이라더니
확보 과정서 “이쪽에 전달했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나 정작 확보 과정서 해병대 유모 대령에게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통상적 업무’라는 김 대령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망 사건 조사 결과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전례가 없는데 대통령실 관계자가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건 이해하기 힘든 조처라는 지적이다.

실제 박모 해병대 중앙수사대장은 지난해 8월 군검찰 조사에서 “업무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해서 보고한 적도 처음”이라며 “통상 조사본부를 통해 속보를 보내면 조사본부서 한 장 정도로 정리해서 보고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보좌관과 김 대령 모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핵심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는 먼저 이 대사를 소환 조사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압수물 포렌식 및 자료 분석 작업 진행 ▲참고인 조사 필요 등을 이유로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반적인 수사는 실무자를 조사해 그의 상급자의 혐의를 명확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병대 사령관·부사령관 집무실,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무실, 군사보좌관 사무실,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 등에서 확보(지난 1월 압수수색)한 PC와 휴대전화 및 이 대사의 휴대전화(지난 7일 조사 과정서 임의제출)서 혐의와 관련된 자료를 추출해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다만 이 대사는 출석 전 휴대전화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경험이 있는 법조인들은 참고인 혹은 이 대사가 아닌 다른 피의자를 먼저 조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 대령 VIP 격노설을 전해준 인물로 지목한 김 사령관, 조사 결과 수정을 주문했다고 지목한 유 관리관이 대표적이다. 보고 계통에 있는 인물 조사도 필요하다.

용산서 커버링?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적 논란까지 겹쳐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공수처의 수사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요시사>는 박 전 보좌관을 포함해 피의자 신분인 핵심 인물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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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