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독박 씌울 민주당 꽃놀이패

양손에 쥐고 있는 9개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특검 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용산을 둘러싼 방패막은 얇기만 하다. 민주당은 각종 특검법과 함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벌써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의석수를 포함해 175석을 지켜냈다. 범야권을 합하면 192석까지 늘어난다.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한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다 포함해도 108석에 그쳤다.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소야대 국면이 유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응답하라”

이번 총선은 정권 심판론의 압승이었다.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외침이 무색하게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여당이 각종 특검에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이 끝난 이후 민주당은 여러 논평을 통해 “이번 총선이 국민 심판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국민의 심판은 이제야 시작됐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특검 열차’에 올라탄 듯 질주에 나섰다.


민주당이 첫 번째로 내민 카드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인 이른바 ‘채 상병 특검’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했는데, 이를 수사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사건 축소를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걸 골자로 한다. 해당 특검법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민주당은 5월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 빠르게 법안을 처리하겠단 방침이다.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이 분주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소속 21대 의원과 22대 당선인 약 50명이 채 상병 특검법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당 소속 116명 의원들도 서명서를 제출하면서 머릿수로 정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민께서는 이번 총선으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을 매섭게 심판하셨다”며 “그 심판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채 상병 사망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장병의 억울한 죽음과 수사외압 의혹, 거기에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이후 25일 만에 사퇴까지, 국민께서는 대한민국의 상식이 무너지는 장면을 똑똑히 목도하셨다”며 국민의힘을 향해 “여야 합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자”고 소리 높였다.

벼랑 끝 윤, 보이지 않는 탈출구
22대 국회 문턱서 치열한 기싸움


민주당 주장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독소조항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수사기관의 수사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검은 전제 조건과 최소한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원내대표는 “특검법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22대 국회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특검을 발의한다면 소수당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도 재점화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이를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윤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만큼 두 안건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힘이 총선서 참패한 만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지난 2년 동안 9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윤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 여부가 ‘총선 민심 수요 여부’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검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여당에 화살이, 반대한다면 민심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 상병 특검법·이태원참사 특별법 외에도 민주당은 전세 사기 특별법 등 각종 법안을 쏟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지난 18일에는 야당이 제2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세월호 참사 지원특별법 등 5개의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면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뇌물 의혹 특검법을 담은 이른바 ‘쌍특검’은 민주당이 벼르던 법안인 만큼 재상정 여부가 주목된다. 쌍특검은 지난해 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된 법안이다.

당시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행동을 두고 “총선을 겨냥한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절반이 넘는 국민이 쌍특검을 원했는데 윤 대통령의 손짓 하나로 법안이 폐기됐다”며 “민심을 거스른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서 쌍특검을 22대 국회에 다시 올리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한다”며 “추가로 드러난 김 여사의 의혹을 몽땅 집어넣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상치 않은
여당 반란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거쳐 22대 국회까지 쥘 수 있는 법안은 9개에 달한다.

총선 참패로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이 지난 국회처럼 쉽게 반대표를 던지지 못할 것이란 게 범야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몇몇 의원들이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성남분당갑서 당선된 국민의힘 안철수 당선인은 한 라디오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며 “본회의 표결 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조경태 부산 사하을 당선인도 “우리 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국민의힘 김경율 전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한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과 한지아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당선인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의 결과가 정권 심판인 만큼 쏟아지는 특검법을 정부·여당이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몇몇 특검은 수사 진행에 따라 칼날이 용산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무죄가 나올 경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박정훈이라는 제복 군인의 명예를 그냥 대통령 권력으로 짓밟은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서도 “현재 수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당연히 특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에 “민심을 경청하겠다”며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특검법 수용 여부를 비롯한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당이 총선서 참패했음에도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역풍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검 정국을 예고한 민주당은 다른 한쪽서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는 중임제 개헌 논의를 띄우면서 용산을 압박하고 있다.

개헌 카드
만지작∼

총선 직후 개헌 논의를 띄운 건 범보수로 꼽히는 개혁신당이다. 개혁신당 천하람 비례대표 당선인은 개헌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개혁신당은 총선 공약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를 포함하는 헌법 개정을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의 쇄빙선을 자처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검찰 독재 조기종식’을 강조하고 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회에 입성한 만큼 선명성을 유지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범보수인 개혁신당과 비례정당인 조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탄핵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제1야당으로서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현 정권의 조기종식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우려에서다. 범야권을 등에 업은 민주당이 22대 국회 중반에 접어들 때 즈음 개헌을 주장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총선 이전부터 개헌을 요구한 이들도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을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이다.

민 당선인은 지난달 31일 공약으로 ‘광주·전남 에너지 메가시티 추진’과 더불어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중앙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 당선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윤 대통령의 임기가 2027년 5월까지인데 이를 1년 단축해 2026년 지방선거와 조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민 당선인에 따르면 중임제는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자동 폐기됐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만큼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표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윤 대통령이 임기를 단축하는 일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서 해남·진도·완도에 당선된 박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윤 대통령이 5년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하고 중임제 개헌을 한다는 의미서 ‘내 임기 1년을 포기하겠다’는 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만 국민에겐 ‘헌정 중단’으로 들릴 소지가 있다”며 “헌정 중단이라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핵 대신 개헌 띄운다?
법사위 뜨거운 쟁탈전

민주당 안팎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대통령 임기 단축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개헌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권력구조 개편과 임기 단축 등의 합의를 마친 순차적인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을 지켜낸 만큼 개헌이 논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은 재적 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한 만큼 야권의 의석수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민주당이 특검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다른 한쪽서 개헌으로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용산의 힘을 뺄 수 있다. 이른바 ‘심리적 탄핵’에 처하게 된 정부가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할 것이란 주장이 앞다퉈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9일 앞둔 지난 1일 의료개혁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지만 여론을 뒤집는 데 실패했다.

지난 16일에는 국무회의서 총선 패배에 대해 “더 낮은 자세로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국민에 대한사과를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 과정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그야말로 용산이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인적 쇄신 과정을 두고 “‘레임덕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저는 그게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사수하겠다며 벌써 포석을 깔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잇따라 특검을 발의할 예정인 만큼 법사위원장의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엎치락
뒤치락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 “법사위와 운영위는 이번에는 꼭 민주당이 갖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1대 국회서 여당이 법적 절차나 입법 과정을 지연시키는 등 방해 공작을 펼쳐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는 “민주당이 앞에서는 점잖은 척 협치 운운하더니, 뒤로는 힘자랑하느냐”며 “여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자, 입법 폭주를 위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술 더 뜨는 조국혁신당

총선의 열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데드덕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국당 조국 대표는 지난 15일 SNS를 통해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검찰 내부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사건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질설이 제기되자 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한 번에 겨냥해 “데드덕이 될 운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뻔뻔한 방패 역할을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더 무자비한 칼을 휘두를 사람을 찾고 있다”며 “국정운영 능력이 ‘0’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관심은 이제 온통 자신과 배우자의 신변 안전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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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