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 국민의힘 전대 총정리

‘내부 총질’ 상처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변 없이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마침표를 찍었다. 어대한을 막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했다.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크고 작은 생채기는 여전히 그대로다. 끝도 없이 벌어진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의힘 당 대표로 한동훈 후보, 최고위원으로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 후보, 청년최고위원으로 진종오 후보가 선출됐음을 선포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를 가득 메운 국민의힘 당원들의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동훈 신임 당 대표를 응원하던 피켓이 들썩였으며 서로 얼싸안는 당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 23일 킨텍스에서 열린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반전 없는
‘어대한’

104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당 대표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한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보란 듯이 당의 수장으로 우뚝 섰다.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당원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한동훈 후보는 과반이 넘는 62.8%를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원희룡 후보는 18.8%, 나경원 후보는 14.6%, 윤상현 후보는 3.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날 수락 연설에서 한 대표는 ‘민심’과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한 대표는 “민심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며 “민심과 싸우면 안 되고 한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하고 생산적인 당정관계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때를 놓치지 말고 반응하자. 그래서 민심의 파도에 올라타자”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한 대표의 수락 연설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사용했던 단어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당대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윤 대통령은 축사를 위해 대회장을 찾았는데, 연설 내용 중 대부분이 ‘화합’과 ‘결속’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오늘 이 전당대회가 단결과 통합의 새 역사를 여는 자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며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무엇보다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우리 당이 하나가 돼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의힘은 저와 함께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지는 집권당”이라며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고, 우리는 하나”라고 힘줘 말했다.

이 밖에도 “민생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당과 정부가 단결해야 한다” “당정이 원 팀이 되어 오직 국민만 바라보자” 등의 말을 했다. 윤 대통령의 키워드가 ‘원 팀’ ‘단결’이었다면 한 대표가 선택한 단어는 ‘국민 눈높이’ ‘변화’인 셈이다.

한 대표가 말한 국민 눈높이라는 단어에 지난 총선서 태풍의 눈과도 같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사건이 겹쳐 보인다. 지난 1월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대통령실과의 갈등을 일축한 적 있다.

총선 책임 딛고 화려하게 부활
용산 꺾은 한 ‘이겨도 외롭다’


당 대표가 된 그는 전당대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난 20일 김 여사가 비공개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 “검찰이 수사 원칙을 정하는 데 있어서 국민의 눈높이를 더 고려했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한 대표는 “영부인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수사가 종결될 수 있는 전기가 새로 생긴 것”이라면서도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는 과정에 대해 국민께서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 직후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당정 화합 등 포부를 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고생 많았다. 잘해달라”는 취지로 답했지만 그동안의 응어리가 단박에 씻겨 내려가긴 어려워 보인다. 지난 전당대회 선거 과정을 돌이켜보면 지금 상황이 마치 폭풍전야 같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자폭대회’ ‘분당대회’ 등의 별명을 낳았다. 결선이 다가올수록 후보들 간의 설전 수위가 높아졌으며 막판에는 서로의 아픈 곳을 헤집어놓기도 했다.

선거 내내 한 대표를 옭아맨 건 배신자 프레임이었다. 총선 패배 이후 윤 대통령과 멀어진 것을 꼬집으며 원·나·윤 세 후보가 일제히 배신자 단어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전당대회를 약 3주 앞둔 지난달 30일, 원 후보는 당시 한 후보를 겨냥해 “세 가지가 없다. 소통이 없고, 신뢰가 없고, 경험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지난해 12월부터 총선이 끝난 4월10일까지 저희는 (윤 대통령과 한 후보의)충돌이 있어도 약속 대련인 줄 알았다”며 “나중에 한 후보를 만나서 대화했더니 두 사람 간 의미 있는 소통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약 나흘 뒤인 지난 4일, 한 대표와 김 여사가 나눴던 문자메시지가 각색된 형태로 일부 공개되면서 ‘배신자론’이 급물살을 탔다.

지난 1월,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둘러싼 파장이 커질 당시 김 여사가 한 대표에게 “본인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으니 검토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한 대표가 ‘읽씹(읽고 답하지 않음)’을 했다는 게 주 내용이다.

말 많은
여정 보니…

나아가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을 운영했다고 폭로하면서 때아닌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문자 읽씹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면서 한 대표를 휘청이게 했다. 세 후보가 합심해 매회 토론마다 한 대표를 겨냥했으며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연판장과 사퇴 기자회견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그러던 중 한 대표가 돌연 나 후보의 패스트트랙 파동 공소 취하 건을 꺼내 들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문자 사건 여파가 열흘 넘게 이어지자 한 대표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기획한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한 대표에게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책임을 안 느끼는가”라며 법무부 장관 때의 일을 들추자 한 대표가 “나 후보께서는 (제가 법무부장관이던 시절)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하신 적 있으시죠?”라고 반격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어 한 대표는 “저는 거기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답했고 이 발언은 큰 파장을 남기게 된다.

한 대표는 하루 만에 사과문을 남겼지만 친윤(친 윤석열)을 비롯한 반한(반 한동훈)계는 어대한 기류를 꺾을 기회로 삼았다. 해당 사건은 당의 여러 관계자들이 기소된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이를 단순한 보복성, 폭로성으로 언급하는 건 부적절했다는 이유에서다.

결선을 닷새 앞두고 있던 탓에 험악해진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서로가 가진 상처의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전당대회가 치러졌고 모든 프레임을 깨부순 채 결국 한 대표가 승기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한 대표를 공격하던 목소리도 차츰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훈 후보’와 ‘한동훈 대표’는 그 무게가 다를뿐더러 앞으로 행사할 권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날 선 공세를 펼치던 정치권 인사들도 당분간은 한 대표와 화합하고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안팎서
덤볐다


문제는 구겨진 용산의 자존심이다. 그동안 용산은 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어줬지만 막상 원 후보의 지지율은 20%도 채 넘기지 못했다. 나 후보는 원내 인사로서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전념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윤 후보는 자신의 인지도를 가늠하기 위해 출마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던 만큼 밑져야 본전인 도전이었다.

18.8%는 원 후보의 득표율이 아닌 용산을 향한 당원들의 민심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용산과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한 대표에게 과반 넘는 표가 몰린 점이 의견을 뒷받침한다.

용산을 꺾은 한 대표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당장 눈앞에 놓인 내부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범야권이 전방위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을뿐더러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는 ‘한동훈 특검법’과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쌍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기에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민주당의 주도로 한동훈 특검법과 더불어 ‘김건희 특검법’을 안건으로 상정해 본격적으로 논의에 착수할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해당 안건들은 전체회의에 계류하고, 공청회나 청문회를 개최한 뒤에 1소위원회로 회부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한 대표는 자신을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 “경찰 수사에서도 무혐의고 이후 경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무혐의로 (결론)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해 왔던 한 대표가 본인을 향한 특검법에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니,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제3자 추천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범야권은 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제3자 추천안을 제시만 하고 진전이 없다”며 “전당대회서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매력적인 발언,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다.

좀처럼 가시지 않은 후유증
틈 없이 특검법 레이스 투입

반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8표 이상의 이탈표가 현실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한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이제 막 구축하기 시작했지만 계파색이 옅던 의원들이 더 이상 용산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일부 친한(친 한동훈)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때 한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전당대회를 치르기도 전 한 대표가 자리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시기를 가늠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당대회 동안 한 대표를 비판해 오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의 당선 소식 직후 자신의 SNS에 회의적인 글을 게재했다. 홍 시장은 “당분간 중앙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아야겠다”며 “당원의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실망”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단합해서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가기 바란다”고도 밝혔다.

원 후보는 낙선 직후 자신의 SNS에 “제가 부족한 탓에 당원 동지 여러분의 마음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면서도 “특검과 탄핵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둘을 막기 위해 앞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총선 참패 후 국민의힘을 이끌어 온 황우여 전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뿐만이 아니라 낙선한 세 후보의 갈등을 다독이는 데 전념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 전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 다음 날인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벌써 부딪히는 발언들이 나온다. 물론 바른말도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부딪히면 국민이 불안해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이제 한 후보가 아니고 당 대표 아닌가. 그러면 대통령께 다가가고, 대통령도(한 대표의) 손을 잡아줘서 서로 허물없이 말씀을 나눠야 한다”며 “주변에 있는 분들도 화합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놓으면(당정 관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향해서는 “저는 동지애를 늘 강조한다. 두 분은 20년 지기 아닌가.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며 “두 분의 목표는 국민 하나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나눈다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뭐가 있겠냐”라고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아직은
아프다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은 이제 막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다. 여기서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건 배에 스스로 구멍을 뚫는, 공멸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상처를 들이밀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지금처럼 각종 특검법이 산적한 국면에서 공룡 야당에게 더는 먹잇감을 내어줄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단결’된 국민의힘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변화를 선보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나땡’ 민주당 지금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설처럼 떠돌았던 ‘김옥균 프로젝트’도 말 그대로 구설로만 남을 전망이다.

김옥균 프로젝트란 “한동훈 후보가 갑신정변을 일으켜 당선될 경우 친윤계가 방해해 당 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김옥균처럼 삼일천하에 그칠 것”이란 글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 것이다.

이에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도대체 김옥균이 누구냐, 한동훈 대표냐 윤석열 대통령이냐”라며 “득표율이 60%를 훌쩍 넘긴 당 대표를 어떻게 끌어내리겠냐.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민주당은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이라고 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윤석열정부에 대한 변화를 국민의힘 내부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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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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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