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는 해병대 육박전

장관 뒤에 누구? 윗선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가 점입가경이다.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이 아닌 제 식구 감싸기에 몰두하는 분위기다. 사건 관련자 중 장병을 제외한 고위 간부는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역시나 해명 없이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그를 수사하던 수사단장은 국방부의 심기를 거스른 듯 보직 해임되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 이달 초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밝힌 입장이다. 사퇴하겠다는 뜻으로 읽혔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만 번지르르했던 셈이다. 상황은 역으로 뒤집혔다. 임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주장하던 수사단장이 수사 대상이 됐다. 국방부는 ‘항명’이라는 이유를 댔다.

현장 간부
요청 무시

‘채 상병 사건’은 지난달 20일 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서 채수근 상병이 순직한 일을 말한다. 포병7대대 소속이던 그는 당시 경북 예천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다가 물살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채 상병과 부대원들은 수색 첫날, 현장 간부 판단에 따라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수색에 임했다. 그러나 임사단장의 지시로 이튿날인 지난달 19일부터 물속으로 들어갔다.

또 효율적 수색이라는 핑계로 바둑판식 대형을 고집했다. 장병들은 서로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잘못된 지시로 인해 총 8명이 물에 휩쓸렸고 채 상병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스로 나오거나 구조됐다.

반면 포병7대대장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허리 아래쪽까지만 입수하고 과도하게 수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 사단장의 비상식적 지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룩무늬 스카프(버프)를 착용해서 웃는 얼굴 표정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지시했다. 해병대가 눈에 띌 수 있도록 적색 티를 입으라고도 했다. 사건 전날인 지난달 18일 오후 9시54분에는 중대장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복장 지침으로 위에는 우의를 입은 채 장화를 신은 차림으로 수색할 것을 전파했다.

이에 간부 1명이 “안전 재난 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중대장은 “1사단 회의 분위기 전체가 그런 거였다. 건의하겠다” “물가에 가게 될 경우 전투화로 변경 요청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임 사단장은 물속에서 탐침봉만 들고 작업 중인 해병대원들의 사진 보도를 보고 “적극적인 홍보가 아주 좋다”고 했다. 장병들의 안전보단 성과가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장이 다녀간 직후 포병11대대장은 포병대대장 회의를 주관하면서 ‘우리는 내일 허리까지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해당 회의에 참석했던 포병7대대장은 직후 휘하에 있는 중대장들을 소집해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장병들을 물속으로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한 간부가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군화를 신겨야 한다”고 건의하자 포병7대대장은 “지금 분위기 모르냐. 정신 차려라. 지금 복장 통일을 하라고 (위에서)난리”라고 말했다.

요청은 묵살됐다. 다음날 오전 5시32분, 중대장은 복장은 장화에 우의를 지참하라고 최종 통보했다. 중대장의 건의에도 윗선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현재까지 임 사단장은 징계도 받지 않은 채 멀쩡하다. 대대장과 중대장 모두가 보직 해임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뒤집고 축소? 채 상병 사건 두고 이전투구 양상
이종섭 장관, 임성근 사단장 대놓고 감싸기, 왜?

국회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실에 따르면 수사단은 임 사단장을 포함해 지휘부와 현장 지휘관 등 8명 모두 과실치사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수사단은 채 상병이 장화를 신지만 않았어도 혼자 물장구를 쳐 물속에서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컸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단은 또 임 사단장이 “작전의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라는 것을 공지하지 않아 장비를 준비하지 못하게 했고, 무리하게 수색을 요구하며 안전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없이 복장 통일과 철저한 브리핑만 지시했다”고 결론냈다.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책임자 범위와 각각의 혐의 사실이 담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았다. 이 자리에는 이 장관을 비롯해 대변인, 군사보좌관, 허태근 정책실장,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현장에 법무관리관은 배석하지 않았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에게 “보고서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다시 ‘내일 진행할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제출하라’고 지시했고, 박 대령은 이날 오후 6시42분 해병대 공보실을 통해 이 자료를 안보실에 넘겼다.

해병대는 다음날 해당 내용을 국방부 기자단에 브리핑할 계획이었다. 상황은 반전됐다. 이 장관이 해병대 측에 수사 결과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국외 출장을 떠나면서 브리핑도 취소됐다. 이후 지난 1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수사 결과 자료에서 모든 혐의 사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법무관리관실의 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검토 당시 법무관리관실은 수사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단이 법무관리관실에 수사 기록을 보낸 건 장관의 지시가 있고 나서인 지난달 31일 저녁이었다.

과실치사
결론 엎어

지난 1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과 대여섯 차례 통화했다. 박 대령의 변호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서 “원래 경찰에 자료를 넘기기로 한 건 2일 오전 9시30분이었고, 김 사령관한테 ‘이첩을 멈추라’는 지시를 받은 건 이날 오전 10시51분으로, 이미 경찰에 자료를 넘긴 뒤였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의 지시 이후 박 대령에게 전달되기까지 ‘시차’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또, 장관에게 보고한 다음날 박 대령이 유 법무관리관으로부터 “과실 있는 사람만 조사 보고서에 담으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 법무관리관에게 ‘과실 있는 사람이라는 게, (총책임자인 사단장이 아니라 채 상병이 소속된)대대장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묻자, 유 법무관리관이 ‘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명시된 임 사단장 등의 혐의를 삭제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령이 “유가족에게도 설명했고 이미 장관에게도 보고된 내용인데 어떻게 빼냐”고 하자, 유 법무관리관은 “장관에게 먼저 보고를 했었냐”고 되물은 뒤 곧바로 전화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이 이미 보고를 받았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모르고 수사 기록을 검토한 셈이다.

그 후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김 사령관에게 연락해 “그렇다면 장관이 복귀하면 다시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신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채 상병 사망사고와 관련한 문자를 보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특정인을 언급한 바 없다”며 정정보도 요청과 함께 법적 절차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보 좋다”
성과 집착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논란이 커지지만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닌 해병대 수사 담당자와 언론에 법적 대응을 통해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군 장성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잇단 비상식적 대응으로 논란을 키우는 꼴”이라며 “국방부가 정해져 있는 시행령과 원칙을 입맛대로 해석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까지 왔다.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수사단은 윗선의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병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으로 지난 2일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수사단의 판단에 태클을 걸고 경찰로부터 이첩 서류를 회수했다.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군인 사망 사건을 비롯해 성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사항에 대해서는 민간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수사 절차 훈령에 따라 민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는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혐의도 적어야 한다. 이 과정서 국방부는 이첩 보고서 양식에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죄명 즉, 범죄 혐의도 적지 않았다.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은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군사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가 혐의 삭제와 이첩 연기를 지시한 건 시행령의 위반을 넘어 수사방해라는 지적이다.

상황이 진실공방으로 치닫자 국방부는 지난 9일, 해병대 수사단이 더 이상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채 상병 사망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했다. 전날 해병대사령부 보직해임심의위원회 의결을 통해 수사단장직서 해임된 박 대령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방부 간부가 ‘사단장 혐의 빼라’ 압력 행사”
언론 브리핑 자료 대통령실 산하 안보실 이첩?

박 대령은 “수사 결과 (해병대 제1사단)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다”면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 이첩 시까지 저는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국방부 법무관리관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만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날도 입장문을 통해 “중대한 군기 위반행위로 수사단장이 보직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이 사망사건과 이첩 업무 처리를 계속하기에는 제한사항이 있다”면서 “이를 고려해 국방부 장관은 채 상병 사망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하고 법령에 따라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계획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용원 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 검찰단은 경찰서 회수해 보관하고 있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자료 일체를 남김없이 곧바로 경찰로 다시 이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방부 검찰단이 즉시 경찰에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자료를 보내지 않는다든가, 수사자료 중 일부를 취사선택해 경찰에 보내면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한 국민적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보호관은 “해병대 수사단장 등에 대한 해병대의 보직해임 절차 진행과 집단항명죄, 직권남용죄 및 비밀누설죄 등에 대한 수사는 즉각 보류돼야 한다”며 “수사의 결론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서 군사법경찰 관계자의 보직을 해임하거나 직권남용죄 등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독립성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가 무리하면서까지 극단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을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항명?

국방부 출신 한 전문가는 “일주일 사이에 공식 입장이 뒤바뀌고 사실관계도 옅어졌다”며 “모든 사안에 대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문건이 국가안보실에도 보고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사실이라면 상식적으로 왜 안보실이 문건을 가져가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러 주장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주장이 정확하지 않은 면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관련 내용은 국방부서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서 계속 설명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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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