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리나케 떠난 이종섭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8 12:19:10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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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두려워 ‘줄행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떠났다. ‘호주대사’란 명함을 들고서다. 이 전 장관의 줄행랑으로 한국과 호주가 발칵 뒤집혔다. 호주 언론은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뀔 거란 전망까지 내놨다. 지난해 있었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부터 시작해서 논란이 끝나지 않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여전히 그를 감싸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오후 국제 인천공항.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던 이 대사는 이날 오후 7시51분 호주 브리즈번행 대한항공 KE407편을 타고 출국했다.

아무도 모르게 
브리즈번으로

프리미엄 체크인 구역엔 이 대사의 출국 저지를 위해 모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과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으나 이 대사의 출국 모습이 포착되진 않았다. 앞서 이 대사의 출국에 관해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와 관련해 추가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일 <뉴스1>에 따르면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서 “이 대사 측에서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제기한 후 법무부서 공수처 의견을 요청해 원칙적 입장을 전했으며 처음부터 이 대사가 출국하도록 방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 대사를 수사한 후 출국금지하자, 이 대사가 임명 이튿 날인 지난 5일 출국금지를 풀어 달라며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지난 8일,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법무부는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여러 차례 연장돼온 점,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핵심 피의자를 출국시킴으로써 수사 차질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주호주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 대사의 인사말을 올리고 공식 부임을 알렸다. 이 대사는 인사말에서 “우리 대사관은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포함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고, 국방·방산 협력 동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호주는 한국전쟁 당시 1만7000여명을 파병한 혈맹이자 자유, 민주주의,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역내의 핵심 우방국이다. 우리 대사관은 공급망 안정과 핵심광물을 포함한 자원·에너지 등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호주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호주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주 현지 교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현지 교민들 중 진보 성향 교민단체인 시드니촛불행동 등 교민 약 20명은 지난 13일 오후 호주 캔버라 주호주대한민국대사관 앞에 모여,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인 이 대사가 호주대사로 부임한 데 대해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장관서 피의자로…그리고 대사 임명
각종 논란 뒤로 하고 도망치듯 출국

집회에 참석한 해병대 황모 예비역 중사는 “주요 핵심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가 개구멍으로 도망가듯 호주로 부임한 것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개탄스럽다. 해병의 명예, 국군 장병의 명예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인지 윤석열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교민은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호주에 전 국방부 장관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 호주 교민들의 자존심 문제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호주서 가장 신뢰 받는 공영언론 <ABC>는 이 대사의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호주 국방부 담당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한국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다. 이 매체는 “한국의 공수처는 해병대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이 대사가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며 “군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부패 수사에 연루된 전직 국방부 장관이 논란이 되는 대사 임명을 지속하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다. 


한국의 야당이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반발했는지도 자세히 다뤘다. <ABC>는 “한국 법무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해당 논란이 ‘한-호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호주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호주의)외교통상부는 이 대사의 호주 도착을 환영했다”며 “호주는 한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사 지명자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호주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코멘트도 함께 전했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대통령실은 초지일관 “이 대사의 임명 철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복 답변을 내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호주에 갔고, 당장 내일이라도 공수처가 부르면 귀국해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달 공관장 회의 때 귀국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국금지
수사 기밀?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공수처와 더불어민주당,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으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 공수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석 달 뒤인 12월, 그는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호주와 안보 협력, 방산 수출에 역할을 한 공로로 호주 대사로 내정돼 주재국 동의를 받아 ‘아그레망(타국서 파견한 외교사절의 장을 주재국이 승인하는 것)’ 등 임명 절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 이 대사를 한 번도 소환 요청하지 않은 공수처가 출국금지 조치를 했고, 이후 한 달씩, 두 차례 더 연장했다. 출국금지한 피고발인을 소환 시도도 안 하고 계속 조치를 연장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또 출국금지는 수사기밀이라 정부 당국자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부가 이 대사를 호주로 도주시킨 것으로 여론몰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을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확인해 먼저 보도한 것도 세 축이 결탁했다는 걸 보여 주는 방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이 대사를 총선 이후에 임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말 기존 대사가 정년퇴직한 상황서 안보협력이 중요한 대사직을 장기간 비워둘 수 없고, 또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이 나온 대사를 바로 임명하지 않고 부임을 늦추는 건 중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반박했다.

여권에서는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아가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제기됐다. 당시 이 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 시간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야당과 특정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YTN에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면서 늘 내세웠던 논리가 아니었냐며, 이것이 바로 공언 유착”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에 악용하려고 도피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도주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도피 프레임으로 자꾸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언제든 출석 요구를 하면 출석해서 조사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사본 들고…
사실상 도주

그는 “해외공관장이 수사기관 조사를 안 받고 버티거나 도피한 사례가 없지 않느냐”며 “근무지만 해외지, 공직자가 도주·도피가 되는 상황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사 수사를 진행해온 공수처에 대해선 “조사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출국금지하고, 조사도 안 하고 출국금지 연장을 해왔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내 일각서 ‘이 대사의 임명 철회’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선 “개인적 의견이지,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전체회의 소집을 국민의힘이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오늘 긴급 외통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중대 범죄 피의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임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고 외교적 망신이자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우방국인 호주와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이 대사 관련 특검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대사 또한 사퇴하고 즉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은 출국금지돼있는 이 대사가 호주로 출국한 과정 전반을 밝히는 목적의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외통위 회의 소집 요구에 대해 총선용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태영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 악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상임위 개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망신 초래
한-호 관계 걸림돌

태 의원은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공천이 있고 개별 의원들은 지역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임위 개최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민주당은 자당 의원들이 경선 패배로 허탈한 심정을 못 이겨 상임위 참석이 불가능해지자 슬그머니 단독 상임위 개최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가 더뎌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칫 민주당의 ‘신종 인사 훼방 수법’이 양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법에 따라 차분히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윤석열정부 1호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육사) 40기 출신이다. 당시 문재인정부 들어 비(菲)육사 출신 장성들이 주요 보직에 두루 기용되면서 일각서 일었던 ‘육사 홀대론’과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육사 40기 출신인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시기에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대사는 지난해 8월25일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해서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라고 해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을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대사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일제 독립 전 소련공산당 활동을 한 홍범도 장군을 겨냥했다.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 대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흉상 있는 자리에)한·미 동맹 공원을 만들어 백선엽·맥아더 장군 동산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냐”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그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사는 “이분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단체는 격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8월27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철거 추진에 대해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당시 이 장관에게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부 장관 자리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분노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왜 위인들의 흉상이 당신들에게 귀찮은 존재로 남아서 부담을 주어야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총선 악재 
전전긍긍

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육사가 추진해 온 흉상 철거 계획의 추진 경과를 보고받고, 이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날 송 의원은 “현재 육사 내에 흉상의 형태로 모셔진 독립 영웅들 모두는 지난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던 투사이자 오늘날 우리 국군의 뿌리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우리의 독립영웅가 폄훼에 앞장서는 육군사관학교는 지금 당장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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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반가운 얼굴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예민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로운 정치 이야기도 한두 마디씩 오간다. 그래서인지 용산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연이어 리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휴 내내 야당이 추석 밥상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 물가는 오르는데 국정 지지율은 내림세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은 예견된 문제였다.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역풍 맞을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묘한 거리감도 신경이 쓰인다. 꺼야 할 급한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지율 추락 30%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인 29.6%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첫 번째 주 29.3%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20%대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이 같은 수치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6.7%, ‘잘 모름’은 3.6%다. 해당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였다. 신뢰수준은 95%에 표본오차 ±2.0%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대란을 비롯한 물가, 당정 갈등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야당이 의료 공백 문제를 입 모아 지적하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의 뜻을 확고히 했다. 의료진과 대통령의 인식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혼자서만 달나라에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중증·난치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은 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심야 응급실을 방문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진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각종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 사면초가 한동훈 영부인 공천 논란까지? 상다리 휘는 야 물가 문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0%로 집계됐다. 이는 1.9%이던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세를 강조했지만 당초 지난달 물가가 높았던 탓에 국민이 체감하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정부는 민주당이 발의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현금 살포’ ‘표풀리즘’이란 지적이 나와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며 “추석을 앞두고 (25만원 지원법을)딱 잘라 거절했으니 이에 맞먹을 대응책을 가져와야 한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안이든 지원금이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자 167만명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추석 전 조기 지급하라”고 지시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서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하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서 의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추진하던 25만원 지원법과 다를 바가 없다며 “내 세금 살포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을 정쟁 법안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맞불을 놨다. 용산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를 겨냥해 수사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격 대상이 됐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2심 선고기일이 오는 12일 예정된 만큼 이를 덮기 위한 ‘급발진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다. 검찰은 오는 9일 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공판기일 전 이뤄지는 증인신문에 “문 전 대통령도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 출석 의무는 없지만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시 쥔 총자루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문다혜씨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혐의는 덮어주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는 도의를 무시하는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김혜경 여사도 소환했다. 지난 5일 김 여사가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야당 대표로 모자라 배우자까지 추석 밥상머리에 제물로 올리려는 정치검찰의 막장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정부는 집권 후 추석 밥상마다 이 대표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며 “검찰은 이번에도 반성은커녕 야당 대표의 배우자마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 수사가 검찰의 추석 기념행사냐”고 직격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추석 밥상에 올라오나 싶더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이었던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부터 공천 개입 논란까지 전 방향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이 당초 컷오프된 점을 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소문이 무성하던 김 여사의 당무 개입과 선거 개입, 국정 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이를 포함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엄포를 놨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며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야당의 발목을 잡나 싶었지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형국이다. 용산이 코너에 몰린 상황서 여당이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의제로 판을 엎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끝까지 시끌벅적 하지만 ‘N번째 윤-한 갈등’이 불거진 시점서 당에 큰 기대를 하기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석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니 오히려 민주당만 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야당에 꽃놀이패를 직접 쥐어준 것과 다름없다. 한 대표가 용산과 언제 또 충돌할까 지켜보는 당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부산 금정구서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한 대표 사퇴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구설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김기현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은 친한(친 한동훈)계 보다 친윤(친 윤석열)계 비중이 큰 만큼 당이 갈라지진 않겠지만 60%가 넘는 당원이 선택한 당 대표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 갈등마저도 야당의 반찬으로 내어줬다. 용산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 카드를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용산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반기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서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절한 셈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 영수회담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윤정부 출범 이후 720일, 4·10 총선이 끝난 지 18일 만이었다. 당시 총선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국정 전환용으로 ‘소통하는 정부’를 내세웠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온갖 리스크를 꺼내 들고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냐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꽉 막힌 국회 탄핵 거부권만 도돌이표 분위기 반전시킬 영수회담 카드 꺼낼까 이 대표는 지난 8·18 전당대회서 재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줄곧 대화를 요청해 왔다. 윤 대통령 입장서도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무기한으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오히려 용산의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시된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만큼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민주당이 “불통” “꽉 막힌 소통” 등 공격적인 논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이뤄져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연설 후반부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조준하자 야당 측 의석서 반발이 터져 나왔고 민생협의체 논의는 뒷순위로 밀렸다. 야당 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보내온 추석 선물을 거부하는 ‘선물 보이콧’도 일어났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추석 선물 사진과 함께 “용산 대통령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선물을)보내시나”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스토커 수사’나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선물 보내지 마시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외교도,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라며 “(국회)개원식 불참까지 제멋대로 하더니 안 받겠다는 선물을 기어이 보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당장 눈앞에 택배기사님 고충을 생각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참고로 대통령실 명절선물은 지역주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특산품”이라고 말하는 등 국회 곳곳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겨도 용산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가 끝나면 수능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중 교육개혁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제 곧 수능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에 의료개혁이 문제가 됐다면 그다음으로는 교육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 개혁안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니 사방서 문제가 동시에 터지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인해 올해 수능은 ‘초긴장 모드’다. 지난해 ‘킬러 문항’으로 사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만큼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협 당직 병원 반발 “추석에 아프면 대통령실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의 추석 연휴 당직병원 운영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약 4000곳을 대상으로 당직 병·의원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자 “민간 의료기관에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은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며 “추석 연휴 응급진료 이용은 정부 기관이나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전송했다. 공지 말미에는 ‘02-800-7070’라는 연락처를 덧붙였다. 이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 번호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