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리나케 떠난 이종섭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8 12:19:10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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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두려워 ‘줄행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떠났다. ‘호주대사’란 명함을 들고서다. 이 전 장관의 줄행랑으로 한국과 호주가 발칵 뒤집혔다. 호주 언론은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뀔 거란 전망까지 내놨다. 지난해 있었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부터 시작해서 논란이 끝나지 않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여전히 그를 감싸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오후 국제 인천공항.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던 이 대사는 이날 오후 7시51분 호주 브리즈번행 대한항공 KE407편을 타고 출국했다.

아무도 모르게 
브리즈번으로

프리미엄 체크인 구역엔 이 대사의 출국 저지를 위해 모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과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으나 이 대사의 출국 모습이 포착되진 않았다. 앞서 이 대사의 출국에 관해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와 관련해 추가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일 <뉴스1>에 따르면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서 “이 대사 측에서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제기한 후 법무부서 공수처 의견을 요청해 원칙적 입장을 전했으며 처음부터 이 대사가 출국하도록 방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 대사를 수사한 후 출국금지하자, 이 대사가 임명 이튿 날인 지난 5일 출국금지를 풀어 달라며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지난 8일,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법무부는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여러 차례 연장돼온 점,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핵심 피의자를 출국시킴으로써 수사 차질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주호주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 대사의 인사말을 올리고 공식 부임을 알렸다. 이 대사는 인사말에서 “우리 대사관은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포함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고, 국방·방산 협력 동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호주는 한국전쟁 당시 1만7000여명을 파병한 혈맹이자 자유, 민주주의,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역내의 핵심 우방국이다. 우리 대사관은 공급망 안정과 핵심광물을 포함한 자원·에너지 등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호주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호주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주 현지 교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현지 교민들 중 진보 성향 교민단체인 시드니촛불행동 등 교민 약 20명은 지난 13일 오후 호주 캔버라 주호주대한민국대사관 앞에 모여,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인 이 대사가 호주대사로 부임한 데 대해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장관서 피의자로…그리고 대사 임명
각종 논란 뒤로 하고 도망치듯 출국

집회에 참석한 해병대 황모 예비역 중사는 “주요 핵심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가 개구멍으로 도망가듯 호주로 부임한 것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개탄스럽다. 해병의 명예, 국군 장병의 명예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인지 윤석열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교민은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호주에 전 국방부 장관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 호주 교민들의 자존심 문제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호주서 가장 신뢰 받는 공영언론 <ABC>는 이 대사의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호주 국방부 담당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한국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다. 이 매체는 “한국의 공수처는 해병대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이 대사가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며 “군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부패 수사에 연루된 전직 국방부 장관이 논란이 되는 대사 임명을 지속하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다. 


한국의 야당이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반발했는지도 자세히 다뤘다. <ABC>는 “한국 법무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해당 논란이 ‘한-호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호주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호주의)외교통상부는 이 대사의 호주 도착을 환영했다”며 “호주는 한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사 지명자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호주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코멘트도 함께 전했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대통령실은 초지일관 “이 대사의 임명 철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복 답변을 내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호주에 갔고, 당장 내일이라도 공수처가 부르면 귀국해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달 공관장 회의 때 귀국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국금지
수사 기밀?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공수처와 더불어민주당,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으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 공수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석 달 뒤인 12월, 그는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호주와 안보 협력, 방산 수출에 역할을 한 공로로 호주 대사로 내정돼 주재국 동의를 받아 ‘아그레망(타국서 파견한 외교사절의 장을 주재국이 승인하는 것)’ 등 임명 절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 이 대사를 한 번도 소환 요청하지 않은 공수처가 출국금지 조치를 했고, 이후 한 달씩, 두 차례 더 연장했다. 출국금지한 피고발인을 소환 시도도 안 하고 계속 조치를 연장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또 출국금지는 수사기밀이라 정부 당국자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부가 이 대사를 호주로 도주시킨 것으로 여론몰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을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확인해 먼저 보도한 것도 세 축이 결탁했다는 걸 보여 주는 방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이 대사를 총선 이후에 임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말 기존 대사가 정년퇴직한 상황서 안보협력이 중요한 대사직을 장기간 비워둘 수 없고, 또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이 나온 대사를 바로 임명하지 않고 부임을 늦추는 건 중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반박했다.

여권에서는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아가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제기됐다. 당시 이 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 시간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야당과 특정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YTN에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면서 늘 내세웠던 논리가 아니었냐며, 이것이 바로 공언 유착”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에 악용하려고 도피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도주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도피 프레임으로 자꾸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언제든 출석 요구를 하면 출석해서 조사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사본 들고…
사실상 도주

그는 “해외공관장이 수사기관 조사를 안 받고 버티거나 도피한 사례가 없지 않느냐”며 “근무지만 해외지, 공직자가 도주·도피가 되는 상황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사 수사를 진행해온 공수처에 대해선 “조사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출국금지하고, 조사도 안 하고 출국금지 연장을 해왔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내 일각서 ‘이 대사의 임명 철회’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선 “개인적 의견이지,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전체회의 소집을 국민의힘이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오늘 긴급 외통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중대 범죄 피의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임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고 외교적 망신이자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우방국인 호주와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이 대사 관련 특검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대사 또한 사퇴하고 즉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은 출국금지돼있는 이 대사가 호주로 출국한 과정 전반을 밝히는 목적의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외통위 회의 소집 요구에 대해 총선용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태영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 악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상임위 개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망신 초래
한-호 관계 걸림돌

태 의원은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공천이 있고 개별 의원들은 지역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임위 개최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민주당은 자당 의원들이 경선 패배로 허탈한 심정을 못 이겨 상임위 참석이 불가능해지자 슬그머니 단독 상임위 개최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가 더뎌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칫 민주당의 ‘신종 인사 훼방 수법’이 양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법에 따라 차분히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윤석열정부 1호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육사) 40기 출신이다. 당시 문재인정부 들어 비(菲)육사 출신 장성들이 주요 보직에 두루 기용되면서 일각서 일었던 ‘육사 홀대론’과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육사 40기 출신인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시기에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대사는 지난해 8월25일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해서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라고 해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을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대사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일제 독립 전 소련공산당 활동을 한 홍범도 장군을 겨냥했다.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 대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흉상 있는 자리에)한·미 동맹 공원을 만들어 백선엽·맥아더 장군 동산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냐”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그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사는 “이분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단체는 격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8월27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철거 추진에 대해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당시 이 장관에게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부 장관 자리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분노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왜 위인들의 흉상이 당신들에게 귀찮은 존재로 남아서 부담을 주어야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총선 악재 
전전긍긍

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육사가 추진해 온 흉상 철거 계획의 추진 경과를 보고받고, 이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날 송 의원은 “현재 육사 내에 흉상의 형태로 모셔진 독립 영웅들 모두는 지난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던 투사이자 오늘날 우리 국군의 뿌리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우리의 독립영웅가 폄훼에 앞장서는 육군사관학교는 지금 당장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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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