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⑪‘망인의 입’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6:45: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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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었나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외국은 망인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이상, 군에서 끝까지 책임집니다. 순직도 쉽고요. 한국은 순직에 왜 이렇게 예민한지…” <일요시사>는 지난 3월14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서 송기춘 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 국방부 순직 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유가족과 만나는 시간이 가장 많고, 그 시간에 대부분 맞춥니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관계자가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의 일정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그랬다. 송 위원장이 군에서 사망한 망인의 유가족을 만나는 일정은 빡빡했다. 그에게 있어서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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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했다. 유가족들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터뷰 일정조차 잡는 게 힘들었지만,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서 그 이유에 대해 십분 이해가 가능했다. 

송 위원장을 찾아오는 유가족은 대부분 국방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식이 군대서 죽었지만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그 이후의 상황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들의 죽음은 ‘일반 사망’이나 ‘병사’ 등이다.

유가족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때로는 화도 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는 점이다. 송 위원장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국방부가 먼저 유가족을 이렇게 대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군대서 사고가 날 수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식이 군대서 죽으면 유족들은 자식이 사망했던 그 시기에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그 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1970년대에 자식이 군대서 사망했습니다. 현재 그 분이 90대인데, 50년간 세월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유가족과 망인의 죽음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송 위원장은 2021년 6월10일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서 공부했으며 서울대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오랜 기간 법학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런 송 위원장이 군 사망사고에 남다른 철학을 가진 이유가 있다.

송 위원장이 군 입대 당시엔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서울대 법학 박사 정도면 군대를 면제받거나 장교로 입대했다. 그러나 송 위원장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군대 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몸으로 직접 부딪쳤다. 아무래도 동기보다 나이가 많은 채로 입대했으니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군은 기본적인 위계질서로 움직이는 조직인 만큼 그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줘선 안 되는데, 군대 내에서는 이런 기본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 전문용어로 ‘따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에서 상사가 얼차려 행위를 시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당했죠. 학자가 된 다음에는 군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시작한 부분이 가장 커요. 군대 관련 연구만 20년 넘게 했습니다.”

자식이 군에서 죽으면 ‘멈추는’ 유가족의 삶
9월이면 활동 종료…‘순직’ 문제과 개선은?

진상귀명위원장으로서 현재 순직 제도의 문제점도 짚었다.

우선 주목한 것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 29조 제2항이다. 이 법은 ‘진상규명위는 진정 조사한 결과에 따라 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다르게 결정한 경우에는 국방부 장관에게 해당 진정에 대해 재심사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이 경우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송 위원장은 해당 내용 중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을 따라야 한다’ 부분을 지목했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위는 치열하게 순직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사안으로 한 시간 넘게 토론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지점서 발생한다.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가 있지만, 국방부가 다시 심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건 법률 위반입니다. 국방부도 나름의 심사기준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그 기준을 갖고 순직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우리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독립된 독자적 기구로 조사합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 진상규명위가 조사한 부분은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를 국방부가 재심사하는 방식은 적법 절차(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정해진 일련의 법적 절차)를 위반한 것이에요.”

이 같은 문제는 유가족이 국방부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가족 입장에선 국방부는 가해자다. 군이 사고가 날만한 상황을 방치했거나, 군이 직접 사고를 발생시킨 결과로 자녀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서 유가족은 현실적으로 망인의 순직 여부를 국방부가 결정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상규명위서 충분히 조사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 사안마저 ‘기각’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게 기본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재판관이 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은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진상규명위 의견을 우선 배제했어요. 결국 국방부는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 판단합니다.”

허술한 조사
허점 투성이

실제 유가족은 순직 여부를 떠나, 군 수사 결과를 불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 특성상 유가족은 사망사고의 자료나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다. 군에 자료를 요청하기 전에는 망인의 유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니 유가족은 국방부의 순직 판단에 대해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 것이냐’고 분개한다. 하지만 송 위원장은 이런 관점이야말로 ‘시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방부와 관점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계속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시야 차이가 있는 걸까? 우선 국방부는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망인의 위법행위를 조사하지만, 군 문화는 반영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으로 복무 기간 중 폭력을 행사했거나, 휴가 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음주를 한 뒤 사고가 난 경우다. 

“순직은 명예성을 띠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직 처리를 받으려면 요건에 부합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은 군의 역학관계로 이해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어떤 군인이 평소에 폭력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면 맞아 죽을 때까지 참아야 순직이 되는 겁니까? 결국 본인이 방어하려고, 군기를 잡아서 폭력을 피하려고 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폭력성이라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을 판단하는 과정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폭행 등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국방부의 병력 관리 소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국방부는 되려 이런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가장 많은 것이 염세 비관, 가정불화, 복무 부적응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헌병대가 수사를 하기 때문인데, 헌병대는 수사를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범죄 혐의로 사건을 접근하죠. 그러니 가장 부담이 없는 게 이 세 가지입니다. 의무복무병은 ‘문제 없다’는 병무청 검사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니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는 <일요시사>가 군 순직 취재 과정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수의 유가족들은 순직 심사가 비공개인 것 자체를 비난했으며 수사 과정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심사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무조건
개인 탓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 자체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인데, 물론 공개하면 심사위원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각 위원에게 청탁이나 압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순 없죠.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는 비공개 방식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심사 결과에 불신을 갖는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유가족들 사이에선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이 누가 선임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의원이 선임되더라도 결론이 같아야 합니다. 그게 기관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으니 비판을 수용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국방부 순직 심사 방식이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라는 점도 짚었지만, 이 역시 재고할 부분이 존재한다. 순직 심사에서 유가족이 직접 진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좋은 취지긴 하나,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서술해야 하는 비극에 처해진다. 

“현재 순직 심사는 아주 딱딱한 분위기서 진행됩니다. 좀 더 편한 분위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런 모양새를 갖춰 진술을 해야 유가족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가족이 ‘국가와 힘든 싸움을 했는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국방부의 태도를 느껴야 해요. 그래야 유가족이 국방부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마음도 없어질 테니까요.”

최근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1년에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국방부의 해당 년도 사망 자료엔 2986명이 기록돼있었는데, 이 자료는 정확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에 따로 접수된 사건을 종합해본 결과 3000명 이상이었다.

“군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를 판단”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이 중 3분의1은 일반 사망이나 변사로 처리돼있었다. 이들은 유행성출혈열(3급 감염병), 폐결핵, 결핵, 늑막염으로 사망했다. 이 경우가 진상규명위의 직권 조사로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이 인정되려면 유가족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과거 사망사건은 대부분 유가족이 사망해 신청이 불가하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자, 그리고 유가족을 찾는 것은 국방부의 주요 사업입니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유가족이 국가유공자나 순직 신청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거나, 망인의 명예를 찾거나, 군에서 순직했다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국방부는 ‘적극적 행정을 했다’지만 홍보만 하는 수준이죠. 방송에 광고 문구를 띄워서 연락달라고 하거나, 아는 사람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걸 갖고 1년 실적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데, 아직도 순직이 돼야 할 사람이 많이 방치돼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 못하죠. 진상규명위가 시작한 조사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을 때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상규명위가 조사를 시작할 때 군이 협조적이지도 않다. 송 위원장은 이 부분을 어려움으로 느낀다기보단, 군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진상규명위는 조사에 강제성을 갖고 있다. 사건 조사 시 동행명령까지 할 수 있는데, 실상 이런 기능은 사용하기 어렵다. 자발적 협조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현역에 있는 분들은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중요한 증언이 꼭 필요한데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술을 거짓말로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군대도 결국 사람이 만든 조직이다. 어떤 일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강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송 위원장은 ‘인권’이 보장돼야 강한 부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이제는 군이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현재 군대 복무 기간이 18개월인데, 군대에 가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여깁니다. 이제는 민주주의사회를 배울 수 있는 군대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은 임무 성격상 사람이 죽을 수 있죠. 그래도 그 죽음이 억울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 억울함 이면엔 ‘직무 연관성’을 따집니다. 진상규명위는 그 억울함이 해결되도록 노력하지만, 9월이면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인데, 국방부나 국민권익위원회가 일임하면 유가족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되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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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