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⑪‘망인의 입’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6:45: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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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었나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외국은 망인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이상, 군에서 끝까지 책임집니다. 순직도 쉽고요. 한국은 순직에 왜 이렇게 예민한지…” <일요시사>는 지난 3월14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서 송기춘 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 국방부 순직 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유가족과 만나는 시간이 가장 많고, 그 시간에 대부분 맞춥니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관계자가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의 일정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그랬다. 송 위원장이 군에서 사망한 망인의 유가족을 만나는 일정은 빡빡했다. 그에게 있어서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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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했다. 유가족들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터뷰 일정조차 잡는 게 힘들었지만,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서 그 이유에 대해 십분 이해가 가능했다. 

송 위원장을 찾아오는 유가족은 대부분 국방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식이 군대서 죽었지만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그 이후의 상황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들의 죽음은 ‘일반 사망’이나 ‘병사’ 등이다.

유가족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때로는 화도 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는 점이다. 송 위원장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국방부가 먼저 유가족을 이렇게 대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군대서 사고가 날 수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식이 군대서 죽으면 유족들은 자식이 사망했던 그 시기에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그 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1970년대에 자식이 군대서 사망했습니다. 현재 그 분이 90대인데, 50년간 세월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유가족과 망인의 죽음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송 위원장은 2021년 6월10일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서 공부했으며 서울대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오랜 기간 법학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런 송 위원장이 군 사망사고에 남다른 철학을 가진 이유가 있다.

송 위원장이 군 입대 당시엔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서울대 법학 박사 정도면 군대를 면제받거나 장교로 입대했다. 그러나 송 위원장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군대 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몸으로 직접 부딪쳤다. 아무래도 동기보다 나이가 많은 채로 입대했으니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군은 기본적인 위계질서로 움직이는 조직인 만큼 그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줘선 안 되는데, 군대 내에서는 이런 기본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 전문용어로 ‘따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에서 상사가 얼차려 행위를 시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당했죠. 학자가 된 다음에는 군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시작한 부분이 가장 커요. 군대 관련 연구만 20년 넘게 했습니다.”

자식이 군에서 죽으면 ‘멈추는’ 유가족의 삶
9월이면 활동 종료…‘순직’ 문제과 개선은?

진상귀명위원장으로서 현재 순직 제도의 문제점도 짚었다.


우선 주목한 것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 29조 제2항이다. 이 법은 ‘진상규명위는 진정 조사한 결과에 따라 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다르게 결정한 경우에는 국방부 장관에게 해당 진정에 대해 재심사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이 경우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송 위원장은 해당 내용 중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을 따라야 한다’ 부분을 지목했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위는 치열하게 순직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사안으로 한 시간 넘게 토론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지점서 발생한다.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가 있지만, 국방부가 다시 심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건 법률 위반입니다. 국방부도 나름의 심사기준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그 기준을 갖고 순직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우리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독립된 독자적 기구로 조사합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 진상규명위가 조사한 부분은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를 국방부가 재심사하는 방식은 적법 절차(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정해진 일련의 법적 절차)를 위반한 것이에요.”

이 같은 문제는 유가족이 국방부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가족 입장에선 국방부는 가해자다. 군이 사고가 날만한 상황을 방치했거나, 군이 직접 사고를 발생시킨 결과로 자녀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서 유가족은 현실적으로 망인의 순직 여부를 국방부가 결정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상규명위서 충분히 조사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 사안마저 ‘기각’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게 기본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재판관이 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은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진상규명위 의견을 우선 배제했어요. 결국 국방부는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 판단합니다.”

허술한 조사
허점 투성이

실제 유가족은 순직 여부를 떠나, 군 수사 결과를 불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 특성상 유가족은 사망사고의 자료나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다. 군에 자료를 요청하기 전에는 망인의 유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니 유가족은 국방부의 순직 판단에 대해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 것이냐’고 분개한다. 하지만 송 위원장은 이런 관점이야말로 ‘시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방부와 관점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계속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시야 차이가 있는 걸까? 우선 국방부는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망인의 위법행위를 조사하지만, 군 문화는 반영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으로 복무 기간 중 폭력을 행사했거나, 휴가 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음주를 한 뒤 사고가 난 경우다. 


“순직은 명예성을 띠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직 처리를 받으려면 요건에 부합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은 군의 역학관계로 이해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어떤 군인이 평소에 폭력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면 맞아 죽을 때까지 참아야 순직이 되는 겁니까? 결국 본인이 방어하려고, 군기를 잡아서 폭력을 피하려고 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폭력성이라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을 판단하는 과정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폭행 등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국방부의 병력 관리 소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국방부는 되려 이런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가장 많은 것이 염세 비관, 가정불화, 복무 부적응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헌병대가 수사를 하기 때문인데, 헌병대는 수사를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범죄 혐의로 사건을 접근하죠. 그러니 가장 부담이 없는 게 이 세 가지입니다. 의무복무병은 ‘문제 없다’는 병무청 검사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니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는 <일요시사>가 군 순직 취재 과정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수의 유가족들은 순직 심사가 비공개인 것 자체를 비난했으며 수사 과정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심사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무조건
개인 탓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 자체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인데, 물론 공개하면 심사위원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각 위원에게 청탁이나 압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순 없죠.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는 비공개 방식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심사 결과에 불신을 갖는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유가족들 사이에선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이 누가 선임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의원이 선임되더라도 결론이 같아야 합니다. 그게 기관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으니 비판을 수용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국방부 순직 심사 방식이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라는 점도 짚었지만, 이 역시 재고할 부분이 존재한다. 순직 심사에서 유가족이 직접 진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좋은 취지긴 하나,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서술해야 하는 비극에 처해진다. 

“현재 순직 심사는 아주 딱딱한 분위기서 진행됩니다. 좀 더 편한 분위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런 모양새를 갖춰 진술을 해야 유가족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가족이 ‘국가와 힘든 싸움을 했는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국방부의 태도를 느껴야 해요. 그래야 유가족이 국방부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마음도 없어질 테니까요.”

최근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1년에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국방부의 해당 년도 사망 자료엔 2986명이 기록돼있었는데, 이 자료는 정확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에 따로 접수된 사건을 종합해본 결과 3000명 이상이었다.

“군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를 판단”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이 중 3분의1은 일반 사망이나 변사로 처리돼있었다. 이들은 유행성출혈열(3급 감염병), 폐결핵, 결핵, 늑막염으로 사망했다. 이 경우가 진상규명위의 직권 조사로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이 인정되려면 유가족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과거 사망사건은 대부분 유가족이 사망해 신청이 불가하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자, 그리고 유가족을 찾는 것은 국방부의 주요 사업입니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유가족이 국가유공자나 순직 신청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거나, 망인의 명예를 찾거나, 군에서 순직했다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국방부는 ‘적극적 행정을 했다’지만 홍보만 하는 수준이죠. 방송에 광고 문구를 띄워서 연락달라고 하거나, 아는 사람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걸 갖고 1년 실적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데, 아직도 순직이 돼야 할 사람이 많이 방치돼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 못하죠. 진상규명위가 시작한 조사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을 때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상규명위가 조사를 시작할 때 군이 협조적이지도 않다. 송 위원장은 이 부분을 어려움으로 느낀다기보단, 군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진상규명위는 조사에 강제성을 갖고 있다. 사건 조사 시 동행명령까지 할 수 있는데, 실상 이런 기능은 사용하기 어렵다. 자발적 협조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현역에 있는 분들은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중요한 증언이 꼭 필요한데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술을 거짓말로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군대도 결국 사람이 만든 조직이다. 어떤 일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강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송 위원장은 ‘인권’이 보장돼야 강한 부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이제는 군이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현재 군대 복무 기간이 18개월인데, 군대에 가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여깁니다. 이제는 민주주의사회를 배울 수 있는 군대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은 임무 성격상 사람이 죽을 수 있죠. 그래도 그 죽음이 억울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 억울함 이면엔 ‘직무 연관성’을 따집니다. 진상규명위는 그 억울함이 해결되도록 노력하지만, 9월이면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인데, 국방부나 국민권익위원회가 일임하면 유가족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되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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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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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