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①그들은 왜 어떻게 묻혔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7:00: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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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겼는데 그냥 버려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4건의 서류가 남았다. ‘순직’ 처리를 기다리는 사망한 군인들의 기록이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지만, 군에서 죽은 군인의 명예회복은 어찌 이리도 힘들까? 국방부는 이들의 죽음을 ‘개인의 일탈’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군 내부 문제’로 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는 군의 특수한 사항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활동은 4달 뒤인 9월13일 종료된다. 진상규명위는 2007년 출범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한 뒤, 2018년 9월14일 새롭게 구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9년 만이다.

군에서
죽으면…

진상규명위의 설립 이유는 1948년 국군이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군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5년간 접수된 1787건 중 1695건을 종결(지난달 26일 기준)했고 나머지는 처리 중이다.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은 조사 후, 국방부가 사망 원인과 ‘직무 연관성’이 있는지를 따져 판단한다. 여기서 맹점은 한국은 징병제 국가로 군 복무는 행정법상 일반적 권력관계가 아닌 특별권력관계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7명의 진상규명위 위원은 사건을 검토해 순직 요소가 있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국방부에 순직 심사를 요청한다. 

순직 심사 요청을 받은 국방부는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순직 심사기관)를 통해 순직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는 위원장을 포함한 심사위원 9명을 회의 시마다 바꿔서 지정한다. 심사위원과 심사 내용은 모두 비공개다.


군인의 사망 이유가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군인사법 제54조의2(전사자등의 구분)에는 ‘군인이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게 되면 전사자·순직자·일반사망자·전상자·공상자 및 비전공상자로 구분한다’고 적시돼있다. 

여기서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질병 포함)이 해당된다. 단, 고의 또는 중과실로 사망하거나 위법 행위가 원인이 된 사망자는 일반 사망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과실’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해 순직을 결정짓는 기준이 모호한 실정이다.

진상규명위가 국방부에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순직’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보류된 건은 34건(지난달 초 기준, 재심사 진행 중)이다. 

순직 기각·보류 34건 전수 분석
가장 많은 원인은 ‘극단적 선택’

<일요시사>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과 진상규명위가 제공한 34건의 진상규명위 결정문·국방부 결정서(보류건을 제외한 22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군이 군인의 사망을 은폐·조작했거나 분명한 직무 연관성이 있는데도 순직 기각으로 결정 난 케이스를 발견했다.

34건은 기각 22개, 보류 12개로 나뉘며, 보류는 1차 기각으로 국방부에 재심사 요청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기각·보류된 34건 망인의 전체 군별 소속은 육군이 30명, 공군 1명, 해병 1명으로, 서류상 기록이 없는 경우도 2건이 존재했다. 계급은 일병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상병 7명, 부사관 6명, 병장·위관 각각 4명, 이병 2명이었다. 간부 계급은 하사가 4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위‧중사 각각 2명, 중위 1명, 대위(진) 1명이었다.


사망 원인은 17건이 극단적 선택, 15건이 사고, 병사 1건, 폭행 1건이었다. 극단적 선택은 총기 사망 9건, 음독 4건, 목맴 2건, 기타 2건으로 분류됐다. 

보류는 재심사 기회가 있어 기각 사유를 알 수 없다. 보류를 제외한 기각 사유 22건은 음주 10건, 무장탈영 및 탈영 3건, 총기 수칙 위반 2건, 업무 스트레스 인정 불가 2건, 위법 행위 2건, 개인 과실 사고 2건, 전역 후 사망 1건이었다. 가장 크게 눈여겨볼 점은 기각 사유로 국방부는 음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순직 심사에 결정적 장애요소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경우 대부분 군이 관리 소홀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고, 음주의 경우는 대부분 휴가나 퇴근 중 발생했으며 영내 음주는 선임이 권유 아래 이뤄졌다. 

다양한
사망 원인

앞서 2017년 2월22일, 국방부는 “입대 전에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군 복무 중 부대적 원인으로 악화돼 자해 사망한 경우에도 순직 처리할 수 있다. 직무 연관성만 인정되면 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말 ‘직무 연관성’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1960년대 사망한 망인은 장교로 근무 중 중대원의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 등 지휘 통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 소속대 근처 영외서 원인미상의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매화장 보고서에는 ‘상기명 장교는 소속대 전입 후 현지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으로 지휘 통솔에 대한 염증감과 부대 근무 의욕을 다소 상실함에 극단적 선택을 함’이라고 기록돼있다. 망인의 동료 역시 “당시 중대원이 나이가 많아 고참이나 지휘관 말을 듣지 않아 아주 골치 아팠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명확하게 직무 연관성으로 사망한 경우지만, 중앙전공사상위원회의 결정은 달랐다. “망인은 12년 이상 복무한 장교로 중대원의 휴가 미귀 등의 사고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어 순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망 당시 헌병대가 작성한 매화장 보고서도,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도 모두 순직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장교는 순직 심사를 사병보다 까다롭게 한다. 그렇다면 사병은 어떨까? 1971년 사망한 망인은 해안 경계 근무 후 복귀하던 중 상병을 적으로 오인해 총을 발사해, 상병이 현장서 사망했다. 망인은 50분 후 복부에 총을 발사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망인과 상병의 원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고, 망인은 상병을 괴한으로 오인 착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이에 대해 “죄책감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망인이 ‘조정간 자동으로 총기를 격발’했다. 조준사격이 의심되고, 고의적인 측면도 추론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기각 중 극단적 선택 11건의 기각 사유를 100% ‘개인적 실책’으로 봤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닌 평소 근무태도 역시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 


공무 중
사망해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음주운전으로 정직 3개월과 형사처벌 처분받음 ▲평소 간부와 몰래 술을 마시는 등 근무태도가 불량했음 ▲선임에게 폭언과 협박을 받은 적 있지만 본인도 후임병을 폭행 및 가혹행위한 바 있음 ▲무장탈영 후 투항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공무와 인과관계 없음 ▲선임의 협박이 있었지만 위법 행위를 함 ▲장난으로 총기를 사람에게 겨눈 것은 경계 수칙 위반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진상규명위의 입장은 정반대로 11건을 모두 직무 연관성이 있는 죽음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총기가 ‘잠금’이 아니라 ‘반자동’에 놓여진 것은 군이 총기 관리를 소홀한 것 ▲업무수행 과정 중 발생한 스트레스는 직무 연관성으로 직결됨 ▲오인 사격에 의한 극단적 선택은 죄책감 때문 ▲평소 징계대상자였던 망인에게 총기함 관리 등 위험한 임무를 부여한 군의 관리 소홀 ▲복무 중 행정보급관으로 당한 폭언과 협박이 극단적 선택의 주된 원인 ▲군 복무 중 소속부대의 부적절한 대응과 과실로 망인이 부대를 이탈 ▲최전방 경계근무 지역에 소재한 소속대의 열악한 근무환경 부적응 등이라며 부대 측에 책임을 돌렸다.

사고로 사망한 기각 11건(보류 4건 제외)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훈련 종료 후 음주 ▲영내서 개인적 음주행위는 중과실 해당 ▲휴가 전일 음주행위는 사적 행동 판단 ▲휴가 후 부대 복귀 중이었지만 음주한 뒤 발생한 열차사고는 개인 과실 ▲선임이 요구했지만 불법인 사냥 및 음주 ▲새벽시간의 낚시는 개인 과실 ▲군인이 만취해 귀대하는 것 자체를 불용인 ▲헌병대 관계자에게 폭행당한 뒤 탈영했지만, 헌병대 체포 하루 뒤 사망으로 인과관계 없음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군과는 상관없는 개인적 일탈로 인한 죽음이라는 해석이다. 진상규명위 입장은 전부 정반대였다.

진상규명위 순직 요청 사유는 ▲당시 훈련이 없을 때 동기와 술 마시러 가는 일이 잦았고 음주 장소도 훈련장 인근 ▲음주는 중과실이 될 수 없음 ▲부대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사고 발생 ▲음주였지만 휴가 후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근무지 복귀 중에 일어난 교통사고였기 때문에 순직 처리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휴가·근무 중 사고 났는데도…
모호한 직무 연관성·중과실 기준

또 ▲복무 중 직무수행을 위해 목적지로 가던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 ▲공식적인 회식은 직무 연관성이 있고 ▲연못에 빠진 사고는 부대의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발생했다는 취지도 있었다.

보류의 경우 진상규명위의 의견만 있었는데, 극단적 선택 6명 중 4명은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나머지 2명은 관심병사였다. 

가혹행위 종류로는 ▲상습적인 구타 및 폭언 ▲부대 전입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서 내무생활이 미흡해 벌어진 가혹행위 ▲영창서 구금된 동안 인간으로 참기 어려운 폭행과 선임병의 업무 질책이었다.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겪은 가혹행위로 인해 군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겪었다. 결국 통제력을 잃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직무 연관성이 있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관심병사였던 두 경우는 ‘군대 내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진상규명위는 “관심병사였는데 군에서 심적 부담감을 많이 줬다. 제대로 된 근무수칙에 대한 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류건 중 사고사에 대해서 진상규명위는 “밀집된 군 생활로 인한 전염성 질환이기 때문” “업무상 과실치사에 관한 것”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부대에 복귀 중 발생한 교통(열차)사고”라며 순직 심사를 요청했다.

34건 중에는 군에서 망인의 사망 원인을 은폐하려 시도한 경우가 3건 있었고, 모두 망인의 사인이 잘못 기록돼있었다. 이는 유가족이 진상규명위에 망인의 사건 조작‧은폐 수사를 요청해 드러났다.

망인은 신병교육 후 탈영했고 1974년 수경사 헌병대에 체포됐다. 헌병대서 전신경련으로 쓰러진 뒤 응급수술을 받고 사망했다. 망인의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라고 기재돼있지만, 국군수도통합병원장이 육군본부 부관감에게 보낸 전사망보고서에는 ‘병사’로 기록돼있었다.

당시 병상일지에는 “36세 수감자 환자는 점심 배식 대기 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막하혈종 급성 좌”라고 적혀 있다. 해당 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뇌경막하출혈’은 거의 두부에 직간접적인 충격에 의해 발생된다. 쓰러지기 일정 시간 전 두부 충격을 가한 물리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망인은 지병이 전혀 없었고 탈영병으로 체포됐을 때도 건강했다. 또 진상규명위는 ▲망인이 졸도했거나 경막하 출혈이 발생했다는 기록과 진술이 없는 점 ▲사망 당시 망인의 얼굴과 몸 다수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던 점 ▲사망 당시 군 관계자가 망인의 사망 원인을 간질에 의한 사망이라고 말한 점 등을 은폐 정황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당시 망인의 담당 군의관이 ‘진료차트 및 사망진단서에 외인사로 진단했으나 누군가가 주도해 병사로 처리됐고, 서류도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고, 관련 담당자 역시 ‘이 서류는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두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군은 문책을 면탈할 목적으로 사고 경위의 사실관계를 조작·은폐했고 허위로 사고 경위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주먹구구
심사 기준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망인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군에서 은폐·조작한 상황보다 ‘개인적 중과실’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순직이 인정되는 것일까? 2021년 2월에는 머리를 감는 도중 사망했던 군인이 순직으로 인정된 바 있고, 휴가 나갔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도 순직이 인정됐다. 한 순직 관련 전문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비공개고,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른다. 심사위원이 누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순직이 인정될 수도 있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류된 건에 대한 심사는 계속 진행 중이며 34건 중 보류 4건은 순직으로 인정됐다(지난 15일 기준).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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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