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①그들은 왜 어떻게 묻혔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7:00: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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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겼는데 그냥 버려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4건의 서류가 남았다. ‘순직’ 처리를 기다리는 사망한 군인들의 기록이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지만, 군에서 죽은 군인의 명예회복은 어찌 이리도 힘들까? 국방부는 이들의 죽음을 ‘개인의 일탈’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군 내부 문제’로 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는 군의 특수한 사항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활동은 4달 뒤인 9월13일 종료된다. 진상규명위는 2007년 출범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한 뒤, 2018년 9월14일 새롭게 구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9년 만이다.

군에서
죽으면…

진상규명위의 설립 이유는 1948년 국군이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군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5년간 접수된 1787건 중 1695건을 종결(지난달 26일 기준)했고 나머지는 처리 중이다.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은 조사 후, 국방부가 사망 원인과 ‘직무 연관성’이 있는지를 따져 판단한다. 여기서 맹점은 한국은 징병제 국가로 군 복무는 행정법상 일반적 권력관계가 아닌 특별권력관계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7명의 진상규명위 위원은 사건을 검토해 순직 요소가 있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국방부에 순직 심사를 요청한다. 

순직 심사 요청을 받은 국방부는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순직 심사기관)를 통해 순직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는 위원장을 포함한 심사위원 9명을 회의 시마다 바꿔서 지정한다. 심사위원과 심사 내용은 모두 비공개다.


군인의 사망 이유가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군인사법 제54조의2(전사자등의 구분)에는 ‘군인이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게 되면 전사자·순직자·일반사망자·전상자·공상자 및 비전공상자로 구분한다’고 적시돼있다. 

여기서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질병 포함)이 해당된다. 단, 고의 또는 중과실로 사망하거나 위법 행위가 원인이 된 사망자는 일반 사망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과실’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해 순직을 결정짓는 기준이 모호한 실정이다.

진상규명위가 국방부에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순직’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보류된 건은 34건(지난달 초 기준, 재심사 진행 중)이다. 

순직 기각·보류 34건 전수 분석
가장 많은 원인은 ‘극단적 선택’

<일요시사>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과 진상규명위가 제공한 34건의 진상규명위 결정문·국방부 결정서(보류건을 제외한 22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군이 군인의 사망을 은폐·조작했거나 분명한 직무 연관성이 있는데도 순직 기각으로 결정 난 케이스를 발견했다.

34건은 기각 22개, 보류 12개로 나뉘며, 보류는 1차 기각으로 국방부에 재심사 요청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기각·보류된 34건 망인의 전체 군별 소속은 육군이 30명, 공군 1명, 해병 1명으로, 서류상 기록이 없는 경우도 2건이 존재했다. 계급은 일병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상병 7명, 부사관 6명, 병장·위관 각각 4명, 이병 2명이었다. 간부 계급은 하사가 4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위‧중사 각각 2명, 중위 1명, 대위(진) 1명이었다.


사망 원인은 17건이 극단적 선택, 15건이 사고, 병사 1건, 폭행 1건이었다. 극단적 선택은 총기 사망 9건, 음독 4건, 목맴 2건, 기타 2건으로 분류됐다. 

보류는 재심사 기회가 있어 기각 사유를 알 수 없다. 보류를 제외한 기각 사유 22건은 음주 10건, 무장탈영 및 탈영 3건, 총기 수칙 위반 2건, 업무 스트레스 인정 불가 2건, 위법 행위 2건, 개인 과실 사고 2건, 전역 후 사망 1건이었다. 가장 크게 눈여겨볼 점은 기각 사유로 국방부는 음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순직 심사에 결정적 장애요소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경우 대부분 군이 관리 소홀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고, 음주의 경우는 대부분 휴가나 퇴근 중 발생했으며 영내 음주는 선임이 권유 아래 이뤄졌다. 

다양한
사망 원인

앞서 2017년 2월22일, 국방부는 “입대 전에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군 복무 중 부대적 원인으로 악화돼 자해 사망한 경우에도 순직 처리할 수 있다. 직무 연관성만 인정되면 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말 ‘직무 연관성’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1960년대 사망한 망인은 장교로 근무 중 중대원의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 등 지휘 통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 소속대 근처 영외서 원인미상의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매화장 보고서에는 ‘상기명 장교는 소속대 전입 후 현지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으로 지휘 통솔에 대한 염증감과 부대 근무 의욕을 다소 상실함에 극단적 선택을 함’이라고 기록돼있다. 망인의 동료 역시 “당시 중대원이 나이가 많아 고참이나 지휘관 말을 듣지 않아 아주 골치 아팠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명확하게 직무 연관성으로 사망한 경우지만, 중앙전공사상위원회의 결정은 달랐다. “망인은 12년 이상 복무한 장교로 중대원의 휴가 미귀 등의 사고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어 순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망 당시 헌병대가 작성한 매화장 보고서도,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도 모두 순직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장교는 순직 심사를 사병보다 까다롭게 한다. 그렇다면 사병은 어떨까? 1971년 사망한 망인은 해안 경계 근무 후 복귀하던 중 상병을 적으로 오인해 총을 발사해, 상병이 현장서 사망했다. 망인은 50분 후 복부에 총을 발사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망인과 상병의 원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고, 망인은 상병을 괴한으로 오인 착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이에 대해 “죄책감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망인이 ‘조정간 자동으로 총기를 격발’했다. 조준사격이 의심되고, 고의적인 측면도 추론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기각 중 극단적 선택 11건의 기각 사유를 100% ‘개인적 실책’으로 봤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닌 평소 근무태도 역시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 


공무 중
사망해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음주운전으로 정직 3개월과 형사처벌 처분받음 ▲평소 간부와 몰래 술을 마시는 등 근무태도가 불량했음 ▲선임에게 폭언과 협박을 받은 적 있지만 본인도 후임병을 폭행 및 가혹행위한 바 있음 ▲무장탈영 후 투항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공무와 인과관계 없음 ▲선임의 협박이 있었지만 위법 행위를 함 ▲장난으로 총기를 사람에게 겨눈 것은 경계 수칙 위반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진상규명위의 입장은 정반대로 11건을 모두 직무 연관성이 있는 죽음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총기가 ‘잠금’이 아니라 ‘반자동’에 놓여진 것은 군이 총기 관리를 소홀한 것 ▲업무수행 과정 중 발생한 스트레스는 직무 연관성으로 직결됨 ▲오인 사격에 의한 극단적 선택은 죄책감 때문 ▲평소 징계대상자였던 망인에게 총기함 관리 등 위험한 임무를 부여한 군의 관리 소홀 ▲복무 중 행정보급관으로 당한 폭언과 협박이 극단적 선택의 주된 원인 ▲군 복무 중 소속부대의 부적절한 대응과 과실로 망인이 부대를 이탈 ▲최전방 경계근무 지역에 소재한 소속대의 열악한 근무환경 부적응 등이라며 부대 측에 책임을 돌렸다.

사고로 사망한 기각 11건(보류 4건 제외)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훈련 종료 후 음주 ▲영내서 개인적 음주행위는 중과실 해당 ▲휴가 전일 음주행위는 사적 행동 판단 ▲휴가 후 부대 복귀 중이었지만 음주한 뒤 발생한 열차사고는 개인 과실 ▲선임이 요구했지만 불법인 사냥 및 음주 ▲새벽시간의 낚시는 개인 과실 ▲군인이 만취해 귀대하는 것 자체를 불용인 ▲헌병대 관계자에게 폭행당한 뒤 탈영했지만, 헌병대 체포 하루 뒤 사망으로 인과관계 없음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군과는 상관없는 개인적 일탈로 인한 죽음이라는 해석이다. 진상규명위 입장은 전부 정반대였다.

진상규명위 순직 요청 사유는 ▲당시 훈련이 없을 때 동기와 술 마시러 가는 일이 잦았고 음주 장소도 훈련장 인근 ▲음주는 중과실이 될 수 없음 ▲부대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사고 발생 ▲음주였지만 휴가 후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근무지 복귀 중에 일어난 교통사고였기 때문에 순직 처리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휴가·근무 중 사고 났는데도…
모호한 직무 연관성·중과실 기준

또 ▲복무 중 직무수행을 위해 목적지로 가던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 ▲공식적인 회식은 직무 연관성이 있고 ▲연못에 빠진 사고는 부대의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발생했다는 취지도 있었다.

보류의 경우 진상규명위의 의견만 있었는데, 극단적 선택 6명 중 4명은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나머지 2명은 관심병사였다. 

가혹행위 종류로는 ▲상습적인 구타 및 폭언 ▲부대 전입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서 내무생활이 미흡해 벌어진 가혹행위 ▲영창서 구금된 동안 인간으로 참기 어려운 폭행과 선임병의 업무 질책이었다.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겪은 가혹행위로 인해 군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겪었다. 결국 통제력을 잃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직무 연관성이 있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관심병사였던 두 경우는 ‘군대 내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진상규명위는 “관심병사였는데 군에서 심적 부담감을 많이 줬다. 제대로 된 근무수칙에 대한 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류건 중 사고사에 대해서 진상규명위는 “밀집된 군 생활로 인한 전염성 질환이기 때문” “업무상 과실치사에 관한 것”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부대에 복귀 중 발생한 교통(열차)사고”라며 순직 심사를 요청했다.

34건 중에는 군에서 망인의 사망 원인을 은폐하려 시도한 경우가 3건 있었고, 모두 망인의 사인이 잘못 기록돼있었다. 이는 유가족이 진상규명위에 망인의 사건 조작‧은폐 수사를 요청해 드러났다.

망인은 신병교육 후 탈영했고 1974년 수경사 헌병대에 체포됐다. 헌병대서 전신경련으로 쓰러진 뒤 응급수술을 받고 사망했다. 망인의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라고 기재돼있지만, 국군수도통합병원장이 육군본부 부관감에게 보낸 전사망보고서에는 ‘병사’로 기록돼있었다.

당시 병상일지에는 “36세 수감자 환자는 점심 배식 대기 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막하혈종 급성 좌”라고 적혀 있다. 해당 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뇌경막하출혈’은 거의 두부에 직간접적인 충격에 의해 발생된다. 쓰러지기 일정 시간 전 두부 충격을 가한 물리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망인은 지병이 전혀 없었고 탈영병으로 체포됐을 때도 건강했다. 또 진상규명위는 ▲망인이 졸도했거나 경막하 출혈이 발생했다는 기록과 진술이 없는 점 ▲사망 당시 망인의 얼굴과 몸 다수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던 점 ▲사망 당시 군 관계자가 망인의 사망 원인을 간질에 의한 사망이라고 말한 점 등을 은폐 정황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당시 망인의 담당 군의관이 ‘진료차트 및 사망진단서에 외인사로 진단했으나 누군가가 주도해 병사로 처리됐고, 서류도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고, 관련 담당자 역시 ‘이 서류는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두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군은 문책을 면탈할 목적으로 사고 경위의 사실관계를 조작·은폐했고 허위로 사고 경위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주먹구구
심사 기준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망인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군에서 은폐·조작한 상황보다 ‘개인적 중과실’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순직이 인정되는 것일까? 2021년 2월에는 머리를 감는 도중 사망했던 군인이 순직으로 인정된 바 있고, 휴가 나갔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도 순직이 인정됐다. 한 순직 관련 전문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비공개고,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른다. 심사위원이 누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순직이 인정될 수도 있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류된 건에 대한 심사는 계속 진행 중이며 34건 중 보류 4건은 순직으로 인정됐다(지난 15일 기준).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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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여론은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힘을 실어주면서다. 하지만 무대가 법정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동시에 여론도 뒤집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2024년 4월 연예기획사 하이브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상대로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해 어도어를 독립시키려 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당시 어도어 소속 가수는 아이돌 뉴진스가 유일했기에 분쟁의 크기는 순식간에 커졌다. 상처 입은 톱 아이돌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분쟁, 이른바 ‘민-하 대전’이 2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민 전 대표가 전면에서 하이브와 이른바 ‘맞다이’를 벌였지만 이후 뉴진스가 직접 판에 뛰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동시에 빌리프랩 등 하이브의 다른 레이블, 어도어의 전 직원,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 등이 전선에 합류했다. 민-하 대전에서 여론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처음 민 전 대표에 대한 감사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은 민 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민 전 대표는 ‘선’, 하이브는 ‘악’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뉴진스는 2024년 11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민-하 대전이 시작된 지 7개월 만에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뉴진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연말마다 발표하는 ‘올해를 빛낸 가수’ 순위에서 2023년과 2024년 연달아 1위를 기록할 만큼 대중성이 높다. 그런 가수가 소속사와 정면 대결을 선택하자 연예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뉴진스가 소송 대신 구두로 계약 해지를 선언한 방식이 합당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 ‘소속사 간 다툼에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면 안 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갈등의 무대는 정치권으로까지 넓어졌다. 하이브와 뉴진스, 민 전 대표 간의 갈등 양상을 비롯해 연예인의 노동자성까지 화두로 떠올랐다. 뉴진스 상대 전속계약 유지 인정 해인 혜린 하니 복귀 다니엘 해지 일각에서는 뉴진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을 국감 때로 보기도 한다. 연예계 갈등을 국정감사에서 다루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 전 대표와 뉴진스에 대해 여론은 나름 호의적이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미국에서 여성 BJ와 만났다는 내용의 사생활 이슈 등이 도마 위에 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SNS나 기자회견 등 민 전 대표와 뉴진스가 이른바 여론전을 위해 올랐던 무대가 법정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하이브와 어도어, 민 전 대표와 뉴진스 등이 연루된 소송은 10여개에 이른다.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전속계약, 민 전 대표가 하이브와 맺은 풋옵션 계약, 민 전 대표와 어도어 전 직원 간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표절 논쟁에서 시작된 민 전 대표와 빌리프랩 간의 손해배상 소송,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한 어도어와 돌고래유괴단의 손해배상 소송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론과 법원 판결의 괴리다. 특히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여론까지 뒤집을 정도로 ‘원사이드’ 판결로 이어졌다. 뉴진스 측이 제시한 전속계약 해지 이유를 법원은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도어의 전속계약 유효 소송에 법원이 연이어 ‘인용’ 판결을 내리면서 뉴진스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 뉴진스는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어도어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던 뉴진스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도 이 시기다. 독자 활동이 완벽하게 막혔고 활동을 위해서는 어도어에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연예계에서는 뉴진스가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론도 뒤바뀌어 실제 뉴진스는 복귀했다. 멤버 5명 모두가 함께 어도어로 돌아가는 ‘완전체’ 복귀는 아니었기에 각종 설이 흘러나왔다. 연예계에서는 판결을 기점으로 멤버들 사이가 갈라진 것 같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만큼 향후 발생할 손해배상, 위약벌 등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수 있다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해 11월 뉴진스 멤버 해린과 혜인이 먼저 복귀했다. 어도어는 두 멤버의 복귀를 발표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세 멤버(하니, 다니엘, 민지)와도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후 하니 복귀, 다니엘 계약 해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민지는 논의 중인 상황이다. 어도어는 완전체를 깨더라도 다니엘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어도어는 다니엘과 그의 가족 1인, 민 전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다니엘 등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어도어가 다니엘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431억원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다니엘에게 청구된 소송 액수는 331억원으로 이중 300억원은 위약벌, 31억원은 활동 중단과 광고 촬영 미이행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다. 그외 100억원은 민 전 대표와 다니엘의 모친에게 뉴진스 이탈과 복귀 지연 등으로 인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알려졌다. 다니엘은 지난 12일 어도어로부터의 피소 이후 첫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심경을 전했다. 9분간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다니엘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수백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재판 간 연쇄 반응 뉴진스와의 소송전에서 압승을 거둔 어도어는 이제 급할 게 없는 상황이다. 뉴진스가 이미지 훼손, 금전적 손해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반면, 어도어는 뉴진스라는 이름을 지켜냈다. 특히 다니엘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그간의 사정이 드러나면 여론 자체가 급격하게 기울 가능성도 보인다. 한때 ‘뉴진스의 엄마’로 불렸던 민 전 대표도 코너에 몰렸다. 최근 민 전 대표가 증인으로 나섰던 돌고래유괴단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것도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5년 설립된 돌고래유괴단은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홍보 영상 ‘주차장에서 생긴 일’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는 어도어가 돌고래유괴단과 그 대표인 신우석 감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돌고래유괴단이 어도어에 1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신 감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어도어 측은 “돌고래유괴단 측을 상대로 낸 소송액 11억원 중 법인의 계약 위반 10억원이 인정됐고, 명예훼손으로 별도로 제기한 1억원은 기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고래유괴단은 뉴진스의 곡 ‘디토’ ‘OMG’ ‘ETA’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2024년 8월 ETA 뮤직비디오를 ‘디렉터스컷(감독판)’으로 제작해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일이다. 어도어는 “당시 광고주로부터 해당 영상에 대한 컴플레인을 접수했다”며 “뉴진스 관련 영상 소유권은 어도어에 있고 계약서에 명시된 사전 동의 절차가 없었으므로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돌고래유괴단 10억원 배상 판결 주주 간 계약 해지&풋옵션 쟁점 그러자 돌고래유괴단은 ETA 감독판은 물론 자신들이 운영하던 비공식 뉴진스 팬덤 유튜브 채널인 ‘반희수’에 게시돼있던 뉴진스 관련 영상을 전부 삭제했다. 어도어는 ETA 감독판 영상에 대한 게시 중단을 요청했을 뿐 뉴진스 관련 모든 영상 삭제는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 전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감독판 영상을 별도로 게시하는 것에 대한 구두 협의가 있었으며 어도어 측 주장에 “바보 같고 어이없다”고 말한 바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번 판결이 민 전 대표의 소송에 미칠 영향이다. 민 전 대표는 현재 하이브와 주주 간 계약 및 풋옵션(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뉴진스와 어도어가 벌인 전속계약 관련 소송 등도 판결이 나왔을 당시 민 전 대표와 하이브 사이의 재판에 끼칠 영향을 두고 법조계의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 간 계약 해지 확인 소송과 민 전 대표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풋옵션 행사 관련 주식 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 재판을 열었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주주 간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민 전 대표와 전 어도어 이사진은 풋옵션 행사에 따른 주식 매매대금 지급을 청구한 게 골자다. 이날 하이브는 데뷔도 하지 않은 뉴진스를 위해 어도어에 210억원을 투자하는 등 민 전 대표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민 전 대표가 신뢰 관계를 파괴하고 하이브에 타격을 주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고의로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민 전 대표 측은 어도어를 탈취할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고 투자자를 만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2월이면 결론 난다 법적 흐름은 민 전 대표에게 단연 불리한 상황이다. 모든 소송이 민-하 대전에서 파생된 만큼 각각 재판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이 향후 어도어가 다니엘과 그 모친, 민 전 대표에게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의 선고기일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돼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