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⑤권인숙·김민기 의원에 듣다

“입대하면 24시간 군인입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알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과정이 어땠는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일반적인 사건의 재판이라면 모두를 지켜보고, 판결문까지 받아본다. 군대의 순직 절차 시스템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알 수 있는 정보도 내용도 제한적이다.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가기관도 국방부서 결정한 내용과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군에서 복무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판정해 군에 입대시켰다면, 복무 기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은 국가에 있습니다.” 국가는 신체와 정신에 이상이 없는 장정들을 군대에 가도 괜찮다며 입대시킨다. 군대서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적 책임으로 몰아간다. <일요시사>가 더불어민주당 권인숙·김민기 의원을 만나 이들이 발의한 군인사법개정안, 순직 제도 개선의 필요성 등을 물었다. 

가지 않으면 
없었을 죽음

국방부 순직 심사 기구인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군인의 사망이나 상이를 판단해 순직 결정을 내리기 위해 국방부 산하에 설치된 기구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3명 이상, 8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돼있고, 국방부 장관이 위원장을 직접 임명한다. 취지는 2018년 순직 결정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은 홀수로 구성해 위원들의 순직에 대한 찬성, 반대를 가린다. 또 심사위원은 객관성 원칙을 이유로 전원 비공개다. 회의가 열리면 유가족이 심사에 직접 참여해 소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싸워온 시간에 비해 설명하기에는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 

유가족이 과정을 제대로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순직이 인정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순직 심사 과정은 일반적인 재판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 일반 재판에서는 소송 당사자가 판결 결과와 이유가 담겨 있는 판결문을 직접 받아볼 수 있다. 


반면 순직 심사 이후 유가족은 판결문과 회의록을 바로 받아 볼 수 없다. 게다가 정보공개청구시스템을 통해 회의록을 받아내더라도 최장 3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순직 결정은 유가족에게 중대 사안이지만 기각됐을 경우 심사 과정 중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바로 알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회의록을 유가족에게 즉시 공개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권 의원이 발의했다. 

“순직 심사는 결정 결과만 대략 확인할 수 있을 뿐, 회의록의 내용을 알기에는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굳이 회의록을 받아볼 수 있는 절차를 별도로 마련해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회의록 공개를 하지 않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국방부가 이토록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고 변희수 하사의 결정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회의록에 따르면 변 하사의 순직은 위원 9명의 결정으로 이뤄졌다. 변 하사는 6(반대)대 3(찬성)으로 순직이 거부됐다.

회의록 내용 중 순직을 반대하는 위원 중에는 ▲국방부 책임이 아니다 ▲전역 처분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극단적 선택을 해 인과관계가 없다 ▲국가에 기여하고 사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순직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들이 등장한다.

권 “순직 심사에 투명성 확보 필요”
“국방부 일부 사건들 순직 권고 무시”

결국 국방부서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청이 나오자, 권 의원이 직접 군인사법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회의록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전혀 알 수 없었을 내용이죠. 국방부가 회의록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군인사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국방부의 순직 심사에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가적 효과로 국방부가 국가기관인 위원회 순직 권고도 수용해 순직 인정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권 의원이 발의한 군인사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중앙전공사상위원회의 순직 심사 결정에 대한 회의록을 정보공개청구시스템이 아니라 유족 측에 즉시 전달해야 한다.

또 재심사를 실질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인 위원회에는 결정문과 회의록을 의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기대 효과는 더 있다. 지금까지는 유족이 개인적으로 순직을 입증하는 일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인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를 통해 순직 심사를 재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상규명위는 문재인정부 당시 특별법으로 마련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위원장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국방부가 내부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알려지자 국회 차원서 마련됐다. 

진상규명위를 통해 군 내부의 사건사고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든든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진상규명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있다. 

여러 사건 중 진상규명위는 국방부에 변 하사에 대한 순직 처리를 권고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전역 처분 취소 판결에도 순직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 재판과 
비슷한 절차

전역한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이후에 극단적 선택을 해서 인과관계가 없고, 국가 기여로 사망한 게 아니라는 논리다. 진상규명위가 23쪽에 걸쳐 권고안을 국방부에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진상규명위 측에 달랑 1장짜리 결정문만 보내왔다.

진상규명위는 순직을 권고할 수 있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순직 기각 결정문 내용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재판으로 치면 원고에게 판결문도 주지 않은 꼴이다. 

“일부 사건에서는 국방부가 고인의 피해자성이 부족하거나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순직 권고를 무시합니다. 진상규명위의 출범 취지를 고려하면 국방부의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특별한 사유 없이 진상규명위의 결정의 받아들이는 게 취지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같은 당 전용기 의원이 지난해 6월 특별법 개정안으로 진상규명위가 순직 재심사 요청 시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수용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방위서 계류 중이다. 

이처럼 순직과 관련해 여러 법안들이 발의돼있지만 미비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개선하고자, 의무 복무 기간 중 사망 시 원칙적으로 순직자로 분류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김 의원이 국방위 소속 당시 발의했던 개정안이다.


<일요시사>는 김 의원에게 법안 내용에 대해 직접 질의했다. 

김 의원은 “국방위서 늘 질의하고 스스로 규정했던 내용이었죠. 병무청이 군 생활을 잘할 것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사망에 이르렀는데, 책임 소재를 따질 때 국가가 쏙 빠져 있는 상황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은 순직 판정을 위해 온 가족이 증거를 수집해 군과 다퉈야 하는 일을 원천 차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서 마련됐다. 많은 곳에서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 순직 입증 책임도 유가족서 국방부로 뒤바꾸겠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부처 태도

입증 책임을 뒤바꾼다는 것은 과거 유가족이 해온 일들을 이제는 국방부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해당 법안도 보완할 점이 존재한다. 국방부가 주관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동법의 단서 조항(군인사법 제54조의2)서 ‘직무수행과 관련 없는 개인적 행위를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는 여전히 일반사망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19대, 20대 국회서도 김 의원이 발의한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국방부는 이들 법률안에 대해 ‘타 보훈 관계 법률과 충돌 문제’ ‘군 조직 사기에 미칠 영향’ 등을 언급하면서 반대 의견을 냈고 끝내 법률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무복무로 헌신하는 군인의 처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점 높아져가는 추세다. 헌신에 대한 합당한 보상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방부도 점차 인식을 바꾸긴 했다. 

“법률안 발의 이후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지원단 관계자가 의원실로 연락해온 일이 있습니다. 관계자는 ‘법안의 취지와 내용에 공감한다’며 ‘법률안의 일부 문구와 적용 방식을 조정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실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이번에는 통과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법률안을 심사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법안의 취지와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는 한편, 국방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법률안 통과로 순직 인정을 위해 유족이 직접 자료를 모으고, 국가와 싸우며 고통받는 일은 줄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가 남았다.

국방부의 순직 심사와 국가보훈처의 유공자 등 심사가 따로 진행되는 ‘이원성’이 여전히 유족을 괴롭히는 것이다. 군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없었을 죽음이다. 이제는 국가가 데려간 책임을 인정하고, 고인과 유족을 예우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책임 소재 국가만 빠져 있는 상황”
“의무 복무 군인의 모든 순간이 곧 헌법”

또 현재 순직이 기각됐을 때 이를 재심사하는 일도 국방부가 진행한다. 유족 입장에서는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체계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책임질 부분과 순직 여부를 군이 심사해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근복적으로 손질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앞으로 국회와 정부서 해결할 과제죠. 다만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현행의 제도를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방부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의원 3분의2 이상을 외부 전문가로 임명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법으로 출범한 진상규명위는 오는 9월 활동이 종료된다. 일각에선 위원회 연장의 필요성 및 이를 대체할 상설기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진상규명위는 과거의 사건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왔고, 사건의 실체를 밝혀왔다.

정권을 막론하고 잊혀질 뻔했던 사건들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면서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활동 종료를 앞두면서 신청이 불가하고, 조사하지 못한 사건들도 쌓여 있다. 

“진상규명위 운영 기간을 연장해 조사를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군에 가지 않았으면 없었을 죽음을 군이 심사하는 체계는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진상규명위 같은 기구가 상설화돼 군 사망사고의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과거에 비해 순직 인정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군에서도 모든 시간과 과정이 직무와 관련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더욱 전향적인 인식이 필요한 때다.

모든 의무복무 군인들은 국가기관인 병무청이 병역 판정 검사를 실시해 입대한 이들이다. 군 복무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정받아 입대했다. 어떤 이유로든 군에 가지 않았으면 없었을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국가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활동 종료 
연장 필요

“국방부는 직무와 관련없는 사망에 대한 순직 인정이 군 내 사기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의무복무 군인의 모든 시간은 헌법이 부여한 국방의 의무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시간이죠. 훈련을 받고, 근무를 서고, 영내서 휴식을 취하든, 휴가를 나가든 마찬가지입니다. 입대한 순간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의무복무 군인의 모든 시간은 곧 헌법인 셈입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종료 앞둔 군사망위원회 고? 스톱?

올해 9월 활동 종료 예정인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의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 3일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진상규명위의 활동기간을 3년 더 연장하고, 오는 9월13일 현 위원들의 임기 만료와 함께 새롭게 위원을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위원 임기 역시 3년으로 정한다. 

특별법은 당초 3년짜리 ‘한시법’으로 제정됐었다.

당시에도 2021년 9월 3년간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활동 시한을 2년 늘렸다.

그러나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공개한 부처별 정비 대상 명단에 이미 진상규명위가 폐지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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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