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⑦<르포> 순직 재심사 동행 취재

보류서 인정까지 10년 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취재 기간이 반년을 넘어가면서, 기각·보류된 ‘34건’ 중 일부가 재심사 절차를 밟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요시사>는 한 유가족의 협조를 구해 재심사 당일의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아들을 위해 10년을 기다린 아버지의 사연. 그 세월 곳곳에는 유가족들의 고통과 순직제도의 모순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지난 3월10일, 정재수씨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쫓긴 탓이다. 옷장에서 오래돼보이는 밤색 정장을 꺼내 들었다. 잘 다려진 옷 아래로 아들 고 정동진 상병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앞에 위패와 조화, 향과 성냥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죽은 사람 사진을 밖에다 빼놓으면 안 된다고 해서…. 옷장 열어볼 때마다 한 번씩 보는 거죠.” 

옷장 속
아들 사진

정씨는 멋쩍은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정 상병의 사진이 놓인 옷장은 정씨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있었다. 침대 발치 서랍장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약봉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처방받은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나날의 반복.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불면증이 사라질 리도 만무했다.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어떻게 이것 하나만이라도….’ 지난 10여년간 정씨의 유일한 소원은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이었다. 통 이루지 못했던 소원은 어느샌가 마음의 병으로 변했다.


이날은 정 상병의 순직 재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2012년 여름 사망한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을 위해, 그동안 정씨는 보훈청·법원·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진상규명위의 순직 인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정 상병 사례를 한 차례 ‘보류’로 판정했다. 

정씨는 이번에 직접 국방부를 찾아 심사위원들을 설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심사 과정서 유족의 방문 진술은 선택사항이다. 저번엔 두방망이질 치는 마음에 서류만 보내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던 그였다. 정씨는 그때 부족했던 ‘한끝’이 자신의 호소는 아니었을지,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고 했다.

“정말 착한 아들이었어요. 저한테도 잘하고, 동생이랑도 잘 놀아주고….” 

정씨는 잠시 앨범을 펼쳤다. 정 상병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럿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엿한 성인이 된 모습까지. 시종일관 웃고 있던 ‘착한 아들’의 사진 일대기는 20대 초반에서 영영 멈춰버렸다. 

정오를 겨우 넘긴 시각, 정씨는 문밖을 나섰다. 국방부와 약속한 시간은 오후 세 시. 정씨 집이 있는 경기 남양주서 국방부가 위치한 서울 용산구까지는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봄으로 접어든 날씨.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그를 반기는 듯했지만,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실 오늘도 별로 예감이 좋진 않아요. 그래도 이번엔 직접 가니까 잘 이야기해봐야죠.” 


어느덧 고속도로에 오른 차 안에서, 정씨와 대화를 나눴다. 정 상병과 그의 사연도 더욱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순직 재심사 당일 자택서 국방부까지 동행
헌병대 사실 왜곡 그대로 인용…재심사 요구

정 상병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이던 2012년 7월24일, 집에서 고열·마비 증세를 보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부검 결과 정 상병이 평소 복용하던 경구용 항우울제를 스스로 다량 복용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군 헌병대는 죽음의 원인을 모두 정 상병에게 떠넘겼다. 정 상병이 입대 전부터 우울증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고, 이 때문에 복무 부적응을 겪었다는 것. 거기에 부모·이복형제와의 갈등 등 개인사가 겹친 게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군은 정 상병의 가족관계부터 학교 생활기록부까지 이잡듯 뒤졌다. 정 상병 삶에 남았던 각각의 특이점들은 군에 의해 연결되고, 재구성됐다. 

정씨는 군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정씨 설명에 따르면 정 상병은 입대 전까지 정신질환 관련 약을 복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병교육대서부터 복무 부적응을 겪으며 정신질환이 발병했고, 자대 배치 이후 읍대장 및 선임병의 질책으로 상태가 악화됐다. 

군이 문제시했던 가족관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 상병과 부모, 이복형제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정씨는 “(정 상병이) 큰형과 나이 차가 많이 났는데, 서로 정말 돈독했다. 형이 (정 상병을)많이 아꼈다”며 “둘은 그냥 우애 좋은 형제였을 뿐인데, 이복형제면 무조건 서로 미워한다고 생각하나? 이복형제가 있으면 불우한 거냐”고 반문했다.

정 상병은 군에서 작성한 설문지 속 ‘우리 가족은?’이라는 질문 옆에 “가난하지만 화목하다”고 적었다.

진상규명위는 2021년 10월 나온 결정문을 통해 정씨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판단했다. 결정문에는 정 상병이 입대 직후부터 보인 복무 부적응 증상이나 읍대장·선임병이 가한 질책 내용 등이 자세히 기술돼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 상병은 약 복용 전날에도 읍대장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진상규명위는 결정문에 “군 입대일 이전 건강보험요양급여 등에서 정신과 진료 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며 “망인은 신교대 입소 후 대인기피증 증세를 호소했고, 생활관서 잠을 잘 수 없어 교관연구실서 취침했다. 군 입대로 상당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고 대인관계에 급격한 어려움이 발생한 것”이라고 적었다.

소속 부대
관리 소홀


이어 “망인은 입대 이후 정신질환이 발현됐고, 자대 전입 후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업무 처리를 하지 못해 받은 스트레스와 질책으로 자해를 시도하는 등 정신질환이 악화돼 자해 사망에 이르렀다”면서 “망인의 자해 사망은 읍대장 및 선임병의 질책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진상규명위는 소속 부대의 관리 소홀도 문제 삼았다. 정 상병은 자대 배치 이후 꾸준히 군 복무에 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의가사 전역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위 조사에 따르면 소속 부대는 정 상병의 상황을 알면서도 국군수도병원 진료 예약 이외에 별다른 관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결정문서 “소속대의 대처와 관리는 안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정씨는 “전역 요청이 제때 받아들여졌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우울증 약이라도 한 번에 70봉지씩 주는 게 아니라, 부대서 하루하루 먹을 양만 끊어서 줬어도 괜찮았을 수 있다”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갈수록, 소속 부대가 관리를 너무 못해줬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토로했다.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진상규명위의 결정문을 보고도 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 근거로는 이미 반박된 군 헌병대의 주장을 들었다. 이번이야말로 정 상병 순직이 인정될 기회라 여겼던 정씨는 좌절했다. 이미 모든 입증자료를 넘겨서 신청한 심사였다.


명예 회복
동분서주

재심사 때 보강자료랍시고 제출한 서류는 기존 주장을 방증할 친한 동기의 진술서 몇 장뿐이었다. 정씨의 ‘별로 좋지 않은 예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잘 안되면…차라리 저도 그냥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참을 차창 밖만 바라보던 정씨는 이 말과 함께 오열하기 시작했다. 정 상병의 비극적 결말은 곧 정씨의 또 다른 비극의 전말이었다. 그는 정 상병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과 이혼했다. 

“그게 모든 이유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게 정말 큰 이유였던 건 사실입니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그는 직장에 다니는 대신 정 상병의 명예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생전의 정 상병처럼, 정씨의 약 봉투도 점차 두꺼워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정 상병의 죽음에 대한 군의 입장은 1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다.

재심이 있던 날로부터 약 3주 전, 정씨는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 상병의)엄마잖아요. 어쩌면 저보다도 더 간절히 순직이 되길 바랐을 거예요. 이 사람이 아들 죽고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근데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사고로….” 

그는 이 소식을 담은 진정서를 국방부에 보냈다. 그에겐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이 간절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정씨는 국방부 종합민원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종일관 굳어있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국방부 옆, 대통령실을 겨냥한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쿵쿵 울렸다. 경호원들은 카메라를 보고 다가와 “어떻게 왔냐”고 캐물었다. 심란한 마음을 달랠 길 없이, 정씨는 민원실 문을 열었다.

10년 넘도록…가정도 일상도 사라졌다 
뒤늦은 순직 인정…허탈한 한숨과 의문

아직 약속 시간은 30분 넘게 남아있었다. 시끄러운 바깥과 반대로, 민원실 내부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가끔 울리는 전화기 소리만 조그맣게 들렸다. 접수를 마친 정씨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얼마 뒤 국방부 관계자들이 들어와 정씨를 찾았다.

관계자들은 정씨를 차에 태워 청사 내부로 들어갔다. 

‘끝나면 연락 달라’는 문자 한 통을 정씨에게 보냈다. 그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다 끝났다’는 정씨의 답신을 받았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외려 당혹스러웠다. 

“앞에서 대기하다가 7분, 10분 정도 심사한 거 같아요. 위원장이 이것저것 물어보긴 하더라고요. 주변 위원들은 (제게)뭘 묻진 않았는데, 제 말을 수긍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국방부는 정씨를 돌려보내기 전 “1~2주 뒤에 심사 결과를 통지해주겠다”고 안내했다. 이미 기다림에 익숙한 정씨의 표정은 초연해 보였다. 그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정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로부터 약 3주 뒤였다. 정 상병은 사망 11주기를 불과 석 달 앞두고 결국 순직을 인정받았다. 정씨 손에 쥐어진 건 결정문 한 묶음과 ‘순직 인증서’ 복사본 몇 장뿐. 마냥 기쁘게 들리진 않는 목소리에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흘렀다. 정씨는 “왠지 모르게 허탈하다”고 입을 뗐다.

“조금만 더 빨리 잘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죠. 애 엄마가 이걸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근 10년을 노력했습니다. 그사이에 가정도 완전히 파괴되고. 좋다기보다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재심 과정서 ‘판’을 극적으로 뒤집은 증거란 없었다. 정씨조차도 왜 순직이 저번에는 ‘보류’됐고, 이번에는 ‘인정’됐는지 몰랐다. 어쩌면 1년 전에, 또 어쩌면 10년 전에 났어야 할 결정이 뒤늦게 바로잡아진 건 아닐지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면 한순간에 아들을 잃은 황망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괜한 죄스러움에 얼룩진 세월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왈칵 밀려드는 머릿속에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맙다”는 정씨의 말이 메아리쳤다. 

이제야
일상으로

정씨는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일자리도 다시 구했다. 지난 17일, 퇴근했다는 그와 간만에 안부를 나눴다. 이날 <일요시사>는 정씨에게 오는 9월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정씨는 유가족 입장에서 진상규명위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제가 제일 감사드리는 곳은 진상규명위다. 거기서 조사를 잘 해줘서 제 아들이 그나마 순직을 인정받은 거죠. 엄청 도움이 된 단체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위원회가 없어지지 않는 게 (유가족들에게)좋을 것 같습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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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