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②아빠의 멈춰버린 6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6:59: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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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의대생은 전역하지 못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고는 아들이 병원에 있다는 ‘비보’를 전해 듣기 하루 전 발생했다. 10시간 이상 방치돼 사망한 아들. 국방부와 아들의 동료는 끝내 아들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았다. “당신 아들이 개인 실수로 사망했다”고 버틸 뿐이다. 아빠의 시간은 2017년 1월에 멈춰있다.

“아들 용민이가 군에서 죽은 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벌써 6년이 지났는데, 비통한 마음은 매일 커집니다. 의사로서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채 떠난 아들이 너무 불쌍해, 마지막이라도 의사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라고 장기기증했습니다.” 군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이득희씨의 말이다. 이씨의 아들 이용민 중위는 2017년 1월3일 포천의 한 군부대서 군의관으로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 부대선
무슨 일이…

<일요시사>가 이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중위의 방은 깔끔하게 정리된 의과대학 학생의 방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중위가 학교서 돌아올 것 같았다. 돌아와서는 가방을 풀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은 뒤, 바로 공부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군에서 사망한 아들은 돌아올 길이 없다. 

이 중위는 유난히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특목고를 다녔고 수능은 전부 1등급을 받아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공부가 힘든 와중에, 이 중위는 어머니와 새벽 4시까지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도 해외에 나가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 중위가 사망한 뒤, 이씨의 가정은 파괴됐다. 어머니는 아예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이 이씨를 더 큰 충격에 빠트렸다.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이 중위의 사망은 ‘순직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장례가 끝났지만, 이 중위는 순직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군 임시 봉안소에 안치됐다. 지금도 이씨와 이씨의 아내는 아들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아들이 떠난 지 6년이 지나자 매일 가던 봉안소를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갔다. 그러나 비통한 마음은 나날이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

이 중위의 사망 경위는 단순하지 않았다. 사고는 이 중위가 사망하기 21일 전인 2016년 12월14일에 발생했다. 그 날 저녁 이 중위는 군의관 입대동기 A 중위, B 대위와 함께 저녁 회식 후 노래방에 갔다. 

군의관은 일반 의무병과 달리 장교 신분으로 복무 기간도 33개월로 긴 편이다. 장교라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이 중위와 입대 동기는 모두 군 인근 관사에서 10분 떨어진 부대로 출퇴근했다.

노래방은 부대 인근의 지하에 있었고, 화장실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위치했다. 노래방 주인 C씨에 따르면, 당일 오후 10시40분경 노래방 입구인 계단 하단에서 ‘쾅’하는 큰 소리가 났다. 놀라서 나가보니 사람이 넘어져 얼굴은 지하 출입구 바닥에 닿아 있었고, 다리는 계단에 걸쳐져 쓰러져 있었다.

놀란 C씨는 황급히 119에 출동을 요청했다. 노래방과 700m 떨어진 소방서에서 소방차, 소방관 2명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10㎞ 떨어진 곳에서 구급차와 전문 구급요원이 오고 있었다. 

군의관 동기들과 부대 인근 회식자리 사고
긴급구호 없이 관사에서 10시간 방치 사망


B 대위는 출동한 소방관에게 “우리가 의사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소방관은 무전으로 오고 있던 구급차를 돌려보냈다. 해당 사건은 2017년 10월31일 국방부 보통검찰부 공소장에 기록돼있다.

그 길로 A 중위와 B 대위는 이 중위를 부축해 군 관사로 데려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B 대위는 새벽 4시30분에, A 중위는 아침 7시에 관사를 나섰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이 중위가 출근을 하지 않자, A 중위는 관사 관리병에게 이 중위를 깨워달라고 요청했다.

관리병이 관사를 방문했을 때 이 중위는 의식이 없었고 침대 등에 구토물이 있다며 상사에게 보고했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 이 중위의 병명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이었다. 국군수도병원서 뇌수술을 시행하고 서울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위는 중환자실서 입원 치료했지만 2017년 1월3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최종 병명은 ‘외상성 경막상 출혈’이었다.

“사실 군에서 연락온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부대에선 연락도 없었으니까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병원서 연락 와서 갔더니, 아들 옷은 다 벗겨져 팬티만 입고 누워있었습니다. 아들 얼굴을 보자 마자 ‘늦었구나’하는 감이 왔습니다.”

이 중위는 동료 군의관 두 명이 긴급 구호조치 없이 관사에 10시간가량 방치돼 사망했다. 만약 사고 즉시 긴급 구호를 실시했다면 어땠을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결정문(이하 결정문)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자세히 기재돼있다.

결정문에는 ‘망인은 외상성 경막상 출혈 진단을 받고 두개감압술 수술을 시행했으나 사망했다. 경막상 출혈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 사망률은 0% 또는 0.8%에 해당한다’고 기록돼있다. 즉, 동료 군의관이 후송 거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 이 중위가 생존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유가족이 
직접 증명

“아들이 119 구급차를 통해 병원에 바로 갔었으면 100% 살았겠죠. 이런 상황인데도 국방부는 순직을 기각시켰죠. 이게 상식적으로 맞습니까? 24시간을 의무병으로 일했던 아들입니다.”

국방부는 이 중위의 순직을 찬성 4명, 반대 5명으로 1차 기각(보류)했다. 기각 사유는 중앙전공사상심사 회의록과 결정문에 나오는데 아래와 같다. 

▲술을 마시고 발생한 사고 ▲개인 친목 회식이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이 없음 ▲이 중위 사망 장소는 군 관사로 영외에 있는 점 ▲동료 군의관의 ‘군의관’ 업무과실이 아닌 ‘의료인’으로서의 업무과실이기 때문 등이다.

이씨는 국방부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씨는 이 중위가 군의관으로서 어떻게 근무했는지, 아들의 사망 원인이 개인 과실이 아니라는 것, 동료 군의관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했다. ‘직무 연관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먼저 군의관의 업무시간이다. 통상 근무시간은 존재하지만, 이 중위는 24시간 근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씨가 이 중위 관사에 방문했을 때, 밤중에도 아픈 장병이 있으면 부대로 나가곤 했다. 

이씨는 이 중위 장례식장서 오열하던 한 장병을 기억해 수소문했다. 당시 의무병이었던 그는 휴가 중이었다.

이씨가 연락하니 “우리 군의관님이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니다.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해당 의무병은 이씨에게 “이 중위는 퇴근 후에도 환자가 발생하면 유선을 통해 처방을 요구하거나 진료를 했다. 의무실은 의료진이 군의관 한 명이기 때문에, 군의관이 퇴근을 한 후 발생한 환자는 유선을 통해 문의하고 처방을 따른다”고 의견서를 작성해줬다.

영내냐
영외냐

이 중위 선임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선임은 “이 중위는 간부 및 용사 이름과 치료 병명을 다 기억했다. 주말 및 새벽에도 환자가 발생하면 전화로 진료해 처방했고 응급하다고 판단되면 당직계통으로 조치가 되도록 행동했다”며 “전입 신병 적응이 어려울 때 의무실을 찾아 상담받고 호전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고가 발생한 날 대대 전 간부 회식이 있었는데 속이 불편한 간부에게 약을 처방해줬다. 회식 종료 후 동료와 간단히 식사한다고 보고도 했다”고 24시간 근무를 시사했다.

다음은 이 중위에게 긴급구호하지 않은 두 명의 군의관이다.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3항에는 ‘군인 등의 상급자 및 군보건의료인은 군인 등으로부터 진료를 요청받거나, 진료가 필요한 군인 등이 있는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면 안 된다’고 기재돼있다. 


결국 동료 군의관 2명이 군보건의료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한 이씨는 두 사람을 상대로 민·형사 재판을 진행했다. 이씨가 변호사 없이 참석했던 재판만 30번이 넘었다. 

재판 과정 중 A 중위와 B 대위는 “이미 퇴근한 시간이기 때문에 군보건의료법에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군보건의료법은 적용 시점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간, 장소, 환자 등 지휘관계 성립 여부에 관계없이 폭넓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

결국 군보건의료법이 적용되면 ‘퇴근했기 때문에 군보건의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 범위 내에서는 퇴근이 아닌 셈’이 된다.

“1심 판결 때 판사가 군의관 두 사람에게 ‘피해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다쳐 119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소속 부대에 알려질 경우 징계 등 불이익 처분을 받을 것을 우려해 성급히 119 구급대원들을 돌려보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죠. 그전까지는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아서….”

1차 순직 기각 ‘찬성 4명 VS 반대 5명’
“복무 관련 죽음” 판결에도 묵묵부답 

결국 두 명의 군의관 범죄 사실이 군 복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래방 건물에 대한 소송도 진행됐다. 이씨는 건축 전문가와 함께 포천의 노래방을 방문했고, 해당 전문가는 “이 건물 계단은 불법 개량된 것”이라고 했다. 해당 노래방은 ‘24시 노래방’으로 술을 마신 후 방문하는 손님이 많았다.

노래방 주인은 ‘계단의 유효 너비를 줄이고, 난간이나 손잡이를 제거했음’의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이 중위가 계단서 넘어진 것은 ‘개인 과실’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A 중위와 B 대위가 군 관사에서 잘못한 점도 지적했다. 이 중위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2016년 12월17일 육군 본부 감식반 7~8명이 현장 감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 중위의 혈흔이 숙소 여러 곳에 발견됐다. 당연히 혈흔은 노래방 계단 바닥에도 흥건했다.

이런 상황서 두 사람은 이 중위를 두고 출근을 한 것이다. B 대위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새벽 4시30분 자대 출근을 위해 숙소를 나갔다는 사실 ▲노래방서 나와 이 중위를 양쪽서 부축하고 걸어간 A중위와 B대위의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었던 점 등을 보면, 만취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CCTV상 이 중위는 고개를 떨군 상태서 허리가 굽혀져 부축 이동했다. 누가 봐도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당시 관사에 누워 있는 이 중위는 누가 보더라도 ‘과음으로 잠에서 깨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상처와 멍 자국, 그리고 핏자국이 있고 심각하게 부어 있다. 당시 모습은 사진으로 도 남아 있다.

군 복지시설은 투숙한 현역 군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관리관이 이 중위를 봤지만, 그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30분으로, 3시간의 공백이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국방부는 군 관사를 ‘영외’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정문에는 “군 장교 숙박이 허용된 독신자 숙소·관사·군 복지회관 등 군 복지시설이 영외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발생한 사고는 순직대상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교는 
어렵다”

가족의 시간이 멈춘 지 6년째. 아들은 이씨가 명예퇴직했던 그해 떠났다. 이씨는 자동차 연구직이었지만,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상을 모두 버렸다. 그는 결국 아들의 죽음이 ‘아들의 과실이 아닌 것’을 밝혔다.

반면, 국방부는 여전히 묵묵부답 중이다. 이 중위가 술을 마셨으며 영외에 거주했고, 직무와 연관이 없다는 이유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순직 재심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이 ‘장교라 순직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군의관도 의무복무병이죠. 국방부가 이를 모를 리도 없구요. 아들이 순직이 된다고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최소한의 위로입니다. 유가족이 ‘내 아들이 자신의 실수로 죽은 게 아니다’를 증명해야 하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정말 이런 나라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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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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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