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⑧유족 위해 싸우는 강석민 변호사

멀고 높다, 순직의 벽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대부분의 사람은 순직과 국가유공자에 대한 차이를 잘 모른다. 일반적으로 순직이라는 단어는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인식된다. 순직의 본래 의미는 직무를 다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은 순직 인정 여부를 직무 관련성과 연관짓는다. 병사의 경우에는 24시간 군인 신분임에도 순직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 사유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순직이 인정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유가족의 피말리는 싸움이 시작된다. 순직임을 입증하기 위해 유가족이 직접 나서야 해서다. 순직 전문 변론 변호사인 강석민 변호사는 망자에게 군인으로서의 예우를 되찾아주기 위해 유가족과 함께 싸우고 있다. <일요시사>가 강 변호사를 만나 군의 행태, 순직 제도의 문제점, 입증 시스템의 미비점 등을 물었다. 

그들만의
죽음 구별

대체적으로 순직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순직Ⅰ형은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작전, 임무 중 사망한 경우다. Ⅱ형은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 대상이다.

Ⅲ형은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 시 인정받을 수 있다. 극단적 선택의 경우 대부분이 Ⅲ형으로 인정된다. 극단적 선택이 순직으로 인정받게 된 기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순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서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시 보통심사위원회의 심사 또는 국방부 소속 중앙심사위원회의 재심사를 거쳐 국방부 장관 또는 참모총장은 순직의 기준 및 범위를 판단해 순직을 인정한다.


순직이라는 말은 군인사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 국립묘지법서 사용하는 단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다가 공무상 관련성으로 사망한 사람과 국가적으로 예우가 필요한 경우를 순직이라고 표현한다. 순직의 개념은 관련 용어로서 국가유공자법, 보건 보상 대상자법에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상 순직이 무엇이라고 정의 내려져 있지 않다.

“순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법은 군인사법입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다가 공무상 원인으로 관계돼 공무 관련성으로 사망한 사람이죠. 국가가 꼭 예우해줘야 하는 경우를 순직이라고 표현합니다. 순직이라는 개념은 결국 관련 용어로서 국가유공자법이나 보건 보상 대상자법에 있습니다.”

통상 순직이 인정되면 국가적 차원서 보상이 이뤄진다. 군인사법서 군인이 사망한 경우 순직으로 구분한다는 의미는 군에서 군인에게 사망을 구분할 때 종류를 정한다는 의미다. 순직 자체가 법률적인 처분을 내릴 수 없다는 걸 대법원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법률적인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소리다. 

“순직 정의 정확하게 내려져야”
예우 지켜준다며 노골적 회유

“순직이 인정된다고 해도 사망한 군인의 유족이 법률적으로 이익을 얻는 게 없습니다. 다만 군인재해보상법에 따라 사망보상금을 받을 수 있고, 국립묘지 안장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법이나 보훈보상대상자법에 따라 보훈 보상금을 수령할 수 있어요. 순직이라는 게 법률적인 효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유족한테는 예우나 보상으로 나아갈 때 제일 중요한 단계죠. (순직은)법률상 처분이 아니지만, 처분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순직이 소송의 대상이 아니라는 셈이다. 순직 관련 소송 중에서는 법률상의 처분이라고 주장하며 소송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법원서 밝히고 있듯 법원에서는 전부 처분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유가족에게는 순직을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 소송에서는 각하 판결이 이뤄진다.


“순직은 국가보훈처의 심사를 거치지만 사망보상금은 그냥 주어집니다. 단지 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처분하는 기간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순직을 인정해달라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순직이 인정되지 않으면 국립묘지 안장 신청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순직이 거부당한 상태서 유가족이 안장 신청을 한다고 해도 거부되는 탓이다.

이때 유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안장 거부 취소 소송밖에 없는데 결국 소송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해당 과정서 앞선 논리들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법적인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순직의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망 책임
떠넘기기

강 변호사는 결국 순직의 개념이 정확히 정리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군인사법서 순직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 내리고 순직이 인정되면 어떤 효력이 있는지도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사법서 순직이 무엇이라는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순직이 되면 어떤 효력이 있다고 규정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자기들(군)은 여기저기 쓰고 있으면서 개념을 통일적으로 정한 건 아닌 셈입니다.”

순직 인정은 직무 연관성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업무 등과 관련이 있어야만 순직으로 인정된다.

순직이 기각된 사례를 보면 사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특히 의무복무한 군인들이 사망했을 경우 공무 관련성을 개인적인 부분과 겹쳐 순직을 인정하는 부분을 좁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의무복부 군인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간 사람으로 나라에서 부른 이들이다.

“병사의 경우 24시간 전체가 복무 연관성이 있어요. 소위 의무 이행을 하러 간 사람에 대해서 오히려 예우나 보상을 국가가 책임지려고 해야 합니다. 군 내부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며 막는 건 안 돼요. 개인적인 사유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 안 하면 결국 보상과 예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막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은 이뿐만 아니다. 강 변호사는 사망 유형이 나뉘어 있는 부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Ⅰ형은 전투 등 예외적인 상황이라 보상금 등에서 차이가 나지만 Ⅱ형과 Ⅲ형은 보상금 차이가 없다. 모두가 군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사망했는데, 군에서 죽음을 유형으로 나눠 보상금으로 차별화하는 행태를 벌이는 셈이다. 

보너스 내지 생색내기 수사
“입증 책임 전환시켜야 한다”


“순직이라는 개념은 과거에 참 아이러니했죠. 지금 빚어지는 상황들과 비슷합니다. 순직 인정을 받기 어려웠으니까요. 오히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게 쉬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과거 이런 예우는 국가보훈처로 보냈어요. 한마디로 설거지해주는 형식인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순직 심사처인 국가보훈처는 2012년 국가유공자법과 보훈보상자법을 이원화해 유형이나 기준을 시행령서 바꿨다. 국방부는 이걸 그대로 가져와서 유형으로 만들었다. 폭을 넓히고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시대적 흐름을 국방부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온 게 순직 유형을 만들자는 부분인데, 유가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군 복무하다가 희생된 경우, 단계를 나눠 보상한다는 게 국방부의 논리다. 

“Ⅱ형과 Ⅲ형이 보상금 차이가 없다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유형을 구분해놓고 군은 유족에게 아주 기만적으로 ‘순직 처리를 해주겠다. 순직도 좋은 순직이 있고 안 좋은 순직이 있다’면서 유형을 이야기해요. 최대한 Ⅱ형으로 순직이 되면 나중에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이죠. Ⅲ형은 보훈보상대상자밖에 안 된다는 노골적인 회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직이 결정되기 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확한 수사와 조사다. 강 변호사는 사망사고에 대한 조사 초점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사망 사건 조사라는 게 직접적인 사인 즉 자살 및 타살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우나 보상 문제가 굉장히 큰 부분이다. 

통상 변사사건 조사 중 망인이 사망에 관련된 어떤 범죄 행위가 나오면 별도로 형사 절차로 입건해 형사 사건 수사를 다시 하는 단계를 거친다. 


진실보다
장례부터

“모든 과정이 유가족 입장에서는 예우나 보상에 관련된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망 원인에 대해 직접적인 사인이 밝혀진 다음 우리(군)가 잘해서 예우나 보상을 받게 해드린다는 보너스 내지는 생색내기 수사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입증의 책임이 유가족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순직의 문이 조금씩 넓어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해 말 군인사법이 일부 개정돼 국가서 군 복무 중 사망한 의무 군인의 경우 원칙적으로 순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오히려 순직이 아닌 경우를 군에서 밝히라는 취지의 법안이었는데 입증 책임 주체의 전환이 이뤄진 셈이다. 앞으로는 순직이 아니라는 것을 군에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통 수사기관은 범인을 두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통해 범인임을 입증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입증의 책임을 유가족에서 군으로 전환하는 것이지만, 강 변호사는 앞으로 순직의 문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입증 책임을 전환시키면 원칙적으로 순직이 됩니다.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군사경찰이 순직이 아닌 이유를 면밀하게 조사해 밝히게 되면 훨씬 더 순직의 문이 넓어질 수 있어요. 그러면 변사사건에 대한 조사도 지금처럼 극단적 선택, 타살만 가리는 조사가 되지는 않죠. 변호사 활동을 하다보면 사망사건 조사 범위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결국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사실상 군사경찰이 입증해줄 책임은 없다. 군에서는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길 원할 때가 많다. 유족에게는 언론 접촉하지 말도록 권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말을 잘 듣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런 부분에 개선이 있어야 책임 소재를 명확히 정할 수 있다는 게 강 변호사의 주장이다. 

입증 책임을 군에 넘겨 놓으면 군사경찰이든, 군검찰이든 순직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군 복무와 관련 없는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따질 수 있다. 

대충 빨리 정리하고 싶은 이유?
군 입장선 죽은 인력 필요 없어

“자기들의 책임이 없는 상황서 군이 번거롭게 밝히려 하지 않아요. 군 입장에서는 진상을 밝히는 게 유가족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고, 이 과정서 문제점이 계속 생깁니다. 과거에는 군이 전문성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전문성이 상당히 보완됐어요. 문제는 근본적인 부분에 개선이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 제가 사망사건 조사를 갔을 때 군사경찰은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군은 계속 뒤로 나앉으려는 행태만 보인다. 책임 소재 자체에서 빠져나가려는 모습이다. 결국 이 상황서 유가족이 유일하게 무기로 삼을 수 있는 건 망자의 시신을 미인수 사체로 남기는 일이다. 군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고, 군 입장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으로 여긴다.

군의 본래 존재 이유는 전투다. 전투는 가용 전투 수단이 제일 중요한데, 이 중 인력이 가장 중요하다. 군 입장에선 죽은 인력은 필요가 없다. 정리되지 않으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내재돼있다. 빨리 정리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군은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가족에게 무조건 빨리 장례를 치르라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게 하지 않으면 유가족이 민원도 제기하고, 언론과 접촉할 가능성이 커서죠. 빨리 장례를 치러야 사망 원인을 군에서 없앨 수 있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증폭돼 문제가 생기고, 군은 일상적인 운용이 불가하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집니다.”

국방부는 군 관련 사망사건과 관련해 부정적 어조로 일관한다. 자신들의 잘못이 없다는 부분을 내세운다.

앞서 고 변희수 하사의 경우에서도 법원이 강제 전역 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국방부는 자신들의 전역 처분이 온당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군인재해보상법 등 관련 법안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정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개선됐지만
갈 길 멀어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는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해요. 처음 시작부터 잘못됐습니다. 군이 유가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망자에 대한 예우를 위해 법률적인 책임이나 검토를 담보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군인사법, 군인복무기본법 등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많이 생긴 지금이 적기입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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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