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④‘의심 자초’ 초동수사 한계

여전히 군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잘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국군의 ‘자체’ 수사 결과와 순직 결정의 낯뜨거운 공통점이다. 단지 유족들의 현실 부정 때문일까? 그보다 전문가는 ‘과정’을 문제삼는다. 폐쇄적인 군 초동수사 과정과 이에 기초한 순직 여부 판단이 신뢰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관련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아직 갈 길은 요원하다. <일요시사>는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을 만나 군 초동수사의 한계를 물었다. 

“유가족이나 국민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불신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시행 1주년을 앞둔 개정 ‘군사법원법’을 이같이 평했다. 군의 자체 수사권 중 일부를 민간 경찰로 넘기는 게 개정법의 골자인데, 실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이랬다
저랬다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수사 결과와 이를 근거로 내려진 ‘순직 불허(일반 사망)’ 판정. 유족들의 애끓는 반론은 우리 군의 고질병인 폐쇄성, 불공정성과 맞닿아 있다.

군 수사당국의 봐주기 수사·부실 조치 논란을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일례로 이 개정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결정적 계기는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것이다. 특검 과정서 드러난 진실에 여론은 분노했다. 이는 곧 군 사법개혁 요구로 귀결됐다. 

이 중사는 사망한 지 18개월만인 지난 2월에 들어서야 순직 인정을 받았고, 특검이 재판에 넘긴 피고인 중 6명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 달에 나온다.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사건이 법 개정을 이끌 정도로 반향이 컸다. 김 국장은 “‘군의 자체 처리(수사)를 믿기 어렵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의 수사·재판권이 군에서 민간으로 이전됐다. 군 당국이 변사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하다가도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면 민간이 수사·재판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

문제는 개정법이 원안서 너무 후퇴해 통과된 탓에, 본래 기대했던 것만큼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누더기 법안’이 된 셈이다. 일례로 성폭력 범죄는 민간이 수사하게 됐지만, 2차 가해 조치나 수사는 여전히 군이 맡는다. 

김 국장은 국방부의 극심한 반대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평시에는 군의 사법 수사 기능을 다 민간으로 이전하자는 것이 원안이었습니다. 국회에도 그런 법안이 많이 발의돼있었는데, 국방부가 너무 심하게 반대해서 한참 후퇴한 지점서 합의가 이뤄진 겁니다.”

특히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라는 대목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군이 초동수사 과정서 자의적 선별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군은 개정법 시행 이후로도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인가’라는 1차적 선별을 통해 사망사건 수사를 민간으로 넘길지 말지 직접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더군다나 선별 기준조차 모호하다.

김 국장은 “우리 법체계에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란 개념이 없다.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나? 내가 누군가에게 욕을 해서 그 사람이 사망했다고 하면, 그것도 사망의 원인으로 볼 수 있을지 애매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살인·상해치사 등 일부 명백한 범죄행위 이외에는 수사기관의 임의적 판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재 법체계 아래에선 그 판단 주체가 군”이라고 부연했다.

신뢰 잃은 군, 민간으로 넘기려 했지만…
“국방부 반대에 개정법 후퇴…유명무실화”


개정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사건 수사의 민간 이전 비율은 저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 사이 연평균 65.5명이 군대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반년이면 통상 30명 안팎의 극단적 선택 사망자가 나온다는 계산이다. 총기나 폭행 등이 사인인 군기사고를 포괄하면 그 수는 더욱 커진다.

하지만 국방부가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개정법 시행 이후 약 반년간 민간으로 이관된 군인 관련 범죄 410여 건 중 사망사건은 단 한 건뿐이다.

김 국장은 “사망 원인이 되는 범죄가 있다면 국가가 책임을 묻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라며 “군은 지휘 책임 등을 면피하기 위해 사건 민간 이전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고려하는 듯하다”고 짚었다.

사망 수사 결과는 순직 결정의 주된 잣대로 활용된다. 현재 순직 결정이 기각·보류된 이들의 유가족과 국방부는 마치 ‘민사소송’을 하듯 입증 대결을 벌이는 양상을 보인다. 

수사권이 민간으로 온전히 넘어오지 않은 탓에, 군이 수사한 자료를 근거로 군과 대립하는 유가족들이 앞으로도 생겨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순직을 최종 판단하는 주체도 여전히 군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여러 전문가들은 “국민에게 ‘군 내부서 수사·결정해도 충분히 공정하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면, 군의 권한을 굳이 뺏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국장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전문성
떨어져”

군인권센터를 찾는 유족들의 사례를 종합하면, 군은 유족에게 수사 결과나 증거 등을 최대한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예컨대 유서를 좀 달라고 하면 ‘못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가서 열람하겠다거나 사본을 요구하면 줍니다. 저번에는 왜 안 해줬냐고 따지면 ‘그렇게 이야기 안 했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말장난하는 거잖아요. 사실 안 주고 싶은 겁니다. 요즘 문제 제기가 하도 많아지니 겨우 공개하는 추세입니다.” 

유가족들이 군 수사나 순직 제도를 잘 모른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셈이다. 

“군 순직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 국민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사실 별로 없을뿐더러 그걸 알고 있어야 할 까닭도 없죠. 내 가족이 군에 가서 사망할 것을 예상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런 탓에 유가족들 사이에선 “똑똑한 유가족이 제 자식 명예를 찾아준다”는 말까지 생겼다.


군 수사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타살인 경우는 원인이 명확할 테니 (나온대로)수사하면 됩니다. 그런데 변사 자살 사건인 경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국방부는 이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고, 절대적인 역량도 외부 수사기관에 비해 부족한 편입니다.”

이렇듯 ‘말 많고 탈 많은’ 군 수사권이 평시에도 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김 국장은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애초에 수사권이나 순직 결정권 등이 군 지휘나 임무 수행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군은 각계의 비판과 국민적 불신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러 ‘권한’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 배경에 관해 김 국장은 “군은 70년 넘게 각종 권한을 직접 행사해왔다. 조직 입장에서는 아주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내부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부실 수사
불신만 가득

이어 “군은 사법 수사권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특권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들이 사건 사고에 대한 통제권을 다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군이 조직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두려움을 크게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국방부 또한 군이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김 국장 설명에 따르면 군은 2021년 개정법 논의 당시 지엽적인 주장들을 내세워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당시 군 관계자는 “음주운전이 군 내부서 벌어졌을 경우, 경찰이 부대 내부에 들어올 수 없어 단속이 불가능하다”와 같은 명분을 댔다.

“그 정도는 당연히 군 내부서 단속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수사권을 밖으로 이전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김 국장은 “군이 근본적인 두려움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설령 군이 수사를 통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다지 문제 생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서 들어가 수사한다고 경찰과 소방이 밖에 나가 수사 상황 떠벌리고 공표하겠나? 군을 해코지하겠나? 다 국가기관이고 법으로 통제되는 곳이라 그럴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병사의 휴대폰 사용을 통제하는 것도 군의 ‘기우’를 잘 보여준다. 논의가 진행되고, 실제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만 해도 군은 보안사고 등 각종 부작용을 우려했다. 외부와 쉽게 소통할 수 있게 된 병사들이 군의 통제를 벗어나진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범 사용 기간을 거쳐보니, 해당 제도는 실보다 득이 큰 것으로 판명됐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 기간엔 “휴대폰 사용이 출타가 어려운 장병들의 단절감 해소에 큰 도움을 준다”는 일선 부대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유가족이 똑똑해야 군은 조아려”
유서 등 자료 열람 두고 대립 늘어

병사들이 휴대폰을 사용한 지도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이제 국방부는 병사의 휴대폰 사용 시간을 더욱 늘리는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군의 통제만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일부 유가족들은 외로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의 ‘도우미’를 자처한 군인권센터가 본 유가족들의 고초를 물었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그걸 사건으로 보지만,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에 잃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걸 주변에 말을 못 해요. 한국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너도나도 다 가는 군대서 왜 버티질 못했냐’와 같은 시선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탓에 사인을 얼버무리거나 ‘유학 갔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군의 폐쇄적이고 부실한 수사과정과 납득 어려운 순직 심사 결과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군인에게 보호받은 사회도, 군인으로 데려간 국가도, 하나같이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순직을 인정받는다는 건 국가를 위해 일하다 사망에 이르렀다는 일종의 ‘국가 인증’인 거잖아요. 그걸 인정해주지 않는 건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개인적 이유로 사망했다는 선고나 마찬가지죠. 결국 유가족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사과나 인정, 위로 같은 것들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이 ‘돈, 보상금이 안 나와서 국가에 떼쓰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돈 몇 푼 받는다고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것보단 이 죽음이 명예롭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큽니다. 유가족들을 둘러싼 오해와 인정해주지 않는 국가를 향한 원망, 이런 것들이 순직을 원하는 유가족들이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아픔이라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무한책임

김 국장은 장기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군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국가의 관점 자체가 바뀌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군 복무 중 사망했으면 완전히 개인적인 사유가 아닌 이상 국가가 원칙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며 “어떤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또 어떤 것은 아니라고 하나하나 따져든다면 그 누가 군에서 목숨 걸고 헌신하겠느냐”고 반문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인권센터는?

군인권센터는 2009년 설립된 인권단체다. 시민들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나 성폭력 사건들의 피해자를 상담?지원하는 일이 주된 업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포착되는 제도상 맹점이나 미비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정책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군 수사권에 관해서는 개정법 시행 이후 벌어진 사건 사고들을 모니터링하고, 제도적 보완을 위해 국회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도 이어나가고 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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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