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①헛발질의 전환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25 12:53:06
  • 호수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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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부터 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이 들끓고 있다. 군 사망사고 수사에 대한 불신이 뜨거운 감자가 됐기 때문이다. 군 수사는 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과정서 수사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일요시사>는 천안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나, 군 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그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매주, 매달, 매년 군대서 사람이 죽는다.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없어질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도 끊이지 않는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군대 수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언론 매체서 수없이 보도되는 것처럼 군대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수사 과정서 모두 은폐되고 조작된 것일까? 

전 조사본부장
윤종성의 특단

지난 7일 오후 1시30분, <일요시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헌병전우회를 찾아 회장을 맡고 있는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났다. 윤 전 본부장은 2006년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접목한 장본인으로, 이 시스템을 접목해 천안함 사건 수사를 진행했다.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만들고 도입한 것은 2006년으로, 윤 전 본부장이 육군범죄수사단에 있었을 때다. 육군 범죄수사단, 수사과장, 정보과장,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근무했던 윤 전 본부장은 현역에 몸담으면서 군 수사의 한계를 느꼈다. 

기존 군 수사는 수사관의 개인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훌륭한 수사관이어도 개인 역량 차이는 크다 보니, 수사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문제였다. 2006년 이전 군 과학 수사는 지문과 족적을 검출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식의 수사 시스템은 증거 확보가 어려워 정확한 수사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유가족은 군 수사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군 수사 시스템을 바꾸는 데 가장 부족한 것이 인력과 장비였다. 그나마 인력은 1인 다역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장비였다. 사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가 있어야 군사경찰이 과학수사를 학습할 수 있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을 찾아갔다. 범죄수사단은 특수부대고, 총장 직속부대여서 과학수사 장비를 사기 위해선 업무보고를 해야 했다.

“총장님이 육군 지휘를 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꼭 과학 수사 장비가 필요합니다. 예산 조치를 해 주십시오.”

김 참모총장은 윤 전 본부장에게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당시 3억원이 필요했다. 물론 이 돈도 충분하진 않았지만,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군사경찰은 장비를 갖추게 됐고, 과학수사의 전환기를 맞았다.

2006년 전 수사관 개인 역량으로만 수사
과학수사 도입…수사 시스템 체계 구축

윤 전 본부장은 “유능한 수사관은 선천적인 수사감각이 있거나, 스스로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수사 범위는 너무 광범위하고 범죄 수법은 다양하다. 그러니 과거 노하우 중심으로 수사했던 것을 증거 중심 수사로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수사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군 수사가 정보 지식기술을 활용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수사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이 시스템은 크게 5가지 수사 순환을 이루는데, 첫 번째로 ▲기초 수사(초동조치를 포함한 10가지 수사 방법)를 거쳐 ▲분석 수사(뇌파 검사, CCTV 분석 등 10가지 수사 방법) ▲상황 분석의 단계를 거친다.

상황 분석에서는 사건을 파악‧추정하고, 수사 방향 판단, 수사본부 편성, 유관기관 협조까지 이뤄진다. 이후 ▲종결 수사(피의자 신문, 현장검증, 언론 브리핑, 수사 종결) ▲추적수사(국제공조 수사, 금융수사, 통신수사, 사이버수사, 출입국 수사, 차량 수사)를 하게 된다.

다만 사건이 같은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유형에 따라 바로 종결 수사로 가기도 하고, 추적 수사로 넘어가기도 한다. 각 수사 단계서 모두 지시와 보고가 이뤄지며 판단한다.

윤 전 본부장은 “지금도 이 시스템으로 수사가 이뤄진다고 들었다. 그리고 헌병학교 행정학교서 교육할 때도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범죄의 성격에 따라서 단계를 다 거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말했다. 

숙고와 고민의 과정이었고, 끝없는 회의의 결과였다. 윤 전 본부장은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를 연결하는 것이다. 수사 과정 중에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니 시스템에는 아주 핵심적인 것으로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순서로 해야 하는 것이 군사경찰 수사를 훈련하는 것이었다. 모든 군인은 훈련을 하지만 수사는 훈련할 수 없다. 기존 군사경찰은 사건이 터지면 수사를 경험하며 몸으로 체득했지만, 이때부터 군사경찰을 모아서 훈련했다.

종합훈련이 시작되고, 파트별로 나눠서 상황별 훈련을 실시했다. 수사관은 경찰청, 출입국 관리소, 김포공항, 항만청을 직접 견학가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군사경찰은 사단에 2~3명 배치돼있는데, 이를 군단 단위로 묶었다. 다음에 수사관마다 특기를 나눠서 사건이 터지면 서로 지원받게 했다. 수사본부장은 사단 대장이어도 군단 수사관에게 지원받는 형식이었다. 수사 시스템 체계가 바뀐 것이다.

지휘 걸림돌
제거에 중점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던 2009년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본부장에게 “조사본부는 장관의 눈과 귀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윤 전 본부장은 군사경찰과 협조해 범죄 정보 활동을 하며, 국방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끝없는 학습과 훈련을 거듭한 시간이었다. 윤 전 본부장과 함께 일했던 군사경찰 관계자는 “훈련하다가 죽을 뻔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일이 체계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한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천안함 사건이었다. 2010년 3월27일 21시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 해상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함의 어뢰로 격침됐다.


이 사건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5년간 이뤄졌던 군 과학수사 훈련은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윤 전 본부장은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이 구성됐었다. 대부분 선박 전문가, 해양 전문가였다. 소위 말해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분석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는 수사해서 증거를 잡아야 했다. 사건은 증거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고 기소도 할 수 없다. 전부 시뮬레이션하는 사람만 있으니 수사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수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시각을 오후 9시45분이라고 최초 발표했지만, 이는 보고 시각이었다. 여론의 질타가 심하자 오후 9시30분으로 다시 발표했지만, 이는 구조 요청 시각이었다. 국방부는 국민에게 ‘정신 나간 국방부’라고 질타받았다. 

윤 전 본부장은 “국방부도 이런 사건이 처음이니까 감각이 없었다. 언론서 계속 요구하니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그냥 발표했다. 그래서 지진파, 한국해군전술자료체계(KNTDS) 등 사건 수사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곧 군사경찰 자체적으로 통신 분석 영장이 발부돼 통신 분석을 시작했다. 마지막 통신 시각은 오후 9시21분47초였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 발생 시각이 오후 9시22분이 된 것이었다. 

끝없는 학습
훈련의 시간


사건 발생 시각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원인이다. 윤 전 본부장과 군사경찰은 생존 장병 58명에 관해 개별적 진술 청취를 듣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찬안함의 연돌(함선의 보일러 굴뚝)서 함미(군함의 끝)가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건 현장에서는 천안함이 어뢰의 폭격으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왔다. 

반면, 청와대 외교안보장관 회의에서는 “사건 원인이 불분명하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함장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당시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군생활을 해본 사람은 국방부 장관 단 한 명이었다. 

즉, 현장 의견을 간과한 외교안보장관회의였고, 현장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은 “회의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선 어뢰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결론이 이상하게 났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상황상 말을 하기 어려웠겠으나 이런 상황에서는 군사 지도자를 여러 명 불러놓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이어 “정치하는 사람들은 군사적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판단은 무지의 소치”라고 아쉬워했다.

정치권과 천안함 사건 현장의 의견이 다른 가운데, 수사는 계속됐다. 2006년도부터 구축한 과학수사 시스템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수사에 회의적이었다. 민간 합동조사단 중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폭약 성분 검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본부장이 “그러면 금속 성분은 추출할 수 있냐”고 묻자, 민간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어뢰 추진체에 붙어있던 프로펠러 조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쉽지 않다”고 답했다.

“천안함은 군사경찰 완벽한 수사라는 평가”
“지휘관이 수사 개입하지 않도록 막혀있어”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선체를 거즈로 다 닦았고, 결국 폭약 성분을 검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CCTV 분석으로 들어갔다. 천안함에는 11개의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 중 6개를 복원했다.

이것도 과학수사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CCTV에 폭발 장면만 확보하면 모든 게 정리될 수 있었으나 CCTV는 외부 압력과 폭발 등이 있으면 1분 뒤 녹화되는 시스템이어서 천안함 폭발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항해 중 갑작스럽게 침몰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는 문제가 남았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기됐지만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과학수사연구소장이 위문 차 방문해 “공군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했을 때 뭐로 건져 올리는지 아느냐”며 쌍글이 어선 이용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윤 전 본부장은 바로 어선 관계자를 만났고, 관계자들은 천안함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5월3일 작업을 착수했지만, 기상 상태가 좋지 않고 그물이 찢어져서 5월10일 본격 작업이 착수됐다. 건져 올릴 때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어뢰 추진체 위치를 확인했다.

당시 어뢰가 어느 나라 것인지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 그때 마침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무기를 중남미로 수출하기 위해 만든 무기 카탈로그를 입수했는데, 이 카탈로그에 있는 북한 어뢰와 천안함을 폭격한 어뢰가 같다는것을 확인했다.

윤 전 본부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군대에 과학수사를 접목해 이뤄낸 완벽한 수사로 평가받았다. 군사경찰이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눈부신 성과를 이뤄낸 군사경찰이지만, 외부에서는 군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군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군대의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다. 

윤 전 본부장은 “군대 수사는 매뉴얼로 정해져 있어서 오류가 많이 줄었다. 분명 과거에는 수사 중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군은 지휘관 체계 아래에 있으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건 여전하다”면서도 “하지만 군대는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전쟁이 나면 일사불란으로 전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지휘관 결단

이어 “그런 만큼 군대서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수사에 관해선 주 지휘관이 권한을 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막혀 있다. 하지만 규정이 있더라도, 군대라서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런 것은 지휘관이 딱 끊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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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