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특집> 해병대 사태로 본 군 수사의 한계 ①헛발질의 전환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9.25 12:53:06
  • 호수 14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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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부터 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이 들끓고 있다. 군 사망사고 수사에 대한 불신이 뜨거운 감자가 됐기 때문이다. 군 수사는 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과정서 수사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일요시사>는 천안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나, 군 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모했는지 그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매주, 매달, 매년 군대서 사람이 죽는다.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없어질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도 끊이지 않는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군대 수사는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언론 매체서 수없이 보도되는 것처럼 군대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수사 과정서 모두 은폐되고 조작된 것일까? 

전 조사본부장
윤종성의 특단

지난 7일 오후 1시30분, <일요시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헌병전우회를 찾아 회장을 맡고 있는 윤종성 전 국방부조사본부장을 만났다. 윤 전 본부장은 2006년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접목한 장본인으로, 이 시스템을 접목해 천안함 사건 수사를 진행했다. 

군대에 과학수사 시스템을 만들고 도입한 것은 2006년으로, 윤 전 본부장이 육군범죄수사단에 있었을 때다. 육군 범죄수사단, 수사과장, 정보과장,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근무했던 윤 전 본부장은 현역에 몸담으면서 군 수사의 한계를 느꼈다. 

기존 군 수사는 수사관의 개인 역량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훌륭한 수사관이어도 개인 역량 차이는 크다 보니, 수사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문제였다. 2006년 이전 군 과학 수사는 지문과 족적을 검출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식의 수사 시스템은 증거 확보가 어려워 정확한 수사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유가족은 군 수사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군 수사 시스템을 바꾸는 데 가장 부족한 것이 인력과 장비였다. 그나마 인력은 1인 다역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장비였다. 사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가 있어야 군사경찰이 과학수사를 학습할 수 있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을 찾아갔다. 범죄수사단은 특수부대고, 총장 직속부대여서 과학수사 장비를 사기 위해선 업무보고를 해야 했다.

“총장님이 육군 지휘를 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꼭 과학 수사 장비가 필요합니다. 예산 조치를 해 주십시오.”

김 참모총장은 윤 전 본부장에게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당시 3억원이 필요했다. 물론 이 돈도 충분하진 않았지만,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군사경찰은 장비를 갖추게 됐고, 과학수사의 전환기를 맞았다.

2006년 전 수사관 개인 역량으로만 수사
과학수사 도입…수사 시스템 체계 구축

윤 전 본부장은 “유능한 수사관은 선천적인 수사감각이 있거나, 스스로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수사 범위는 너무 광범위하고 범죄 수법은 다양하다. 그러니 과거 노하우 중심으로 수사했던 것을 증거 중심 수사로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수사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군 수사가 정보 지식기술을 활용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수사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이 시스템은 크게 5가지 수사 순환을 이루는데, 첫 번째로 ▲기초 수사(초동조치를 포함한 10가지 수사 방법)를 거쳐 ▲분석 수사(뇌파 검사, CCTV 분석 등 10가지 수사 방법) ▲상황 분석의 단계를 거친다.

상황 분석에서는 사건을 파악‧추정하고, 수사 방향 판단, 수사본부 편성, 유관기관 협조까지 이뤄진다. 이후 ▲종결 수사(피의자 신문, 현장검증, 언론 브리핑, 수사 종결) ▲추적수사(국제공조 수사, 금융수사, 통신수사, 사이버수사, 출입국 수사, 차량 수사)를 하게 된다.

다만 사건이 같은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유형에 따라 바로 종결 수사로 가기도 하고, 추적 수사로 넘어가기도 한다. 각 수사 단계서 모두 지시와 보고가 이뤄지며 판단한다.

윤 전 본부장은 “지금도 이 시스템으로 수사가 이뤄진다고 들었다. 그리고 헌병학교 행정학교서 교육할 때도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범죄의 성격에 따라서 단계를 다 거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말했다. 

숙고와 고민의 과정이었고, 끝없는 회의의 결과였다. 윤 전 본부장은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를 연결하는 것이다. 수사 과정 중에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니 시스템에는 아주 핵심적인 것으로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순서로 해야 하는 것이 군사경찰 수사를 훈련하는 것이었다. 모든 군인은 훈련을 하지만 수사는 훈련할 수 없다. 기존 군사경찰은 사건이 터지면 수사를 경험하며 몸으로 체득했지만, 이때부터 군사경찰을 모아서 훈련했다.

종합훈련이 시작되고, 파트별로 나눠서 상황별 훈련을 실시했다. 수사관은 경찰청, 출입국 관리소, 김포공항, 항만청을 직접 견학가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군사경찰은 사단에 2~3명 배치돼있는데, 이를 군단 단위로 묶었다. 다음에 수사관마다 특기를 나눠서 사건이 터지면 서로 지원받게 했다. 수사본부장은 사단 대장이어도 군단 수사관에게 지원받는 형식이었다. 수사 시스템 체계가 바뀐 것이다.

지휘 걸림돌
제거에 중점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던 2009년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윤 전 본부장에게 “조사본부는 장관의 눈과 귀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윤 전 본부장은 군사경찰과 협조해 범죄 정보 활동을 하며, 국방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끝없는 학습과 훈련을 거듭한 시간이었다. 윤 전 본부장과 함께 일했던 군사경찰 관계자는 “훈련하다가 죽을 뻔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일이 체계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한국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천안함 사건이었다. 2010년 3월27일 21시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 해상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함의 어뢰로 격침됐다.


이 사건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5년간 이뤄졌던 군 과학수사 훈련은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윤 전 본부장은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이 구성됐었다. 대부분 선박 전문가, 해양 전문가였다. 소위 말해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분석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는 수사해서 증거를 잡아야 했다. 사건은 증거가 없으면 해결이 안 되고 기소도 할 수 없다. 전부 시뮬레이션하는 사람만 있으니 수사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수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시각을 오후 9시45분이라고 최초 발표했지만, 이는 보고 시각이었다. 여론의 질타가 심하자 오후 9시30분으로 다시 발표했지만, 이는 구조 요청 시각이었다. 국방부는 국민에게 ‘정신 나간 국방부’라고 질타받았다. 

윤 전 본부장은 “국방부도 이런 사건이 처음이니까 감각이 없었다. 언론서 계속 요구하니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그냥 발표했다. 그래서 지진파, 한국해군전술자료체계(KNTDS) 등 사건 수사 데이터를 확보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곧 군사경찰 자체적으로 통신 분석 영장이 발부돼 통신 분석을 시작했다. 마지막 통신 시각은 오후 9시21분47초였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 발생 시각이 오후 9시22분이 된 것이었다. 

끝없는 학습
훈련의 시간


사건 발생 시각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원인이다. 윤 전 본부장과 군사경찰은 생존 장병 58명에 관해 개별적 진술 청취를 듣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찬안함의 연돌(함선의 보일러 굴뚝)서 함미(군함의 끝)가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건 현장에서는 천안함이 어뢰의 폭격으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왔다. 

반면, 청와대 외교안보장관 회의에서는 “사건 원인이 불분명하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함장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당시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군생활을 해본 사람은 국방부 장관 단 한 명이었다. 

즉, 현장 의견을 간과한 외교안보장관회의였고, 현장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은 “회의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선 어뢰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결론이 이상하게 났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상황상 말을 하기 어려웠겠으나 이런 상황에서는 군사 지도자를 여러 명 불러놓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이어 “정치하는 사람들은 군사적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런 판단은 무지의 소치”라고 아쉬워했다.

정치권과 천안함 사건 현장의 의견이 다른 가운데, 수사는 계속됐다. 2006년도부터 구축한 과학수사 시스템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수사에 회의적이었다. 민간 합동조사단 중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폭약 성분 검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본부장이 “그러면 금속 성분은 추출할 수 있냐”고 묻자, 민간 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어뢰 추진체에 붙어있던 프로펠러 조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쉽지 않다”고 답했다.

“천안함은 군사경찰 완벽한 수사라는 평가”
“지휘관이 수사 개입하지 않도록 막혀있어”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선체를 거즈로 다 닦았고, 결국 폭약 성분을 검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CCTV 분석으로 들어갔다. 천안함에는 11개의 카메라가 있었는데 이 중 6개를 복원했다.

이것도 과학수사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CCTV에 폭발 장면만 확보하면 모든 게 정리될 수 있었으나 CCTV는 외부 압력과 폭발 등이 있으면 1분 뒤 녹화되는 시스템이어서 천안함 폭발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항해 중 갑작스럽게 침몰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는 문제가 남았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기됐지만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윤 전 본부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과학수사연구소장이 위문 차 방문해 “공군 전투기가 바다에 추락했을 때 뭐로 건져 올리는지 아느냐”며 쌍글이 어선 이용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윤 전 본부장은 바로 어선 관계자를 만났고, 관계자들은 천안함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5월3일 작업을 착수했지만, 기상 상태가 좋지 않고 그물이 찢어져서 5월10일 본격 작업이 착수됐다. 건져 올릴 때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어뢰 추진체 위치를 확인했다.

당시 어뢰가 어느 나라 것인지 확인하는 단계만 남았다. 그때 마침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무기를 중남미로 수출하기 위해 만든 무기 카탈로그를 입수했는데, 이 카탈로그에 있는 북한 어뢰와 천안함을 폭격한 어뢰가 같다는것을 확인했다.

윤 전 본부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군대에 과학수사를 접목해 이뤄낸 완벽한 수사로 평가받았다. 군사경찰이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눈부신 성과를 이뤄낸 군사경찰이지만, 외부에서는 군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군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군대의 구조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다. 

윤 전 본부장은 “군대 수사는 매뉴얼로 정해져 있어서 오류가 많이 줄었다. 분명 과거에는 수사 중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군은 지휘관 체계 아래에 있으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건 여전하다”면서도 “하지만 군대는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전쟁이 나면 일사불란으로 전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지휘관 결단

이어 “그런 만큼 군대서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수사에 관해선 주 지휘관이 권한을 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막혀 있다. 하지만 규정이 있더라도, 군대라서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런 것은 지휘관이 딱 끊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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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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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