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백해룡 전 영등포서 형사2과장

“마약 수사 외압 핵심 용산…특검 나서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서울영등포경찰서의 마약 수사 성과는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는다. 압수한 필로폰만 총 74kg이다. 확보하지 못한 마약량을 감안하면 300kg이 넘는다. 영등포서 수사팀은 막대한 양의 마약이 국내로 유통될 수 있었던 원인이 세관의 협력이라고 봤다. 세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상황이 뒤집혔다. 상급 기관과 관세청 고위직의 압력이 시작된 것이다.

“‘용산’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통령실 간부가 전화를 하나?” 세관 마약 사건 수사를 총괄하던 백해룡 전 서울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경정)의 말이다. 백 경정의 말대로 2년 전 영등포경찰서는 역대급 마약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실에 파견된 경찰 고위 간부의 전화를 받았다. “용산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게 백 경정의 주장이다.

74kg 압수
역대급 성과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지원해 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였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기 위해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관세청은 수사팀이 조직원들의 속임수에 당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300kg’ 마약 조직 세관 제지 없이 입국
경찰 지휘부·대통령실 간부 수차례 압력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 A씨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A씨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이 정도의 양이 세관에서 적발되지 않은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백 경정은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경찰 중간 브리핑을 앞둔 2023년 10월6일 인천세관 통관2국장 등 세관 직원 4~5명이 이른 아침 백 경정을 만나려 했다. 백 경정에 따르면 당시 세관 측은 “관세청장께서 화가 많이 나셨고 세관장을 많이 질책하셨다” “관세청장 지시로 세관장은 서울경찰청장 만나러 갔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세관’
삭제 지시

백 경정은 “원래 안 만나려 했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끝까지 막으려 하는 세관의 입장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당일에 서울청 간부가 찾아와 ‘사건을 이첩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수사팀을 와해시키려 했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청탁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했던 경찰 간부이기도 하다.

백 경정은 당시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는가.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조직원들이 들어온 인천공항에는 국가정보원과 국군방첩사령부 대테러 담당 요원들이 항시 상주해 있다. 백 경정은 “자부심이 넘치는 정보기관이다. 마약 첩보를 경찰과 검찰보다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대한민국 탑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과 방첩사가 수백kg의 마약이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았는데 방치했다면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승진자

수상한 건 검찰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3년 2월27일 검거된 마약조직범 3명이 김해공항에서 잡혔을 때의 일이다.


백 경정은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에 의해 잡혔는데 같은 해 1월27일과 2월6일에도 마약을 유통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검찰은 세 차례 범행 각각을 범죄 사실로 구성하지 않고 2월27일 건만 기소했다. 추가 수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했거나 이른바 ‘친윤(친 윤석열) 라인’으로 지목된 경찰들은 연달아 승진했다. 지난 2월 경찰청은 경무관 승진 내정자 30명과 총경 승진 내정자 104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경무관 승진 명단에는 김찬수·백남익·김기종 총경이 이름을 올렸다.

백남익 총경의 경우, 당시 백 경정에 대한 감찰을 진행한 부서 책임자였다. 백 총경의 경우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군인권센터로부터 고발된 인물이다.

백 총경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 계엄해제요구안 가결 전후인 새벽 1시께 열린 서울경찰청 주요 간부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군인권센터는 “국회 봉쇄 관련 사항이 논의된, 불법 성격이 짙은 회의의 참석 멤버로 수사를 통한 혐의 규명이 필요하다”면서 백 총경 등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한 바 있다.

수상한 검찰의 대응 “압수수색 영장 계속 반려”
김건희 특검 “모든 의혹 수사 대상 인력 충원도”

군인권센터가 이때 내란 혐의로 고발한 명단에는 백 총경을 비롯해 이달 초 치안정감으로 기습 승진이 내정된 뒤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로 발령 난 박현수 전 경찰국장과 김기종 총경(당시 서울청 경무기획과장·경무관 승진 내정)도 포함돼있다.


검찰은 현재 경찰과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과 합동수사팀(합수팀)을 꾸리고 백 경정이 언급했던 의혹들을 검증 중이다. 지난 23일만 해도 인천세관과 직원 주거지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해 세관 직원들의 휴대전화와 PC 등을 확보했다.

2023년 1월 말레이시아 국적인들이 대량의 필로폰을 밀수했다가 적발됐을 당시 폐쇄회로(CCTV) 서버 등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수팀은 세관 직원들이 밀수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금전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FIU를 통해 계좌 흐름도 추적하고 있다. 대통령실 등이 경찰 수사에 실제 개입했는지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백 경정은 “외압의 당사자들이 모여 사건을 축소 기소 내지는 은폐하려는 팀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든다”며 “수사팀이었던 후배들 일부도 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인질극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 경정의 의도대로 이 사건은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 25일 민중기 특검은 언론 공지를 통해 “인천세관 마약 밀수 수사 외압 의혹 사건과 관련 특검 수사 대상의 전제가 되는 사건에 대해 대검합동수사팀에서 수사 진행 중”이라며 “수사 진행 경과를 고려해 합동수사팀과 협의를 거쳐 이첩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상진 특검보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임시 사무실에 출근해 ‘세관 마약 수사를 특검팀에서 수사하게 되느냐’는 질문에 “세관 마약 수사라기보다는 조병노 경무관 관련 부분은 특검법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검법 제2조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 등에 따르면 김건희씨가 이종호 등을 매개로 해 임성근·조병노 등에 대한 구명 로비를 하는 등 국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은 김건희 특검팀의 수사 대상이다.

눈감아주는
대가 있었나

박 특검보는 ‘경찰 파견 인력 요청과 관련해 조 경무관 부분까지 고려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답을 잠시 망설이다가 “기본적으로 수사 능력이 핵심”이라고 짧게 답했다. 백 경정 조사 계획과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바 없고 계속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민 특검은 최준영 경기북부청 형사과장을 비롯해 총경 1명과 경정 2명 등 총 14명의 경찰관 파견을 요청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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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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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