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마약 운전’ 실상

좀비가 핸들을 잡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서울 강남구서 발생한 일명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이후 마약 투약 후 운전하는 사고 사례가 늘고 있다. 마약 투약 후 2차 범죄로 일어난 교통범죄는 전체 2차 범죄 4건 중 1건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제성이 없어 검사가 불가하거나 법원 처벌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국회가 관련 법 개정을 논의 중이지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내 마약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마약 투약 후 2차 범죄로 약물 운전을 하는 사람이 느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마약에 취한 채 운전한 혐의로 면허취소 처벌을 받은 사례는 100건이다. 마약 운전 처벌 사례는 2019년 58건, 2020년 54건, 2021년 84건, 2022년 81건으로 증가세다. 

위험천만

마약을 투약한 뒤 발생한 2차 범죄는 2020년 182건, 2021년 230건, 2022년 214건이었고, 이 중 교통범죄는 2020년 45건, 2021년 67건, 2022년 66건으로 집계됐다. 마약 투약 후 일어나는 2차 범죄 4건 중 1건이 교통범죄인 것이다.

최근에도 마약 투약 후 운전하다가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주유소에 주차한 20대 남성과 포천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주행을 이어나간 사례, 서울 도심서 필로폰을 투약한 채 무면허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캄보디아 국적 남성 3명 등 위험한 사례는 계속 나오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미비하다. 경찰은 최근 늘어나는 마약 운전 단속을 위해 음주 운전 측정기와 간이 마약 검사키트를 보유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지만 피의자가 간이 마약검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편성을 위해 검사 도구를 소변검사에서 타액 키트로 바꿨지만 강제성이 없어 바꾼 키트도 무용지물처럼 보인다.

경찰은 지난 1월 일선 교통조사과 등을 중심으로 타액용 마약 간이시약기(타액 시약기)를 도입했다. 타액 시약기는 채취봉 스펀지를 입안 곳곳에 문지른 뒤 침샘 가까이에 두면 약 3분 안에 양성 여부가 확인되는 방식이다. 필로폰, 코카인, 대마 등 마약 6종을 검사할 수 있지만, 신종 마약류로 등장한 합성 대마나 펜타닐 등은 잡아낼 수 없다.

기존에 사용하던 소변 검사 방식과는 다르게 화장실로 이동할 필요 없이 현장서 바로 검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과값 검출까지 약 2주가 소요되는 체모를 통한 정밀 검사와 비교할 때 역시 효과적이다.

지난해 면허취소 100건…매년↑
피의자 동의 없이 검사 불가

다만 피의자가 마약 투약 검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검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소변 검사 등 기존의 검사가 갖고 있는 한계를 여전히 넘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사전 운전면허 수시 적성검사 의무화 역시 마약 투약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경찰은 ‘2024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통해 강력한 단속과 처벌과 함께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도 힘쓴다고 발표했다. 추진계획에 따르면, 법률상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적극 의율하며 전체 마약사범의 대상을 확대하고 경찰관 등 제삼자의 검사 의뢰를 통한 선별도 강화할 예정이다.


마약 운전의 약한 처벌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약 운전은 기본적으로 3가지 법률이 적용된다. 

우선 도로교통법상 약물 운전 혐의를 적용받는다.

도로교통법 제45조에 따르면, 자동차 등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제44조에 따른 술에 취한 상태 외 과로, 질병 또는 약물(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과 그 밖에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것)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서 자동차 등 또는 노면전차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등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서 운전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는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혐의의 처벌 규정인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의 음주 운전이 적발될 경우,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낮은 수치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 적용될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 11에 따르면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서 자동차 등을 운전해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해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이 가능한 것이다.

약에 취해 운전대 잡아도 OK?
제제 수단·처벌 수위 낮아

단순 마약 투약 혐의도 적용된다. 투약한 마약류에 따라 처벌은 상이해지나,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최대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을 제외하면 처벌 수위는 현저히 낮은 편이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피의자 신모씨는 1심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약물 운전 혐의보다 도주치사 혐의가 강하게 적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피고인은 사고 후 도주의 고의를 다투고 있지만, 도로교통법상 운전자가 사상을 입힌 사실을 인식하고도 정차해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 현장을 이탈한 경우 도주의 고의를 인정하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판시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은 운전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운전하다 사고를 냈고, 사고 발생 후 현장서 이탈했다가 돌아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며 “피고인이 사고 직후 현장서 약 3분간 이탈, 이탈 시간이 짧고, 자신의 휴대폰을 찾기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다른 시민이 119에 신고를 했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되면서도 피해자를 보면서 웃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며 “피해자는 3개월 만에 사망해 가족들의 상실감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고 증거인멸에 급급했고, 피해자의 유족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필로폰 투약한 상태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낸 40대 A씨에게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A씨는 2020년과 2021년 마약 관련 범죄로 각각 징역 2년과 4개월을 선고받는 등 이번 사고에 앞서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으로 6차례나 실형을 살았는데도 그 처벌 수위가 매우 낮아 마약 운전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과 국회에 따르면 마약 등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운전하는 약물 운전 단속을 강화하고 관련 기준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행법 한계

국회에서는 약물운전 단속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현 새로운미래)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약물 운전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제45조에 구체적인 단속 절차와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약물 운전 단속 기준을 같은 법안 44조에 음주 운전 금지 조항 수준으로 명시화해서 경찰공무원이 약물 운전이 의심되는 운전자의 약물 영향 정도를 측정할 수 있으며 운전자는 이에 따라야 한다. 결과에 불복한 경우에는 운전자의 동의를 받아 혈액 채취 등의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 운전을 금지하는 복용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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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