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현지 취재> 국내 유입 루트 ‘마약 성지’를 가다

코리아타운 슬럼가서 퍼지는 ‘샤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서 유통된다. 최악의 생산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역에 한정됐던 영역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까지 넓혀졌다. 필리핀 슬럼가와 코리아타운에까지 퍼져 일반인이 순식간에 유통책과 투약자가 될 수 있는 ‘셋업 범죄’도 심각하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부터 필리핀 현지 마약 사건과 범죄인 인도조약 문제, 유명 한국인 범죄자들의 상황을 들여다봤다.

필리핀 코리아타운은 여러 곳에 있다. 정부 차원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곳은 한 곳이지만 수도인 마닐라 안에 마카티, 말라테, 클락 앙헬레스 등 번화가에 코리아타운이 몰려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극빈층 수십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필로폰의 일종인 ‘샤부(Shabu)’라는 각성제를 판매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들마저 살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 소비·판매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필리핀은 연간 약 500t의 필로폰과 1500t의 헤로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지역 경찰과 마약 조직의 유착으로 제대로 규제되지 않았다. 헤르난디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후 마약 조직과 연루된 혐의로 체포된 경찰 고위직만 수십명에 달한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서 내에서 마약을 판매하기도 했다.

실제 필리핀 국가 경찰은 지난해 말 마닐라 톤도서 67억페소(약 1632억원) 상당의 필로폰 990kg을 압수했다. 수사 과정서 사건에 연루된 마약 단속반 소속 정보요원의 개인 소지품, 신분증 등도 발견됐다. 이 사건은 최근 필리핀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양 중 ‘역대급’으로 꼽힌다.

당시 경찰은 마약 구매자로 위장해 판매자와 거래를 시도하는 수법으로 범인에게 접근해 대량의 마약을 숨겨둔 건물을 습격했다. 경찰은 현장서 50세 남성을 체포하고, 현장에 남겨진 공범의 신분증 등을 발견했다.

아주린 주니어 필리핀 경찰청장은 당시 “더 많은 경찰관이 마약 거래에 연루돼있으며, 이번에 적발된 경찰관은 ‘작은 선수’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부패 행위를 저지른 경찰관은 공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필리핀 경찰은 직급을 막론하고 어떠한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벤허 아발로스 내무장관은 지난달 이와 관련해 “50명의 용의자 중 48명이 CCTV 영상에 등장했으며, 추가로 2명의 경찰관이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상대로 국가경찰위원회가 형사소송 외에도 행정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행정소송서 공식적으로 기소될 수 있는 혐의에는 중대한 위법 행위와 중대한 직무태만이 포함되고, 유죄가 입증되면 해임, 수당 몰수, 공직 자격 박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필리핀 고위직 경찰 간부가 마약 매매에 연루된 경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19년에도 필리핀 국가 경찰국장이었던 오스카 알바얄데 장군이 100kg이 넘는 필로폰을 판매한 경찰관들을 보호했다는 혐의로 사임했다.

법무부는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건을 취하했다. 필리핀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서 1년에 발견되는 필로폰만 1t이 넘는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필로폰은 더 많다. 발견되지 않은 마약 중 일부가 슬럼가나 번화가로 뿌려진다”고 주장했다.

1년에 필로폰·헤로인 500~1000t씩 생산 전 세계로
‘골든 트라이앵글’ 핵심 지대…“골든타임 놓쳤다”

필리핀 경찰이 필로폰을 압수한 지역 톤도는 극빈층이 밀집된 ‘슬럼가’로 알려져 있다. 일부 NGO 단체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정도다. 슬럼가 아이들은 마닐라서도 손꼽히는 부촌인 보니파시오 글로벌시티와 마카티의 고층 빌딩을 보고 자란다.

한 필리핀 교민 단체 관계자는 “한국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성공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필리핀 슬럼가 아이들은 마약 유통 방법이나 인신·성매매를 배운다”며 “손쉽게 돈 버는 방법으로 인식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톤도를 포함한 슬럼가서 자란 아이들은 각성제(필로폰의 한 종류)인 샤부를 들고 다닌다. <일요시사>와 만난 두 명의 현지 아이도 “샤부! 샤부!”라며 마약을 사달라거나 여러 차례 판매하려 했다.

초등학생으로 추정됐던 소피아라는 이름의 한 아이는 한쪽 팔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 아이 팔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보였다. 소피아는 “샤부 1g을 팔면 일주일을 먹고살 수 있다”며 “2000~3000페소 정도만 벌면 된다. 더 많이 팔면 저 빌딩으로 이사할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마약 판매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 것이다.

수년간 마약 판매의 삶을 이어온 것은 소피아뿐만이 아니다.

NGO 단체 관계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슬럼가에 거주하는 필리핀 주민 대부분이 일시적 기억상실, 심장 두근거림, 호흡기 질환 등을 달고 산다. 증상이 수은 중독, 미나마타병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역대급
압수물

수은은 신경계를 공격하고 평생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매우 해로운 독성이 강한 금속으로 고용량에서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실제 필리핀 슬럼가에 흐르는 하천에는 기준치 이상의 필로폰과 코카인이 검출되는 경우가 많다.

금 가공공장서 나온 수은으로 오염된 찌꺼기가 아이들이 목욕하고 일하는 강으로 곧장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코리아타운이 위치한 앙헬레스의 상황도 심각하다. 앙헬레스는 과거 미군의 세계 최대 공군 기지가 위치해 한때 중산층이 밀집돼있던 지역이었지만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을 계기로 기지가 폐쇄되면서 명성이 뒤집혔다.

이른바 홍등가로 알려진 워킹 스트리트 ‘필즈 애비뉴’(Fields Avenue)에는 성매매하려는 남성들이 대거 몰린다. 이곳에는 바, KTV(노래방), 비키니바(호스티스바), 마사지바 등이 즐비해 있으며 여기서 성매매도 성행한다.

길거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들은 때론 마약을 사고팔거나 전달하기도 한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필리핀 여성은 “매일 성매매 일을 할 순 없다. 다른 돈벌이로는 마약을 전달해 받는 수수료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도 “10명 중 절반은 마약 전달 경험을 해봤을 거다. 공급을 하다가 검거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했다.

성매매 종사자 중 일부는 마약 판매 행위로도 삶이 유지되지 않으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셋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셋업 범죄란 경찰을 포섭한 이후 죄가 없는 사람에게 함정을 마련해 고소하거나 신고해서 뇌물을 요구하는 기획 범죄를 뜻한다.

비극의
대물림

관광객을 협박해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강제추행 또는 마약 신고 무마의 대가로 수억원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한 외사 경찰관은 “태국, 캄보디아 등지서도 셋업 범죄가 종종 발생하긴 하나 필리핀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공권력이 범죄의 주체다 보니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리핀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특히 18세 미만 성매매는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대사관에 알려져 한국서 미성년자 성매매로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느니 돈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셋업에 가담한 경찰은 범죄가 들통나면 처벌받기 때문에 끝까지 유죄를 주장할 것”이라며 “또 이역만리 타국서 증거를 모아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관광청에 따르면 매년 5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필리핀을 방문하고, 이 중 120만명이 혼자 오는 남성들이다. 이들 대다수의 국적이 한국, 미국, 중국, 호주로 알려져 있다.

앙헬레스 슬럼가는 톤도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아이들이 마약을 팔거나 성매매를 하는 점에서 같지만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져 있다. 흰 피부, 검은 피부뿐 아니라 한국인의 특징을 갖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섹스 투어리스트’(성매매를 하러 온 관광객)다.

필리핀서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강력한 단속이 없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억원이 넘는 필리핀 인구 중 100만명 가까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다. 추산치지만 실제로 근접할 것이라고 보는 게 현지 교민들의 이야기다.

환각 관광 아지트서 무슨 일이…
10대 아이들 유통책으로 돈벌이

2012년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6위 아동 성매매 관광객 송출 국가다. 엑팟(ECPAT) 등 국제 아동 성매매 관광 근절 단체는 “한국 관광객의 아동 성매매는 소아성애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아동성매매가 용인되는 상황서 이를 저지르는 이른바 상황적(situational) 구매자”라고 분석했다.

필리핀 당국도 인신매매법을 제정하는 등 성매매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유보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섹스 투어는 필리핀 국내 총생산(GDP)의 2~14%를 차지할 만큼 충격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앙헬레스에 종착하는 많은 여성은 주변의 빈곤 농촌 지역인 사마르, 레이테, 비사야 등지서 온다. 이 여성들은 도시서 돈을 벌어 부모와 형제자매를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 하나로 도시로 이동한다. 하지만 도시에도 그들을 위한 일자리는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유흥업으로 빠지게 되지만 생활비 마련을 위해 ‘빚쟁이’로 전락한다.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게 마약 유통이라고 한다.

마약 유통 과정서 인신매매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앙헬레스서 인신매매업자는 여성에게 과도한 수수료 등을 부과하고 신분증을 압수해 사기성 계약을 작성한다. 여성이 성매매 굴레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협박의 굴레에 갇히는 건 마찬가지다. 필리핀 마닐라 북부 팡판가주의 한 호텔서 14세 어린 소녀 20명이 구출된 일화도 있다. 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었으며 이들을 중개하는 업자는 거리서 아이들을 거래해 성매매에 이용했다.

얼마나
한국으로?

부모들도 아이를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스테이시 둘리 인베스티게이츠>는 2017년 필리핀서 엄마들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찍어 팔거나, 성매매를 주선하는 장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한 10대는 “한 번의 성매매로 돈을 버는 것보다 샤부 1~10g 판매해 돈을 버는 게 더 쉽다”며 “유통책만 잘 알고 있으면 하루에 마약 판매로 1만페소도 벌 수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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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