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강남 마약 음료 사건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30 12:52:47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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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학원가 ‘발칵’ 우두머리 검거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사실상 테러 사건으로 해석됐던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 총책이 해외서 검거됐다. 지난해 4월 범죄조직 일당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서 청소년을 상대로 마약이 섞인 음료수를 건넸다. 해당 음료에 섞은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엑스터시의 출처가 중국 마약 총책이라는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필로폰 등 마약 공급 총책이 지난 16일 캄보디아서 검거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주도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마약 퇴치를 위한 공조 협력체, INTAC의 역할이 컸다. 국제적 범죄인 만큼, 다국적 수사망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학생 상대 
마약 테러

중국인 총책 A씨는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밀입국해 은신하다 덜미가 잡혔다. 사정당국은 A씨의 국내 송환을 시도했으나, 캄보디아법에 의거, 현지서 처벌받게 됐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배후가 뚜렷해지면서 국내 마약 유통경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4월3일 오후 6시경 범죄조직원들은 ‘메가 ADHD’라고 적힌 음료를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라고 소개하며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건넸다. 간 큰 조직원들은 마약 섞인 음료수를 마신 학생들에게 재구매 의사가 있는지, 부모의 연락처 등을 조사했다.

이렇게 알아낸 학부모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자식이 마약을 했으며 이를 경찰에 신고하겠다. 싫다면 돈을 내놔라”고 협박 전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학생의 부모들은 협박에 응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고, 음료를 마신 학생들은 구토, 어지러움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1병을 모두 마신 한 학생은 일주일 동안 등교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걸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1병에 필로폰 3회 분량(통상 1회 투약분 약 0.03g)이 들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학생의 몸에서도 마약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피해자는 약 9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이 입수한 마약 음료는 약 100병이었으며, 미개봉 상태로 수거한 36병과 범죄에 연루된 아르바이트생들이 폐기 처분한 게 44병 정도로 알려졌다. 시음 행사 아르바이트생들이 마약 성분이 든 사실을 모른 채 마신 2병과 시중에 유포된 것은 18병 정도다.

사건 초기에 피해자들이 마신 것으로 파악된 것은 7병이다. 음료를 건네받은 사람 기준으로 최소 11명의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존재하는 셈이다.

마약사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나서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서 신고했지만, 일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마약사건에 연루됐다”는 부정적 인식을 우려해 피해 진술을 꺼린 이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보이스피싱+마약에 학부모 협박
국제적 범죄조직 일망타진 조준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미성년자인 경우, 마약인 줄 모르고 마셨으므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종 확정된 피해자 수는 19명이며 이 중 미성년자는 13명, 학부모는 6명이다. 사건을 기획한 이들은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반년 전부터 범행을 구상해 역할을 나누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번에 체포된 중국 마약 총책을 검거하는 데 1년 이상 걸렸다.

앞서 사고를 접수한 경찰은 곧바로 용의자들 추적에 나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당시 여성 1명을 검거했고, 나머지 남성 1명은 자수했다고 밝혔다. 먼저 잡힌 이들을 통해 나머지 공범 2명이 더 있다고 알게 된 경찰은 “이들 4명은 2명씩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움직였다”고 밝혔다.

음료를 나눠준 이들 중 1명은 경찰 진술서 “마약이 들어있는 줄 몰랐다”며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이고, 학부모를 협박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마약을 유포한 적이 전혀 없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았느냐”며 범행을 부인했다.

지난해 4월6일 오전 또 다른 마약사범 중 한 명은 경찰서에 찾아와서 자수했다. 또 다른 자수자는 “마약인 줄 몰랐으며 인터넷의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 뿐”이라고 진술했으며, 시음 음료는 택배로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마지막 용의자가 검거됐다.

그러나 현장서 마약 음료를 나눠준 용의자 4명은 모두 말단에 불과했다. 대부분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고용된 비핵심 조직원이었던 것이다. 마약을 제조하고 이들에게 보내고, 협박하는 등의 범죄를 기획한 총책은 모두 따로 있었다.

결국 과거 현금 수거책으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1명을 제외한 3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치동서···
간 큰 조직

다음 날인 7일, 서서히 몸통이 드러났다. 총책의 지시를 받고 강원도 원주서 마약 음료를 제조한 혐의로 길모씨가 검거됐다. 길씨는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음료를 제조한 뒤 중국서 건너온 빈 병에 담아 서울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전달했다.

원주서 제조된 마약 음료는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통해 서울로 운반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학부모 등에게 걸려온 협박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 역추적했다. 이 과정서 중국서 걸려 온 인터넷 전화를 발신번호 변조 및 중계기를 이용해 한국 번호로 바꿔준 김모씨도 붙잡혔다.

피해 학부모의 진술에 의하면 협박범의 전화 속 말투는 조선족의 말투였다. 빈 병의 공급처와 협박 전화 발신지 모두 중국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중국에 근거지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 등이 이 범행을 꾸민 것으로 봤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출입국당국에 입국 시 통보를, 중국 공안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중계기를 설치·운영한 김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화번호를 변작해 주는 전문가였다. 김씨를 검거하는 과정서 노트북 6대, USB 모뎀 96개, 휴대전화 유심 368개를 압수했다. 모뎀 사용 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김씨는 전체 피해 금액 1억원가량의 보이스피싱 14건에 연루돼있었다. 

김씨는 전화번호 1개를 변작해 주는 대가로 1만원씩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여러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약 2000만원을 받아 절반가량을 장비 구입에 쓴 것으로 봤다. 지난해 4월10일에는 마약 음료를 제조하고 전달한 2명의 20대, 30대 한국 남성이 구속됐다. 경찰은 두 사람의 진술을 통해 총책을 추적했다. 

추적 끝에 길씨에게 마약 음료 제조를 지시한 20대 이모씨와 현지서 범행에 가담한 중국 국적 30대 박모씨가 윗선으로 특정됐다. 특히, 이씨는 한국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전력이 있으며 2022년 10월부터 중국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2022년 말부터 범행을 구상해 역할을 나누고 계획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중국으로 건너간 2022년 10월부터 이 사건과 관련한 계획이 시작됐으며,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책’으로 지목됐다.

동창 가담
중형 집행

앞서 이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한다고 주변에 알리고 2022년 10월17일 출국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씨는 이씨의 중학교 동창으로 드러났다. 판촉물 등을 한국으로 배송하는 데 가담한 박씨, 중계기 업자 김씨도 이씨가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씨 등이 범행을 꾸민 장소를 특정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있는 이씨와 박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수사 발달로 수입이 줄자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기획한 것으로 경찰은 봤다.

해당 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담수사팀(팀장 신준호 강력범죄수사부장)은 길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영리 목적 미성년자 필로폰 투약, 미성년자 필로폰 투약에 의한 특수상해, 보이스피싱 범죄단체가입 활동, 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 박씨, 이씨 모두 공범으로 함께 기소했다. 길씨는 지난해 10월 1심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공범 3명에게도 징역 7~10년이 선고됐다. 이어 지난해 5월22일 중국에 체류 중이던 이씨는 현지 공안에 의해 지린성 내 은신처서 검거돼 지난해 12월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팀장 김연실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지난 1월24일 이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영리목적 미성년자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 기소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후 국정원은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핵심 주범인 공급책 A씨의 행방을 추적했으나 수개월째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1월 여행 가방에 필로폰 4㎏을 숨겨 캄보디아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던 중국인 E씨를 적발해 배후 추적에 나섰다. 포착된 공급책이 주범인 A씨였다. 그는 사건 이후에도 법망을 피해 캄보디아서 한국으로 필로폰을 여전히 공급해오고 있었다.

국정원 주도···다국적 수사망 발동
‘미드’ 보고 흉내, 중국 총책 특정

국정원은 검찰(대검 마약과)·경찰(국가수사본부 마약조직범죄수사과)·캄보디아 경찰과 A씨 검거를 위한 공조에 착수했다. 이 과정서 아태 지역 5개국과 마약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 주도로 지난 2월 출범한 ‘아시아 마약정보협력체(INTAC)’의 역할이 컸다.

국정원은 INTAC을 통해 캄보디아 경찰에 A씨 전담 추적팀 편성을 이끌어냈다. 해외 정보망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A씨의 은신처, 주변 탐색 등을 통해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그러던 중 지난 달, 국정원은 현지 정보망을 통해 A씨 소재 관련 결정적 단서를 입수·분석하고 캄보디아 경찰에 지원을 요청했다.

현지 경찰은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잠복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지난 16일 프놈펜 중심가 빌라에 은신해 있던 A씨를 체포할 수 있었다. A씨 은신처에서는 2만3000여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700여g이 발견됐다. 푸른색으로 인공착색된 신종 필로폰도 대량 포함됐다.

조사 결과, A씨는 ▲남미 조직이 코카인에 고유 문양을 새기는 점 ▲청색 필로폰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등에서 영감을 얻어, 본인만의 푸른색 필로폰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중국과 한국에 해당 견본품을 공급해 시장 반응을 타진했으며, 중국보다 반응이 좋은 한국에 대량 공급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A씨를 검거하지 못했다면 대량의 마약이 밀반입돼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과 같은 신종 범죄에 쓰였을 것”이라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국제범죄조직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끝까지 추적, 검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송환 여부 가능성에 대해선 “캄보디아 현지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에서는 마약 범죄자에게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지만, 80g이 넘는 불법 마약류를 취급하다 적발될 시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한편, 최근 동남아를 통해 한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태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서 필로폰 1.75㎏을 국내로 밀반입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지난해 6~8월 생리대에 필로폰을 은닉해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으며,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등 혐의를 적용해 총책을 비롯한 9명을 구속했다.

신종 수법
억울한 알바

마약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동남아 일부 국가서도 과거와 달리 엄격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헤로인 600g 이상 또는 필로폰 2.5㎏ 이상을 소지하거나 밀반입하다가 적발되면 사형에 처한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마약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최소 189명에 이른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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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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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