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마약 단속 2시간 미스터리

실적 챙기려다 국민들 놓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과 안전 소홀 문제가 드러나면서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마약 단속’보다는 안전을 챙겼다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137명의 경찰 중 오후 9시 전 이태원 일대에 있던 50여명의 마약 담당 경찰은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마약 관련 전문가들은 수십명의 형사과 경찰이 핼러윈 데이 기간에 마약 단속에 나선 것이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10만명이 넘는 인파 사이에서 마약 투약 및 판매 행위를 적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술집과 클럽이 아닌 호텔과 파티룸 등에서 투약이 이뤄지기에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가 마약 단속에 나간 것이 확실한 첩보가 있지 않고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
정부 기조 따라?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정부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속됐으나 시민 안전이 아닌 마약 단속에 더욱 집중된 것이 그 이유다.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사고 현장 인근에 형사·강력 등 경찰 52명이 배치돼있었다. 이들은 마약범 단속을 위해 사고 현장에 있었는데, 이날 단속 실적은 전무했다.

형사·강력 경찰 52명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서울 용산·동작·강북·광진서 소속이었다. 특히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1·2계팀, 12명의 인원이 현장에 나와 있었다. 서울청 마수대 인원이 38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이 투입된 셈이다.


이들은 10개팀으로 나뉘어 지난달 29일 이태원 일대에 배치됐다. 이들은 오후 8시48분부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곳에서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인근이나 이태원로·세계음식문화거리 등에 투입됐다. 이태원 일대 클럽·라운지바에서의 마약류 범죄 점검·단속 및 순찰 활동이 주된 임무였다.

형사들이 배치된 곳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6시30분부터 112 구조신고가 빗발칠 정도로 아비규환이었고 10시15분부터 압사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나 마약 담당 형사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출하거나 통제에 나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합동단속반 중 용산경찰서 강력팀이 단속 활동 전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10시37분쯤 현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것이 첫 구조 활동인 것으로 확인된다. 강력6팀이 현장의 위급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한 시간은 출동 7분 뒤인 오후 10시44분이었다.

합동단속반은 4분 뒤인 10시48분 근처에 있던 형사들을 모아 일정 수정 및 인원을 재배치하고 오후 10시50분쯤부터 구조 활동 및 인파 분산 유도, 구조로 확보 등의 조처를 진행했다.

사정기관 특별 정보 아니고서…
형사 50여명 투입 사실상 사족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는 사고 당일 오후 11시17분에야 처음 이뤄졌다. 당시 경찰 배치 운용 현황을 보면 용산 거점 근무를 하고 있던 11경찰기동대가 이 시간에 지시를 받고, 현장엔 오후 11시40분에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거점 근무 77경찰기동대가 오후 11시50분, 여의도 거점 근무 67경찰기동대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0시10분쯤에 잇따라 현장에 왔다.

두 경찰기동대가 투입 지시를 받은 건 각각 오후 11시33분·11시50분이었다. 이들 포함 경찰기동대 총 5곳과 의무경찰부대 8곳이 긴급 투입됐지만, 이미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경찰이 안전 관리가 아닌 마약 수사에 몰두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용산서는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외사과 2명, 형사과 50명, 여성청소년과 4명, 이태원파출소 32명, 관광경찰대 10명 등 총 137명을 투입했다.

교통기동대 20명은 인근에서 발생한 집회·시위가 끝난 뒤 오후 10시쯤 넘어오는 방식이었다. 경비과의 지휘를 받는 일반 기동대와는 달리 교통기동대는 교통과의 지휘를 받아 차량 통제 등을 담당한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인파를 관리·통제할 인원은 사실상 제로였던 셈이다.

형사과는 마약사범 등 기타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다. 형사과 투입 인력이 교통기동대와 교통과를 합친 것의 약 2배에 달한 사실을 보면 경찰이 참사 당일 도로 통제 및 통행 관리보다 마약 수사에 몰두할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례적인
기획 단속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형사부서 경찰들이 마약 단속 말고도 절도나 성범죄 등 경범죄도 들여다본다”며 “특별히 핼러윈 데이기에 단속한 것이 아니다. 올 연말까지는 종종 단속을 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경찰 간부와 마약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태원 일대에 마약 단속을 위해 50명이 넘는 형사과 인력이 투입된 배경에 특별취급 정보(첩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마수대 출신 경찰 간부들은 이태원처럼 작은 지역에 수십명의 형사과 인력이 투입되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실제 경찰 내부 문건인 ‘핼러윈 데이 사전 대비 파일’에 따르면 경찰은 당초 마약 단속을 위해 형사 16명을 배치하려 했다. 16명이었던 형사과 인원이 실제 현장에서 50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난 배경에는 김광호 서울청장 지시가 있었다.

용산서가 지난달 24일 작성한 치안대책 자료에는 “핼러윈 주말에 작년보다 더 많은 인파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중이 밀집한 틈을 노린 강제추행·치기절도 등 강력범죄와 과다 노출, 모의총포 소지와 같은 위법행위가 특히 우려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형사 16명, 생활안전 8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팀 4개 조를 투입해 마약 투약 등 불법행위와 질서 위반 단속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0만명 인파 적발 불가능”
특정 거물급 인사 쫓았나

그런데 김 청장이 지난달 28일 ‘핼러윈 때 마약이 문제될 수 있어 대책을 세워보라’며 공문을 내렸다. 김 청장의 지시로 서울청은 용산서 자체 계획에 더해 마약범죄수사대와 인접서 3개 팀 등 25명을 추가 투입했다. 용산서가 투입했다는 형사 50명은 용산서 자체 인력 25명에 서울청 마수대 12명, 인접서에서 파견된 13명 등을 합한 규모다.


마수대 출신의 한 서울청 간부는 “원래 배치될 인력의 3배가 늘었다. 전례가 없다고 볼 수 있고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 정보기관에서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으면 상당수 경찰이 사복을 입고 주변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경찰 간부가 말한 정보기관은 어디일까? 마약 관련 첩보를 관리하는 사정기관은 경찰을 제외하고 국가정보원과 검찰, 관세청 등이 있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과 검찰은 마약 사건을 두고 최근까지 공조하지 않았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경찰과 마약 수사 공조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검찰이 핼러윈 데이에 마약 실적 수사를 위한 기획과 파견이 있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반부패·강력부도 연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이 설치된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첩보 보고서도 보지 못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검찰은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과 검찰은 마약 수사를 두고 경쟁 레이스를 뛰고 있다. 김 청장이 마약 단속 인원을 대폭 늘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 데이 기간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를 투입한다고 해서 실적을 낼 수 있을까?

인원 대폭 늘려
성과는 없었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마약 단속이 수사 목적이 아닌 범죄 예방 차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술집과 클럽 등에 직접 형사가 들어가 사람들을 지켜봤을 것”이라며 “특정 수사가 아니었다고 해도 언제든지 수사 전환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클럽과 술집에도 수백에서 수천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었을 텐데 마약 단속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상식적으로 핼러윈 데이에 누가 대놓고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하겠나. 경찰이 마약 단속 인력을 대폭 늘린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마약 담당 경찰 수십명은 팀을 나눠 이태원 각 술집과 라운지바·클럽을 드나들며 단속했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흩어지기에 경찰 개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단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청 간부는 “과거부터 검찰과 경찰은 마약 사건 공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정원 또는 경찰과 국정원으로 나눠서 한다”며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꾸려 마약 첩보를 입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면 국정원으로부터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아 마약 단속 인력이 3배 이상 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검찰과 공조하기도 하고 경찰과 공조도 한다.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공조하고 마약 관련 첩보를 공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첩보를 경찰에 넘겼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강남과 이태원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과거부터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대검·중앙지검·국정원
“기획 의혹, 사실 아니다”

마약사범들에게 한국은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필로폰의 미국 시세는 g당 44달러(약 6만원)이고 태국은 13달러(1만8000원)다. 우리나라는 450달러(64만원)다. 태국보다 무려 35배나 높다. 국정원은 이 같은 이유로 중국 삼합회, 대만 죽련방, 일본 야쿠자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 마약·폭력 조직들은 한국을 마약 경유·소비지로 만들려 끊임없이 시도 중이다. 최근에는 마약을 은닉한 화물을 정식 수출입으로 위장해 한국으로 밀반입한 다음, 제3국으로 밀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까지 쓰고 있다.

특히 IT기술의 발달로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정보통신기술에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필로폰 소매 방식이 크게 변했고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

국정원은 동남아 지역 정보·수사기관들과 공조해 2018년부터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 6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이들 중 4명은 검경과 협조해 국내로 송환했다. 나머지 2명은 현지 수감 중이다.

2017년 콜롬비아발 한국행 선박에서 코카인 657kg이 나온 바 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의 배후에 A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국제 마약유통 혐의로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추적 중인 인물이다. 그는 중남미발 마약을 호주로 밀반입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주 동포 B씨를 포섭해 아시아 총책으로 활용했다. B씨는 국내에 자신의 하수인 C씨를 두고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국정원은 이들이 남미에서 대형 기계류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들여와 뒤 다시 호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을 사용한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호주 당국이 한국발 선적화물(헬리컬기어)에서 필로폰 230kg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정원은 관세청과 협조해 아직 호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필로폰 은닉 헬리컬기어 9개가 한국에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지난해 7월, 국정원과 관세청은 필로폰 404kg을 국내에 밀반입해온 C씨를 검거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가 1조3000억원 상당이며, 무려 130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국정원은 이후 국내외 정보망을 총동원해 아시아 총책의 베트남 은신처 정보를 파악하고 지난 2월 B씨를 현지에서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 조치했다.

특별 정보
존재했나

대학생이 많은 신촌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필로폰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2018년 7월 대만에서 한국으로 밀반입한 필로폰 수십kg이 일본 야쿠자와 국내 마약조직에 넘어간다는 제보를 받고 국내로 들어온 대만인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정원은 세관과 합동추적팀을 꾸렸다. 국정원은 신촌 한 모텔에서 필로폰 5kg을 밀반출하려던 용의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근 모텔에 23.5kg의 필로폰을 숨겨놓은 상태였다. 총 28.5kg으로 시가 940억원 상당, 94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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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