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마약 단속 2시간 미스터리

실적 챙기려다 국민들 놓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과 안전 소홀 문제가 드러나면서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마약 단속’보다는 안전을 챙겼다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137명의 경찰 중 오후 9시 전 이태원 일대에 있던 50여명의 마약 담당 경찰은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마약 관련 전문가들은 수십명의 형사과 경찰이 핼러윈 데이 기간에 마약 단속에 나선 것이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10만명이 넘는 인파 사이에서 마약 투약 및 판매 행위를 적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술집과 클럽이 아닌 호텔과 파티룸 등에서 투약이 이뤄지기에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가 마약 단속에 나간 것이 확실한 첩보가 있지 않고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
정부 기조 따라?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정부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속됐으나 시민 안전이 아닌 마약 단속에 더욱 집중된 것이 그 이유다.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사고 현장 인근에 형사·강력 등 경찰 52명이 배치돼있었다. 이들은 마약범 단속을 위해 사고 현장에 있었는데, 이날 단속 실적은 전무했다.

형사·강력 경찰 52명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서울 용산·동작·강북·광진서 소속이었다. 특히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1·2계팀, 12명의 인원이 현장에 나와 있었다. 서울청 마수대 인원이 38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이 투입된 셈이다.


이들은 10개팀으로 나뉘어 지난달 29일 이태원 일대에 배치됐다. 이들은 오후 8시48분부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곳에서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인근이나 이태원로·세계음식문화거리 등에 투입됐다. 이태원 일대 클럽·라운지바에서의 마약류 범죄 점검·단속 및 순찰 활동이 주된 임무였다.

형사들이 배치된 곳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6시30분부터 112 구조신고가 빗발칠 정도로 아비규환이었고 10시15분부터 압사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나 마약 담당 형사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출하거나 통제에 나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합동단속반 중 용산경찰서 강력팀이 단속 활동 전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10시37분쯤 현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것이 첫 구조 활동인 것으로 확인된다. 강력6팀이 현장의 위급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한 시간은 출동 7분 뒤인 오후 10시44분이었다.

합동단속반은 4분 뒤인 10시48분 근처에 있던 형사들을 모아 일정 수정 및 인원을 재배치하고 오후 10시50분쯤부터 구조 활동 및 인파 분산 유도, 구조로 확보 등의 조처를 진행했다.

사정기관 특별 정보 아니고서…
형사 50여명 투입 사실상 사족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는 사고 당일 오후 11시17분에야 처음 이뤄졌다. 당시 경찰 배치 운용 현황을 보면 용산 거점 근무를 하고 있던 11경찰기동대가 이 시간에 지시를 받고, 현장엔 오후 11시40분에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거점 근무 77경찰기동대가 오후 11시50분, 여의도 거점 근무 67경찰기동대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0시10분쯤에 잇따라 현장에 왔다.

두 경찰기동대가 투입 지시를 받은 건 각각 오후 11시33분·11시50분이었다. 이들 포함 경찰기동대 총 5곳과 의무경찰부대 8곳이 긴급 투입됐지만, 이미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경찰이 안전 관리가 아닌 마약 수사에 몰두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용산서는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외사과 2명, 형사과 50명, 여성청소년과 4명, 이태원파출소 32명, 관광경찰대 10명 등 총 137명을 투입했다.

교통기동대 20명은 인근에서 발생한 집회·시위가 끝난 뒤 오후 10시쯤 넘어오는 방식이었다. 경비과의 지휘를 받는 일반 기동대와는 달리 교통기동대는 교통과의 지휘를 받아 차량 통제 등을 담당한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인파를 관리·통제할 인원은 사실상 제로였던 셈이다.

형사과는 마약사범 등 기타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다. 형사과 투입 인력이 교통기동대와 교통과를 합친 것의 약 2배에 달한 사실을 보면 경찰이 참사 당일 도로 통제 및 통행 관리보다 마약 수사에 몰두할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례적인
기획 단속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형사부서 경찰들이 마약 단속 말고도 절도나 성범죄 등 경범죄도 들여다본다”며 “특별히 핼러윈 데이기에 단속한 것이 아니다. 올 연말까지는 종종 단속을 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경찰 간부와 마약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태원 일대에 마약 단속을 위해 50명이 넘는 형사과 인력이 투입된 배경에 특별취급 정보(첩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마수대 출신 경찰 간부들은 이태원처럼 작은 지역에 수십명의 형사과 인력이 투입되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실제 경찰 내부 문건인 ‘핼러윈 데이 사전 대비 파일’에 따르면 경찰은 당초 마약 단속을 위해 형사 16명을 배치하려 했다. 16명이었던 형사과 인원이 실제 현장에서 50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난 배경에는 김광호 서울청장 지시가 있었다.

용산서가 지난달 24일 작성한 치안대책 자료에는 “핼러윈 주말에 작년보다 더 많은 인파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중이 밀집한 틈을 노린 강제추행·치기절도 등 강력범죄와 과다 노출, 모의총포 소지와 같은 위법행위가 특히 우려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형사 16명, 생활안전 8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팀 4개 조를 투입해 마약 투약 등 불법행위와 질서 위반 단속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0만명 인파 적발 불가능”
특정 거물급 인사 쫓았나

그런데 김 청장이 지난달 28일 ‘핼러윈 때 마약이 문제될 수 있어 대책을 세워보라’며 공문을 내렸다. 김 청장의 지시로 서울청은 용산서 자체 계획에 더해 마약범죄수사대와 인접서 3개 팀 등 25명을 추가 투입했다. 용산서가 투입했다는 형사 50명은 용산서 자체 인력 25명에 서울청 마수대 12명, 인접서에서 파견된 13명 등을 합한 규모다.


마수대 출신의 한 서울청 간부는 “원래 배치될 인력의 3배가 늘었다. 전례가 없다고 볼 수 있고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 정보기관에서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으면 상당수 경찰이 사복을 입고 주변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경찰 간부가 말한 정보기관은 어디일까? 마약 관련 첩보를 관리하는 사정기관은 경찰을 제외하고 국가정보원과 검찰, 관세청 등이 있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과 검찰은 마약 사건을 두고 최근까지 공조하지 않았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경찰과 마약 수사 공조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검찰이 핼러윈 데이에 마약 실적 수사를 위한 기획과 파견이 있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반부패·강력부도 연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이 설치된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첩보 보고서도 보지 못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검찰은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과 검찰은 마약 수사를 두고 경쟁 레이스를 뛰고 있다. 김 청장이 마약 단속 인원을 대폭 늘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 데이 기간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를 투입한다고 해서 실적을 낼 수 있을까?

인원 대폭 늘려
성과는 없었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마약 단속이 수사 목적이 아닌 범죄 예방 차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술집과 클럽 등에 직접 형사가 들어가 사람들을 지켜봤을 것”이라며 “특정 수사가 아니었다고 해도 언제든지 수사 전환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클럽과 술집에도 수백에서 수천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었을 텐데 마약 단속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상식적으로 핼러윈 데이에 누가 대놓고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하겠나. 경찰이 마약 단속 인력을 대폭 늘린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마약 담당 경찰 수십명은 팀을 나눠 이태원 각 술집과 라운지바·클럽을 드나들며 단속했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흩어지기에 경찰 개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단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청 간부는 “과거부터 검찰과 경찰은 마약 사건 공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정원 또는 경찰과 국정원으로 나눠서 한다”며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꾸려 마약 첩보를 입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면 국정원으로부터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아 마약 단속 인력이 3배 이상 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검찰과 공조하기도 하고 경찰과 공조도 한다.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공조하고 마약 관련 첩보를 공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첩보를 경찰에 넘겼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강남과 이태원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과거부터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대검·중앙지검·국정원
“기획 의혹, 사실 아니다”

마약사범들에게 한국은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필로폰의 미국 시세는 g당 44달러(약 6만원)이고 태국은 13달러(1만8000원)다. 우리나라는 450달러(64만원)다. 태국보다 무려 35배나 높다. 국정원은 이 같은 이유로 중국 삼합회, 대만 죽련방, 일본 야쿠자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 마약·폭력 조직들은 한국을 마약 경유·소비지로 만들려 끊임없이 시도 중이다. 최근에는 마약을 은닉한 화물을 정식 수출입으로 위장해 한국으로 밀반입한 다음, 제3국으로 밀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까지 쓰고 있다.

특히 IT기술의 발달로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정보통신기술에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필로폰 소매 방식이 크게 변했고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

국정원은 동남아 지역 정보·수사기관들과 공조해 2018년부터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 6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이들 중 4명은 검경과 협조해 국내로 송환했다. 나머지 2명은 현지 수감 중이다.

2017년 콜롬비아발 한국행 선박에서 코카인 657kg이 나온 바 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의 배후에 A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국제 마약유통 혐의로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추적 중인 인물이다. 그는 중남미발 마약을 호주로 밀반입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주 동포 B씨를 포섭해 아시아 총책으로 활용했다. B씨는 국내에 자신의 하수인 C씨를 두고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국정원은 이들이 남미에서 대형 기계류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들여와 뒤 다시 호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을 사용한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호주 당국이 한국발 선적화물(헬리컬기어)에서 필로폰 230kg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정원은 관세청과 협조해 아직 호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필로폰 은닉 헬리컬기어 9개가 한국에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지난해 7월, 국정원과 관세청은 필로폰 404kg을 국내에 밀반입해온 C씨를 검거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가 1조3000억원 상당이며, 무려 130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국정원은 이후 국내외 정보망을 총동원해 아시아 총책의 베트남 은신처 정보를 파악하고 지난 2월 B씨를 현지에서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 조치했다.

특별 정보
존재했나

대학생이 많은 신촌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필로폰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2018년 7월 대만에서 한국으로 밀반입한 필로폰 수십kg이 일본 야쿠자와 국내 마약조직에 넘어간다는 제보를 받고 국내로 들어온 대만인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정원은 세관과 합동추적팀을 꾸렸다. 국정원은 신촌 한 모텔에서 필로폰 5kg을 밀반출하려던 용의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근 모텔에 23.5kg의 필로폰을 숨겨놓은 상태였다. 총 28.5kg으로 시가 940억원 상당, 94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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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