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마약 단속 2시간 미스터리

실적 챙기려다 국민들 놓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과 안전 소홀 문제가 드러나면서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이 ‘마약 단속’보다는 안전을 챙겼다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참사 당일 현장에 배치된 137명의 경찰 중 오후 9시 전 이태원 일대에 있던 50여명의 마약 담당 경찰은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마약 관련 전문가들은 수십명의 형사과 경찰이 핼러윈 데이 기간에 마약 단속에 나선 것이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10만명이 넘는 인파 사이에서 마약 투약 및 판매 행위를 적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술집과 클럽이 아닌 호텔과 파티룸 등에서 투약이 이뤄지기에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가 마약 단속에 나간 것이 확실한 첩보가 있지 않고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
정부 기조 따라?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정부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이후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 일대에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속됐으나 시민 안전이 아닌 마약 단속에 더욱 집중된 것이 그 이유다.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사고 현장 인근에 형사·강력 등 경찰 52명이 배치돼있었다. 이들은 마약범 단속을 위해 사고 현장에 있었는데, 이날 단속 실적은 전무했다.

형사·강력 경찰 52명은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서울 용산·동작·강북·광진서 소속이었다. 특히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1·2계팀, 12명의 인원이 현장에 나와 있었다. 서울청 마수대 인원이 38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이 투입된 셈이다.


이들은 10개팀으로 나뉘어 지난달 29일 이태원 일대에 배치됐다. 이들은 오후 8시48분부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곳에서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인근이나 이태원로·세계음식문화거리 등에 투입됐다. 이태원 일대 클럽·라운지바에서의 마약류 범죄 점검·단속 및 순찰 활동이 주된 임무였다.

형사들이 배치된 곳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6시30분부터 112 구조신고가 빗발칠 정도로 아비규환이었고 10시15분부터 압사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나 마약 담당 형사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출하거나 통제에 나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합동단속반 중 용산경찰서 강력팀이 단속 활동 전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10시37분쯤 현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것이 첫 구조 활동인 것으로 확인된다. 강력6팀이 현장의 위급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한 시간은 출동 7분 뒤인 오후 10시44분이었다.

합동단속반은 4분 뒤인 10시48분 근처에 있던 형사들을 모아 일정 수정 및 인원을 재배치하고 오후 10시50분쯤부터 구조 활동 및 인파 분산 유도, 구조로 확보 등의 조처를 진행했다.

사정기관 특별 정보 아니고서…
형사 50여명 투입 사실상 사족

경찰기동대 투입 지시는 사고 당일 오후 11시17분에야 처음 이뤄졌다. 당시 경찰 배치 운용 현황을 보면 용산 거점 근무를 하고 있던 11경찰기동대가 이 시간에 지시를 받고, 현장엔 오후 11시40분에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거점 근무 77경찰기동대가 오후 11시50분, 여의도 거점 근무 67경찰기동대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0시10분쯤에 잇따라 현장에 왔다.

두 경찰기동대가 투입 지시를 받은 건 각각 오후 11시33분·11시50분이었다. 이들 포함 경찰기동대 총 5곳과 의무경찰부대 8곳이 긴급 투입됐지만, 이미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경찰이 안전 관리가 아닌 마약 수사에 몰두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용산서는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외사과 2명, 형사과 50명, 여성청소년과 4명, 이태원파출소 32명, 관광경찰대 10명 등 총 137명을 투입했다.

교통기동대 20명은 인근에서 발생한 집회·시위가 끝난 뒤 오후 10시쯤 넘어오는 방식이었다. 경비과의 지휘를 받는 일반 기동대와는 달리 교통기동대는 교통과의 지휘를 받아 차량 통제 등을 담당한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 인파를 관리·통제할 인원은 사실상 제로였던 셈이다.

형사과는 마약사범 등 기타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다. 형사과 투입 인력이 교통기동대와 교통과를 합친 것의 약 2배에 달한 사실을 보면 경찰이 참사 당일 도로 통제 및 통행 관리보다 마약 수사에 몰두할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례적인
기획 단속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형사부서 경찰들이 마약 단속 말고도 절도나 성범죄 등 경범죄도 들여다본다”며 “특별히 핼러윈 데이기에 단속한 것이 아니다. 올 연말까지는 종종 단속을 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경찰 간부와 마약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태원 일대에 마약 단속을 위해 50명이 넘는 형사과 인력이 투입된 배경에 특별취급 정보(첩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마수대 출신 경찰 간부들은 이태원처럼 작은 지역에 수십명의 형사과 인력이 투입되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실제 경찰 내부 문건인 ‘핼러윈 데이 사전 대비 파일’에 따르면 경찰은 당초 마약 단속을 위해 형사 16명을 배치하려 했다. 16명이었던 형사과 인원이 실제 현장에서 50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난 배경에는 김광호 서울청장 지시가 있었다.

용산서가 지난달 24일 작성한 치안대책 자료에는 “핼러윈 주말에 작년보다 더 많은 인파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중이 밀집한 틈을 노린 강제추행·치기절도 등 강력범죄와 과다 노출, 모의총포 소지와 같은 위법행위가 특히 우려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형사 16명, 생활안전 8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팀 4개 조를 투입해 마약 투약 등 불법행위와 질서 위반 단속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10만명 인파 적발 불가능”
특정 거물급 인사 쫓았나

그런데 김 청장이 지난달 28일 ‘핼러윈 때 마약이 문제될 수 있어 대책을 세워보라’며 공문을 내렸다. 김 청장의 지시로 서울청은 용산서 자체 계획에 더해 마약범죄수사대와 인접서 3개 팀 등 25명을 추가 투입했다. 용산서가 투입했다는 형사 50명은 용산서 자체 인력 25명에 서울청 마수대 12명, 인접서에서 파견된 13명 등을 합한 규모다.


마수대 출신의 한 서울청 간부는 “원래 배치될 인력의 3배가 늘었다. 전례가 없다고 볼 수 있고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 정보기관에서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으면 상당수 경찰이 사복을 입고 주변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경찰 간부가 말한 정보기관은 어디일까? 마약 관련 첩보를 관리하는 사정기관은 경찰을 제외하고 국가정보원과 검찰, 관세청 등이 있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과 검찰은 마약 사건을 두고 최근까지 공조하지 않았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경찰과 마약 수사 공조를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검찰이 핼러윈 데이에 마약 실적 수사를 위한 기획과 파견이 있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반부패·강력부도 연관이 없다”고 못 박았다.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이 설치된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첩보 보고서도 보지 못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검찰은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과 검찰은 마약 수사를 두고 경쟁 레이스를 뛰고 있다. 김 청장이 마약 단속 인원을 대폭 늘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 데이 기간 이태원 일대에 수십명의 형사를 투입한다고 해서 실적을 낼 수 있을까?

인원 대폭 늘려
성과는 없었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마약 단속이 수사 목적이 아닌 범죄 예방 차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술집과 클럽 등에 직접 형사가 들어가 사람들을 지켜봤을 것”이라며 “특정 수사가 아니었다고 해도 언제든지 수사 전환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클럽과 술집에도 수백에서 수천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었을 텐데 마약 단속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상식적으로 핼러윈 데이에 누가 대놓고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하겠나. 경찰이 마약 단속 인력을 대폭 늘린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마약 담당 경찰 수십명은 팀을 나눠 이태원 각 술집과 라운지바·클럽을 드나들며 단속했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흩어지기에 경찰 개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단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청 간부는 “과거부터 검찰과 경찰은 마약 사건 공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정원 또는 경찰과 국정원으로 나눠서 한다”며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꾸려 마약 첩보를 입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면 국정원으로부터 확실한 첩보를 넘겨받아 마약 단속 인력이 3배 이상 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검찰과 공조하기도 하고 경찰과 공조도 한다.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공조하고 마약 관련 첩보를 공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첩보를 경찰에 넘겼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강남과 이태원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과거부터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대검·중앙지검·국정원
“기획 의혹, 사실 아니다”

마약사범들에게 한국은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필로폰의 미국 시세는 g당 44달러(약 6만원)이고 태국은 13달러(1만8000원)다. 우리나라는 450달러(64만원)다. 태국보다 무려 35배나 높다. 국정원은 이 같은 이유로 중국 삼합회, 대만 죽련방, 일본 야쿠자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 마약·폭력 조직들은 한국을 마약 경유·소비지로 만들려 끊임없이 시도 중이다. 최근에는 마약을 은닉한 화물을 정식 수출입으로 위장해 한국으로 밀반입한 다음, 제3국으로 밀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까지 쓰고 있다.

특히 IT기술의 발달로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정보통신기술에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필로폰 소매 방식이 크게 변했고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

국정원은 동남아 지역 정보·수사기관들과 공조해 2018년부터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 6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이들 중 4명은 검경과 협조해 국내로 송환했다. 나머지 2명은 현지 수감 중이다.

2017년 콜롬비아발 한국행 선박에서 코카인 657kg이 나온 바 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의 배후에 A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씨는 국제 마약유통 혐의로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추적 중인 인물이다. 그는 중남미발 마약을 호주로 밀반입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주 동포 B씨를 포섭해 아시아 총책으로 활용했다. B씨는 국내에 자신의 하수인 C씨를 두고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국정원은 이들이 남미에서 대형 기계류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들여와 뒤 다시 호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을 사용한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호주 당국이 한국발 선적화물(헬리컬기어)에서 필로폰 230kg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정원은 관세청과 협조해 아직 호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필로폰 은닉 헬리컬기어 9개가 한국에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지난해 7월, 국정원과 관세청은 필로폰 404kg을 국내에 밀반입해온 C씨를 검거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가 1조3000억원 상당이며, 무려 1300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국정원은 이후 국내외 정보망을 총동원해 아시아 총책의 베트남 은신처 정보를 파악하고 지난 2월 B씨를 현지에서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 조치했다.

특별 정보
존재했나

대학생이 많은 신촌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필로폰이 발견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2018년 7월 대만에서 한국으로 밀반입한 필로폰 수십kg이 일본 야쿠자와 국내 마약조직에 넘어간다는 제보를 받고 국내로 들어온 대만인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정원은 세관과 합동추적팀을 꾸렸다. 국정원은 신촌 한 모텔에서 필로폰 5kg을 밀반출하려던 용의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근 모텔에 23.5kg의 필로폰을 숨겨놓은 상태였다. 총 28.5kg으로 시가 940억원 상당, 94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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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