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국내 참사의 역사

대구지하철·삼풍백화점 붕괴 등 계속돼

[일요시사 취재1팀 ] 김태일 기자 = 서울 이태원에서 수백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국내에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잊을만 하면 일어났던 참사에 국민들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참사의 역사.  국내에선 어떤 사고들이 있었을까.

국내 참사의 역사는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반 공사 중이던 대구백화점의 인부가 실수로 가스관을 파손시켰다. 문제는 이때 누출된 가스가 하수관을 통해 대구 지하철 1호선 상인역 공사장으로 유입됐다.

이전부터 쭉

가스는 한동안 괴어있다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후 50m에 달하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400m에 달하는 건설 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 폭발 사고로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등 총 3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차량 150대 이상, 건물 80여채가 파손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이후 2개월 만인 6월29일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붕괴해 사상자 약 1500명이 발생했다. 원인이 부실공사로 밝혀지자 안전 불감증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고 전국적인 건축물 안전실태 조사와 건축법의 강화 계기가 됐다.

당시 사회적으로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객의 생명보다 자신의 회사에 대한 티끌만한 이익을 더 중시했던 삼풍그룹의 모습에 대국민 분노가 들끓었고 앞선 성수대교 사건과 더불어 문민정부에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씌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손꼽히는 대형참사로, 전 세계 지하철 사고 사망자 수 2위를 기록한 철도 사고로 기록됐다. 대한민국의 철도 안전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발생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

방화범 김대한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의 손에는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 2L가 들려있었다. 현재는 철도안전법 상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을 열차에 소지하고 탑승하는 것이 제한돼있으나, 당시에는 그런 법이 없었기 때문에 김대한은 아무런 제지 없이 열차에 승차할 수 있었다.

열차가 중앙로역에 정차하는 순간, 김대한은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였다. 불이 삽시간에 전동차 의자와 바닥 천장에 옮겨붙어 결국 수 초만에 큰 불이 발생했다.

결국 사망 192명, 실종 6명, 부상 151명이라는 큰 피해를 남겼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 실종된 국내 대형 참사였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했으며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던 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이 참사로 피해 학생이 집중된 경기도 안산시와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으며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매우 컸던 국가 대형 참사였다.


이 사고 이후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열 등 엄청난 후폭풍이 닥쳤고 국내 현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고였으며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21세기에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들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 이 사고는 전 국민들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결정적으로 깨닫게 했다.

참담한 결과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사고와 관련 30일 오전 10시 기준 사망자는 151명, 부상자가 82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외국인 사망자는 19명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10대와 20대였다. 사망자의 성별은 남성이 54명, 여성이 97명이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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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