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대참사 ‘열었더라면…’ 해밀톤 지하통로의 비밀

사상자 줄일 대피로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청년 156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이태원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웃음소리는 비명으로 변했고 상황은 아비규환이 됐다. 대다수의 사망 원인은 압사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골목길. 근처에 있던 이들이 대피를 도왔다면 사상자가 줄지 않았을까? <일요시사>는 해당 골목길 근처에 대피로로 쓰일 수 있던 해밀톤 호텔의 통로에 대해 알아봤다.

이태원 유명 술집인 ‘프로스트’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골목길 대각선에 위치한다. 프로스트 맨 오른쪽에는 한 문이 있다. 이 문과 골목길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해당 문은 해밀톤 호텔 1층인 로비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존자들은 이 통로를 알았다면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웃음이
비명으로

지난달 29일은 토요일이었다. 핼러윈 데이를 미리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는 10만명이 넘었다. 사고는 프로스트와 또 다른 술집인 ‘와이키키 비치펍’ 사이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수십명이 원활하게 다니기도 힘든 비좁고 경사진 골목길이었다. 희생자 상당수가 20대였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 진술 및 소방당국과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압사사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쯤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건물 옆 너비 3.2m, 길이 40m 경사진 골목에서 발생했다. 해밀톤 호텔 뒤편 클럽 골목에서 내려오는 인파와 호텔 앞쪽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도로변에서 올라오는 인파가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며 물러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한 생존자는 “100명이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든 좁은 골목이다. 한두 사람씩 넘어지자 위험을 직감한 사람들이 ‘뒤로! 뒤로!’ 소리를 질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프로스트와 와이키키 외에도 유명 라운지 바와 술집이 모여있어 해당 골목길 위는 이른바 ‘이태원 핫플레이스’라고 불린다.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골목은 세 군데가 더 있다. 이들 골목은 모두 내리막길이고, 한 골목은 사고가 난 골목만큼 좁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바로 옆에는 와이키키 비치펍이 있다. 와이키키 비치펍은 1층 (124.36㎡)과 2층(129.94㎡)을 합쳐 총 254.3㎡다. 몇 발자국 옆에는 해밀톤 호텔 별관으로 알려진 이태원 최대 규모 라운지클럽 프로스트와 ‘글램 라운지’가 있다.

별관 1층은 프로스트가 사용하고 2층은 글램 라운지가 사용한다. 둘을 합쳐 825.6㎡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가장 큰 라운지클럽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골목이 끝나는 정면에는 ‘아틀리에(220.88㎡)’가, 좌측에는 ‘파운틴(257.91㎡)’이 위치한다.

유명 술집이 사실상 한곳에 모여있다고 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에 한 곳에만 머물러 술을 마시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청년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놀기 좋은 곳과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을 찾는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한 인사는 “핼러윈 데이가 아닌 불금·불토인 날에도 세계음식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라운지 바와 클럽 가드들이 줄 서는 사람이 많을 때면 강하게 통제하진 않지만 ‘가드라인’을 칠 정도”라고 말했다.

와이키키·프로스트·파운틴 등 라운지 바 밀집 지역
통행하는 사람에 줄서기 수백명 정체로 급포화상태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라운지 바와 술집은 불금과 불토보다 사람이 많은 핼러윈 데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드라인’을 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통제를 하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사람들이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이 길어진 것도 문제라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방재학과 A 교수는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대기하는 사람이 수백명이었고 대기 줄이 길어지면서 인구가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체현상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른 교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하기도 어려운데 더 많은 사람이 한 곳으로 집중돼서 터진 사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음식거리가 사실상 포화상태가 된 것이 밤 9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9시30분이 넘어가자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119에 신고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외에도 세계음식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특정 인물들 5~6명이 “밀어!”라고 언급한 것 외에 또 다른 참사의 원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교수는 “여러 사람이 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 경사진 골목길에 있던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깔리는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의식을 잃은 사람 수십명과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부상자들끼리 엉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부상자들이 와이키키와 프로스트 등에 들어갈 수 없었고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으로 추정되는 가드들이 오히려 밀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손님을 받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들을 외면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사진을 보면 와이키키 내부에는 부상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 생존자는 “11시쯤이었다. 다들 패닉 상태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와이키키뿐만 아니라 여러 술집과 식당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일부 술집은 가드가 밀쳤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출하려 애쓰는 가드나 직원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밤 9시부터
지옥의 시간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 및 가드들이 부상자와 사람들에게 포화상태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피로를 안내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피로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프로스트 맨 오른쪽 끝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밀톤 호텔 1층 로비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재 결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밤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해당 문 안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해밀톤 호텔 로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프로스트 직원들이 해당 통로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해밀톤 호텔 관계자도 “언제나 열려있는 문이고 핼러윈 데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다니는 통로다. 참사 당시에 그 통로로 대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B씨도 “직원들이 경찰이나 소방당국 관계자들에게 길만 비켜줬지, 어디로 가면 더 빨리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트 직원들과 가드들이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을 도우면서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다는 주장도 많았으나 이들은 대형참사를 피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큰 음악 소리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몰랐거나 비명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패닉 상태였다고 가정하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이들이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해당 통로를 통해 대피시킨 이후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안으로 들였다면 많은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들도 해당 통로를 사람들에게 안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을 안내해야 하는 법과 규정은 없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치 이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단계는 아니다.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끝나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떤 걸 언급하거나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참사와의
인과관계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은 사고의 법적 책임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위에 있던 일부 시민이나 와이키키 일부 직원이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당시 일부 시민이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SNS에서는 사고가 난 골목길에서 오르막 쪽에 있던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찰은 현재까지 감식한 것과 인근 CCTV, 사고 기록 영상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이다.

앞 사람을 밀어 대열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뒤엉키는 연쇄작용이 일어났다면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이 뒤엉켜 인명피해까지 나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고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람을 미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폭행으로 볼 수 있기에 폭행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민 사람과 ‘밀어’라고 외친 사람을 특정하기 어렵고 참사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피 안내를 하지 않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막은 술집 직원과 가드들, 이른바 ‘방관자’에 대한 처벌도 어려울 전망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남을 구조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하나는 ‘응급상황에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응급처치를 했는데 처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나 폴란드 독일 스위스 등에서는 이 법을 시행 중이다.

호텔 술집, 안내 안 하고 방관했나
손님 받기에 몰두? 부상자 안 들여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드들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막았다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부작위에 의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보증인 지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호텔과 술집 직원들이 압사사고 발생을 예견하고 대피시켜야 할만한 보증인 지위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현직 판사도 “과실치사·폭행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 해도 참사와 피의자 행위의 인과관계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확한지가 중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와 법리적 검토를 종합한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 무혐의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 구조대는 오후 10시17분에 출발했으나 수만명의 인파를 뚫고 들어가기 버거워 현장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어렵게 접근한 이후 구조대와 시민들이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수십명이 엉켜있어 구조가 어려웠다.

한 생존자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층을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이 12시(자정) 전까지 지속됐다. 10시 반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고 현장에서 곧바로 사망 판정을 받은 이들만 45명이었다.

이번 참사를 두고 기본적 안전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당국은 안전 인력 증원 등 추가 조처를 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은 마약사건·성범죄 대비 명목으로 137명을 배치했고, 용산구청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도로 통제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안전담당 인력 배치와 교통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급 차량은 143대다. 서울에서 지원된 54대를 제외하고도 경기남부 24대, 경기북부 25대, 인천 10대, 강원 10대, 충북 10대, 충남 10대가 지원됐다.

소방당국은 최초 신고를 받은 후 3분 만에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교통통제 등을 위한 대규모 인력 투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구급차들이 1시간가량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자 소방당국은 경찰청에 교통통제를 참사 당일 밤 11시에 요청했다. 관할서인 용산경찰서가 아닌 서울청 차원의 기동대 일부가 투입돼 현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자정이 가까워서다.

방관자 처벌
사실상 불가

경찰이 상황을 안일하게 봤다는 정황은 이날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0분께부터 119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되기 직전인 10시11분까지 경찰은 “압사할 것 같아 통제가 필요하다”는 신고를 11차례 받고도 4차례만 현장 출동했다. 특히 사고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접수된 신고에는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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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간이 갈수록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심판관의 입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미 후폭풍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갈등 수준이 임계점까지 치솟으면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운마저 감도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헌재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세번째 탄핵 심판 사건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최종 변론 이후 14일, 박 전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결정이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변론은 지난달 25일로 마무리됐다. 벌써 2주 넘게 지난 셈이다. 이전보다 길어졌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전직 대통령 사례를 윤 대통령 사건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여권의 주도로 국회서 탄핵 소추됐지만 헌재는 탄핵안을 기각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여권이 나서서 탄핵 소추안 통과를 이끌었고 헌재도 인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 판결 직후 직무에 복귀해 임기를 채웠고 박 전 대통령은 파면돼 직을 상실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형사 처분까지 받았다. 사상 초유의 일이 매일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윤 대통령은 8년 만에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가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같은 달 14일 통과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온 이탈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됐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내란죄’ 혐의가 윤 대통령을 옭아맸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때 역할을 한 군·경찰 관련자들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일부 국무위원은 야권의 탄핵소추에 직무가 정지됐다. 모든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여론의 움직임을 미묘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탄핵소추 전 10% 후반대를 오가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곡선을 그렸고 국민의힘의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힘이 실렸다. 거리로 나온 찬반 집회 여론조사와 다른 양상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 중 하나로 들고 나온 ‘부정선거’ 의혹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전선이 형성됐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쪽은 거리로 나와 세를 과시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 전한길 한국사 강사 등이 주축이 된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찬성 응답이 여전히 높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55.6%,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3%로 집계됐다. 국민의 과반이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응답 비율이 탄핵 반대보다 낮았던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층과 중도층, 무당층이 탄핵 찬성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보수라고 답한 응답층은 탄핵 반대쪽에 무게감을 더하는 중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와 다른 양상을 띠는 게 이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전부터 이미 지지율이 급전직하해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IMF 사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 6%보다도 낮은 4%까지 떨어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 지지율이다. 당시 보수층이 ‘궤멸했다’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현재 보수층은 강하게 결집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한때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설 때도 보수층이 뭉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수층서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면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었다는 것이다. 거세지는 반대 여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이들이 거리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론조사와 달리 탄핵 찬성 집회 인원보다 더 많은 수가 운집하고 있다. 3·1절에 서울 광화문·여의도 등지에 모인 시민은 12만명(경찰 추산)에 달했다. 2만명(경찰 추산)이 모인 같은 날 서울 안국역 등지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와 비교해 6배가량 많은 수다. 문제는 헌재의 선고 결과에 따라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박 전 대통령 때도 헌재의 선고 당일 2명 등 총 4명이 사망했다. 당시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측은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직후 불복을 선언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50여차례 들이받았고 이 과정서 대형 스피커가 떨어지면서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60대 남성 1명도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또 다른 70대 남성 2명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박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찰력을 총동원한다는 입장이다. 탄핵 심판 선고 전후로 외부인이 헌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벽으로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선고 당일 종로·중구 일대를 특별범죄 예방 강화구역으로 선포하고 8개 지역으로 나눠 질서 유지와 인파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민저항권 폭동 예고? 일각에서는 아무리 대비해도 폭력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통해 예고편을 봤다는 것이다. 지난 1월18일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벌인 사건이다. 지지자들은 법원의 기물을 파손하고 영장 판사를 찾아다녔다. 법원이 공격당하는 사상 초유의 일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국민저항권’을 내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했다. 저항권은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라고 정의된다. 실정법상에 승인된 권리는 아니지만, 서부지법에 난입한 지지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도 저항권을 언급하는 등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측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에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이 만료된 후 기소가 이뤄졌다고 보고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체포적부심사와 구속적부심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소요된 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이 즉시항고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은 자유의 몸이 됐다. 또 재판부서 구속 취소 인용 배경으로 밝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가능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는 물론 향후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수사와 재판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나타난 셈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52일 만에 구치소서 나와 관저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90도 인사를 하고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모습 등이 탄핵 반대를 외치는 측의 집결을 부추기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원로들 “헌재 판결 승복해야” 윤, 최후 변론서도 언급 안 해 실제 지난 9일 대통령 관저 인근서 열린 집회서 전 목사는 “윤 대통령이 석방되며 탄핵 재판은 하나 마나가 됐다. 끝났다”며 “만약 헌재가 딴짓을 했다?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한칼에 날려버리겠다”고 발언했다. 사랑제일교회가 주도한 이날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4500명이 모였다. 정치권의 행보가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판결 이후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마은혁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빨리 임명해야 한다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의 탄핵소추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지난 11일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가용할 수 있는 투쟁 수단을 총동원해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비판하면서 민생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이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상황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지지자뿐만 아니라 정치권서도 헌재의 선고에 반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0일에는 여야 정치원로 등이 국회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간담회 직후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빠져드는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구국의 차원에서 모든 국민이 곧 있게 될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앞서 다수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 헌재서 어떤 판결을 내리든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의 최후 변론에 진정성이 담기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헌재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67분 동안 최후 변론을 할 당시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도 헌재 판결 이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 책임총리제 등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구상만 밝혔을 뿐이다. 정치권이 부추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불씨를 던진 양쪽 진영의 갈등은 각종 변수를 발판 삼아 장작이 돼 활활 타오르고 있다. 보수, 진보 양측 모두 통합보다는 분열을 자양분으로 여론몰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제 갈등 수위는 임계점까지 치솟았다. 헌재의 판결이 폭발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