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대참사 ‘열었더라면…’ 해밀톤 지하통로의 비밀

사상자 줄일 대피로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핼러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나온 청년 156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이태원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웃음소리는 비명으로 변했고 상황은 아비규환이 됐다. 대다수의 사망 원인은 압사였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골목길. 근처에 있던 이들이 대피를 도왔다면 사상자가 줄지 않았을까? <일요시사>는 해당 골목길 근처에 대피로로 쓰일 수 있던 해밀톤 호텔의 통로에 대해 알아봤다.

이태원 유명 술집인 ‘프로스트’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골목길 대각선에 위치한다. 프로스트 맨 오른쪽에는 한 문이 있다. 이 문과 골목길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해당 문은 해밀톤 호텔 1층인 로비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존자들은 이 통로를 알았다면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웃음이
비명으로

지난달 29일은 토요일이었다. 핼러윈 데이를 미리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는 10만명이 넘었다. 사고는 프로스트와 또 다른 술집인 ‘와이키키 비치펍’ 사이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수십명이 원활하게 다니기도 힘든 비좁고 경사진 골목길이었다. 희생자 상당수가 20대였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 진술 및 소방당국과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압사사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쯤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건물 옆 너비 3.2m, 길이 40m 경사진 골목에서 발생했다. 해밀톤 호텔 뒤편 클럽 골목에서 내려오는 인파와 호텔 앞쪽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도로변에서 올라오는 인파가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며 물러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진행한 한 생존자는 “100명이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든 좁은 골목이다. 한두 사람씩 넘어지자 위험을 직감한 사람들이 ‘뒤로! 뒤로!’ 소리를 질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프로스트와 와이키키 외에도 유명 라운지 바와 술집이 모여있어 해당 골목길 위는 이른바 ‘이태원 핫플레이스’라고 불린다.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골목은 세 군데가 더 있다. 이들 골목은 모두 내리막길이고, 한 골목은 사고가 난 골목만큼 좁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바로 옆에는 와이키키 비치펍이 있다. 와이키키 비치펍은 1층 (124.36㎡)과 2층(129.94㎡)을 합쳐 총 254.3㎡다. 몇 발자국 옆에는 해밀톤 호텔 별관으로 알려진 이태원 최대 규모 라운지클럽 프로스트와 ‘글램 라운지’가 있다.

별관 1층은 프로스트가 사용하고 2층은 글램 라운지가 사용한다. 둘을 합쳐 825.6㎡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가장 큰 라운지클럽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골목이 끝나는 정면에는 ‘아틀리에(220.88㎡)’가, 좌측에는 ‘파운틴(257.91㎡)’이 위치한다.

유명 술집이 사실상 한곳에 모여있다고 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에 한 곳에만 머물러 술을 마시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청년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놀기 좋은 곳과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을 찾는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한 인사는 “핼러윈 데이가 아닌 불금·불토인 날에도 세계음식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라운지 바와 클럽 가드들이 줄 서는 사람이 많을 때면 강하게 통제하진 않지만 ‘가드라인’을 칠 정도”라고 말했다.

와이키키·프로스트·파운틴 등 라운지 바 밀집 지역
통행하는 사람에 줄서기 수백명 정체로 급포화상태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라운지 바와 술집은 불금과 불토보다 사람이 많은 핼러윈 데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드라인’을 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통제를 하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사람들이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줄이 길어진 것도 문제라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방재학과 A 교수는 “한 곳에 몰려있는 술집과 라운지 바에 대기하는 사람이 수백명이었고 대기 줄이 길어지면서 인구가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정체현상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른 교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하기도 어려운데 더 많은 사람이 한 곳으로 집중돼서 터진 사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음식거리가 사실상 포화상태가 된 것이 밤 9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9시30분이 넘어가자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119에 신고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외에도 세계음식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특정 인물들 5~6명이 “밀어!”라고 언급한 것 외에 또 다른 참사의 원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 교수는 “여러 사람이 거리에서부터 숨이 막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 경사진 골목길에 있던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깔리는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의식을 잃은 사람 수십명과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부상자들끼리 엉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부상자들이 와이키키와 프로스트 등에 들어갈 수 없었고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으로 추정되는 가드들이 오히려 밀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손님을 받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들을 외면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사진을 보면 와이키키 내부에는 부상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 생존자는 “11시쯤이었다. 다들 패닉 상태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와이키키뿐만 아니라 여러 술집과 식당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일부 술집은 가드가 밀쳤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출하려 애쓰는 가드나 직원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밤 9시부터
지옥의 시간

라운지 바와 술집 직원 및 가드들이 부상자와 사람들에게 포화상태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피로를 안내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피로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프로스트 맨 오른쪽 끝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밀톤 호텔 1층 로비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러나 이 통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취재 결과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밤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해당 문 안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해밀톤 호텔 로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프로스트 직원들이 해당 통로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해밀톤 호텔 관계자도 “언제나 열려있는 문이고 핼러윈 데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다니는 통로다. 참사 당시에 그 통로로 대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B씨도 “직원들이 경찰이나 소방당국 관계자들에게 길만 비켜줬지, 어디로 가면 더 빨리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트 직원들과 가드들이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들을 도우면서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다는 주장도 많았으나 이들은 대형참사를 피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큰 음악 소리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몰랐거나 비명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패닉 상태였다고 가정하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이들이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해당 통로를 통해 대피시킨 이후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안으로 들였다면 많은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들도 해당 통로를 사람들에게 안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을 안내해야 하는 법과 규정은 없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치 이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밀톤 호텔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에 협조하는 단계는 아니다.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조사가 끝나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떤 걸 언급하거나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참사와의
인과관계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은 사고의 법적 책임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사상자가 속출한 골목길 위에 있던 일부 시민이나 와이키키 일부 직원이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당시 일부 시민이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SNS에서는 사고가 난 골목길에서 오르막 쪽에 있던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앞 사람을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찰은 현재까지 감식한 것과 인근 CCTV, 사고 기록 영상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이다.

앞 사람을 밀어 대열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뒤엉키는 연쇄작용이 일어났다면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람들이 뒤엉켜 인명피해까지 나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고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람을 미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폭행으로 볼 수 있기에 폭행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민 사람과 ‘밀어’라고 외친 사람을 특정하기 어렵고 참사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피 안내를 하지 않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막은 술집 직원과 가드들, 이른바 ‘방관자’에 대한 처벌도 어려울 전망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남을 구조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하나는 ‘응급상황에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응급처치를 했는데 처치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나 폴란드 독일 스위스 등에서는 이 법을 시행 중이다.

호텔 술집, 안내 안 하고 방관했나
손님 받기에 몰두? 부상자 안 들여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드들이 잘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막았다면 처벌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부작위에 의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보증인 지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호텔과 술집 직원들이 압사사고 발생을 예견하고 대피시켜야 할만한 보증인 지위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현직 판사도 “과실치사·폭행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한다 해도 참사와 피의자 행위의 인과관계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명확한지가 중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수집한 증거와 법리적 검토를 종합한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지만 이번 사건 같은 경우 무혐의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 구조대는 오후 10시17분에 출발했으나 수만명의 인파를 뚫고 들어가기 버거워 현장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어렵게 접근한 이후 구조대와 시민들이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수십명이 엉켜있어 구조가 어려웠다.

한 생존자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층을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이 12시(자정) 전까지 지속됐다. 10시 반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고 현장에서 곧바로 사망 판정을 받은 이들만 45명이었다.

이번 참사를 두고 기본적 안전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당국은 안전 인력 증원 등 추가 조처를 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은 마약사건·성범죄 대비 명목으로 137명을 배치했고, 용산구청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도로 통제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안전담당 인력 배치와 교통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급 차량은 143대다. 서울에서 지원된 54대를 제외하고도 경기남부 24대, 경기북부 25대, 인천 10대, 강원 10대, 충북 10대, 충남 10대가 지원됐다.

소방당국은 최초 신고를 받은 후 3분 만에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교통통제 등을 위한 대규모 인력 투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구급차들이 1시간가량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자 소방당국은 경찰청에 교통통제를 참사 당일 밤 11시에 요청했다. 관할서인 용산경찰서가 아닌 서울청 차원의 기동대 일부가 투입돼 현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자정이 가까워서다.

방관자 처벌
사실상 불가

경찰이 상황을 안일하게 봤다는 정황은 이날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0분께부터 119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되기 직전인 10시11분까지 경찰은 “압사할 것 같아 통제가 필요하다”는 신고를 11차례 받고도 4차례만 현장 출동했다. 특히 사고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접수된 신고에는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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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