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구속수사’ 검찰 딜레마, 왜?

몸통 남기고 가지만 싹둑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가 꾸린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가 마약사범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초범이라도 상습적으로 투약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면 구속수사하는 방안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수사기관 외에도 관세청과 국방부, 국가정보원, 해양경찰이 합류해 인력도 대거 늘었다. 그러나 ‘플리바게닝’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은 수사 과정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게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마약 혐의 피의자 구속수사’ 의지가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검찰 안팎서도 ‘플리바게닝 제도화’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마약과의 전쟁
강공 드라이브

윤석열정부는 지난 4월 특수본을 꾸렸다. 지난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수본은 지난 14일 대검찰청서 2차 회의를 열고 마약범의 경우 초범이라도 상습적으로 투약하고 혐의를 부인하거나 마약류의 유통 경로를 감추면 구속수사 또는 정식 재판에 넘기는 등의 방안을 정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적발된 마약사범이 총 558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307명) 대비 29.7% 늘었다는 통계를 공개했다. 이 중 36.4%가 10대와 20대였다. 특수본은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선 공급 차단과 수요 억제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투약사범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약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본이 최근 3년간 마약 투약 및 단순 소지 사범 146명의 형량을 분석한 결과 2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전체의 4.1%에 불과했다. 또 전체의 51%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8종 이상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의 경우 법원서 “동종 범행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달 24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투약사범에 대해 중형을 구형하고 적극적으로 항소할 방침이다. 또 투약사범에게 집행유예형이 선고될 경우 치료명령과 보호관찰을 부과하도록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특수본에는 국방부와 국정원, 해경 등 직원 총 134명이 추가 합류해 수사 인력이 840명에서 974명으로 늘었다. 지역별 수사실무협의체에도 군검찰단과 군사경찰, 해병대가 추가됐다. 박재억 특수본 공동본부장(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마약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 기관 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구마 줄기 캐듯’ 마약 수사 스톱?
현행법 없는 ‘플리바게닝’ 없어지나

이외에도 특수본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마약류관리법 등을 위반한 피고인에 대한 양형을 강화하는 안건의 상정을 촉구해왔다. 사법부가 마약범죄에 관해 관대한 판단을 반복해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도 “마약범죄는 해악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집행유예의 경미한 형이 선고돼 재범에 이르는 등 마약 투약·유통이 근절되지 못하는 악순환 반복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한 1심 판결 5438건 가운데 실형 선고는 2624건(48.1%)에 그쳤다. 실형 선고 비율은 2020년 53.7%, 2021년 50.6%와 비교해도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반면 집행유예 비율은 같은 기간 36.3%→38.1%→39.8%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11년 개정된 마약범죄 양형기준은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수정됐으나 대량범에 대한 형량 기준이 일부 강화되기만 했다. 투약이나 소지 등에 대해서는 10여년 전 양형기준을 적용해온 셈이다. 그 사이 마약범죄는 단순 투약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강력범죄와 결합해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다.

김영란 전 대법원 양형위원장도 이 같은 범죄 환경 변화를 의식한 듯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마약범죄 양형기준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인지 양형위는 마약범죄의 양형기준을 다듬고, 양형기준이 없었던 스토킹 범죄와 동물 학대 범죄는 새롭게 기준을 가다듬기로 했다.


지난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는 전날 오후 제125차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2년간 추진할 업무를 논의했다. 양형위는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강화해달라는 관계기관 요구가 많은 만큼 우선으로 2024년 4월까지 양형기준을 수정할 예정이다.

“혐의 확실시
초범도 영장”

마약범죄의 양형기준은 체계화한다. 양형위는 “마약범죄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양형기준 수정에 대한 사회 및 실무 요구가 모두 높다”며 “유형 분류와 권고 형량 범위 변경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양형기준이 없던 범죄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기준을 신설한다.

대법원이 특수본의 의견을 반영해 내년까지 양형기준을 강화하기로 했으나 해결 과제는 산적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초범이라도 구속수사를 하게 되면 마약 수사 과정서 상위 공급책 검거에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지금껏 수사기관이 마약 수사를 하면서 ‘플리바게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러 상황을 지켜보고 그림이 그려지면 잡는 전략적 수사가 필요한데 무조건적인 구속수사 방침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이 일부 부패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용어기도 하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게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게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검찰은 최근 이원석 총장의 “플리바게닝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발언 이후 4년 만에 열린 형사법 아카데미서 플리바게닝을 주제로 다루며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플리바게닝 도입 이유로 ‘형사사법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세운다. 명백한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해선 범죄 가담자에게 사법 협조를 끌어낼 유인을 제공해 수사 효율성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양형 기준
엎어도 문제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너무 느린 사법제도’를 향한 불만을 불식하기 위한 제도의 일환으로 유죄협상제와 사법 협조자 형벌감면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식 유죄협상제는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운 사건서 피의자가 자백하면 검사가 감경된 형을 제안하고, 법원 추인을 통해 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공범 검거에 기여한 가담자에게 형을 감면해줄 수 있도록 한 프랑스식 사법 협조자 형벌감면제도는 도입 당시 테러범죄 등에 국한됐다가 법 개정을 통해 일반범죄로 확대돼 활용되고 있다. 플리바게닝은 미국, 일본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 협조자에게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재판 진행 과정서 최대한 피고인 측의 요구를 반영해주는 식이다. 플리바게닝은 유독 거물급 정치인이 연루된 부패사건서 활용됐다는 지적이 거셌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수사와 ‘이정근 녹취록’서 수사 단서가 잡힌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가 대표적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등 대장동 일당은 재판에 넘겨진 후 1년 가까이 침묵하다 돌연 태도를 바꿔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면서 플리바게닝 적용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1심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보다 무거운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으면서 플리바게닝 의혹이 일었다.

다크웹서 일어나는 마약·성범죄 사건은 추적이 어려워 조직원을 검거해도 ‘머리’를 잡으려면 전략적 수사가 필요하다.

상위책 잡으려 ‘형량 거래’ 걸림돌
“바뀐 방침 무조건? 상황에 맞게 적용”

중앙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텔레그램 마약·성범죄 수사에는 이미 플리바게닝이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정황과 증거를 확보해도 수사 종결 이전까지는 수사에 협조하는 피의자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및 파악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특수본의 ‘마약 혐의 피의자 구속 수사’ 방침이 모든 피의자에게 적용되긴 힘들다는 분석으로 해석된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혐의가 확실하다고 해도 초범부터 구속해버리면 윗선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해당 원칙을 모든 혐의에 적용하면 ‘제2의 범죄’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마약과 텔레그램 성범죄가 그렇다. ‘초범이라도 구속수사’가 모든 피의자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플리바게닝 활용 방안 외에도 ‘중요 참고인 출석 의무 제도’를 추진하려 한 바 있다.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 당시 법무부는 ‘내부증언자 소추면제 제도’를 마련했다. 본인이 죄를 인정하면 기소나 형을 감면하는 미국식 플리바게닝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조직·마약·뇌물 범죄서 타인 범죄 규명에 도움을 주면 기소를 면해주거나 형을 감면해주는 내용이다.

이에 법원과 학계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범죄자 처벌까지 결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범죄자와의 타협’이라는 점도 국민 법 감정에 배치되면서 이 개정안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7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의 수사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참고인이 검사의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영장을 통해 강제로 구인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참고인 출석 의무제도’가 이때 언급됐던 법안이다.

수년간
군불만

결국 개정안은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정식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기업비리 수사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검찰은 비공식적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지금까지 언급하고 있다. 수사기법서 과거에 비해 검찰의 손발이 묶인 반면, 피의자들은 갈수록 지능화하는 게 큰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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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남동 라인’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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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비선 실세 모임이라고 알려진 ‘한남동 라인’의 실명까지 언급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해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제기된 여론조작 의혹을 두고 2년 전 김건희 여사 최측근들이 주도했던 것의 연장선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론조작 논란은 2년 전 사건의 연장선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인사의 말이다. 해당 논란을 두고 명태균씨와 홍준표 대구시장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아직 사실관계가 드러나진 않았으나 홍 시장을 깎아내리려 한 정황은 김건희 여사 최측근이자 코바나컨텐츠 출신 관계자들의 여론조작 의혹과 유사하다. 비선 실세 의혹 용산 사면초가 명씨는 영남권 기반의 여론조사 및 선거컨설팅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자 미래한국연구소 회장 출신이다. 미래한국연구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 등록 기준으로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모두 109개 여론조사를 (주)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에 의뢰했다. 그가 대표로 있던 언론사 <시사경남>은 <뉴데일리>와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공천 개입 의혹’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전 의원은 명씨를 윤 대통령 등 정치권 인사들에게 소개했다. 지난 4월 총선서 김 전 의원은 경남 김해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선서 배제되면서 실제 ‘공천 개입’으로 이어졌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명씨는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직전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에게 ‘미공표용’ 여론조사 데이터를 손보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노컷뉴스> 단독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은 지난 2022년 2월28일 명씨와 미래한국연구소 직원이었던 A씨와의 통화 녹취를 확보했다. 해당 녹취록서 명씨는 A씨가 진행 중이던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이게 연령별 득표율을 하면 더, 60세나 이런 데, 다 올라가제? 윤석열이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네”라고 답했고, 명씨는 “그거 계산해 갖고 넣어야 된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미래한국연구소가 작성한 미공표용 여론조사 보고서에는 20~40대 샘플은 줄이고, 50~60대 샘플은 늘린 결괏값이 별도로 존재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명씨와 A씨와의 통화가 이뤄진 당일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주제로 전국 단위 자체 여론조사와 연령별 가중치를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눠 적용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조사완료 샘플은 3016명이었고, 미래한국연구소는 먼저 이를 실제 인구 구성비(만18세~20대 17.2%, 30대 15.2%, 40대 18.5%, 50대 19.6%, 60대 16.3%, 17세 이상 13.2%)에 따라 연령별 가중치를 적용했다. 60대의 경우 실제 응답한 샘플은 634명(21.0%)이었지만, 492명으로 줄어든다. 전체 샘플(3016명)의 16.31%(492명)까지만 반영하는 방식이다. 영남권 선거컨설팅 전문가? “사실상 브로커” 윤석열 부부 수십 차례 연락…국정까지 개입? 그러나 미래한국연구소는 ‘19대 대선 투표율 가중치’를 적용한 분석값을 하나 더 만들었다. 직전 대선서 투표장에 나온 연령별 투표율을 반영한 가중치를 적용한 것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상승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해당 여론조사 보고서가 완성된 날은 다음날인 3월1일이다. 홍 시장은 이 같은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난 대선후보 경선 때 명씨가 운영하는 PNR서 윤석열 후보 측에 붙어 여론조작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며 “어차피 경선 여론조사는 공정한 여론조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명씨가 조작해 본들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홍 시장은 “그런데 그 조작된 여론조사가 당원들 투표에 영향을 미칠 줄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일반 여론조사에 10.27% 이기고도 당원투표에 진 것은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보고 나는 결과에 승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 선거 브로커 명씨가 날뛰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짓”이라며 “검찰에선 조속히 수사해 관련자들을 엄중히 사법처리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여사의 최측근들도 여론조작 의혹의 중심에 선 바 있다. 현재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근무 중인 코바나컨텐츠 출신 정모씨는 김 여사의 일정과 각종 계획을 도맡아 관리해 왔다. 지난해 2021년 이명수 <서울의 소리> 기자가 김 여사와 접촉할 때도 정씨를 통해 일정을 확인했다. 정씨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김 여사와 코바나컨텐츠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회사에 자주 출입하며 사실상 김 여사 ‘비서’ 역할을 자임해 왔다. 2022년 6월 본지 단독보도 정씨는 ‘김건희 녹취록’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했던 해당 녹취록서 정씨는 다른 코바나컨텐츠 직원과 건진법사의 제자인 심 박사와 함께 ‘댓글 작업’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김 여사는 댓글 작업을 말했고, 정씨는 어둠의 세계에 대해 언급했다. 정씨가 다른 직원에게 “어디까지 올렸냐”고 묻자, 심 박사는 “특정 주제에 대한 게시물 수백개를 올렸는데 뒤로 밀렸다. 다른 걸 빨리 올려라”라는 식으로 답했다. 김 여사도 심 박사와 정씨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정씨는 심 박사에게 “특정 워딩을 한번만 더 올려달라”며 “아무것도 없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들은 홍 시장과 커뮤니티명까지 언급하면서 논의를 이어갔다. 당시 홍 시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윤 대통령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에펨XXX는 2030 남성이 주축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로, 대선후보 경선 때 홍 시장의 지지세가 두드러진 곳이었다. 정씨는 해당 커뮤니티를 코바나컨텐츠 직원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홍 시장 지지자들의 분위기를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인사는 “명씨와 정씨가 직접적으로 여론조작과 관련해 논의했는지는 모른다”면서도 “김 여사와 접촉했던 만큼 연락은 취했을 것이다. 다만 단순하게 미팅을 위한 연락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출신 여권 인사도 “대선 직전까지 논란이 많았던 건 맞다. 정씨를 포함해 소위 말해 ‘김건희 라인’이라고 불렸던 인물들이 여론조작까진 모르겠으나 일부 커뮤니티에 타 후보들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거나 김 여사에게 보고했던 건 사실이다.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주로 있었던 일이고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우려가 컸다”고 주장했다. 직원들과 분위기 살펴 김 여사가 논란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자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출범에 속도를 냈다. 아직 김 여사의 집무실과 제2부속실 직원 사무실을 대통령실 내에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 만큼 공식적인 출범 시기는 이달 말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로 거론된다. 제2부속실장으로 내정된 장순칠 시민사회2비서관은 실제 업무를 보고 있다. 규모는 장 비서관과 실무급 인원 2명을 충원해 7명이다. 제2부속실은 김 여사의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등으로 이뤄지고 김 여사의 집무실은 윤 대통령 집무실과 다른 층에 설치될 예정이다. 청와대 본관 1층에 있었던 영부인의 집무실과 비교하면 공간은 작아졌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과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서 경호 및 예우 대상에 대통령 배우자를 포함시키고 있을 뿐 그 밖에 배우자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법 규정은 없다. 지난 1월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하던 대통령실도 “해외국 정상의 2부속실 운영 사례 등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며 미국 대통령 부인의 지위 등 해외 법 규정과 사례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퍼스트레이디’에게도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예산 등이 배정되도록 연방법으로 정하고 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김 여사의 최측근이자 코바나컨텐츠 출신이 제2부속실 직원으로 채용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일요시사>는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에 채용된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조작 정황 김건희 최측근 행위와 유사 특정 후보 깎아내고 게시물 밀어내기도 김 여사의 또 다른 라인으로 분류되는 ‘한남동 라인’에 관한 논란도 뜨거운 감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직접 인적 쇄신을 요구하며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대표와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대선 전부터 알고 지냈거나 대선을 도왔던 비서관·행정관 6~7명이 대통령실의 주요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실상의 ‘비선’이라고 본다. 대통령실의 김건희 라인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서 김 여사에게 수시로 보고한다는 소문 탓에 ‘한남동 라인’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거나 짧은데,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부부가 이들 의견에 우선 귀를 기울인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권에선 언론인 출신인 B, C 비서관, D 전 비서관, 과거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행사에 참여한 E 비서관이 김건희 라인으로 거론돼왔다. 대통령실 청년 정책 담당 30~40대 행정관들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황모 행정관은 윤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는 기업인의 아들로, 윤 대통령을 ‘삼촌’, 김 여사를 ‘작은엄마’로 부를 만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황 행정관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 부부를 비공식적으로 밀착 수행했는데, 명씨는 그가 운전하는 차를 윤 대통령과 함께 탔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들은 ‘김건희 라인’의 실체가 없다고 반발 중하고 있다. 한남동 라인으로 거론된 대통령실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대통령 일가와 사적으로 인연도 없고 공적인 업무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출신 여권 관계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중 황 행정관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언급됐음에도 살아남은 사람이자 총애받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최근 공개된 녹취록서 일부 김건희 라인을 거론하며 “용산은 ‘십상시(박근혜정권 실세 10인방을 이르는 말)’ 같은 몇 사람이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친한(친 한동훈)계 핵심인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그분들이 정무나 공보 라인에 있는 분들이 아닌데 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직무 범위서 벗어나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이들은 공식 라인을 무시하거나 대통령실의 정책기조와 배치되는 주장을 펴며 인사 등 대통령실 내의 주요 업무를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를 과시했다는 설명이다. 신 부총장은 “(한남동 라인이)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할 때 이른바 ‘여사님의 뜻’이라는 식으로 포장했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라며 “김 여사께서 직접 그걸 지시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한남동 라인이)호가호위하면서 그런 부적절한 정치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굉장히 문제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