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아인 마약’ 조폭 상선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30 10:59:34
  • 호수 1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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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판매책, 양은이파 출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거 전국을 뒤흔든 폭력조직 ‘양은이파’ 관계자가 배우 유아인 등에게 마약을 유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양은이파 간부급인 20대 H씨는 이태원 등지서 동성애자를 상대로 마약을 판매한 악명 높은 인물이다. 최근 경기 북부권서 필로폰 300g을 유통하다가 적발된 폭력조직원의 증언을 토대로 H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아인은 지난달 3일, 프로포폴 등 마약류 상습 투약 혐의로 기소돼 1심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본인과 검찰 모두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그는 지난 2020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케타민, 대마, 코카인, 졸피뎀 등 다수의 마약을 181회 상습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지난해 1월 공범인 지인과 함께 미국서 대마를 흡연하고 다른 이에게 흡연을 교사한 혐의도 있다.

H씨 누구?

현재까지 유아인 등에게 마약을 유통한 공급책은 드러난 바 없다. 양은이파 출신 H씨를 비롯한 이른바, ‘마약 상선’으로 분류되는 마약 도매업자들의 유통 방식은 경찰의 수사망을 손쉽게 비껴간다. 상선은 보안 유지를 주력으로 삼는 텔레그램에 마약 판매 채널을 개설해 ‘드라퍼’(운반책)를 모집하고, 필로폰 등을 산속에 숨겨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실제로 지난 4월 30대 김모씨, 최모씨, 유모씨, 정모씨 등은 텔레그램 ‘K’ 마약 채널서 H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300g(6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을 유통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을 수사한 전북경찰청 마약수사대 등에 따르면, 전주 출신 1995년생 김씨는 현재 경기도 구리서 활동하는 ‘구리식구파’ 조직원이다. 김씨는 마약 유통에 가담한 고향 친구 4명을 구리식구파에 가입시켜 함께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구리식구파 간부들은 전북 전주서 활동한 ‘월드컵파’ 출신 40~50대들로 구성됐다. 


구리식구파 부두목 이모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김씨가)전주에 친구 4명을 데리고 올라와 열심히 활동하는 야무진 친구”라며 “요즘 누가 식구 생활(조폭 활동)하려고 뛰어들겠나. 사고는 치고 다녀도 마약 팔았다는 얘긴 처음 듣는다. 조폭이 마약 팔았다고 하면 이 바닥서 끝인데…”라고 잘라 말했다.

구리식구파 부두목의 주장과 달리 김씨의 마약 유통 혐의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거주하는 김씨는 지난 4월27일 오후 9시경 H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알려준 충남 천안시 천안대로 부근 산책로 수로를 찾아가 땅속에 묻혀있던 필로폰 300g을 수거해 판매할 목적으로 소지했다. 

이 밖에 김씨는 H씨가 알려주는 장소로 가서 마약을 수거한 뒤 은밀한 장소에 다시 숨기는 역할도 했고, 그 대가로 건당 일정액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지인들로 구성된 판매책과 함께 불특정 다수의 매수자들에게 마약류를 판매하기로 공모했다.

통상 100g당 1000만~2000만원의 수익금을 상선으로부터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파 간부 “마약 손댄 조폭은 끝” 
약 팔다 걸린 구리식구파 조직원 망신

지난 5월 체포영장을 받은 김씨는 앞서 붙잡힌 최모씨, 유모씨, 정모씨 등의 증언을 토대로 덜미가 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300g 중 100g을 빼돌려 판매하지 않고 은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2019년 2월 의정부지검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 외 범죄경력이 총 14건이 있는 중범죄자에 해당한다.

체포영장 압수 물건 목록에는 김씨가 보관한 것으로 추정된 마약류와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 동영상 자료, 마약 매매 관련 장부, 범죄수익금 연관 통장, 김씨가 스스로 인정하는 운행 차량(렌트카, 대포 차량, 오토바이)의 내비게이션 메모리카드에 저장된 범죄사실 관련 전자정보 등이다.


압수 품목의 기록만 들여다봐도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이 김씨의 범죄 혐의를 특정한 근거는 ‘K’ 마약 채널 운영자들의 증언도 뒷받침됐다. H씨 등이 운영하는 K 채널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앞서 <일요시사>가 지난달 9일 보도한 ‘<단독>회원 2만명 ‘K’ 마약 채팅방 추적’서 설명한 바 있다.

회원 수 2만여명을 보유한 K 채널은 마약 구매, 운반책 모집 등에 이용된 곳으로 국내 마약 산업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필리핀에 필로폰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한인 범죄자들도 수출 과정서 이를 활용한다.

필리핀 외국인 교도소에 수감됐던 한 제보자는 “필리핀 범죄자들이 한국으로 마약을 수출하는 데 이용하는 곳”이라며 취재진에 K 채널을 처음 소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K 채널의 운영자는 당초 10여명 정도였으나, 절반 이상 경찰에 붙잡힌 것으로 드러났다. 체포된 운영진들은 조사 과정서 형량을 낮추기 위해 김씨를 비롯한 드라퍼들의 신상 정보를 경찰에 넘긴 것이다.

상선 H씨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한 제보자는 “원래 H씨는 조양은의 총애를 받던 양은이파 식구”라며 “마약 밀수 혐의가 있는 조양은과 깊게 연루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H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은이파서 파문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H씨는 이태원에 동성애자 등 연예인들과 어울렸고, 유아인과 만나 함께 마약을 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동성애자를 상대로 마약을 판매하는 H씨는 영업 능력을 인정받아 마약 유통업자들에게 수많은 제안을 받았지만, 과거 마약 유통 혐의로 실형을 살고 나온 뒤 최근엔 경찰에 적발된 바 없다. 자신은 마약을 투약하지 않을뿐더러 양은이파 출신이라는 이유로 마약 조직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산에 묻은 필로폰 300g 꿀꺽
경기 북부권 유통 조직원 증언

실제로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H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태원에 동성애자를 상대로 마약을 팔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혐의를 적용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사는 일반인으로 보인다는 게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H씨와 연인 관계였던 한 여성은 취재진에게 “H씨는 박왕열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 마약왕이라고 주장했다”며 “마약 도매업자들 사이서 H씨와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엔 마약 판매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조폭들이 경제력을 상실하는 과정서 대놓고 팔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아인에게 마약을 팔았다고 광고하는 H씨를 비롯한 상선들이 조폭들의 자금줄로 변모한 셈이다.

과거 한국 사회서 마약은 일부만이 사용하는 마약청정국으로 불렸으나, 갈수록 관련 범죄자들이 범람하는 추세다.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22년 1만8395명서 2023년 2만7611명으로 증가해 1년 만에 50% 급증했다. 특히, 전체 마약류 사범 중 청소년을 포함한 30대 이하 젊은 층의 비율은 60%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마약에 직접 노출돼있다는 얘기다.

외국인은 3153명으로 전체 마약류 사범 가운데 11%를 차지하는데, 이는 2013년의 393명서 10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도 세계 최대 마약 카르텔이 판치는 콜롬비아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해양경찰청은 주한콜롬비아 대사관 대리대사 프란시스코 알베르토 곤잘레스 일행과 면담하고, 해양경찰청의 해양주권 수호 등 업무 소개와 더불어 해상으로 유통되는 마약 범죄 척결에 관한 업무 협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프란시스코 알베르토 곤잘레스 대사대리는 해양경찰청을 첫 방문했다. 최근 몇 년간 콜롬비아 코카인 검거 사례를 통해 해상으로 불법 밀반입되는 마약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해상 유통경로 차단을 위한 국제공조가 절실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함께했다.

진짜 마약왕?

프란시스코 대사는 “현 콜롬비아 대통령은 마약의 유통경로와 현금 흐름을 차단하는 등 지능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방안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국과 콜롬비아 양국의 해상 마약 유통경로 차단을 위해 우호 관계 유지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수사당국은 마약 유통 지능화에 악용되는 텔레그램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전망이다. 앞서 프랑스 정부도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인 파벨 두로프를 온라인 성범죄, 마약 유통 등 각종 범죄를 방조 및 공모한 혐의로 예비 기소한 바 있다. 보안성을 앞세워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에 수사기관들도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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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