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원 2만명 ‘K’ 마약 채팅방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09 10:38:37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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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조직력 ‘코리안 카르텔’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회원 수 2만여명을 보유한 텔레그램 마약 유통 채팅방이 활개치고 있다. 마약 구매, 운반책 모집 등에 이용된 이곳은 국내 마약 산업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한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의 제보자 A씨는 “필리핀 범죄자들이 한국으로 마약을 수출하는 데 이용하는 곳”이라며 ‘K’ 마약 채팅방을 소개했다. 

K방은 마약 판매를 위한 광고 행위를 넘어 ‘마약 카르텔’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지난 8월 익명의 K방 운영자는 한 20대 남성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신상정보, 부모의 연락처를 공개했다. 마약 운반 중 도주하는 등의 불이익을 안긴 조직원을 찾아내 보복하기 위한 공개수배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엔 ‘K방을 사칭하면 이렇게 된다’는 글과 함께 안면이 심하게 다친 남성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독이 된
보안성

보안성을 강조하는 텔레그램은 각국 수사기관을 비롯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다. 지난 2013년 8월 출시된 이후 검·경이 성착취물 유포, 마약·자금 세탁 등의 범죄 수사 과정서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하고, 국제공조를 활용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수사 때도 경찰은 신원 확인 등을 위해 텔레그램에 지속적인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어떤 추적에도 뚫리지 않는 보안성과 암호화를 앞세운 텔레그램이 온라인 마약 산업의 확대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 12월 설립된 K방은 텔레그램 마약 유통 채팅방 중 구독자가 1~3만명으로 가장 많다. 하루에도 4000명 이상이 들여다보는 이곳은 필로폰, 대마초, 케타민, 엑스터시 등 사실상 모든 종류의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상세한 가격 표기는 물론, 투약 후기까지 올라온다.

단순 판매 광고를 넘어 마약 운반책을 뜻하는 이른바 ‘지게꾼’도 모집하는데, “평생 가족처럼 일할 지게꾼 모집. 월 1000만원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고 유혹한다. 직업이 불분명한 청소년이라면 쉽게 관심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지게꾼은 마약 판매자가 지정한 장소에 마약을 운반하고 구매자가 수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K방 운영진은 잠복 경찰이 지원할 가능성을 대비해 지게꾼 지원자에게 신분증 사진과 부모형제의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요구한다. 지게꾼이 마약을 운반하는 과정서 직접 투약하거나, 훔치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K방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다가 달아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남성 B씨가 공개 수배된 사례도 있다. 지난달 초 K방에는 B씨의 실명과 이름, 부모의 연락처와 함께 “인천에 사는 OOO, 천안으로 도주”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치외법권 텔레그램 악용 지능범죄 
배신자 색출···지명수배 내리기도

취재진이 “마약 채팅방에 B씨의 신분증 사진과 연락처, 부모의 연락처까지 올라왔다. 불상사를 당할 수 있지 않겠냐”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영문도 모른 채 B씨에게 연락해 신변을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답했다.

K방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다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있다. 필리핀 현지 구치소서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탈옥한 송씨의 필로폰 판매도 K방에서 이뤄졌다. 지난 2022년 1월25일 송씨가 K방을 통해 고용한 운반책 김모씨는 당시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혔다.


이날 오전 8시경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아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모텔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송씨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 A씨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채팅방 구독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건넸다.

김씨가 체포됐다는 점, 송씨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는 사실, 김씨의 사진과 신원은 채팅방에 모두 공개됐다. 이를 통해 송씨가 김씨의 상선이었다는 사실은 마약 업계에 퍼졌다. A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어떤 연예인이 누구한테 마약을 구매했는지도 금방 소문이 난다”고 말했다.

범죄자
놀이터

결과적으로 K 채팅방은 마약의 모든 유통구조를 총괄하는 셈이다. 2년 가까이 수사망을 피해 건재함을 유지하기 때문인지 K방을 모방한 채팅방도 생겨나고 있다. 다수의 마약 유통 채팅방들은 서로 ‘진짜 K방’이라며 광고했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K방엔 ‘K 사칭범 사기꾼 검거 완료. 이상한 헛소리하면 죽여버린다’는 글과 함께 안면에 심각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남성의 옆에는 신원 불상의 K방 관계자가 피해 남성의 얼굴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다음 날 게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피해 남성을 폭행한 이유를 묻자 아무런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달 19일 필리핀서 국내로 50억원 상당의 마약을 밀반입해 판매하다 붙잡힌 총책 등 54명도 K방을 포함한 텔레그램 채널을 악용했다.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범죄단체 조직,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받는 총책 C씨 등 조직 간부 9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일당 4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C씨는 지난 2020년부터 필리핀서 암호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판매 채널을 만들고 8kg에 달하는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해 약 50억원 상당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필로폰은 무려 6㎏ 상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인 점을 고려하면 C씨가 판매한 필로폰은 2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조직원들은 지난 2022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범행에 가담한 중간 판매책과 유통책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자금관리, 광고팀, 상담팀, 마약 던지기 운반책 등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고 국내에 있는 판매 조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하선 기본 수칙’을 정해 놓기도 했다. 이 수칙 중에는 상선 유무 및 관계 등을 일절 언급하지 않도록 하거나 SNS 광고를 꾸준히 하지 않을 경우, 추방하고 일정 매출이 나올 수 있도록 기준치를 정해 독려하기도 했다.

학생도
손쉽게

경찰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마약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던 중 지난 2022년 1월 마약 거래에 이용된 자금 흐름 분석 등을 통해 C씨를 특정했다. 필리핀서 은밀하게 숨어 있던 C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초 경찰청서 마약공조수사계를 신설하고 필리핀 내 소재 단서를 종합, 필리핀 당국과 긴밀히 공조했다.

필리핀 당국에 집중 추적을 의뢰했으며 지난 6월 ‘인터폴 국외도피사범 검거 작전회의’ 참여를 계기로 한국과 필리핀 양국 사이 실무 회담을 진행했다. 검거 계획 수립 후 노력한 끝에 필리핀 법 집행기관과 코리안 데스크가 C씨를 검거했으며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검거 2주 후인 지난달 2일 C씨를 송환했다.

경찰은 범죄수익금 약 20억원에 관한 기소 전 추징을 실시했고 공범 D씨를 추적 중이며 추가적인 범행에 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는 11월까지 4개월 동안 마약류 범죄를 집중 단속하고 있으며 인터넷 마약류 및 조직적 유통 사범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마약류 범죄는 투약자 개인 몸과 정신을 황폐하게 할 뿐 아니라 2차 범죄로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 범죄에 해당해 목격 시 적극적으로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최근 검·경은 마약과 성범죄 등의 온상인 텔레그램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정부는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인 파벨 두로프를 온라인 성범죄, 마약 유통 등 각종 범죄를 방조 및 공모한 혐의로 예비 기소한 바 있다.

보안성을 앞세워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에 수사 기관들도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한 것. 

지난 2일 한국 경찰도 텔레그램 법인에 관해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를 적용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일명 ‘마약 동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마약 범죄와 관련된 텔레그램 단체채팅방 회원들을 겨냥한 수사 확대에 나섰다.

유통·광고·모집 한 방에 
필리핀 한인 범죄의 메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대검찰청과 공조해 카이스트 출신의 마약 동아리 회장 염모씨가 이용한 채팅방 운영자를 추적 중이다. 운영자뿐 아니라 다수의 회원도 수사망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내부 시스템을 통해 이런 채팅방을 다수 파악했다. 이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이번 마약 동아리 사건에 등장한 채팅방을 겨누고 있다. 수도권 13곳 대학 출신 14명이 적발된 것을 계기로 수사 확대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진 마약사범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과정서 검찰은 마약 수사 대비 방법을 알려주는 텔레그램 채널에 대학생 등 약 9000명이 가입한 것을 확인했다.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에 대해 대검찰청 인터넷 마약 범죄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통해 대검과 공조해 추적 수사 중이다. 

피의자들은 텔레그램 채널에 가입해 ‘휴대전화 저장 자료 영구 삭제 등 포렌식 대비, 모발 탈·염색, 사설기관 모발검사, 피의자 신문조사 모의 답변’ 등 채널서 파악한 대비 방법을 범죄에 활용했다. 검찰은 피의자들의 범죄집단 조직 및 활동 혐의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마약 범죄를 적발하는 등 시스템의 효과도 봤다. 앞서 마약상들의 거래 수법이 고도로 지능화되고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을 맞아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초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AI를 탑재하며 시스템 강화에 나섰다.

이를 통해 텔레그램 채널을 파악했고, ‘마약 동아리 사건’ 속 피고인들의 가입 채널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동아리 마약 사건의 관계자 14명 외의 추가 기소 가능성도 제기됐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동아리를 만든 염씨 등을 포함한 6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긴 상황이다. 단순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대학생 8명은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과거 연락 수단에 그쳤던 텔레그램은 수년 전부터 마약 판매업자들의 광고 플랫폼이자 밀수부터 구매까지 거래의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마약 유통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당황하는
수사 당국

검찰 관계자는 “마약 수사의 목표는 유통망 차단인데, 마약 유통책이나 딜러들은 텔레그램 네트워크 뒤에 숨어 있어 공급 라인을 차단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수백개의 마약 채팅방서 마약 광고를 하거나 구인·구직도 이뤄지지만, 수사 과정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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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