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 검찰총장 사의 “지금이 책임 적기로 판단”

한 달 전 “흔들림 없이 역할 수행하겠다”더니⋯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9월16일 임기를 시작한 지 약 9개월 만의 일이다. 법조계에서는 심 총장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은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 특히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에 대한 반발이 사퇴의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심 총장은 이날 오후 3시, 입장문을 통해 “저는 오늘 검찰총장의 무거운 책무를 내려놓는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직을 내려놓는 것이 제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사법제도는 국민 전체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로 시한과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학계, 실무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다만 논란이 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 포기 등 논란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심 총장의 사의 표명은 최근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민정수석비서관이 임명되는 등 검찰개혁을 이끌 새 진용이 갖춰진 직후에 이뤄졌다. 이는 자신을 임명한 이전 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검찰 조직을 이끌려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심 총장의 사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검찰 조직 전체의 동요로 이어지고 있다.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비롯한 다수의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도 심 총장과 뜻을 같이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 지휘부의 공백도 현실화되고 있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률로 2년이 보장돼있지만, 정권과의 갈등이나 검찰 관련 주요 정책 변화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심 총장의 이번 사퇴 역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재현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심 총장의 사표를 반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가운데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 총장이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됐던 인사인 데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추진해오고 있는 검찰개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던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현 정부의 국정 철학에 발맞출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심 총장의 사표를 반려하고 유임시킬 경우, 검찰 조직의 반발과 동요가 계속될 수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이는 정부와 검찰 간 갈등을 장기화시킬 수 있으며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표를 즉시 수리함으로써 갈등을 조기에 매듭짓고 검찰 조직을 빠르게 재정비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앞서 지난 5월21일, 심 총장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및 조상원 4차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검찰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바 있다. 그러면서 “총장으로서 그렇게 (흔들림 없도록) 일선을 지휘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랬던 심 총장도 정권이 교체된 후 불과 한 달여 만에 같은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심 총장은 지난 3월, 검찰이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오자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당시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이던 윤 전 대통령 측근은 구속 기간 만료를 주장하며 구속 취소 심사를 법원에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지귀연 부장판사)은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 구속 취소를 결정했고 결국 석방됐다.

지 판사의 구속 기간 계산 방식을 두고 ‘갑작스러운 해석 변경’에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그는 기존의 ‘일’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했다.

대검찰청은 “구속 기간 산정과 관련된 법원의 새로운 해석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즉시항고를 하더라도 법원의 결정을 뒤집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검찰이 의도적으로 항고를 포기해 ‘봐주기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법원의 이례적 결정에 검찰이 직무를 유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일부 검사들은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수십여년간 이어져 온 구속 기간 관행을 뒤집은 법원 결정에 항고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검찰 지휘부의 결정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심 총장은 지난해 9월12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의해 제46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돼 같은 달 16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던 바 있다. 그의 중도 사퇴로 검찰은 또다시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됐으며, 향후 검찰 조직의 안정과 수사의 향방은 한동안 불투명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par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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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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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