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활한 임은정

어차피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검찰 내부에서 오랫동안 ‘비주류’ ‘검찰 개혁론자’로 불렸던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마침내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그동안 좌천성 인사를 여러 차례 겪으며 한직을 전전하던 그가 ‘검사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1일 고검장·검사장 등 대검 검사급 7명, 고검 검사급 2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는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뒤 단행된 첫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다. 발표 시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윤석열정부에서 두 번째 검찰총장을 지낸 심우정 총장이 인사 직전 전격 사의를 표명했고,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 양석조 서울동부지검장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동부지검장
금의환향

사실상 ‘윤석열 사단’의 퇴장과 동시에, 새 정부의 방향성을 담은 첫 고위 인사가 전개된 셈이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법무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배경에는 명백한 ‘물갈이’와 ‘쇄신’의 의도가 읽힌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검찰 조직 내 권위주의와 폐쇄성, 감찰 기능의 무력화, 검찰권 남용 문제 등을 정면으로 비판해 온 몇 안 되는 검사 중 하나였다. 임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 행보로 인해 수차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실제로 임 지검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번 인사 전까지, 줄곧 부장검사급 직위에 머물렀다. 임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30기로,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정진우 지검장(29기), 대검 차장으로 승진한 노만석 고검장(29기)보다 한 기수 아래다. 또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임명된 김태훈 검사장과는 30기 동기다.


다시 말해 이들과 비교했을 때, 기수상 이미 충분히 승진 대상에 오를 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석열정부 시절 대구지검·대전지검 등 사실상 ‘검찰의 변방’이라 불리는 중경단 부장으로 전보되며,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번번이 밀려났다.

임 지검장은 1974년 7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 중구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곳에서 형성한 독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깊은 사고력의 밑거름이 됐다.

부모는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세 딸을 키웠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임 지검장은 자신이 어린 시절 공부에 매달린 배경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는 장녀는 교수, 차녀는 의사, 막내는 법관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었고, 임 지검장이 검사가 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현실이 됐다.

어린 시절 그는 말도 더디고 글도 늦게 깨우친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낙제점을 받을 만큼 성적이 부진했지만, 책과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문학전집,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집을 탐독했고,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갈 만큼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났다.

고전과 역사서를 즐기며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키워갔다. 이 시기의 풍부한 감성이 지금까지도 그의 내면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좌천성 인사로 한직 전전하다
‘검사의 꽃’ 검사장 타이틀 달아


임 지검장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재학 중 두 차례 휴학을 했다. 5학년 때 두 번의 도전 끝에 1차 시험에 합격했고, 6학년 때는 2차까지 통과해 합격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사법연수원 30기로 입소했다. 당시 30기는 연수원 역사상 수료생이 678명에 달할 만큼 대규모였고, 여성 연수생 비율이 10%를 넘기는 등 눈에 띄는 변화의 흐름을 보여줬다.

임 지검장은 이른바 ‘마지막 서초동 세대’기도 하다. 연수원이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하기 전, 서울 서초동에서 수료식을 한 마지막 기수였기 때문이다. 연수원 시절에도 그는 반에서 문화 총무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동기 126명이 검찰로 진출했지만, 이후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임 지검장이었다.

검사 생활 중 성폭력, 권한 남용, 검찰 내 은폐 관행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검찰 내부 고발자’ ‘항명 검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사·기소권 분리와 검찰과 감찰 독립성 확보 등 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임 지검장이 처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07년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공판 검사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1심 재판을 맡았고, 사건은 몇 년 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재조명됐다.

수사와 재판이 충분했는지, 검찰이 이 사건을 성실히 다뤘는지를 두고 비판 여론이 이어지던 시점, 임 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사회적 비난에 공감한다”며 검찰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2009년 1월, 임 지검장은 검사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받는 자리인 법무부로 발령받는다. 당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의 여성 평검사는 단 한 자리뿐이었는데, 임 지검장은 광주지검 최우수 검사로 선발되어 이 자리를 맡게 됐다. 이 시기 함께 법무부에서 일하던 인물 중에는 훗날 검찰총장이 된 이원석, 상사법무과에 있던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도 있다.

2012년 9월6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또 한 번 주목받게 된다. 검찰 지휘부는 판결에 대한 의견 없이 “판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백지 구형’을 지시했지만, 임 지검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검사는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에 입각해 입장을 밝힐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당시 부장검사는 “무죄를 구형하면 검찰이 과거를 잘못 인정하는 셈”이라며 반대했지만, 임 검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개혁
아이콘

같은 해 12월에는 또 다른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진보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진보당 고(故) 윤길중 간사장에 대한 결심공판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통일사회당’ 인사들이 일제히 체포·기소된 사건으로, 윤 간사장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한 동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적용된 법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이 법은 쿠데타 직후 박정희정권이 만들어낸 특별법으로, 제정 시점보다 과거의 일까지 소급 적용할 수 있게 해 형벌 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의 유족이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다음 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을 맡게 된 임 지검장은 공판을 앞두고 무죄 구형 의견을 내부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또 달랐다. 상급자들은 “백지 구형이 관례”라며 입장을 정리했고, 수사 검사도 “재판부 판단에 맡기자”는 쪽이었다.


공판 전날 아침, 검찰 내부망에 ‘징계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무죄 구형은 재량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힌 그는, 예정된 공판 시간에 직접 법정으로 향했다. 자신이 구형에서 배제된 상황이었지만, 검사 출입문에 무죄 구형 의사를 적은 쪽지를 붙이고 문을 잠근 뒤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사건은 무죄가 마땅하다”며 구형했다. 그날 오후,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윤 간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대검 감찰본부는 이를 문제 삼아 2013년 2월, 직무상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법무부에 징계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임 지검장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임 지검장은 곧바로 법무부를 상대로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5년여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그의 징계는 취소됐다.

2017년 대법원은 “위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징계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승진에서 밀리고 주요 사건에서도 배제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2018년에는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번 내부 고발자 역할을 자처했다. 검찰 조직 전체를 흔든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서지현 검사가 과거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가 됐고, 검찰 내부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백지 구형
지시 거부

당시 임 지검장은 이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목소리를 냈다. 서 검사의 폭로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그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과거 자신이 직접 들었던, 간부의 발언을 폭로했는데 “피해자를 가만히 놔두라”는 발언이었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 서 검사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상부로부터 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글에서 “피해자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시선이 문제다” “서 검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검찰이 진실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내부 감찰 기록을 요청하고, 관련 인사들에 대한 책임 소재를 파악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제지에 부딪혔다.

그는 나중에 “상부로부터 조사 중단 요구를 받았다”고 밝히며, 감찰 과정 자체가 위로부터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또 다른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가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해 사건을 처리했지만, 검찰 수뇌부가 사표 수리로 마무리하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지검장은 이를 두고 “직무유기”라고 판단했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간부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 내부에서 무혐의로 종결됐다.

임 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윤석열정부 때는 대립이 심해졌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과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연이어 맡았고, 이 시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을 둘러싸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직접 갈등을 빚는다.

2020년부터 임 지검장은 검찰 내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 이어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맡으며 조직 내 감찰 업무를 담당했다. 그 시기, 임 지검장이 가장 집중한 사건 중 하나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이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당시, 검찰이 재소자들을 통해 위증을 시켰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재명정부, 검찰개혁 시동
두 단계 건너뛰고 파격 승진

이른바 ‘증인 조작’ 논란으로, 과거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수감자들이 “검사로부터 위증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였다. 임 지검장은 당시 대검 감찰부 내에서 이 사건을 직접 감찰하려 했으나, 대검 수뇌부는 해당 사건을 감찰이 아닌 ‘인권부’로 이첩하는 결정을 내린다. 감찰권을 가지지 않은 다른 부서로 사건을 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임 지검장은 “대검이 감찰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21년 3월, 임 지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위증 교사 여부를 들여다보던 중 감찰이 중단됐고, 대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사건을 인권부로 넘겼다”는 주장이었다.

글이 공개되자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논란은 급속히 확산됐다.

결국 법무부는 해당 사안에 대해 “감찰 정보를 외부에 누설했다”며 임 지검장에게 징계를 청구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공수처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는 공수처에 윤 전 대통령이 감찰을 방해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022년, 해당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인터뷰와 강연, 2022년 출간한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통해 이 사건을 거듭 언급하며 “감찰이 무력화된 검찰은 자정 능력을 상실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책에서 그는 지금의 검찰을 “고장 난 저울”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진실을 덮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문장은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 중 하나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둘러싼 감찰 갈등 이후, 임 지검장은 검찰 내 주요 보직에서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감찰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2021년 6월, 사실상 수사 권한과 무관한 대구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대구지검은 검찰 내에서 ‘중경단(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란 명칭이 붙어 있지만, 실상은 수사 규모가 크지 않은 일선 청 중에 하나였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좌천”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2022년 7월에는 다시 한번 대전지검으로 전보됐다. 형사5부장이었다. 대전지검 역시 ‘지방 중간 규모 청’에 해당하며, 중앙지검이나 대검, 법무부 요직과 비교하면 검사 커리어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자리였다.

윤정부
대립각

이와 달리, 임 지검장이 이번에 맡게 된 서울동부지검은 정치·경제·선거 관련 사건이 집중되는 수도권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정권 초중반에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사건의 ‘선봉’이 되는 곳이다. 선거사범, 공공 수사, 경제범죄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몰리는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과거 공공기관 채용 비리, 선거법 위반 수사, 노동 관련 쟁점 수사 등 여러 정치적 사건이 이곳을 거쳐 갔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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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