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활한 임은정

어차피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검찰 내부에서 오랫동안 ‘비주류’ ‘검찰 개혁론자’로 불렸던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마침내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그동안 좌천성 인사를 여러 차례 겪으며 한직을 전전하던 그가 ‘검사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1일 고검장·검사장 등 대검 검사급 7명, 고검 검사급 2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는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뒤 단행된 첫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다. 발표 시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윤석열정부에서 두 번째 검찰총장을 지낸 심우정 총장이 인사 직전 전격 사의를 표명했고,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 양석조 서울동부지검장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동부지검장
금의환향

사실상 ‘윤석열 사단’의 퇴장과 동시에, 새 정부의 방향성을 담은 첫 고위 인사가 전개된 셈이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법무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배경에는 명백한 ‘물갈이’와 ‘쇄신’의 의도가 읽힌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검찰 조직 내 권위주의와 폐쇄성, 감찰 기능의 무력화, 검찰권 남용 문제 등을 정면으로 비판해 온 몇 안 되는 검사 중 하나였다. 임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 행보로 인해 수차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실제로 임 지검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번 인사 전까지, 줄곧 부장검사급 직위에 머물렀다. 임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30기로,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정진우 지검장(29기), 대검 차장으로 승진한 노만석 고검장(29기)보다 한 기수 아래다. 또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임명된 김태훈 검사장과는 30기 동기다.


다시 말해 이들과 비교했을 때, 기수상 이미 충분히 승진 대상에 오를 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석열정부 시절 대구지검·대전지검 등 사실상 ‘검찰의 변방’이라 불리는 중경단 부장으로 전보되며,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번번이 밀려났다.

임 지검장은 1974년 7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 중구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곳에서 형성한 독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깊은 사고력의 밑거름이 됐다.

부모는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세 딸을 키웠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임 지검장은 자신이 어린 시절 공부에 매달린 배경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는 장녀는 교수, 차녀는 의사, 막내는 법관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었고, 임 지검장이 검사가 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현실이 됐다.

어린 시절 그는 말도 더디고 글도 늦게 깨우친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낙제점을 받을 만큼 성적이 부진했지만, 책과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문학전집,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집을 탐독했고,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갈 만큼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났다.

고전과 역사서를 즐기며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키워갔다. 이 시기의 풍부한 감성이 지금까지도 그의 내면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좌천성 인사로 한직 전전하다
‘검사의 꽃’ 검사장 타이틀 달아


임 지검장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재학 중 두 차례 휴학을 했다. 5학년 때 두 번의 도전 끝에 1차 시험에 합격했고, 6학년 때는 2차까지 통과해 합격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사법연수원 30기로 입소했다. 당시 30기는 연수원 역사상 수료생이 678명에 달할 만큼 대규모였고, 여성 연수생 비율이 10%를 넘기는 등 눈에 띄는 변화의 흐름을 보여줬다.

임 지검장은 이른바 ‘마지막 서초동 세대’기도 하다. 연수원이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하기 전, 서울 서초동에서 수료식을 한 마지막 기수였기 때문이다. 연수원 시절에도 그는 반에서 문화 총무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동기 126명이 검찰로 진출했지만, 이후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임 지검장이었다.

검사 생활 중 성폭력, 권한 남용, 검찰 내 은폐 관행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검찰 내부 고발자’ ‘항명 검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사·기소권 분리와 검찰과 감찰 독립성 확보 등 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임 지검장이 처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07년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공판 검사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1심 재판을 맡았고, 사건은 몇 년 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재조명됐다.

수사와 재판이 충분했는지, 검찰이 이 사건을 성실히 다뤘는지를 두고 비판 여론이 이어지던 시점, 임 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사회적 비난에 공감한다”며 검찰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2009년 1월, 임 지검장은 검사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받는 자리인 법무부로 발령받는다. 당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의 여성 평검사는 단 한 자리뿐이었는데, 임 지검장은 광주지검 최우수 검사로 선발되어 이 자리를 맡게 됐다. 이 시기 함께 법무부에서 일하던 인물 중에는 훗날 검찰총장이 된 이원석, 상사법무과에 있던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도 있다.

2012년 9월6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또 한 번 주목받게 된다. 검찰 지휘부는 판결에 대한 의견 없이 “판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백지 구형’을 지시했지만, 임 지검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검사는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에 입각해 입장을 밝힐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당시 부장검사는 “무죄를 구형하면 검찰이 과거를 잘못 인정하는 셈”이라며 반대했지만, 임 검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개혁
아이콘

같은 해 12월에는 또 다른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진보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진보당 고(故) 윤길중 간사장에 대한 결심공판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통일사회당’ 인사들이 일제히 체포·기소된 사건으로, 윤 간사장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한 동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적용된 법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이 법은 쿠데타 직후 박정희정권이 만들어낸 특별법으로, 제정 시점보다 과거의 일까지 소급 적용할 수 있게 해 형벌 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의 유족이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다음 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을 맡게 된 임 지검장은 공판을 앞두고 무죄 구형 의견을 내부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또 달랐다. 상급자들은 “백지 구형이 관례”라며 입장을 정리했고, 수사 검사도 “재판부 판단에 맡기자”는 쪽이었다.


공판 전날 아침, 검찰 내부망에 ‘징계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무죄 구형은 재량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힌 그는, 예정된 공판 시간에 직접 법정으로 향했다. 자신이 구형에서 배제된 상황이었지만, 검사 출입문에 무죄 구형 의사를 적은 쪽지를 붙이고 문을 잠근 뒤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사건은 무죄가 마땅하다”며 구형했다. 그날 오후,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윤 간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대검 감찰본부는 이를 문제 삼아 2013년 2월, 직무상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법무부에 징계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임 지검장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임 지검장은 곧바로 법무부를 상대로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5년여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그의 징계는 취소됐다.

2017년 대법원은 “위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징계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승진에서 밀리고 주요 사건에서도 배제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2018년에는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번 내부 고발자 역할을 자처했다. 검찰 조직 전체를 흔든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서지현 검사가 과거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가 됐고, 검찰 내부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백지 구형
지시 거부

당시 임 지검장은 이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목소리를 냈다. 서 검사의 폭로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그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과거 자신이 직접 들었던, 간부의 발언을 폭로했는데 “피해자를 가만히 놔두라”는 발언이었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 서 검사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상부로부터 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글에서 “피해자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시선이 문제다” “서 검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검찰이 진실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내부 감찰 기록을 요청하고, 관련 인사들에 대한 책임 소재를 파악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제지에 부딪혔다.

그는 나중에 “상부로부터 조사 중단 요구를 받았다”고 밝히며, 감찰 과정 자체가 위로부터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또 다른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가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해 사건을 처리했지만, 검찰 수뇌부가 사표 수리로 마무리하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지검장은 이를 두고 “직무유기”라고 판단했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간부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 내부에서 무혐의로 종결됐다.

임 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윤석열정부 때는 대립이 심해졌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과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연이어 맡았고, 이 시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을 둘러싸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직접 갈등을 빚는다.

2020년부터 임 지검장은 검찰 내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 이어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맡으며 조직 내 감찰 업무를 담당했다. 그 시기, 임 지검장이 가장 집중한 사건 중 하나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이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당시, 검찰이 재소자들을 통해 위증을 시켰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재명정부, 검찰개혁 시동
두 단계 건너뛰고 파격 승진

이른바 ‘증인 조작’ 논란으로, 과거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수감자들이 “검사로부터 위증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였다. 임 지검장은 당시 대검 감찰부 내에서 이 사건을 직접 감찰하려 했으나, 대검 수뇌부는 해당 사건을 감찰이 아닌 ‘인권부’로 이첩하는 결정을 내린다. 감찰권을 가지지 않은 다른 부서로 사건을 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임 지검장은 “대검이 감찰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21년 3월, 임 지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위증 교사 여부를 들여다보던 중 감찰이 중단됐고, 대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사건을 인권부로 넘겼다”는 주장이었다.

글이 공개되자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논란은 급속히 확산됐다.

결국 법무부는 해당 사안에 대해 “감찰 정보를 외부에 누설했다”며 임 지검장에게 징계를 청구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공수처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는 공수처에 윤 전 대통령이 감찰을 방해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022년, 해당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인터뷰와 강연, 2022년 출간한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통해 이 사건을 거듭 언급하며 “감찰이 무력화된 검찰은 자정 능력을 상실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책에서 그는 지금의 검찰을 “고장 난 저울”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진실을 덮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문장은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 중 하나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둘러싼 감찰 갈등 이후, 임 지검장은 검찰 내 주요 보직에서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감찰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2021년 6월, 사실상 수사 권한과 무관한 대구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대구지검은 검찰 내에서 ‘중경단(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란 명칭이 붙어 있지만, 실상은 수사 규모가 크지 않은 일선 청 중에 하나였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좌천”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2022년 7월에는 다시 한번 대전지검으로 전보됐다. 형사5부장이었다. 대전지검 역시 ‘지방 중간 규모 청’에 해당하며, 중앙지검이나 대검, 법무부 요직과 비교하면 검사 커리어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자리였다.

윤정부
대립각

이와 달리, 임 지검장이 이번에 맡게 된 서울동부지검은 정치·경제·선거 관련 사건이 집중되는 수도권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정권 초중반에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사건의 ‘선봉’이 되는 곳이다. 선거사범, 공공 수사, 경제범죄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몰리는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과거 공공기관 채용 비리, 선거법 위반 수사, 노동 관련 쟁점 수사 등 여러 정치적 사건이 이곳을 거쳐 갔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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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이 가장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외환 혐의’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는지를 밝혀내는 게 핵심이다.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특검은 군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게 윤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에게 ‘V(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라고 들었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이 확보한 군 장교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다. 조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조 특검팀은 이 녹취록 외에도 외환 혐의 입증이 가능한 다수의 물적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다. 잃어버린 무인기 조 특검팀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소형 정찰 드론 2대가 사라졌다는 국방부 감사관실 조사 보고서를 확보했다. 조 특검팀이 확보한 국방부 감사관실 보고서는 지난달 말 작성됐다. 드론작전사령부가 지난해 10월15일과 12월19일 각각 백령도와 속초 대대에서 소형 정찰 드론 기체 2대를 잃어버려 찾지 못했다며 그 사유를 ‘원인 미상’이라고 기록한 게 핵심이다. 드론 소실 시점은 같은 해 10월 북한 외무성이 한국 무인기가 삐라(대북 전단)를 살포했다고 발표한 시기(10월 3·9·10일)와 11월 초 북한 함경남도 차호 잠수함 기지로 드론을 보냈다는 군 내부 제보 시점과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부승찬 의원실은 “차호 잠수함 기지까지 (드론을)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며 “매뉴얼 제원상 (최대 항속거리가) 500㎞지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군 현역 장교 증언을 확보했다. 보고서에서 국방부 산하 국립과학연구소가 드론사에 무상 증여한 소형 정찰 드론 중 고장나거나 소실된 것은 총 8대다. 이 중 2대는 2023년 10월 ‘원인 미상 엔진 정지’ ‘공기 속도 센서 결함’ 등으로 고장 사유가 기록돼있다. 지난해 1월과 6월, 10월 무인기 파손 역시 구체적인 사유가 적혀있다. 11월7일 난기류와 강풍 때문에 추락한 드론은 속초·양양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15일, 12월19일 잃어버린 드론은 회수하지 못했고 사유 역시 ‘원인 미상’ 처리됐다. 군수품관리법에 따라 무인기가 소실되면 그 이유 등을 정확히 기록해 국방부에 신고해야 한다. 특검팀은 드론 2기 소실 경위와 사후 조사가 부실한 이유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앞서 국방부 감사관실은 평양·연천 등에서 발견된 드론과 동일 기종을 지난 1월22일 전수조사했다. 백령도는 북한이 지난해 10월19일 평양에서 ‘추락한 드론’의 동체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륙 지점이라고 발표한 곳이다. 윤 “평양에 무인기 보내라” 지시 의혹 특검 “V가 북 반응 좋아해” 녹취 확보 국방부는 드론사 예하 김포·백령도·연천·속초 가운데 백령도 대대는 방문 조사를 하지 않고 유선 조사만 했다고 한다. 장부에 기록된 내용과 재고 상황이 정확한지 현장에서 실물을 확인한 다른 부대와 달리 백령도는 보고받은 사진을 바탕으로 조사했다. 특검팀은 드론사 관계자를 소환해 ‘북풍 몰이’ 목적으로 평양 등에 드론을 보냈는지 여부와 소실 배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특검팀은 앞서 ‘평양 드론 침투’ 의혹과 관련 “김용대 사령관이 V(윤 전 대통령) 지시다. 국방부와 합참 모르게 해야 된다(고 했다)” “삐라(전단) 살포도 해야 하고, 불안감 조성을 위해 일부러 (드론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다”는 내용의 현역 장교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엔 당시 북한의 위협적 반응에 “VIP와 장관이 박수치며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사령관이 ‘또 하라’고 그랬다” “11월에도 무인기를 추가로 보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녹취록에는 “(무인기를) 의도적으로 (북한에) 노출할 생각이 있었지만 떨어뜨릴 생각은 없었다”면서도 “(무인기가 개조되면서) 기체 불안정성 때문에 추락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품고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비행 자체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체 성능 자체가 안 되어서 손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도 했다. 군 측은 지금까지 평양 드론 침투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또 군은 작전에 사용된 드론 추락을 염려하기도 했다. 본래 설계와 다르게 자체 개조됐기 때문이라는 게 부 의원실의 판단이다. 외환 혐의 규명 필요 부 의원실이 지난 5월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북 전단 무인기 비교 분석’ 자료는, 북한에 떨어진 무인기와 연구소가 드론작전사령부에 납품한 무인기와 유사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충격 방지를 위한 ‘랜딩폼’ 부품이 빠지고 전단 살포를 위한 전단통이 개조돼 붙어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애초 전단 살포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무인기 구조를 변경하면서 기체가 불안정해져, 전단 살포 시 추락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무인기는 소음이 너무 커서 군사작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외환 혐의는 지금까지 검경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조사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난 1일 국방과학연구소 항공기술연구원 정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드론사 간부들이 줄소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검팀은 드론 평양 침투 외에도 외환 행위 고소·고발 사건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전쟁 또는 무력충돌을 야기하려고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 결국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통해 꼬리가 잡힌 ‘북풍 공작’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의 주거지에서 압수한 수첩에는 비상계엄 당시 ‘수거(체포)’해야 할 명단이 적혔고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아예 북에서 나포 직전 격침 시키는 방안” 등이 담겼다. 또 수첩에는 북한과의 접촉 방법도 “비공식 방법,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접촉 시 보안 대책은?”이라고 구체적으로 적혔다.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 원점 타격’으로 전쟁 상황을 연출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월 국회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10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김용현 전 장관이 ‘북한 오물 풍선 상황이 발생하면 원점을 강력하게 타격하겠다. 합동참모본부 지통실(지휘통제실)에 직접 내려가서 지휘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급박한 계획 변경 비상계엄 선포 뒤 노 전 사령관이 지휘하는 수사2단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 조사 임무를 맡기로 했던 김봉규 정보사 대령도 지난해 11월2일 경기 안산시의 한 카페에서 노씨가 “비상계엄 관련해서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고 “언론에 특별한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말,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하루 전날을 콕 집어 조기 귀국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두 인물의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계엄 9일 전이던 지난해 11월24일 일요일,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에게 자신이 곧 해외 출장을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 전 사령관은 같은 해 11월25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이 예정돼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노 전 사령관이 흥분하면서 화를 냈다. 그는 문 전 사령관에게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며 “출장을 당장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사령관은 황당해하며 “이미 약속된 일”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은 “늦어도 수요일 밤까지는 귀국하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수요일 밤’은 11월27일이다. 하루 뒤인 28일은 북한이 33번째 오물 풍선을 부양한 날이었다.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귀국 비행기표를 11월27일 수요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의 변수가 생기며 이날 귀국하지 못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북한 오물 풍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무렵, 정보사 대령들에게 ‘오물 풍선 원점 타격’ 필요성을 언급한 사실도 확인된다. 김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도 오물 풍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방첩사, 비상계엄 당일까지 위기감 고조 합참, 북 원점 타격·대응 김 지시 거부 지난해 11월 초, 노 전 사령관은 김 대령과 문 전 사령관을 안산 상록수역으로 불러 앞서 지시한 인원 선발이 다 됐는지를 확인했다. 그는 이때도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리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고 지원 세력을 타격할 수 있어서 너희가 임무 수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이 같은 계획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도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32번째 오물 풍선 부양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17일 지상작전사령부에 “오물 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시 경고 사격을 하고, 북한이 화기 도발을 하면 지체 없이 원점을 타격하도록 대응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공수처는 박모 방첩사 대령의 진술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이재학 방첩사 대령의 검찰 진술에도 “상황이 위중하니 부대에 위치해 있으라”는 얘기를 사령부로부터 들었다. 그는 “그전까지 북한 오물 풍선이 30여회 정도 떴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오물 풍선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 사령관이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지난달 군사 재판에서 북한 오물 풍선 대응과 연결된 ‘국지전 시나리오’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법원에 출석해 “그때 상황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12월 1~2일쯤 사령관 되는 군인들이 가장 걱정한 건 북한 쓰레기 풍선이었다”며 “방첩사령관으로서 쓰레기 풍선에서 삐라가 떨어지는데 그걸 수거해 분석하는 게 방첩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군들은 북한 오물 풍선 때문에 뭔 일 터지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태반이었고, 걱정스러워서 (장군들과) 통화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합참은 김 전 장관이 내린 경고 사격 지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고, 오히려 다른 방식을 김 전 장관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내부의 이 같은 기류는 합참에 파견된 박 대령을 통해 여 전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국지전 도발했다 반면 여 전 사령관은 북한 오물 풍선 대응 지침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방첩사 내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12·3 내란 사태 당일에는 “적 오물 풍선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라며 주요 간부들에게 준비 태세 확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