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간판’ 교체 꺼내든 정동영 노림수

지난 24일 “적극 검토할 필요 있어” 주장
“후보자 신분에 헌법정신에도 부합” 비판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최근 통일부 명칭 변경 논쟁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통일부 부처 명칭 변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정 후보자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남북관계관리단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앞에서 “평화와 안정을 구축한 바탕 위에서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부의 명칭 변경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단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5000만 국민의 지상 명령이고 지상 과제다. 통일은 마차고 평화는 말에 해당하는데, 마차가 말을 끌 수는 없고 말이 앞에 가야 하는 것”이라며 독일의 브란트정권이 한국의 통일부와 상통하는 ‘전독부’를 동·서독관계부를 뜻하는 ‘내독부’로 변경한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는 윤석열정부가 통일부의 남북 회담, 교류 협력, 개성공단 지원 등 조직을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폐합, 축소한 것에 대해 “비정상”이라면서 “통일부도 역할과 기능,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자의 이날 발언은 대북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새 정부와 북한의 평화 노선을 적극적으로 열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찬반 논란으로 번지자 정부조직 개편안을 준비 중인 국정기획위원회는 사흘 뒤인 같은 달 27일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진지하게 논의한 바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나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게 현명한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나흘 뒤인 지난 1일, 국정위도 통일부 명칭을 ‘한반도평화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입장을 번복했다. 북한이 2023년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내세우면 평화적 대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현행 헌법에 통일을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통일부에서 통일 명칭을 빼는 것은 헌법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일부는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출발해 1990년 통일원, 1998년부터 현재의 통일부로 명칭을 유지해 왔다. 역대 정부에서도 통일부 폐지나 명칭 변경 논의가 있었지만, 헌법정신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재까지 존속돼오고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4~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문재인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도 지난 1일, 헌법 조항을 근거로 명칭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 이사장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 부각 차원에서 통일부 명칭을 유지하고, 대신 대대적인 조직 및 업무 재조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헌법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함에 따라 명칭을 유지하면서 헌법 수호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여권 내에서도 통일부의 명칭을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우리의 목표가 통일인데 왜 목표를 바꿔서 과정으로 가느냐”며 ‘통일부 명칭 변경’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박 의원은 해당 사안에 대해 당내 분위기도 “통일부 그대로 가자는 것이 더 많더라”라고도 전했다.

이와 별개로 정치권 일각에선 아직 정식 장관으로 임명되지도 않은 후보자가 간판을 먼저 바꾸려 하는 게 적절한 처사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또 통일부의 명칭을 변경하는 게 자칫 통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금 중요한 건 통일부에 대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내부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하고, 어떻게 정책을 재정립해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도 “우리가 통일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북한이 대화에 불응하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우리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명칭을 바꿀 게 아니라, 우리의 방향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명칭 변경은 오히려 남남갈등을 키울 우려가 크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북한이 김일성 시절부터 내려온 ‘조국 통일’의 기조를 뒤집고 대한민국을 적대국이라고 규정했는데, 굳이 헌법에 명시된 통일의 명칭을 빼는 것도 문제지만, 북한이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직 인사청문회도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 신분으로 부처 명칭 변경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먼저 꺼내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며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충분한 내부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꼬집었다.

<jungwon933@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86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